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 보장(社會保障)과 사회 복지(社會 福祉)의 지도에 대한 일 고찰
나종혁
진로연구소 소장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라는 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시 국가의 사회 복지를 목적으로 등장했다. 이처럼 특수한 목적의 사회 복지는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유럽식 사회 보장의 전형적인 표어로 인식된 바 있다. 말 그대로,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개인의 의식주와 삶의 질을 국가가 보장해 준다는 이상적인 복지 지도이다.
사회 복지와 사회 보장은 개념상의 차이가 있다. 사회 복지는 국가가 천재지변과 같은 특수한 상황의 위기관리, 국민의 건강 의료와 교육과 같은 일반적 상황, 노약자와 같은 복지 대상의 위기관리, 그리고 지자체 또는 지역 등과 같은 지역적 상황과 관련하여 전 사회 분야에서 포괄적인 위기관리 수준에서 국민의 생존권과 생계권을 일시적 또는 중장기적으로 해결해 주는 국가의 복지 관리 제도이다.
사회 보장은 문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 생활의 전 부문에 걸쳐서 국민의 생존권과 경제적 평등권을 자율적으로 그리고 혁신적으로 보장하는 여러 다양한 제도와 정책을 뜻한다. 공공 또는 민영 보험, 최저 임금제와 소득 재분배 등의 최저 생존권 보장, 그 외의 여러 혁신적인 사회 보장성 프로그램의 창출이 그러한 사례이다.
위의 두 가지 개념상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혼란을 빚게 되면, 사회 보장이 사회 복지 위기관리로 잘못 흐르게 되어 국가 예산 관리와 경제 정책이 급격히 무너지는 경제적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정책은 사회 보장성 프로그램의 창출과 증진에 있다. 이러한 사회 보장성 프로그램은 몇 가지 원칙으로 분류된다. 주택 연금과 같은 개인적 부담의 원칙, 건강보험이나 연금보험과 같은 사회 보장의 사회적 제도화 원칙, 그리고 개인과 조직의 소득 재분배나 부(富)의 사회적 환원과 같은 개인의 사회적 책임 원칙이 그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국가사회의 사회 보장이 국가 관리의 사회 복지로 와전되거나 혼동될 경우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구별하고 혁신적으로 사회 보장성 프로그램으로 차별화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아무튼, 지도(地圖)라고 하면 피상적으로는 지리학적 개념으로 파악하겠지만, 상징적으로 지도라는 말이 쓰일 때는 복지의 지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 국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직업과 복지의 총체적 지도를 뜻하기 때문이다.
개발 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는 복지가 존재치 않거나, 일부 국가에서는 의외로 복지가 높게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후진국의 복지 상태는 높지 않고 흔히는 매우 낮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선진국 복지는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는 선진 사회에서 복지가 필요 없는 수준으로 직업이 보장되거나 점진적으로 복지가 개선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선진국과 후진국을 통틀어서 세계 어느 국가도 속 시원하게 복지 문제를 해결해 주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개발 도상국의 노동 문제와 복지 문제는 한 나라의 개발의 발목을 잡는 족쇄와 같았으며, 그와 동시에 개발은 무너지고 정체 사회로 접어들었다. 이 시점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 복지나 사회 보장의 지도가 실현될 것인가 또는 사회 복지가 과연 성취될 것인가의 질문은 시작부터 가능치 않다고 하는 게 일반론이다. 사실상, 그런 복지는 세계대전과 같은 특수한 안보적 상황이 아니고서는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라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다.
일본 정부는 늘어나는 노령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노인 복지에 재정을 지출하면서 미국 정부에 이어서 엄청난 정부 재정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사회 복지를 위한 정부의 과도한 복지비 지출이 언제 복지의 방류(放流) 현상을 빚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것도 사회 복지와 사회 보장이 혼재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서양식 복지나 사회 보장이 가능한가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답은 없다’라고 잘라서 말하게 된다. 사회 복지적 측면에서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재발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보장적 측면에서도 과연 일시적이 아닌 중장기적인 라이프 플래닝이 가능할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가 차원이나 사회 차원에서도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선진국에서는 요람과 무덤이라는 이러한 표어나 문구가 복지 제도를 개선하거나 복지 상태를 점진적이나마 증진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으며, 개발 도상국에서는 오히려 개발의 발목을 잡고 경제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역효과를 자아내기도 하고, 후진국에서는 부분적으로나마 국가의 사회 복지 기능으로 존재하게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가운데 노인 빈곤율이 1위로 가장 높다고 하며, 그 외의 복지 수치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턱없이 매우 낮다고 알려져 있다. 노인들에게 직업 선택이 자유롭지 않거나 제한되기 때문이며,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직업 선택이 자유롭지 못한 노인들에게 복지 혜택조차 제한적이라면 문제가 되기는 한다. 그럼에도 노인 복지가 여유 있게 존재하기는 경제가 발전한 일본 사회조차 부담스러운 경제 사회적 과제이다.
간단히 말하면, 일을 해야 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직업 선택이 의무이며,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는 나이에 이르면 그들은 직업의 의무가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멀어져서 복지 사회로 유리되는 현상이 빚어진다. 이것을 사회적 자본주의나 자본적 사회 또는 사회 복지 국가라고 한다면, 이는 경제 질서에 혼란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러나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복지 분야에서 일부 점진적 개선 효과를 빚어내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캐나다와 같이 국가 자본이 여유가 있는 선진 부국(富國)이나 알래스카주와 같이 주의 자원 소득이 높은 지역에 한정된 미래 사회의 트렌드로 평가된다. 우리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완벽한 사회 복지나 사회 보장을 기대한다면, 어쩌면 사회 복지 예산이 아주 높거나 사회 보장성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용되는 부유한 국가나 부유한 지역으로 적극적으로 이동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한정된 자원으로는 복지 제도의 개선에 한계가 있으며, 복지의 개선은 대개 자원이 풍부한 국가나 지역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복지 제도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문제에 해당하며, 해답이나 해결책이 따로 없다. 경제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개선이나 가끔 복지의 혁신적 제도화를 기대할 뿐이다.
확실한 것은 복지 제도의 변화는 국가 경제 발전의 결과에 따른 분배 행위이며, 따라서 경제적 결과와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국가는 복지 부국을 이루기도 하고, 어떤 국가는 복지 때문에 경제가 일시에 무너지기도 하고, 어떤 나라는 점진적이나마 복지의 개선을 바라기도 한다. 어떤 나라는 엄청난 재정 적자의 부담을 지기도 한다.
국가의 사회 복지 또는 더 정확히는 사회의 사회 보장이 소득의 재분배 행위라는 사회 정의적 차원에서 사회 복지와 사회 보장을 정책화하거나 제도화한다면, 소득의 재분배 실현에 포커스를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느 국가 경제의 에너지 사업 부문이 수익률이나 소득이 높다면, 그 소득을 사회적으로 재분배할 필요가 있다. 사업 소득에서 얻은 소득의 일부를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것은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소득 재분배의 원칙으로도 당연하다. 소득의 재분배가 필요한 분야는 에너지 외에도 부동산 그리고 자동차 등의 주요 수출 품목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는 은행들의 수익금 일부를 국가에 헌납해서 복지비로 지출하는 사례도 있었다. 지자체들이 독립적이고도 자발적으로 지자체 예산의 여유분이나 잔여분을 지역민들의 복지비로 지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자체의 잔여 예산을 지역민들의 복지비로 적극적으로 환원하는 것도 소득 재분배의 원칙과 일치한다.
국가 전체 예산의 10% 선에서 묵시적으로 합의된 사회 복지 예산은 다른 선진국들이나 OECD 국가들의 복지와 비교해서도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예산 대비 복지비의 비율을 선진 복지의 패턴과 일치해서 15%, 20% 선으로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가 지침으로 삼았던 복지의 지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대해서 확실한 답은 “없다”가 사실이다. 정책의 지향점이 발전과 복지로 상반되게 갈라지며, 어느 지향점으로 흐르는가에 따라서 정책과 경제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재정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복지를 개선코자 한다면 복지가 가능할 것이지만, 복지를 정책의 우선순위로 두기 시작하는 순간에 이미 경제는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고 재정 적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급증하기 시작한다는 예민한 경제 사회적 변화 그리고 소득 분배의 분기점 현상이나 복지 정책의 예상외 결과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사회 복지나 사회 보장은 소득 재분배 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으며, 소득의 형평성 보장과 재분배만이 사회 복지와 사회 보장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소득의 재분배는 정부 예산, 지자체 예산, 각급 조직체 예산, 그리고 국내외 여러 분야와 사업 부문에도 포괄적으로 적용된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사항은 사회 복지와 사회 보장은 다른 개념이며, 두 가지 개념이 개념상의 혼동을 빚을 때 국가 예산의 과도한 부담과 경제적 혼란을 부추기게 된다. 개념의 오류를 극복하고 사회 복지와 사회 보장을 개념상으로 올바르게 구분하는 게 우선시 되어야 한다.
사실상, 위기관리 외에 우리가 국가에 대해서 정책적 대안이나 예산 지출을 요구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위기관리가 아닌 평시 관리의 차원에서는 전혀 다른 접근이 뒤따라야 한다. 적극적이고 혁신적인 사회 보장성 프로그램의 활성화가 기대된다. <끝> <2023년 8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