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일승보성론 제2권 1. 교화품(敎化品) ≪논≫ 제1의 교화품(敎化品)에 있어서 이미 게송 가운데 설한 바와 같이 이 논은 넓은 문[廣門]이 열 한 품이고, 중간이 일곱 품이고, 대략 설한 것이 단 한 품이 있으니 알아두라. 그리고, 맨 처음에 해석한 한 품이 이 논에 있어서의법 이치의 체상(體相)을 갖춰 포섭한 것이니 알아두라. 게송으로 말하겠다. 불ㆍ법ㆍ승 삼보의 상품과 도와 공덕과 사업을 대략 설한 것이 이 논의 줄거리이니 일곱 가지 금강 글귀가 곧 그것이네.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힘인가? 금강이라고 말한 것은 마치 금강과 같이 저해하거나 파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증득할 바의 이치도 그러하기 때문에 금강이라고 말한 것이며, 글귀라고 말한 것은 이 논의 글귀가 능히 증득할 바의 뜻을 더불어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슨 뜻을 밝힘인가? 안 몸[內身]으로 법의 말 없는 체(體)를 증득하는 것인 만큼, 듣고 생각하는 지혜로써 증득하기 어려운 것이 마치 금강과 같은 것이다. 명자(名字)와 장구(章句)가 능히 저 이치 속의 증득할 지혜를 말해 줌으로써 바른 도에 수순하여 능히 그 근본을 짓기 때문에 이를 글귀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또 무슨 뜻인가? 두 가지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두 가지 뜻이란, 첫째는 증득하기에 어렵다는 뜻이고, 둘째는 원인이란 뜻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뜻이라 함이니 금강의 명자와 장구가 이러한 것인 줄 알아두라. 또 무엇을 뜻이라 하고, 무엇을 글자라 하는가? 뜻은 일곱 가지 증득할 뜻이 있다. 이른바 일곱 가지 뜻은, 첫째 부처님이란 뜻이고, 둘째 법이란 뜻이고, 셋째 스님이란 뜻이고, 넷째 중생이란 뜻이고, 다섯째 보리(菩提)란 뜻이고, 여섯째 공덕이란 뜻이고, 일곱째 사업이라 뜻이다. 이것을 뜻이라 함이니, 이 때문에 경(經)에 말씀하기를, “제1의 이치인 진리의 뜻은 이른바 심연(心緣)으로서도 알 수 없거늘 하물며 명자와 장구이겠는가”고 하였다. 그리고 글자란 것은 어떤 명자와 장구와 말소리와 바람 소리를 따라, 이 일곱 가지 뜻을 표현하기도 하고 설명하기도 하고 밝히기도 하고 보여주기도 하는 이것을 이름하여 글자라 함이니, 이 때문에 경에 말씀하기를, “세간의 진리란 이를테면, 세간에서 소용되는 일들을 명자와 장구와 언어(言語)로써 설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 이 일곱 가지 금강 글귀의 뜻은 여러 경 가운데 널리 설한 것과 같으니 알아두라.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부처님이란 뜻에 의지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경 가운데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여래라고 말하는 것은 볼 수 있는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눈의 알음알이[眼識]로선얻어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법이란 뜻에 의지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경 가운데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이 때문에 귀의 알음알이[耳識]로써 듣는 것이 아니니라”고 하셨다. 스님이란 뜻에 의지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경 가운데 아난에게 말씀시기를, “아난아, 스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함이 없음을 이르는 것이니 이 때문에 몸과 입으로 공양하고 예배하고 찬탄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중생이란 듯에 의지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경 가운데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리불아, 중생이라고 말하는 것은곧 모든 부처님ㆍ여래의 경계라, 알체 성문(聲聞)ㆍ벽지불(辟支佛) 등이 바로 지혜로써도 중생이란 뜻을 관찰할 수 없거늘 하물며 마음이 산란한 범부이겠는가? 이 뜻 가운데에 오직 여래를 믿을 뿐이다. 이 때문에 사리불아, 여래를 따라 이 중생의 뜻을 믿을지니, 사리불아, 중생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제1의 이치인 진리이니라. 사리불아, 제1의 이치라고 말한 것이 곧 중생의 경계이니라. 사리불아, 중생의 경계라 말하는 것이 곧 여래장(如來藏)이니라. 사리불아, 여래장이라고 말하는 것이 곧 법신(法身)이니라”고 하였다. 보리라는 뜻에 의지하기 때문에 경 가운데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란 것이 곧 열반의 경계이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열반의 경계란 것이 곧 법신이겠나이다”고 하였다. 공덕이란 뜻에 의지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경 가운데 사리불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리불아, 여래가 설한 바 법신의 뜻은 항하사[恒沙]보다 지나는 떠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는 헤아릴 수도 없는 부처님의 법이며 여래의 지혜ㆍ공덕이니라. 사리불아, 마치 세간의 등불이 광명의 빛과 닿임이 떠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는 것과 같으며, 또 마니 보배 구슬이 광명의 빛과 형상이 떠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사리불아, 법신의 뜻도 이와 같아서, 항하사 보다 지나치는 떠나지도 벗어나지도 않는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의 법이며, 여래의 지혜ㆍ공덕이기 때문이니라”고 하셨다. 사업이란 뜻에 의지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경 가운데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말씀하시기를, “문수사리여, 여래가 분별하지 않는가? 분별하지도 않거니와 분별할 것도 없어서 자연히 분별이 없나니 짓는 바 사업대로 자연히 행하기 때문이니라”고 하셨다. 이러한 것들이 이른바 일곱 가지 금강자구(金剛字句)를 대략 설한 것이다. 이것이 논에 있어서의 체상(體相)을 통틀어 포섭한 것이니 알아두라. 이 때문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일곱 가지 모양의 차례는 총지자재왕경(總持自在王經)의 보살수다라서분(菩薩修多羅序分) 널리 설한 세 글귀가 있고 그 나머지 네 글귀는 보살여래지혜(菩薩如來智慧)의 차별분(差別分)에 있으니 응당 이와 같이 알아두라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힘인가? 이 일곱 가지 금강자구(金剛字句)로써 이 논을 통틀어 포섭한 것이다. 일체 불법에 있어서 그 모양을 널리 설한 것이 다라니자재왕경(陀羅尼自在王經)의 서분(序分)에 있는 세 글귀와 나머지 네 글귀가 저 수다라의 보살여래법차별분(菩薩如來法差別分)에 있는 것과 같으니 알아두라. 서분(序分)에 있는 맨 처음의 세 글귀가 어떤 것인가? 저수다라의 서분 가운데 말하기를, “바가바(婆伽婆)께선 일체 법을 평등히 증득하시고 법 바퀴를 잘 굴리시고 한량없는 제자들을 잘 교화하여 조복하셨네”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세 가지 근본 자구(字句)는 차례로 불ㆍ법ㆍ승을 나타내 보여 저 삼보(三寶)가 차례로 생기고 성취됨을 설한 것인 줄 알아두라. 나머지 네 글귀는 삼보의 원인에 수순하여 삼보의 원인을 성취함을 설한 것인 줄 알아두라. 이것이 또 무슨 뜻을 밝힘인가? 모든 보살로선 팔지(八地)가운데에 열 가지 자재함을 으뜸으로 삼아 일체의 자재함을 구족히 얻는지라, 이 때문에 보살은 도량의 수승 미묘한 곳에 앉아서 일체법 가운데에 다 자재함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바가바께선 일체 법을 평등히 증득하셨네”라고 하였으며, 또 모든 보살로선 구지(九地)에 머물 적에 일체 법 가운데 더 없는 최대의 법사가 되어서 일체 중생들의 마음을 잘 알고 일체 중생들의 근기인 제1의 저 언덕[彼岸]에 이르러 일체 중생들의 번뇌와 습기를 끊을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이 큰 보리를 성취한다.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법바퀴를 잘 굴리시네”라고 하였다. 또 보살로선 십지(十地) 가운데에서 더없는 법왕(法王)의 지위에 머물게 되고, 그 뒤에는 일체 부처님 처소에서 불사를 일으키는 것이 자연히 행하여 항상 쉬지 않나니, 그러므로 경 가운데 말하기를, “한량없는 제자들을 잘 교화하여 조복하시네”라고 하였다. 저 한량없는 제자들을 잘 교화하여 조복하신 것을 저 경 가운데에서 그 다음으로 나타내어 보였으니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큰 비구 대중들과 함께 계셨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또한 또 한량없는 보살들이 있어 함께 계시고, 이와 같이 차례로 성문의 지위를 잘 교화하며 부처님의 보리(菩提)로 일체 번뇌를 잘 조복하시고, 이와 같이 필경 한량없는 공덕을 지니신지라 또 성문ㆍ보살의 모든 공덕을 설하고 나서 다음엔 모든 부처님ㆍ여래의부사의한 삼매 경계를 설하셨다. 또 모든 부처님, 여래의 삼매 경계를 설하고 나서 다음엔 때 없는 큰 보배 장엄의 보배 궁전 성취하는 것을 설하였다. 또 큰 보배 장엄의 보배 궁전 성취하는 것을 설하고 나서 다음엔 대중들이 운집하여 갖가지로 여래에게 공경 찬탄하되 갖가지 옷을 뿌리기도 하고 갖가지 꽃을 뿌리기도 하고 갖가지 향을 뿌리기도 하는 것을 설하시니, 이러한 것은 불보(佛寶)의 부사의한 일을 나타내 보인 것인 줄 알아라. 다시 그 다음엔 묘법의 장엄한 법좌(法座)를 설하시고, 또 묘법의 장엄한 법좌를 설하고 나서, 다음엔 법문의 명자(名字)를 설함과 동시에 공덕을 나타내 보이시니, 이러한 것은 법보(法寶)의 공덕 차별을 밝힌 것인 줄 알아둘지라. 다시 그다음엔 모든 보살마하살의 공통된 삼매경계를 설함과 동시에 갖가지 공덕을 나타내 보이시니, 이것은 승보(僧寶)의 공덕 차별을 밝힌 것인 줄 알아두라. 그 다음엔 다시 여래께서 큰 광명을 놓으사 모든 보살마하살과 태자(太子)에게 법왕(法王)의 직위 수여하는 것을 설하시고, 그 다음엔 다시 누구에게도 두려움이 없고 겁약(怯弱)하지 않는 변재(辯才)를 설하시고, 그 다음엔 다시 모든 부처님ㆍ여래의 제1공덕을 설하셨다. 그 다음엔 다시 가장 제1인 대승의 법을 설하시니, 이는 저 대승을 여실히 수행하기 때문에 법 가운데 과(果) 증득하는 것을 나타내 보임이라. 이러한 것이 곧 저 삼보의 더없는 공덕의 차례 차별이다. 서분(序分) 가운데의 뜻을 대략 이미 끝내었으니 이와 같이 알아두라. 이미 자재왕보살수다라서분(自在王菩薩修多羅序分) 가운데의 삼보(三寶)를 설하였다. 다음엔 불성의 뜻을 설하건대 예순 가지 법이 있어서 저 공덕을 청정케 함이다. 왜냐하면 저 청정한 한량없는 공덕의 성품이 있는지라 저 성품을 청정케 하기 위해 예순 가지 법을 닦는 것이다. 이러한 뜻이기 때문에 십지경(十地經) 가운데 자주자주 금(金)을 설하여 비유로 삼았으니, 이것이 저 불성을 청정케 하기 위한 뜻이기 때문이다. 다시 이 다라니자재왕경(陀羅尼自在王經) 가운데 여래의 사업을 설하고 나서 그 다음에 청정하지 않는 큰 비유리(毘琉璃)와 마니(摩尼)보배의 비유를 설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여, 마치 선교(善巧)한 마니 보배 기술자가 청정한 큰 마니 보배를잘 앎으로써 큰 마니 보배의 성질이 있는 산중에 나아가 아직 청정하지 못한 마니 보배를 캐내고, 이미 보배를 캐내어서는 독한 잿물[灰]로 씻고 독한 잿물로써 씻은 뒤에 다시 검은 머리털 수세를 갖고서 닦되,그것만으론 만족하지 않아 부지런히 쉬지 않고, 다음엔 다시 신맛이 나는 음식 즙(汁)으로써 씻고, 음식 즙으로써 씻은 뒤에 또 수세로 둘러싼 나무로써 세밀히 갈고 닦되, 그래도 만족하지 않아 부지런히 쉬지 않고 그 다음엔 큰 약물 즙으로써 씻고 약물 즙으로써 씻은 뒤에 다시 보드라운 천으로써 닦고 이 보드라운 천으로 닦은 뒤에, 구리ㆍ쇠 따위 광물[鑛]의 성질과 비유리의 때[垢]를 아주 여의고서야 바야흐로 큰 비유리 보배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도 또한 그와 같아서 그 청정하지 못한 모든 중생들의 성품을 잘 앎으로써, 알고 나선 곧 그들을 위해 ≺덧없음≻과 ≺괴로움≻과 ≺나≻없음과 ≺청정하지 않음≻을 설하사 저 세간을 좋아하는 중생들을 놀래고 겁내게 하는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세간을 싫어하고 성문(聲聞)의 법 가운데 들어가게 하시되, 부처님ㆍ여래는 그것으로 만족하게 여기지 않고 부지런히 쉬지 않으시어, 그 다음엔 다시 ≺공≻함과 ≺모양 없음≻과 ≺원 없음≻을 설하사 저 중생들로 하여금 조금이나마 여래의 설하신바 법 바퀴를 알게 하시되, 부처님 여래는 역시 만족하게 여기지 않고서 부지런히 쉬지 않으시어, 그 다음엔 다시 물러나지 않는 법 바퀴를 설하고 또 그 다음엔 청정한 바라밀(波羅蜜)의 행을 설하시나니, 이를테면 세 가지 일을 보지 않고 중생들로 하여금 여래의 경계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갖가지 원인을 의지하고 갖가지 성품을 의지하여 불법 가운데 들어가게 하시나니, 불법 가운데 들어가게 하시기 때문에 더없는 최대의 복밭[福田]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또 이 자성(自性)이 청정한 여래의 성품을 의지해 이 때문에 경 가운데 게송에도 말하였다. 마치 돌광[石鑛] 가운데 진금(眞金)을 볼 수 없듯이 능히 청정하게 보는 이라도 부처님을 보는 것이 그러하네. 앞서 불성을 설함에 있어서 예순 가지 청정한 업과 공덕이 있다고 하였다. 그 예순 가지가 무엇인가? 이른바 네 가지 보살의 장엄과,, 여덟 가지 보살의 광명과, 열여섯 가지 보살마하살의 대비(大悲)와, 서른두 가지 보살의 업이 그것이다. 이미 불성의 뜻을 설하고 다음에 부처님의 보리(菩提)에 열여섯 가지 더없는 보리와 대자대비하신 마음이 있음을 말하였으며 , 이미 부처님의 보리를 설하였다. 다음에 모든 부처님ㆍ여래의 공덕은 설하였으니, 이른바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과, 열여덟 가지 특수한 법이 그것이다. 이미 공덕을 설하고, 다음에 여래의 서른두 가지 더없는 큰 업과, 이러한 일곱 가지 금강자구(金剛字句)의 뜻과, 저 수다라(修多羅)에 널리 설한 체상(體相)을 설하였으니, 이와 같이 알아두라. [문] 이 일곱 가지 글귀에 어떤 차례가 있습니까? [답] 게송으로 말하겠다. 부처님으로부터 그 다음에 법이 있고 법 다음에 스님이 있고 스님 다음에 거리낌 없는 성품이고 그 성품 다음에 지혜가 있으며 십력(十力) 등의 공덕으로 일체 중생들을 위해 이익되는 사업을 일으키는 이러한 차례가 있는 것이네. 이미 맨 처음의 한 품이 이 논에 있어서 법 이치의 체상(體相)을 갖춰 포섭한 것임을 설하였다. 다음엔 일곱 가지 품이 또 이 논에 있어서 법 이치의 체상을 갖춰 포섭한 것임을 설했으며, 게송의 뜻까지를 해석해 두었으니, 응당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예경할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을 밝힘인가? 모든 여래께서 중생들을 교화하시니 만큼, 저 중생들로서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여래를 존경하며 법에 귀의하고 여래를 존경하며 스님에게 귀의하고 삼보에게 귀의한다. 열두 게송을 설함에 있어서 처음 불보(佛寶)를 밝히기 때문에 네 게송을 설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