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피덕희의 시 세계
자연 향취와 서정시학의 원류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자연 서정과 시간의 향기
현대시의 구도와 주제의 골간(骨幹)은 대체적으로 자연 서정을 시적인 주축(主軸)으로 해서 거기에서 생성하는 향취(香臭)를 우리들이 음미(吟味)할 수 있도록 시인들은 그들의 특유한 정서와 사유(思惟)의 지적인 형상화를 위해서 다양한 언어의 깊이를 전해주고 있다.
우리들은 이러한 자연 풍광(風光)에서 획득하는 심리적인 감응(感應)뿐만 아니라, 대사물관(對事物觀)에서 유추하는 시적 상상력은 시의 본령(本領)이나 위의(威儀)에를 더욱 긍정적으로 유로(流露)하는 특징을 엿보게 한다.
여기 피덕희 시인이 상재하는 첫 시집『푸른 수의』의 원고를 일별(一瞥)하면서 이러한 기본적인 담론(談論)을 먼저 적시(摘示)하는 것은 그가 시적인 소재의 취택(取擇)과 주제의 투영(投影)에서 자연의 섭리와 상응하는 시간의 향기를 적절하게 융합하면서 우리 인간의 내면에 상존(常存)하는 시적 진실을 탐색하고 있음을 간과(看過)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피덕희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지나온 길엔 들풀과 야생화, 풀벌레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들로 계곡으로 쏘다니며 캐먹던 더덕, 건져먹었던 도룡뇽알이 살을 일구었다면, 아버지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정직과 성실, 그리고 어머니의 밝은 지혜가 제 정신의 줄기가 되었습니다.’라고 자신의 시 정신의 일단을 현현(顯現)하면서 그의 서정적인 근원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서정적인 자연관은 사계절의 시간성을 원류(源流)로 하여 생성하는 자연 현상들과 현장들을 심도(深度) 있게 탐구함으로써 그가 지향(指向)하려는 시적 구도와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아가 손가락 같은 버들가지
연둣빛 살갗 위에
무거운 흙덩이 밀고 올라오는
마늘잎 눈썹 언저리에
꽃샘추위에게 들킬세라
뜰방에서 살포시 눈뜬 원추리 귀끝에
비둘기 터 잡은 전봇대 정수리
산수유 꽃망울 터질 듯한 가슴에
그는
소리없이 숨어 있었다.
--「초봄」전문
그는 이러한 ‘초봄’이라는 시간 위에 전개되는 다양한 사물들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생명성을 시정(詩情)으로 발현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어조(語調)에서 알 수 있듯이 ‘버들가지’, ‘마늘잎’, ‘원추리’, ‘산수유, 등 다양한 춘절(春節)생명들이 나열되어 ’봄‘에 관한 이미지들이 ’소리없이 숨어 있‘는 정경(情景)으로 분화(分化)하고 있다.
피덕희 시인은 이처럼 「봄비 그친 아침」이나「봄 손님」등 ‘봄’과 연관되는 작품을 많이 구사하는 것은 ‘봄’의 이미지는 바로 생명성의 시작이라는 기본적인 보편성을 이해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 상생하는「자목련」「자귀나무꽃」「달맞이꽃」「들나리꽃」「능소화」「천리향」등에서 자연의 향취를 더욱 그의 시심으로 접근시킴으로써 그가 지향하려는 서정적 자연관을 정서의 중심축에 설정하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
산동백 노란 향기
고개를 들면
사람들 하나 둘
산을 오른다
옹달샘에 떨어진 햇살
부르르 몸을 털자
놀란 도롱뇽
물바닥 낙엽 밑으로 몸을 숨긴다
--「수락산에서」중에서
보리밭 사이로 들어가는
순한 누룩뱀과
소금쟁이, 맹꽁이, 우렁이가
추억처럼 사는 연못
다리를 건너
천국 가는 계단에 서면
쓰레기 밟지 않고
설 수 있는 생이 어디 있냐며
조팝꽃들 흰 소리한다.
--「하늘공원」중에서
그렇다. 우리들이 흔하게 대할 수 있는 미물(微物)의 생명체가 계절의 향기를 내뿜으면서 생동감 넘치는 주제로 형상화하는 것은 이러한 시간과 공간 그 넓음 환희의 세계를 구현하려는 피덕희 시인의 잔잔한 정서의 일단이며 그의 영원한 삶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2. ‘그리움의 진원지-어머니
피덕희 시인에게서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을 다시 감지(感知)할 수 있는 것은 ‘그리움’에 대한 명민(明敏)한 감응(感應)으로 접근하는 그의 확고한 시적 진실이다.
그는 떠나온 ‘고향’과 더불어 회상하는 부모들 그 주변에서 형성되는 체험으로 함축(含蓄)하여 재생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지나온 과거의 이미지에는 절실하게 각인(刻印)되어 있는 간절한 의식의 메시지가 흐르고 있다는 점을 중시하게 된다.
버들치 몇 마리 병에 가두고
눈높이 하던 개구쟁이 같은 사월이 되면
쭈뼛쭈뼛 내미는 그리움의 젓순
해를 넘겨 찾아간 아버지 무덤엔
외로움 홀로 다독여 뭉뚝해진 봉분
--「사월이 되면」중에서
어느 날 문득
어머니 옆에 앉아
못난 아들 마중물 되어 푸칵푸칵
옛 기억을 퍼 올리고 있을 때
내가 마신 샘물이
어머니의 맑은 피라는 걸
알고 말았지
그 사랑으로 오늘도 이렇게
여기 꿋꿋이 서 있네.
--「마중물」중에서
피덕희 시인에게 내재(內在)된 ‘그리움’의 진원지는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시적 화자(話者)의 설정으로 우리 인간사에서 배제할 수 없는 부모에 대한 애절한 정감의 발현으로 그에게 시적 상상력을 가미하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버들치’와 ‘개구쟁이’, ‘젖순’ 등 고향에서의 회상이 이 ‘그리움’에 대한 원천(源泉)으로 작용하고 나아가서는 ‘아버지의 무덤’까지도 시적 대상으로 이미지를 확산하고 있다.
또한 그는 ‘어머니 옆에 앉아 / 못난 아들 마중물 되어’ ‘옛 기억을 퍼 올리고 있을 때’ 비로소 그는 ‘어머니의 맑은 피’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재생된 상상은 그의 존재문제 혹은 자아(自我)의 인식으로까지 창조적인 이미지로 승화하고 있는데 이는 고향과 부모들을 비롯한 유년의 잡다한 일상들이 그의 심중에서 새롭게 재탄생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서 읽을 수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시적 어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사나운 바람이 뒷문을 치면 / 코 고시던 아버지는 / 삽자루를 메고 나가셨다 // 논둑 트 고 고랑을 파도 / 근심처럼 물은 차올라 / 아침이면 동동 뜨던 마을 / 즐거운 우리 대신 아우성치며 / 학교로 가던 앞개울 / 그러다 비가 뜨막해지면 / 능구렁이처럼 물살은 게을 러지고 / 잠긴 논 위로 쭈삣 / 내다보던 벼의 머리 // 학교 앞산에 / 쌍무지개 다리 놓이 면 / 다음날 학교에 가야만 했다.(「장마지던 날」전문)
- 풀무덤 앞 풋밤송이 / 먼저 성묘를 왔다 // 사각사각 풀 베는 대신 / 뻐꾸기 울음 삼키는 예초기 소리 // 기계면도 하신 아버지 앞에 / 알코올향 짙은 신제품 술을 따르면 // 길어 지는 산그림자처럼 / 지게 지신 아버지가 내려오시려나 // 아버지 냄새 같은 풀내 파란데 / 가슴은 텅 빈 외양간 // 기억 속에 사시는 동안에도 / 아버지는 날마다 꼴을 베신다. (「벌초하는 날」전문)
- 어머니는 / 검은 머리 뽑아 / 자식 머리를 길러주셨다는 걸 / 말마디 / 한숨짓는 곳마다
흰 머리 듬성이는 걸 / 잔소리하는 나이가 / 되어서야 압니다.(「숨어있는 소리」중에서)
- 그런 어머님 마음 / 쑥쑥 자라 / 지금 내 마음 되었지요 / 호롱불 밝힌 / 가슴이 되었지 요.(「자라는 마음」중에서)
- 어느 날부터 재봉틀이 윗목에서 / 고개 들지 않게 되면서부터 / 짜깁기 되지 않는 날들 // 역회전하는 재봉틀 바퀴처럼 / 추억이 된 지금 / 윗목에 모셔둔 재봉틀을 열어 / 어머 니의 땀수를 헤아리고 싶다.(「재봉틀」중에서)
피덕희 시인은 이러한 ‘그리움’의 원류로 ‘가끔은 / 기억 안에 없던 것들이 / 기억을 되살리기도(「남한강」중에서)’ 하는 보편적인 상상력의 재생에서도 그의 뇌리(腦裏)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추억이’ 많다는 점이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생명의 원천인 고향이나 부모형제들의 애환은 모두가 시적구도를 형성하고 안온(安溫)한 그리움의 주제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작품 「남한강」에서 ‘부론초등학교의 풍금소리’, 「시골장터」레서 ‘부론 오일장에 가면 / 돈을 주고 사는 것은 / 물건만이 아니다’ 그리고 「청국장」에서 ‘서로를 잇는 것이 / 끈끈한 유대라는 걸 / 콩들은 안다 // 거친 비바람에 휘둘리고 / 천둥번개 받아내며 / 얼굴 누런 콩들이 // 병아리 어미 날개 파고들 듯 / 아랫목 포대기 안에서 / 서로의 손을 잡으면 // 그 향기 / 달아오른 화롯불 위에서도 / 이웃 담장을 넘어 / 시린 밤을 날아다닌다.’는 그의 심연(深淵)에는 향수(鄕愁)를 통한 시적 형상화가 결국 ‘그리움’이라는 이미지와 주제로 승화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3. ‘절대자 당신’을 위한 기도
피덕희 시인은 다시 그가 일생을 통해서 그의 가치관으로 설정한 중요한 신념이 작품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절대자 당신’이다. ‘절대자 당신이 /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 영혼을 적셔올 때 / 그 때 눈물 납니다--중략--이제, 나에게도 / 당신이 주신 눈물 솟기 시작하여 / 마음을 씻고 욕심을 씻어 / 순한 눈을 갖게 합니다 / 당신의 / 푸른 눈망울을 갖게 합니다.(「눈물」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절대적인 존재와 교감했을 때 그의 시 정신과 시인의 위의는 더욱 광채를 발하게 된다.
그런 당신께
나를 위해 매달리던 시간이
당신의 손발에 박힌 못이 녹이 슬어
손발이 찢기는 시간인 것을
진정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우리들 심장에선
당신을 못박아 세우는
망치소리 쩡쩡합니다.
--「망치소리」중에서
온전히 주님께 맡길뿐
이제 내어 줄 수 있는 건
눈물로 얼룩진 성경책 한 권
언제쯤이면 그 마음 알까.
--「어머니의 기도」중에서
피덕희 시인은 우리의 현대시가 담당해야 할 기능이나 위상은 이와 같은 우리 인간들이 일생동안 수행해야 할 휴머니즘(humanism-인본주의)의 실현을 ‘절대자 당신’에게 충실하게 기도함으로써 화해하는 시법을 적시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근원적으로 구현하려는 가치관이 영원불변의 궁극적(窮極的)인 핵심이기도 하지만, 그의 치열한 시혼(詩魂)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진실을 탐구하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 심장 파열음 들려올 때도 /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 기도하던 당신’을 찾아서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어머니’에게서 기도를 연상하게 되는데 ‘언제쯤이면 그 마음 알까’라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기도의 의미를 작품의 심저(心底)에서 건져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작품「기도」를 연작시로 일곱 편이나 보여주고 있는데 ‘나를 위해 간구하기보다 / 이웃을 위해 간구하는 즐거움 / 이웃의 싱그러움이 / 제 기쁨 되게 하소서’(「기도(1)」중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어진 손 / 그 땅 위에 내려주사 / 그들의 아픈 마음 쓰다듬어 주시고 / 삶의 터전 다시 일궈주시라 / 그들의 방파제가 되어주시라.(「기도(7)」중에서)’라는 간절한 기도의 목적이 명징(明澄)하게 나타나 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나를 위해’가 아닌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기도(7)」마지막 연은 ‘일본 미야기현 대지진’ 참사를 염려하면서 그들의 안녕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일찍이 청록파 박두진 시인은 그의 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하여」에서 ‘나에게 있어서 기도, 사랑, 시의 세 가지 중에 어느 것 한 가지라도 빠지게 되면 생의 내적인 균형은 깨어지고 만다. 물론 종교적, 궁극적으로는 기도가 훨씬 상위에 속하고 그리고 시 그리고 사랑의 차례가 될 것이다.’라는 말처럼 이 ‘기도, 사랑, 시’는 주제의 투영에서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피덕희 시인은 이러한 선각자들의 예언적인 언어를 이미 숙지한 신심(信心)이 현실적인 갈등과 고뇌들을 여과(濾過)하고 진정한 그의 인생관으로 정립되어 피덕희 시학(詩學)으로 창출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시적 정황(situation)이나 시적 전개는 그가 지향하려는 인생의 목표가 명확한 지표가 정착했을 때 가능한 것과 같이 시인의 가치관이 명확할 때 우리는 그 작품에 대해서 감응하고 공감하게 될 것이다.
올곧음으로
그리스도의 심장(心臟)을 가지고
십자가의 길을 가라.
--「시자가의 길」전문
오늘 하루를
세상 끝날처럼 살으렵니다
새벽기도로 시작하여
저녁기도로 마무리하렵니다
제 마음밭에서 핀
감사의 향기가
당신의 코끝에서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제 마음을 가꾸시는
당신은 나의 정원사
당신의 전지로
바로 서는 저는
싹이 날 때마다
당신께 손 모읍니다.
--「감사」전문
피덕희 시인의 기도는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며 ‘오늘 하루를 / 세상 끝날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실재(實在)의 상황들이 시라는 매체를 통해서 그의 정신(poetry)으로 승화한다는 것은 우리 시가 요망하고 있는 주제의 정신을 투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가 ‘그 이후, 성경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올곧음으로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늘 본향을 바라보며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라고 ‘시인의 말’에서 언급했듯이 그는 ‘절대자 당신’과 ‘성경 말씀’을 모태(母胎)로 한 시 창작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4. ‘충혼의 불길’로 타오르는 기개
피덕희 시인은 현역 육군 장교이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분단 조국을 방위하기 위해서 ‘충혼의 불길’을 태우고 있다. 그는 작품 곳곳에서 군인다운 아니 군인 정신의 기개(氣槪)가 깃든 어조와 주제가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어쩔 수 없이 실생활(real life)에서 획득하는 상황들이 그의 내공(內空)을 통해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는「푸른 수의」에서 다음과 같은 충성심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고이 접어놓은
빛바랜 옷 한 벌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흙탕물에 뒹굴며
무른 땀 냄새 품고
매서운 칼바람에도
갈기갈기 불평 한 마디 없던
땀과 눈물로 아로 새긴
뼛속까지
푸르게, 푸르게 스며들어
죽어서도 함께 할
고이 접어놓은
얼룩무늬 제복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푸른 수의」전문
그는 ‘얼룩무늬 제복’ 을 ‘푸른 수의’라고 해서 수의(囚衣)가 아닌 수의(壽衣)로 ‘죽어서도 함께 할’ 군인과의 인연을 중시하는 이미지가 진하게 풍기고 있다. 이러한 그의 충성심과 애국정신은 ‘물길처럼 / 한반도 구석구석 뚫려 / 오롯이 푸른빛이길 / 그 서광 비치는 날이 / 오늘이길 / 꼭 오늘이기를.(「통일을 위한 기도」중에서)’ 그리고 지난 연평도 포격사건에서 전사한 ‘고 서정우 하사와 고 문광욱 일병’을 애도하는 작품 ‘스러진 두 영혼* / 무엇으로 위로한단 말인가 / 철모에 불붙은 줄도 모르고 / 임무완수에 매진했던 그대들 / 부디 / 평화의 불씨 되어 돌아오라 / 충혼의 불길로 오래 기억되라.(「불붙은 연평도」중에서)’는 그의 강렬한 메시지가 진정한 군인전신으로 승화하고 있다.
또한 그는 ‘불모지에서도 살아남을 / 그 모두를 / 우리는 / 용마부대 용사라 부른다.(「불암산 유격장」중에서)’거나 ‘반세기 훌쩍 넘게 /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 기쁨과 고통의 순간마다 / 나를 건져 올렸지(「군번줄」중에서)’ 그리고 ‘군가소리 사라진 연병장에 / 조록조록 / 찻물 소리 퍼진다(「연병장에 내리는 봄비」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현장감이 넘치는 다양한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대시인 T.S 엘리엇도 시가 ‘무엇은 사실이다’하고 단언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좀더 리얼하게 느끼도록 해 주는 기능도 있다고 말한 것을 보면 대사물관에서 인지되고 획득하는 이미지나 주제의 추출은 얼마나 중요한 작용을 하고 이는지 짐작할 만하다.
피덕희 시집『푸른 수의』에서 감응할 수 있는 시적 구도는 대체로 이처럼 우리 주변(그의 특수한 주변-군인)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자연 서정을 중심으로 시간적인 향기를 맛보게 하고 그 자연과 시간이 크게 감동으로 남겨진 그리움-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절대자 당신’을 기원과 간구의 신심을 통해서 자신과 이웃의 사랑을 실천하려는 인도주의적인 시의 진실을 적시하고 또 그가 현역이라는 실생활과 관련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이러한 사실들은 철학자 M.하이데거가 말한 ‘시는 우리들이 익숙해서 믿어버리고 있으며 손쉽게 가깝고 명백한 현실에 비해서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꿈같은 느낌을 일으킨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것으로서 시인이 말하고 시인이 이렇다고 긍정한 것 그것이야말로 현실인 것이다.’라는 언지와 같이 피덕희 시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이 인식과 수용, 갈등과 화해, 그리고 지향적인 기원과 간구 등이 실재와 더불어 형상화하고 있어서 시의 진실은 더욱 가치가 상승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많은 사유의 골짜기를 흘러서 진정한 시인의 가슴에서 뜨겁게 용해되는 것이기에 새롭고 진취적인 주제의 창조를 위해서 열정을 가미하여 두 번째 시집에서는 더욱 감동적인 작품을 대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