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섬게임
프롤로그
46억 년이 지난 지구에는 현생의 인류가 살고 있다. 지구에 나타난 지 단 35만년뿐인 인류가 과연 지구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지? 지능이 더 높은 외계인이 지구에 숨어들어 온다면 인류는 여전히 지구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지? 지능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인류가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들을 맘대로 할 수 있다면, 더 지능이 높은 외계인이 인간을 식용하는 것은 가능한 것이며 이 모두가 용납되는 일인가 하는 것은 모두의 화두가 될 것이다. 이 찬란한 6월의 햇살 아래에서···.
동아리 한결
6월의 바람이 불어온다. 곧 있으면 여름방학이 될 것이다. 날은 무더웠고 창가에 앉은 현우는 햇살이 따가워 자꾸 몸을 뒤척거렸다. 제대 후 기른 머리가 버거운지 책상에 자꾸 헤딩을 하는 현우였다. 교수가 강의를 진행하든 말든.
처음 제대하였을 때 동기와 함께 담임교수를 찾아 뵈었다. 교수는 이제 제대도 하였으니 학업에 신경 쓰라고 충고했는데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렇게 잠에 빠져서야.
현우는 또다시 전 여친에게 차이는 꿈을 꾸었다. 남들은 제대하면 다시 입대하는 끔찍한 꿈을 꾼다더니 자신은 여친에게 차이는 꿈만 계속 꿨다.
군대 갔다 온 후로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컴퓨터공학과 수업은 여전히 지루하기만 하였다. 처음이야 호기심도 있고 열정도 있었겠지만 똑같은 수업에 똑같은 패턴.
흥미위주의 새로운 커리큘럼으로 수업을 싹 다 바꾼다면 수업태도도 좋아지련만 미지의 것을 배운다는 것도 부담이 되는 일일 터, 그 마저도 스승님의 말씀조차 따르지 못한 바에야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래서 아무 말 하지 못하고 고개만 책상에 조아리고 있던 중이었다. 수업이 끝나자 현우는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복도에 있는 게시판에는 스터디를 구하는 전단지가 붙어있었고 동아리에 관한 포스터도 달려있었다. B동에 있는 동아리방으로 향하던 그에게 다른 수업을 듣던 친구가 한가로운지 현우를 기다리다가 술이나 한잔 하자며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알콜중독자란 별명으로 유명한 한장군이라는 녀석이었다.
“현우야 시간 어때? 우리 한잔만 하자.”
장군은 이미 술에 취해 얼굴이 붉어있었고 말을 할 때마다 여학생들이 도망갈 술냄새가 퍼져나왔다.
현우도 남는 게 시간이었지만 대낮부터 취하기가 뭐해서 장군이 어깨에 두른 팔을 신속히 빼내며 선수치듯 빠르게 말했다.
“다음에 하자. 요즘 하는 일이 있어서 좀 바빠.”
"짜식, 뭐가 그리 바쁘다고 그래."
내심 아쉬운지 장군이 입맛을 다시며 다음에 시간이 나면 한잔하자고 말했다.
그와 건물 현관에서 헤어지며 현우는 다시 동아리방으로 향하였다. 그에게 숨통이 트이는 건 역시 동아리 활동 뿐이었다. 방에 들어서니 같은 학년의 체격이 건장한 스포츠머리를 한 영호와 한 학년 아래의 예쁘장하게 생긴 고등학교 후배인 아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우는 동아리방 한 가운데에 놓인 탁자 위에서 UFO 사진을 집어 들고 말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내가 말한 것 생각해 봤어.”
한쪽에서 아령을 들고 운동하고 있는 영호를 바라다본다. 영호는 체육학과에 다니는 학생으로 체격이 다부졌다.
“그게 무슨 말인데, 외계인이 지구의 미래에 존재 한다니?”
현우 옆에서 조용히 같이 사진을 바라보던 아영이 둘을 둘러보며 말한다.
“그러니깐, 어, 현우 선배 말씀은 다른 행성에서 지구에 도착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래서 외계인이 지구의 미래 어디쯤 도착했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
“그리고 지구의 미래 어딘 가에서 다시 현재로 워프 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고 계신거고요.”
영호는 아령을 놓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힘쓰는 것보다 생각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본인은 느끼는 중이다.
“그래,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된다고, 그만한 능력이면 자기네 행성에서 이곳으로 확 워프 해버리면 간단하잖아."
“글쎄요.”
아영은 다시 현우를 바라다본다. 현우를 좋아하는 그녀는 현우의 눈치를 보며 잘 보이려고 애쓰는 중이다.
“근대요, 아직 그럴만한 능력이 없는 건 아닐까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아영은 다시 한번 현우를 바라다본다. 그러나 현우는 묵묵무답이다.
“음…. 설명하자면요, 여기 종이를 이렇게 겹쳐봐요. 이건 지구의 과거, 이건 현재, 이거는 지구의 미래를 나타내죠.”
아영은 책상에서 색종이를 꺼내어 빨간 색종이와 파란 색종이, 노란 색종이를 모아 하나로 합친다.
“여기서 한 점을 볼펜으로 뚫으면 다른 시간대의 동일 공간과 만난다는 거죠. 그렇죠. 선배!”
자신은 잘 이해하고 있다는 듯 현우를 응시하며 말하자 현우는 방을 서성이며 말한다. 생각하거나 심각해질 때마다 왔다갔다 서성이는 것은 그의 오랜 버릇이다.
“여태 설명해왔는데 이해를 못하다니. 난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시간 여행자가 그 가능성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싶어.”
현우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더니,
“그것이 동시간대의 순간이동이 아니라면 말이지. 아! 나도 이런 반복된 설명을 할 때면 어느샌가 집으로 순간이동하고 싶어진다고.”
여태 설명해왔던 아영이 뽀로통해 하며 말한다.
“너무하네요, 선배. 남들도 항상 선배와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사는 건 아니라고요.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아영이 책상에 흩뜨려 놓은 색종이를 다시 정리하며 말한다.
“그건 그렇다 치고 선배! 오늘도 수업시간에 또 주무시고 그러신 건 아니겠죠?”
현우가 부끄러운 듯 아영의 마주보는 시선에 얼굴을 돌리며 말한다.
“주무시다니! 나 그렇게 나이 먹지 않았다고!”
현우가 약간 화가 난 표정으로 말하자,
“그럼, 그럼. 넌 언제나 변함없어 좋다니까.”
“그렇게 꿀 잠 자다 보면 어느 순간 폭삭 늙어버리게 될 테고, 그런 너에게 거리감 있는 주무신다는 말이 딱 어울릴 테지. 크크크.”
아영을 바라보며 영호가 고소해하며 말한다.
“선배님 그렇게 비꼬지 마시고요.”
“현우선배도 말 돌리지 마세요. 우린 동아리 인원이 부족해서 학업성적 나빠지면 동아리 없어질지도 모른단 말예요. 제발! "
현우일행은 오후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식사를 할 요량으로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현우는 요새 새로 찍혔다는 UFO사진을 집어들고 바라보기 시작했고. 아영과 영호의 성화에 못이겨 다시금 지저분한 서류뭉치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곧 식사를 하기위해 동아리방을 나와 작은 분식점에 들렀다.
“넌 무슨 떡볶이만 좋아하냐.”
영호가 아영을 바라보며 묻자.
“선배, 선배는 왜 제 식성만 가지고 그래요.”
아영이 현우를 바라다본다.
“떡볶이는 내 최애 식품이야. 무슨 불만이라도 있어.”
아영은 지원군이라도 생긴 것 마냥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쳇. 고기라도 먹어줘야 근손실이 없다고.”
“넌, 뭐 매일 대회 나가냐.”
“흥, 넌 꼭 대회 나가야 몸관리를 하냐.”
“아무것도 안 하는 네 근육이 불쌍해서 그런다.”
“선배님. 이러지들 마세요. 이러면 다신 선배들과 식사 안 할 거예요.”
아영이 입술을 비쭉인다.
분식점 한켠에 걸려있는 TV에서 UFO 관련 뉴스가 흘러나왔다. 여성 앵커도 상당히 궁금한 모양이다. 전문 패널이 현상황을 설명하고 있는데, 듣고 있던 여성 앵커가 말을 잘랐다.
<그러니까 이번이 두번째란 말이군요.>
<예, 1995년 9월 4일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에서 사진이 찍혔었죠. 당시 문X일보 기자였던 김XX 씨에 의해 촬영된 사진으로 원본과 필름이 모두 남아있죠. 방송에서도 그것을 다뤘었는데, 조작은 아니라 판명되었죠.>
<최근 UFO나 시간여행자에 관한 일들이 너튜브나 여러 사이트에서 방송되고 있는데 조작이 많다고 하지않나요?>
<그렇지요. 사람들 관심을 끌기 위해 너도 나도 사진을 합성하기도 하고 조작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이번에 발견된 사진은 어떤가요?>
<아, 우선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었고요. 천문대에서도 관찰이 가능했나 봐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번에 발견된 UFO는 외계인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 지 알아낸 것은 없나요.>
<알다시피 UFO란 말 그대로 미확인비행물체죠. 그것이 꼭 외계인의 비행물체를 칭하는 것은 아니예요.>
<외계인이 행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단 말이군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다른 증거가 나온다면 그때 다시 듣기로 하죠.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행은 떡볶이를 먹는지 마는지 포크를 들고 멈춰서서 뉴스를 시청하기에 바빴다.
“오늘 뉴스에 자주 나오던데. 혹시 더 아는 건 없어?”
현우도 아까 동아리방에서 보았던 사진에 대한 또다른 단서는 없는지 확인하듯 물었다.
“강원도 영월에서 사진이 찍혔나 보더라고.”
“별마루 천문대 관장이 이를 확인해 주었데요.”
“그건 모르고 있었네. 한번 다녀와야 겠어.”
“선배는 미스터리만 보면 사람이 확 달라진다니까요.”
아영이 의자를 당겨 앉으며 말했다.
아영이 신기하다는 듯, 현우를 바라보며 그의 뇌구조가 어찌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들은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쳤고, 영호만이 성에 안찬 듯 좀 더 시키자고 주장했다. 영호는 언제나 세 끼 제대로 챙겨 먹어야 한다는 주의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다음 일이 진행이 안 되었다. 계속 먹을 걸 요구하는 탓에.
그들은 다음 수업을 듣기 위해 서둘러 강의실로 향하였다. 오후는 비전공과목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기쁘게 한 과목은 없었고, 모두 뉴스에 나온 UFO만을 머리에 떠올리곤 했다.
수업이 끝나자 현우는 자취방으로 돌아왔고 거기에서 휴대폰으로 오늘 나온 기사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관련 기사들을 프린터로 뽑아 정리하고 사진은 따로 보관하였다. 그의 UFO에 대한 관심은 어릴 적부터 대단했는데 한번 뭔 가에 꽂히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격이 한 몫 단단히 하였다. 그러나 무궁무진한 우주의 크기에 압도당한 후론 그에게 이 일은 끝나지 않을 그만의 싸움이 되었다. 단지 군에 있을 때에만 자유롭지 못하여 전전긍긍했는데, 이제야 자신이 하고 픈 일을 하는 중이었다. 남을 많이 의식하는 편도 아니었고, 현우는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 갈 뿐이었다.
현우는 저녁으로 라면을 먹으려고 물을 앉쳐 놓고 다시 기사에 집중했다. 거기에는 별마루 천문대의 관장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천문대의 홈페이지를 확인하고 핸드폰을 들어 관장의 이야기를 들어볼 겸 방문에 관한 문의를 하였다.
“여보세요. 거기 천문대죠.”
그러나 전화에서는 ARS의 기계음만 반복되고 있었다. 그가 ARS에 씨름하는 동안 그는 열이나 죽을 것만 같았다. ARS에서는 그가 원하는 바의 내용은 없었고, ARS가 지시하는 대로 따라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군에 있다가 사회에 나오니 쉽게 적응이 되질 않았다.
'아 참나, 어떻게 하는 지 모르겠네. 내일 아영에게 부탁해야겠네.'
모튼
런던의 한 바에서 사내가 주인과 대화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그는 삼류 잡지사에 다니는 타일러 모튼이다. 잡지는 이제 사양산업이 되었다. 검색 사이트들과 너튜브 등 많은 볼거리들로 넘쳐나는 세상에 한낱 잡지 기자라. 아무도 이 구닥다리 서적은 찾질 않는다. 예전에는 기자라 으스댄 적도 있었지만 이젠 자극적인 내용만을 쫓는 기레기일 뿐이었다. 기사를 구하러 이곳 저곳을 맴돌았지만 뭔가 특종이 될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회사에서도 그는 동료들이 맘에 들지 않았다. 항상 시간을 낭비하며 재잘재잘 떠들기만 할 뿐, 일은 자신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만 취재나 촬영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모튼은 자신을 특별하다고 여겼다.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주인장, 여기 예쁜 아가씨들은 다 어디 갔소.”
뚱뚱하며 인자하게 생긴 주인이 그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한다.
“글쎄, 자네처럼 한가하게 이 시간에 온 사람은 없다니까 그러네, 모두 일에 쫓기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 거요. 가끔 머리나 식히러 오는 것일 뿐.”
모튼이 뭔가 수가 틀리다는 듯 머리를 흔들더니.
“나도 그렇게 바쁘게 살고 싶소. 하지만 이런 엉뚱한 일이나 하며 평생 시간을 축내긴 싫단 말이오.”
이내 머리를 곧추 세우더니.
“내가 할 일은 아닌가 싶어. 난 좀 더 가치 있고 진실한 사건을 맡고 싶다고.”
“왜, 또 뭐가 맘에 안드시오.”
“그런 게 아니란 말이오.”
주인은 모튼 자신을 상관에게 구박받는 이로 여긴 모양이다. 주인은 신세 한탄을 하는 모튼이 귀찮다는 듯이 말을 돌린다.
“UFO나 외계인에 관해 취재한다 그랬소?”
모튼이 술이 깬다는 듯 다시 술을 마셨다.
“난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주인이 흥미가 동하는 듯 모튼을 슬쩍 바라다본다.
“난 흥미가 당기는데, 내 한잔 살 테니 그 이야기나 한번 들려주구려.”
모튼은 뭔 얘기냐는 듯 주인을 바라보았지만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미스터리에 관한 거지, 꼭 외계인을 다루는 건 아니란 말이오.”
“나도 이 일을 하고 싶어서 맡은 게 아니오. 다들 흥미만을 쫒기에 나에게까지 이 일이 떨어진 거요. 누구 탓이겠소.”
모튼의 남의 탓에 사람상대를 많이 한 주인이 다 알고 있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한다.
“글쎄, 그거야 말하기 나름이겠지. 우리에겐 미스터리나 외계인이 별반 다르지 않단 말이오? 안 그런가. 그리고 당신이 맡은 일이야 내 탓은 아니지않은가.”
모튼은 손을 내저으며.
“암튼, 이번엔 한국이란 나라에도 가봐야 할 것 같소.”
무슨 일인데 거기까지 가냐며 주인이 물어주기를 바랐지만 주인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어서 다음 이야기를 용기 있게 진행하라며.
“거기에 새로운 UFO가 목격됐다니, 제발 무언가가 발견되기를 바랄 뿐이요.”
주인은 모튼의 말에 혀를 차며.
“뭔가 어떤 사건이라도 터지길 바라는 모양인데, 그렇게 살다간 사람들이 자넬 외면할 수도 있다고. 좀더 안정되고, 정리된 채로 사는 건 어떤가.”
"난 지금도 충분히 정상적이요. 다만 세상이 비상식적으로 조용할 뿐이지, 여태 취재하러 돌아다녔지만 건질만 한 것은 거의 없었소. 한국에서는 좀 더 진척이 있었으면 좋겠소."
주인은 모튼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것을 보자 만류하면서,
“아! 담배를 피우려거든 나가서 하시오.”
모튼이 다시 주머니에 담배를 넣으며 말한다.
"하여튼 무섭다니깐, 그렇게 바라보지 마시오. 나도 자제라는 걸 할 줄 아는 놈이니.”
주인이 다시 빈 술잔에 술을 채우며.
"그런 줄 알면 됐소. 그래 한국의 그 얘기는 뭐요. 뉴스에서도 간혹 나오던 모양인데."
“띠리리리. 띠리리리.
모튼의 주머니에서 요란하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모튼이 일어나 전화를 받고자 잠시 밖으로 나온다. 주인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 엄마.”
“뭐라고요, 또 돈을 빌려 달라고요.”
“그 아저씨가 뭔 데, 자꾸만 돈을 달래요.”
“예! 저도 요즘 힘들다고요. 안돼요.”
모튼은 명백하게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자신의 어머니이지만 어떨 땐 자신의 채권자 같았다. 자신의 상황을 번연히 아는데도, 자신과 새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떠한 지 알면서도, 이렇게 대하는 것이 자신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지 못한단 말인가. 어쨌든 요즘 이 모든 일이 어렵고 복잡하기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단순한 흥미거리를 찾나 보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부정하고 바라지 않는 일이었으나 결론은 자신도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자신도 이제 삼류 인생이 다 되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모튼은 다시 술을 홀짝이면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가오는 여인을 발견했다.
“어 잠시만, 여기, 여기요 피어스양.”
모튼이 아는 채를 하자 분홍색 원피스를 차려 입은 여인이 그를 보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피어스 양. 오랜만에 보는군요. 이제 막 재미있는 애기 시작하려던 참인데 약속이 없다면 같이 한잔하시지요.”
에슐리 피어스란 여인이 테이블 위에 자신의 가방을 내려놓더니.
“아직 안 왔네요.”
“두 분 무슨 재밌는 얘길 나눴나요?”
에슐리가 예의상 한마디 하더니 다시 핸드폰을 바라다본다. 친구가 늦는 모양이다.
“그럼 기다리는 동안만 같이 한잔할게요. 저 화장실 좀 먼저 다녀오고요.”
에슐리가 가방을 챙기며 자리에서 사라지자 둘은 한잔 들이켜며 말을 잇는다.
“자네, 아직 인기가 사라진 것은 아닌 모양이로군.”
모튼이 주인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암, 처음부터 느물거리면 안 되는 법이라오.”
***
식탁에서 현우와 영호는 돈육 불고기와 아욱 된장국을 아영은 매콤 쫄면을 먹다가 음식을 시키며 다가오는 박소한 패거리를 만났다. 소한은 아영을 좋아하는 영호를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동아리마저 옮겨 간 그를 보고 늘 현우에게 한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영호가 아영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둘만이 아는 비밀이다.
"이야, 이거 오랜만이네. 축구 할 애를 빼내 가더니, 또 예쁜 친구도 빼내 왔나 봐!"
아영은 글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엮을 줄 알아서 현우가 고등학교 시절 잘 봐왔던 후배였다. 나중에 같은 대학에 다니는 걸 알고 내성적인 성격에 다른 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거라 지레짐작하고 동아리 멤버로 끌어들였던 것인데 사실 과에서도 인기가 많은 쪽이었다. 그러나 그녀도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여서 현우는 자신에게 뭐라고 하는 소한에 대거리하려 하였으나 덩치가 큰 그를 당해내지 못할 것 같아 말로써만 할 뿐이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넌 얘들 오래전부터 우리 동아리에 있는 줄 알면서 왜 시비냐."
그러자 소한이 우습다는 듯.
"매일 새로워서 그런다."
다시 영호를 바라보며
" 영호야 우리 동아리에 들었으면 대회란 대회 다 쓸었을 텐데, 왜 쓸데없는 동아리 들어서 애들하고 노닥거리냐?"
영호가 아영을 바라보더니 다시 소한을 응시하며.
"미안하다 그럴만한 일이 있어서."
"미안하다고!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그만두고 이쪽으로 오란 말이지,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대화가 소한과 영호에게 돌아가자 현우가 말했다.
"그럼 둘이 이야기하고 우린 좀 빼주라."
소한이 이를 드러내며 말한다.
"너 같으면 한번 빈정 상했는데 봐주고 그럴 것 같냐!"
그러자 미안한 듯 영호가 현우를 바라보더니 다시 소한에게 말한다.
"야! 이건 우리 일인데 왜 쟤한테 그래."
"그래요, 너무해요."
아영이 심통이 난 얼굴로 덧붙이자 소한이 아영을 슬쩍 바라보며 영호에게 말한다.
"넌 나한테 그런 말할 처지가 아닐 텐데, 여기서 함 말해볼까."
영호의 얼굴이 붉어지며,
"그럼 넌 죽는다. 그리고 너희 동아리로는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겠어."
그러자 소한은 아영을 바라보곤 웃으며 영호에게 말한다.
"어쨌거나 영호, 네 선택에 달려있다고."
"그 이야기는 천문대 다녀온 후 다시 하자."
영호가 한숨을 쉬며 아영을 바라보니 소한이 목소리를 깔며 다시 말한다.
"그럼 늦을 것 같은데, 더 간절해질 것 아냐?"
"그럼 아예 포기하시던가."
영호가 단호히 말하자 소한은 현우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럼 나도 따라간다. 현우 내 자리도 준비해 두길 바란다. 잘 좀 부탁하마."
현우에게 머리를 끄떡이며 잘부탁한다는 듯이 말하다가 등을 돌려 패거리들에게 돌아갔다.
박소한 패거리들도 음식을 받아 다른 자리로 이동하고 현우 일행은 별마루 천문대에 갈 일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할까요?"
아영이 음식을 삼키며 묻자
"넌 무슨 약점을 그리 잡혔냐."
멀리 자리에 앉는 소한 패거리들을 바라보며 현우가 말했다.
"시끄러워, 그냥 한 번만 봐주라, 쟤도 그렇게 나쁜 아이는 아니니까."
"그래,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어제 천문대에 연락을 해봤는데 어떻게 예약을 해야 하는 지 모르겠어."
아영이 현우를 바라보며 묻는다.
"어떻게 하길 바라는데요."
"천문대 관장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음 한다고 약속 시간을 잡아줬음 싶은데."
"그게 가능할 것 같아. 우린 그냥 학생일 뿐이라고."
"그런데 찾아보니, 가능할 것 같더라."
현우가 프린트로 뽑은 별마루 천문대에 관한 사이트를 살펴보니 일반인에게도 개방된 장소였고 약속도 가능하다고 나와있었다.
"그럼 제가 시간을 잡고, 열차도 예약해놓을게요."
"네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현우가 아영을 바라보며 하지않던 칭찬을 한다.
"네가 말하던 거, 그 천문대에 가면 알 수 있나?"
영호가 고기를 다 먹었는지 젓가락으로 식판을 끄적거리더니 현우를 빤히 바라보며 묻는다.
"그러길 바라는 거지. 요즘 들어 지구상에 UFO가 자주 출몰하는 게 뭔가 일이 터질 것만 같아. 그래서 확실한 답이 내려지길 바라는 거야."
현우가 그렇게 말하자 아영이 걱정스러운 듯 말한다.
"선배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길 바라야지"
둘의 대화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영호가 말한다.
"뭐가, 뭔데?"
***
애슐리는 의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잡지사 일 때문에 모튼과 알게 된 사이인데 지적인데다 활발하고 깔끔한 성격에 모튼도 관심이 가는 여성이었다. 아마 같은 일을 하는 동료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고 모튼은 생각했다. 모튼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이가 아니여서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그녀가 궁금하기도 했고 이 대화를 통해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도 되었다.
애슐리가 화장실에 다녀온 이후 이야기는 진척되었다. 애슐리가 궁금한 듯 묻는다.
“UFO로 관심을 끈 건 미국의 로스웰 사건 아닌가요. 하지만 발견된 잔해가 기상용 관측기구의 일부란 말도 있던데요. 외계인 사체도 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고, 좀 더 확실한 근거는 없는 건가요. 아니면 시간 여행자에 대한 그럴듯한 증거라도 있던가요?”
아무래도 애슐리도 미스터리물에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술술 잘도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모튼은 다 큰 어른이 되어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이들이 관심을 보이자 자신감이 생기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인지라 말을 마음껏 하는 사이 답답한 마음도 풀어지고 오늘 모튼의 이야기에는 막힘이 없었다. 만약 주장이 강한 사람과의 술자리라면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부담스러울테지만 고집부리는 사람도 없었고, 모두 술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당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주인은 애슐리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아는 바를 이야기한다.
“UFO에 관한 것이야 미 국방성에서도 인정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외계인과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는 없는 것으로 아네만.”
모튼이 술을 삼키며 말한다.
“그렇죠. 모든 것이 불투명해서 확실히 결론 내리기가 어렵지요. 시간 여행이라는 몬탁프로젝트 또한 가짜일 게 뻔하고요.”
“그렇담 외계인은 없는 건가요.”
“하지만 시간여행자가 있다면 얘긴 달라져요. 인간이 인간을 속일 필요는 없을 테니 외계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겠지요.”
애슐리가 모튼을 바라보며 묻는다.
“그렇담, 시간 여행과 관련한 이야기나 좀 해봐요.”
그들은 이제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기사들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튼도 다시 술을 홀짝이며 이야기한다.
“1964년 영국 졸웨이 만에서 찍은 사진으로 한 어린 소녀 뒤로 우주인으로 보이는 듯한 인물의 사진이 찍혔고. 당시 주변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고 하죠."
“그리고요.”
“또 다른 증거를 대라면 당시에 사용되지 않았던 물건들이 사진이나 유물 등에 남아있죠. 특히 손목시계 모양의 반지나 신발, 핸드폰 등등의 물건들 말이오. 그런 것들이 종종 사진이나 필름, 조각, 유물들에 남아있소, 나머지들은 거의 그것에 기반한 페이크작에 불과하죠, 심지어 살라망가 대성당의 우주인 조각상조차 모두 시간 여행자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지만, 보수공사 하면서 삽입된 조각상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정작 명인들이나 명화 등을 볼 때면 감히 어떻게 그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는지 감탄하게 되고 그들이 혹시 그런 존재들과 접촉하지 않았는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죠. 그리고 예언자나 예언서들을 보면 그들이 그런 사실들을 어떻게 알았을까 생각하게 되고요.”
“아, 예. 증거보다 썰에 더 관심이 많으신 것 같네요.”
“그런가요. 하하.”
실망스럽다는 듯 애슐리가 다시 묻는다.
“그럼 스톤헨지 같은 유적들은요.”
모튼이 다시 대답한다.
"과거에 고도의 문명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고, 고도의 문명은 시간여행자가 만들어 낸 일종의 문명 충돌 그런 것에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죠."
“미스터리 서클은 어떤가요.”
“그건 자연현상일 수도 있겠고 우리가 알지 모르는 화학적, 물리적 현상일지도 모를 뿐 외계인의 소행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죠.”
"당신은 전혀 믿지 않는군요."
애슐리도 술을 한잔 마시며 말한다. 모튼은 애슐리의 파란 눈이 신비로운 우주 같아 보인다고 생각하며 그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전 직접 눈으로 본 것만을 믿죠. 당신의 눈빛같이 말이오."
모튼이 애슐리에게 작업거는 것 같아 괜시리 주인이 껴들며 말한다.
"그런데 용케 그런 기사를 작성 중이구먼."
모튼이 단호하게 말한다.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들은 애슐리의 친구가 올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술을 마셨다.
***
현우는 수업시간에 또다시 꿈을 꾸었다. 수업시간 중 자는 버릇은 영 안 고쳐지는지 교수님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
어릴 적 현우가 성진과 태호와 공차기 하며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려는 중이었다.
"현우야 더 놀다 가지 않을래."
성진이 더러워진 손을 옷에 문지르며 말했다. 옷은 다들 멀쩡한데 소매나 무릎만이 더러워졌다.
"그래 현우야 더 놀다 가자."
태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코 묻은 손을 옷에 닦으며 말했다.
이 세명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시절 항상 같이 놀아왔던 절친들이다. 성진은 부모님이 맞벌이하시느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마지막엔 항상 아이들을 붙잡았다. 태호는 그런 성진의 말에 잘 따랐고. 현우는 그들과 어울리기엔 집이 그리 가깝지는 않았다. 다만 성진의 장난감이 항시 부러웠다. 농사하시는 현우의 아버지는 그런 장난감들을 자주 사주시지는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철봉에 모여 어떻게 할지를 정하였다.
"아, 안돼 너무 늦었어, 아빠가 학교 끝나면 강아지 밥 주라고 하셨어."
“좀 더 놀 수 있는 거 아냐.”
“아직 6시도 안 됐다고.”
현우는 항시 일찍 헤어져도 늦게야 집에 도착했는데,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좀 더 일찍 집에 돌아가야만 제때에 당도한다고 생각하였다.
“안되겠어. 너희끼리 놀아라. 난 간다.”
"태호야, 그럼 너만이라도 우리 집에 놀러가지 않을래? 포켓X카드 새로 샀는데 같이 놀자."
"그래"
태호도 코를 훌쩍거리며 대답하며 현우를 바라본다.
"현우야 내일 보자"
“안녕.”
그렇게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크게 어둡지는 않았다. 완전 시골도 아니고 아파트와 상가들을 지나면 좀 뜸해지는 주택들과 밭, 그 어딘 가에 어릴 적 그의 집이 있었다. 아버지는 과수 농사하시느라 항상 땀에 절어 계셨고 코끝을 찌르는 막걸리 냄새. 현우는 할머니께 새로 선물로 받은 휴대폰으로 길가에 핀 꽃을 찍는가 하면 개미굴도 살펴보고 나뭇가지로 파헤쳐 알이 무더기로 나오자 징그럽다며 몸을 움츠리며 사진을 찍었다. 할머니께 사진을 전송하고 돌아오는 도중 아파트 너머로 날아가는 UFO를 보고 바로 사진을 찍는다. 자랑거리가 늘어나게 되었다며 반색을 하며 뛰어간다.
“할머니 사진 봤어요. 제가 찍은 건데 신기하죠.”
“아따, 이게 뭐라냐.”
“UFO 사진이에요.”
“우리 손주, 사진사 해도 되겠네. 어떻게 찍은겨.”
“딴 거 찍으며 오다가 아파트 너머로 뭔가 지나기에 얼른 찍었죠. 저 잘했죠. 헤헤.”
“그래, 그려. 우리 현우 뭐든지 잘 혀. 이 할미도 사진 찍는 것 갈 켜주라.”
“네. 헤헤."
***
"음냐, 음냐.”
현우는 몸을 뒤틀었다.
***
"미정아 나 영장 나왔다. 어떡하냐 나 없으면.”
현우는 자신이 군대가고 혼자 있을 미정이 걱정이다. 항상 혼자 남은 여선배들이 외로워서 힘들어하는 걸 자주 본 현우였다.
“내 후배들에게 잘 이야기할 테니, 게네들과 잘 지내고 있어라.”
그러나 현우의 예상과는 달리 미정이 떨리는 눈으로 현우를 바라보며 말한다. 미정은 군대 가기 전 헤어진 여자 친구였다.
"안 그래도 말하려고 그랬어."
"뭘, 불안하게. 뭔데?"
미정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답이 없다는 듯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암만 생각해도 넌 당장만 생각하잖아. 미래에 대해 생각해 봤어? 우리의 미래까지는 아니더라도 네 미래에 대해 생각해 봤냐는 말이야. 남들은 이것 공부한다, 저것 배운다 열심히드만 넌 항상 미스터리만 쫓고 있잖아.
현우도 잠시 생각해 보더니.
"그래서 그게 너에게 무슨 상처를 줬어?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몰라, 마음이 급해져서 그런가 봐, 넌 군대라도 가지만 난 그렇지 않잖아. 곧 취직도 해야 하고···."
현우는 미정을 달래며 말한다.
"마음을 좀 느긋하게 가져봐.”
그러자 오히려 마음이 불편한 듯 미정이 그를 밀어내며 말한다.
"넌 항상 그게 문제야, 왜 그렇게 여유를 갖는 건데. 난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어.”
“난 널 못 기다릴 것만 같아. 미안해."
“…”
그렁그렁한 눈빛의 그녀를 떠나보내고 아무 말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한번 붙잡아 보지도 못하고 헤어졌단 생각에 자신이 그렇게 매정하였나 놀라 흠칫하다 잠에서 깨고 말았다. 머리를 긁적이며 아영에게 또 잔소리를 들을 것을 생각하는 현우였다.
***
“오늘 수업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다음은 월요일이군요. 12강 수업이 있겠습니다. 모두 책을 읽고 오시고 조별로 그에 대한 토론을 하겠습니다. 가시기 전 조를 짜서 조교에게 알려주세요.”
학생들이 우루루 강의실에서 몰려나왔다. 다들 취업준비로 도서관으로 몰려가는 중이다. 현우는 발길을 돌려 동아리 방으로 향하였다. 자신만 열외인 것 같았다.
별마루천문대
일행은 서울역에서 모여 청량리역으로 함께 갔다. 거기서 소한을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청량리역에서 영월 행 무궁화호로 가는 대합실에서 소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린 다는 것이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다들 알고 있어서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더구나 소한이라면 현우가 진저리를 치는 대상이었으니 아무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약속 시간을 정하긴 한 거야.”
소한의 도착이 늦자 현우가 짜증을 내며 말한다.
“예 11시 열차라고 했으니 곧 도착할 텐데요.”
아영이 말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그가 오든 말든 그것이야말로 그의 마음일 테니까. 시간은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은 시간이 남았지만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며 휴대폰의 시간을 들여다보았다. 여비 또한 현우일행이 마련한 것인데 웬지 귀찮은 짐덩이를 껴안은 것만 같았다.
아영은 웬일인지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어서 영호와 현우가 들어주려 하였지만 그녀는 결단코 사양하였다. 자신의 짐이므로 자신이 둘러매야 한다는 얼토당토한 이유로 그녀 자신만 커다란 가방을 매고있었기 때문이었다.
“편의점에서 뭐라도 마시고 가자.”
일행은 간단한 음료를 골라 계산대에 섰다. 영호가 계산대 옆의 복권에 손을 가져다 댄다.
“하나만 사볼까? 어때!”
기다리기 지루한 끝에 즉석복권을 하나씩 꺼내 들고 동전으로 긁어보았다. 모두 꽝이었고 아영만 1000원에 당첨되어 다시한번 복권을 긁을 수 있었지만 아영이 만류하였다.
“됐네요, 차라리 인형이나 하나 뽑아주세요.”
“그럴까.”
현우는 인형 뽑기 기계에 돈을 넣고 아영에게 줄 인형을 뽑으려 하였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야, 나와봐. 내가 한번 뽑아보게.”
영호가 열을 내며 기계 앞에 섰지만 아영에게 어떠한 인형도 안겨주지 못하였다. 현우와 영호가 패배자의 얼굴을 하고서 기계에서 물러났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50분이었고 기다리다 지친 현우가 도저히 못 참겠던지 영호에게 말했다.
“소한이 얘는 또 왜 안 오고 그러는 건데.”
“한 번 전화해 보세요.”
아영이 영호에게 말하자.
“끝까지 말썽이네, 전화번호 좀 불러봐라.”
아영이 의아하다는 듯.
“친구 아녜요, 전화번호도 모르세요. 저는 모르는데, 직접 만나서 약속을 잡은 거라.”
아영이 대답하자 현우가 다시 영호에게 묻는다.
“야! 너 모르냐?”
“응.”
영호의 자신 있는 대답에 둘은 잠시 어리둥절하였다. 현우가 답답한지 대합실 주변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어슬렁거리는 것은 현우의 오랜 버릇이다.
“청량리역으로 오라고 약속한 것 맞아?”
아영에게 묻자.
“예.”
“그럼 우리끼리 먼저 가자. 알아서 찾아 오겠지. 아님 말고.”
일행은 좀 더 기다려보다가 시간이 되자 열차에 오른다.
<열차가 출발하오니~>
“식사는 하고 오셨어요?”
아영이 묻자.
“응, 넌?”
“저도요.”
둘만의 대화에 심통이 난 영호가 둘을 바라보더니 되묻는다.
“왜 난 안 물어보는데?”
“넌 제때 챙겨 먹지 않으면 항상 난리 나잖아. 먹고 오지 않았어?”
“맞아. 맞는데 좀 억울한 느낌이 드는데.”
그런 둘의 화기애애한 대화를 끊고 아영이 말한다.
“제가 김밥하고 과자, 먹을 거 많이 싸 왔으니까 싸우지들 마세요. 꼭 놀러 온 어린애들 같아요.”
“맞는데, 놀러 온 것.”
“내가 재하고 똑 같다고?”
현우는 놀려왔다는 영호의 말에 발끈하며 아영에게 자신은 다르다며 어필한다.
“야, 너랑 나랑 뭐가 그리 다른데. 너도 이 일이 대단히 중요한 건 아니잖아.”
현우는 사실 자신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말하고 싶었지만 또 그렇게 말하긴 싫어 영호의 대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예측이 틀리기를 바랄 뿐이었으니 차라리 놀러왔다는 표현이 맞는 거라며 영호의 말에 수긍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현우 선배, 몬탁 프로젝트는 뭔가요, 잘 이해가 안 가요. 저희가 알아야 하는 건 아닌가요?"
"아, 그거, 시공간 이동에 관한 프로젝트라 알려진 실험으로 사실은 스텔스 기능에 관한 프로젝트인가 봐. 얼어 죽을, 아직도 이렇게 기차 타고 다니는데 뭔 놈의 시공간 이동이라고. 그때는 냉전 시대였고 그래서 서로 무기개발에 치중한 때였어. 레이더에는 없었는데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봐. 얼마나 놀라겠어. 그때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 언제 죽어도 모를 일이었겠지."
영호는 현우가 대답할 새라 아영의 물음에 재빨리 대답하였다.
“선배,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더니.”
“너 한데 있어 보이려고 아까 전부터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더라.”
화장실에 들렸을 때 영호가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찾아 이것저것 살피는 것 같았기에 현우는 궁금하여 자세히 들여다보았던 것이다. 소한 때문에 여전히 불만스러웠던 현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던 것이다.
"아니거든, 난 그냥 동아리 맴버로서 그 정돈 알아야겠기에···."
"잘도 그러시겠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열차는 영월에 다다랐고 다시 별마루 천문대행 버스에 올랐다. 그런 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버스에서는 잠에 떨어졌고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천문대에 들어서고 거기서 머리가 하얗게 센 관장을 만나 영월에 나타난 UFO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별마루 천문대를 맡고 있는 주민환 관장이라고 합니다."
"아예, 반갑습니다. 관장님께서 직접 보았다는 뉴스를 듣고 이렇게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서로 인사가 끝나자 관장이 사무실로 그들을 인도하며.
"그러시군요, 뉴스 때문에 전화문의도 많았었죠. 어쨌거나 천문에 관심을 가져 주시니 저야 말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아 이럴 게 아니라 차나 한잔하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그들은 관장실로 들어갔다. 관장실 안은 지구본과 별자리에 관한 포스터로 도배되어 있었다. 최근에 띄어 보낸 제임스웹 망원경에 관한 포스터도 한쪽에 붙어있었다.
"혹시 그때가 몇 시쯤 이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저녁 먹고 들어왔으니 한 7시 10분쯤 되었겠네요."
벽에 달린 커다란 시계를 보며 관장이 말했다.
"아직 밝은 시간대일텐데 그게 사진에 잡힌 거군요."
"그렇죠, 그래서 목격자가 꽤 된답니다. 그 사진은 김수철네가 찍은 사진으로 밭농사를 하던 분이시죠. 그 집 아이가 찍었다고 하네요. 꼭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 상공을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였죠."
그 말에 가만히 지켜 보기만 하던 영호가 물었다.
"무언가를 확인 한다라? 그럼 그 UFO가 맴돌던 위치,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럼요, 아마 관공서(부대나 경찰서 등) 주변인 것 같아요, 그래서 부대도 비상이 걸렸고요.”
“그렇군요, 혹시 그들(만약 UFO의 주인이 외계생명체라면)이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혹 짐작 가는 게 있으신 가요?”
현우가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으며 묻자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렀다.
“글쎄요, 그건 저도 알 수가 없죠, 전쟁을 벌이는 것 말곤 말이죠.”
관장의 별 뜻 없이 하는 말에 놀라 아영이 다시 묻는다.
“전쟁이라고 말씀하셨나요?”
자신의 대답에 특이한 반응을 보이는 그들이 이상하다는 듯이
“그것 밖에 설명이 안 되니까요.”
“얼마 만에 상공에서 사라졌죠?”
현우가 재촉하듯 묻는다.
“10초도 안 걸리고 사라지더군요.”
지루한 지 딴청을 부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영호가 생각없이 대답한다.
“헐, 그렇게 나 빨리요.”
“주변을 맴돌지 않았다면 바로 사라졌을 겁니다."
일행은 모두 할 말을 잊었다. 너무 빠른 움직임 탓이었다. 일행은 이야기가 끝나자 그냥 돌아가기는 뭣하고 야경을 보기 위해 관측실로 향했다.
***
"관장님 애길 듣고 보니 선배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섭진 않고?"
현우가 아영을 바라보며 묻는다.
"실제 일어난 일도 아니고 체감이 되질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무서울 게 뭐 있어. 나만 믿으라고! 너 하나는 지켜줄 수 있다고. 근데, 무슨 일인데?"
영호가 그녀를 바라보며 걱정할 것 없다고 얘기한다. 딴에는 아영과 단 둘이 있고 싶은데, 현우는 자신의 맘도 몰라주고 아영과 같이 딱 붙어있었다. 여기서 살짝 빠져줬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아영을 리드할 자신은 전혀 없었다. 왜 자신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쑥맥같이 구는 지 참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야경이나 보자."
"그래요."
둘만의 대화에 영호는 발끈해서 소리쳤다.
"야, 좀!"
영호가 자신을 신경쓰지 않는 듯한 발언을 하는 현우에게 발끈하여 소리쳤지만 현우의 별 뜻없이 한 말에 화를 낼 순 없었다. 단지 한번만이라도 아영이 자신을 바라봐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아영도 현우에게 마음이 기울어 있는 것만 같아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나 아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날에 대하여 불평할 순 없었다.
"아, 참 아름답네요, 저렇게 불빛들이 모여 있으니 더 아름다워요, 사람들이 모두 기대어 사는 것처럼요."
모두 말을 잊고 풍경을 바라다 본다. 천문대로 오르는 차들의 전조등마저 아름답게 여겨졌다.
날이 기울어 간다. 이젠 날이 길어져 한 밤이 아니면 어둡지 않았지만 산지라 그런지 빨리 어두워졌다. 덕분에 아름다운 야경을 구경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또 군대에 있을 때가 아니라면 산을 오를 일이 별로 없던 청춘들에게 산의 밤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
“이젠 그만 돌아가자.”
영호는 더 즐기고 싶은 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경치좋은 장소를 물색했다.
“좀 더 있다가 가는 건 어때. 분위기도 좋은데.”
“그래도 너무 늦었어요. 선배. 이만 돌아가죠".
그때였다. 밝은 섬광과 함께 산이 붕괴하는 듯한 굉음이 주위에 울려 퍼지며 고막을 두들겼다.
"쾅, 쾅. 쾅, 쾅."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눈이 멀고 잠시 귀가 멍하다. 우르르 사람들이 건물에서 뛰쳐나온다. 그리고 불바다가 되는 도심을 바라다본다. 현우는 상상하던 일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고 직감했다. 현우는 사람들 무리에서 벗어나 하산하려고 마음먹었다. 곧 이곳도 위험에 처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보시게, 지금 내려가면 위험하지 않겠나? 좀 기다려 보시게. 전화 좀 해보고."
나이 지긋한 어느 사내가 현우일행을 바라보며 걱정스레 말했다. 그러나 여기저기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누구하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에 대한 원인도 찾지못했다.
모두 전화기를 꺼내어 들지만, 작동 불능, 차량도 불능이다. 현우 일행은 상의해 보더니 결국 걸어서 하산하기로 했다.
"이봐, 우리까지 위험에 처하면 어쩌려고 그래. 잠깐 기다려보라고."
젊고 문신이 새겨져 험악하기만 한 사내가 일행을 위협한다. 영호가 앞으로 나서며 아영을 보호하고 현우가 대표로 말한다.
"무슨 일이 생겨도 이곳에 사람이 있단 소리는 안 할게요. 그리고 이곳도 안전하다고 말할 순 없을 겁니다."
현우는 더는 기다리지 않고 아영의 손을 잡아 끌고 산에서 내려온다. 아영의 얼굴이 빨개진다.
"무슨 일일까? 북한군이 쳐들어오기라도 했나?"
영호가 따라오며 묻는다.
"글쎄, 난 아니라고 생각해. 모든 전자기기가 불통이 됐어. 이런 기술은 북한에도 없는 줄 알아. 아마 내가 예상하던 일이 벌어진 걸거야. 무슨 소릴 듣든 간에 빨리 사람들에게 알렸어야 했는데."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아영이 현우를 달래듯 말하자.
"뭐야, 둘은 뭔가 이미 알고 있는 거야?"
현우와 아영은 그동안 추리해온 사실을 영호에게 이야기했다. 영호도 짐작은 하고 있었는지 아주 놀라는 눈치는 아니다.
“그럼, 관공서나 군대는 미래에서 보내진 폭탄으로 무력화되었단 거야. 지금?”
"전자장비가 작동 불능인 건 EMP같은 무기 때문이고?"
영호가 묻자 현우가 대답한다.
"일시적인 거겠지."
"저기 무언가 보이는데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아영이 앞을 가리키며 말하자 모두 정면을 바라다본다. 서둘러 다가가 사람들 근처로 이동했다. 비탈이 무너져 있고 차량 유리도 깨어져 있었다. 한 남성이 차량을 점검 중이다.
"저기요! 거기 괜찮아요?"
영호가 걱정스럽게 말하자
"전화가 모두 불통이요, 혹 사용 가능한 전화 있소?"
"아뇨, 모두 작동이 안 돼요, 아마 차량도 같은 이유로 작동이 안 되는 걸 거고요, 걸어서 가셔야 할 거 같아요, 다치신 분은 없나요?"
영호가 말하고 다시 묻는다.
"아내가 유리에 조금 긁히기는 했어도 크게 다치진 않았어요. 애들도 그렇고."
차량 밖에 나와 있는 아이들과 부인을 사내가 걱정스레 바라보며 말한다. 현우는 지금까지의 일들을 사내와 그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어떻게 할지를 묻는다. 그러자 직접 확인해야겠다며 함께 움직이기로 한다.
***
철준 가족은 주말이 되자 아이들과 함께 캠핑을 왔다가 돌아가기 전 별마루천문대에 들렀다 가려고 길을 잡았다. 천문대로 향하는 길을 따라 이동하다가 거대한 진동에 놀라 차를 멈췄고 그때 산의 옹벽이 차량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우르르 쾅.”
“악! 아빠, 괜찮은 거야.”
다희가 먼저 비명을 질렀고 토사와 날아든 자갈등으로 차량유리는 깨어져 있었다.
“다친 사람은 없는 거니.”
철준이 가족들이 무사한지 살폈지만 부인인 혜정이 깨어진 유리에 살짝 긁히기만 하였을 뿐 크게 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철호는 진행방향이 천문대 쪽이어서 도심의 상황을 알 수 없었고 자신조차 놀랐던 지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너져 내린 길위에서 차량을 빼내기 위해 후진을 하였지만 작동불능. 보험사에 전화해보려고 휴대폰을 켜보았지만 폰도 작동이 되지 않았다.
“우린 이제 어떡해야 돼?”
아들 솔이 철준에게 걱정스레 묻는다. 철준이 차량 밖으로 나와 본넷을 열고 차량을 점검해 보지만 아는 바 없었다. 그때 멀리서 현우 일행이 내려왔다.
***
“그러니까 외계인들의 소행이다?”
“그걸 증명할 방법은 없나요.”
겁에 질려 창백해진 혜정이 물었고.
“글쎄요, 우선 전자장비, 반도체가 들어가는 모든 기기들이 작동 불능이 되었어요. 그리고 도심이 불바다가 된 걸 저희가 목격 했죠. 정확한 상황을 알기 위해선 시내로 갈 수밖에 없네요.”
“그래도 외계인의 소행이라 단정할 순 없잖소.”
“그렇죠, 그러니 조심스럽게 산을 내려가서 살펴봐야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요.”
일행은 차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꺼내 짊어지고 산을 내려왔다. 바로 도심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라 한참을 걸어야 했는데, 도심 외곽에서는 전기와 물이 끊겨 주민들이 집 밖으로 나와 서로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 중 상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간혹 자전거를 타고 상황을 알아보겠다고 나선 무리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던가. 인부들이 모두 떠난 근처 아파트 공사현장이 보였고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대놓고 시내로 가기엔 너무 위험해서 그곳에 숨어 상황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 지 살펴야 했다.
“여기 잠깐 숨어 있어. 난 이분들하고 여기 상황을 살피고 올께.”
“괜찮은 거야?”
“아빠, 조심해.”
철준이 아이들과 아내에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을 했다. 현우와 영호, 그리고 철준은 아파트 공사장에서 나와 도심의 상황을 엿보게 되었다. 외계로봇들이 점점 공사장쪽으로 넓혀왔기에 현우일행은 다시 공사장에 숨게 되었다.
***
거리는 아비규환이었다. 곳곳이 불에 타고 강력한 폭발에 가게나 집안의 창이 모두 깨어졌다. 밖으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은 외계 로봇의 공격을 받았다. 정부와 군경 모두 폭격을 당해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찾을 수 없었다. 도심은 외계 로봇들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었고 젊고 건강한 이들은 로봇이 스캔하여 다른 곳으로 전송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고, 도망치는 사람, 주저앉아 울부짖는 사람, 피를 흘리며 버르적거리는 사람, 쇠파이프를 들고 로봇을 내리치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모습이 일행의 눈에 띄었다.
일부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힘을 모아 외계로봇에 대항하고 있지만 곧 몰려든 로봇에 의해 진압되고 말았다. 현우 일행은 더이상 다가가지 않고 그곳에 숨어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우가 주목한 것은 물리적인 공격에 외계의 로봇도 손상을 입는다는 사실, 그러나 철준의 자녀들과 일행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비명을 삼키며 떨고 있었다.
모두 심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아영과 혜정도 한쪽에 주저앉아 비명을 삼키며 구토를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마음은 진정이 되었다.
"좀 진정이 되었어?"
현우가 아영에게 물었다. 자신만 믿으라던 영호도 많이 놀란 눈치다.
거리 한쪽에서 총기를 든 경찰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으나 곧 로봇들에 의해 진압되었다. 기계들은 그렇게 거리를 점령하더니 다시 각각의 건물로 들어가 사냥을 재개했다. 집안에 숨어서 상황을 주시하기만 하던 사람들이 다시 밖으로 뛰쳐나왔다. 공격형 로봇과 전송로봇이 거리에서 사람들을 휩쓸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거리에서 외계 병력이 뜸해지자 현우 일행은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 이동했다. 간혹 순찰하는 외계 로봇에 걸릴까 봐 현우 일행의 가슴은 두방망이질이었다. 이내 거리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불 들어오는 곳이 전혀 없어서 깜깜했다. 일행은 경찰서로 가는 길목의 코너에서 로봇을 먼저 발견하고는 피해서 다른 경찰서로 향하였다.
"왜 경찰서를 찾는 거야."
영호가 왜 위험하게 이동하고 있는지 궁금해 현우에게 물었다.
"자신을 지킬 무기는 가지고 있어야지."
그러자 영호가 가까운 공사장 주변의 쇠파이프를 찾아 주워 들었다. 그리고 일행은 경찰서로 찾아 들어가 쇠파이프로 병기고 창살을 뜯어내어 총기로 무장하였다. 아이들도 자신에게 맞는 권총을 주워 들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철준의 아내, 혜정이 만류했다.
"안돼! 총을 들기에 너희는 너무 어려."
"그만두시오.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스스로 무기를 드는 것이 더 나을 듯싶소. 대신 총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줘야겠소, 당신도 하나 갖고 있구려."
그들은 외계 로봇의 눈을 피해 산지로 이동했다. 나무들이 많은 산악지역은 로봇군대도 감당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게 되자 외계 로봇들을 보면서 느꼈던 점을 상기하기 시작했다. 외계의 로봇은 세 종류였는데 하나는 공격형 로봇으로 공격받으면 다른 로봇이 즉각 달려드는 연계가 가능한 형태의 로봇이었다. 가장 진화된 유형의 로봇이었다. 다만 전역의 로봇을 일괄 통제하기에는 기술력이 달리는 모양인지 그 수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로봇은 공격을 받으면 즉각 다른 로봇에게 알려져 그곳으로 몰려든다는 점은 쉬 알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수비형 로봇으로 자율에 맡겨진 로봇이었는데, 한 자리를 고수하며 사람의 이동을 막고 있었다. 길목이 좋은 곳을 선점하여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공격을 받아도 다른 로봇과 연계하는 것이 서툰 편이었고, 그 지역의 다른 로봇을 불러 모으는 것도 생각보다 느린 단점이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을 마비시키고 스캔하여 전송하는 로봇이 있었는데 모두 나무가 많은 지형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우 일행은 산지로 숨어들었다. 이미 행군에 가까운 이동이었기 때문에 모두 녹초가 되었다.
인간
“산으로 이동한 게 주요한 것 같아요, 여기까지는 쫓지 않는 것을 보니.”
현우가 이야기하자 아이들을 바라보며 철준이 대답한다.
“그런 것 같소. 여기서 이만 쉬어가야 할 것 같은데. 아이들도 이미 지쳤소.”
“아빠. 우린 아직 괜찮아요”
11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 박솔이 대답했다.
“저도 괜찮아요, 헉, 헉”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한참 멋부릴 나이의 소녀, 다희가 말했다.
“그래요, 여기서 쉬었다 가시죠. 불을 붙이기엔 그렇고, 참 아영아 너 먹을 것 준비한 것 있지.”
도시의 사람이 적어지자 로봇은 도시외곽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일행은 더욱 깊숙한 산으로 움직여야 했다. 온 몸은 땀으로 절어 있었다. 목이 말라서 입술이 하얗게 갈라졌다. 죽음의 위기에 접하자 목마른 줄도, 배고 픈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이동했던 것이다. 이제서야 현우가 배고프다는 듯 배를 만지며 말하자 아영이 대답한다.
“아참, 제가 좀 많이 싸 왔어요. 영호 선배가 제법 먹는지라.”
영호가 대신 들고 산에 올랐던 가방에는 먹을게 잔득 들어있었다. 가방에 싸온 음식을 아직 다 먹지도 못하고 도망만 다녔다. 힘들게 가져온 보람이 있었다.
“다 내 덕분인 줄 알아라.”
영호가 사람 좋은 얼굴로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아이들도 그 말에 조금은 긴장을 푸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요?”
아영이 눈총을 주자.
“이런 때이니 긴장을 풀라고 일부러 그런 것일 뿐이야.”
영호가 여유롭게 대답한다.
“덕분에 아이들과 이 사람이 긴장을 푼 것 같네. 자네들 아직 젊은데 대견한 데가 있네.”
철준이 영호를 바라보며 일행에게 한마디 건넸다. 고마워하는 모양이다.
“고맙네. 자네들 덕분에 살았네. 멋모르고 내려갔다가 모두 죽을 뻔했네.”
긴장이 풀리고 안전해지자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야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요, 정말 고마워요.”
혜정도 아이들을 대신해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그들도 차량에서 가져온 음식들을 가방에서 꺼내기 시작한다.
이를 바라보던 현우는 한마디 말을 덧붙쳤다.
“다른 사람들은 야영할 준비를 하시죠.”
아영이 준비한 간식과 과일, 그리고 철준 일행이 준비한 음식으로 식사를 했다. 그때 수풀 속에서 인기척이 들려와 모두 움직임이 멈추었다.
일행 모두 경찰서에서 가지고 온 총기를 집어 들고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총구를 겨눴다. 남녀 한 쌍이 손을 들고 다가왔다. 그중 젊은 남성이 말한다.
“모두 괜찮으신가요, 저희는 사람들이 죽는 걸 목격했어요. 너무 무서워서 달아났는데, 밖은 어떤 가요? 참, 전 진수라고 하고 여기는 소연이라고 해요,”
이미 지치고 피곤한 모양의 남녀가 서로를 부축하며 다가와 앉았다.
“아 밖은 여전히 위험해요.”
남녀가 일행이 차려 놓은 음식을 보자 식욕이 동하는지 군침을 흘렸다.
“여태 끼니를 걸렀는데 좀 부탁해도 되나요?”
그들의 행색은 덤불을 헤치고 나왔는지, 긁히고 옷마저 찢어진 모습에 어떤 고생을 하였는지 일행의 눈에 선하였다. 젊은 여성이 말한다.
“안녕하세요. 정말, 죄송한, 흑, 흑.”
“울지 말아요, 여기 앉아요. 다 같이 살아야지.”
마음씨 선한 혜정이 자리와 먹을 것을 내어준다.
“밖은 외계 로봇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아직 내려가면 안 됩니다. 그리고 힘들지만 참아내야죠. 여기 아이들도 잘 참고 있는데.”
현우가 이야기하자 젊은 여성이 눈물을 훔치며 말한다.
“네, 그럴게요. 고마워요.”
이들은 주말이 되어 여행을 왔지만 외계인의 침공으로 같이 온 무리와 흩어져 이곳에 이르게 되었다. 같이 온 친구와 연인들도 외계인에게 잡혔거나 죽었을 터, 그들을 구하기 위해 무기를 찾아 헤매었지만 살아남은 일부 군인과 외계로봇과의 싸움을 보자 일방적으로 인간이 당하는 모습에 다 포기하고 산으로 도망친 것이었다.
***
불침번을 서기로 하고 각자 잠이 들었다. 총기류는 각자 자신의 곁에 두거나 껴안고 자기로 했다. 불시의 침입에 대비하는 방편이었다. 모두 피곤하여 쉽게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걱정이 많은 어른들은 쉬 잠들지 못하고 바위 위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벽녘에야 불침번을 제외하고 잠이 들었는데 현우와 아영도 바위 위에 앉아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선배, 선배가 생각한 일이 벌어졌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둔 게 있나요.”
“뭐 나라고 이렇게 되기를 바란 게 아니었으니 대비고 뭐고 할 것도 없어.”
좀 더 증거가 확보되면 대비책을 조금이라도 마련해 뒀을 것이라 생각하며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잠을 통 이루지 못하였다.
“가족 걱정은 안돼?”
“왜 안되겠어요. 때론 말이 필요 없는 상황도 있는 법이예요.”
아영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나마 선배 덕분에 저도 살아 있는 거라고요. 영호 선배도, 여기 이분들도. 그러니 좌절하지 말고 힘을 내세요.”
“좀 더 내가 사람들에게 일찍 알렸더라면.”
“그럼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겠죠.”
“…”
“그래도 너희는 날 믿어줬잖아.”
“믿었다기보다. 흥미가 있었던 것 뿐이였죠.”
아영은 자신이 현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고 단지 흥미가 있었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럼 아무도 믿지 않았단 거네.”
현우가 허탈하게 웃으며 의기소침해 하는 것을 보자, 아영은 조금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저도 그만 쉬어야겠어요.”
현우도 일어나 자리를 찾아 누웠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불침번도 몇 번은 돌았을 때(진수라는 남자가 불침번이었을 때), 영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 눈을 뜨니 남녀 둘이 현우가 안고 있는 총을 빼내려는 중이었다. 영호가 갑작스럽게 일어나 소리쳤다.
“기상! 너희들 뭐 하는 짓이야!”
“쳇, 도망쳐!”
젊은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숲으로 도망친다. 모두 잠에서 깨어나 살펴보니 철준이 가져온 음식과 아영의 가방 모두 도둑맞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
다음날부터 그들은 식수와 음식을 찾기 위해 이산 저산 헤매야 했다. 철준의 야생식물에 대한 지식으로 몇 날을 견뎌냈지만 집요하게 총기를 노리는 남녀의 존재 때문에 피로가 누적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겸사겸사 다시 도심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이 음산하기만 하였다. 간혹 외계의 수비형 로봇 하나, 둘만이 순찰을 돌 뿐이었다. 현우일행은 음식이 될만한 물건을 찾아 도심을 돌아다니며 이동했다.
“다들 물러갔나 봐.”
영호가 말하자 아파트 단지내를 살피던 현우가 주변에 인기척이 없는 걸 발견하곤 이렇게 말한다.
“아마, 이젠 많은 수의 로봇이 돌아다니지는 않을 겁니다. 더 많은 인간의 무리를 쫓을 거예요.”
철준이 한숨 돌렸다며 가족들을 살피었고, 이때다 싶어 일행은 먹거리를 찾아 헤매었다. 그들은 단지내의 편의점을 찾아 들어갔다. 편의점의 창들은 모조리 깨져 있었고 한쪽 기둥이 무너져 있었다.
“그럼 이제 안전한 거야?”
철준의 말에 카운터가 있는 입구쪽에서 초콜릿을 발견한 솔이 가방에 담으며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다만 전보다는 덜 위험하단 뜻이겠지.”
아영이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한다.
“그럼 그 아줌마, 아저씨도 더이상 쫓아오지 않겠네요.”
다희가 묻자 현우가 대답한다.
“그랬으면 좋겠어.”
***
취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모튼은 거리 어딘 가에서 납치를 당했다. 그는 납치당할 때의 기억은 없었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상의 현실 속에서 반복된 선택의 길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모튼은 인식하지 못했다. 지금 진행중인 상황이 실제 상황이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습을 외계인이 모니터로 살펴보고 있었다. 인간의 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시뮬레이션 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제발 날 놔 달라고요. 새로운 남편을 찾아 저를 떠나시더니 왜 또 찾아왔어요.”
모튼은 지금의 상황에 진저리를 쳤다. 어릴 적 어머니의 재혼으로 가족들 모두가 흩어져 버렸고 자신도 친척과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여야 했다. 이젠 다 컸다며 찾아와 새아버지의 알코올중독을 치료해야 한다며 금품을 요구할 땐 꼭지가 확 도는 것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하고 사는 어머니도 불쌍하긴 마찬가지라 몇 번인가 도움을 주었었는데, 그럴때마다 제이슨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알콜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이젠 더이상 부탁하여도 그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너를 어찌 키웠는지 잘 알지 않니. 제발 이번 한 번만 더 도와 주렴.”
“그런 술주정뱅이를 뭐가 좋다고 제가 도와줘요. 싫어요, 이만 가보세요.”
“제발···.”
모튼은 지금의 상황이 답답했지만 더 이상은 안된다며 자신의 선택을 당연하게 여겼다.
***
"너 인마! 그러는거 야냐."
동창이었던 마이클이 머리를 쥐어 뜯으며 모튼을 노려보았다.
“왜 날 이용할 때는 언제고, 이제 네가 이용당하니 싫냐?”
“그렇다고 이렇게 형편없는 작품을 나한테 속여서 팔아먹어?”
“네 눈을 원망 해야지, 왜 날 탓하냐? 그리고 난 모르고 중개해 준 것뿐이야. 아무 잘못이 없어.”
“네가 모르고 있었다고!”
마이클의 집 이곳 저곳은 세리에 의해 이미 빨간 딱지가 붙어있었다.
***
“모튼 씨 이것 좀 처리해 줘요.”
“아, 그건 영 반응이 시원찮은 거라, 웬만하면 이건 모건이나 플레인 시키시죠, 걔네들 한가하던 데요.”
자신을 놀려 먹던 모건이나 플레인이 불평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모튼은 그 모습을 생각하자 고소한 느낌이 들었지만 왠지 마음 한켠이 불안하였다.
“클클, 저래서야 매번 똑같은 결과군, 자신의 이익만을 선택하는 미개한 종이야. 미개해. 클클”
“우린 생각을 공유하니 저렇게 행동할 수도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곧 제재를 받게 되겠지. 쯧쯧, 저래서야, 발전이 늦고 자기들 끼리 싸움만 일삼지. 클클. 암튼 그에게서 엔돌핀이 분비되니 좋은 처리방식이겠군. 맛은 있겠어. 이렇게 처리해서 가공하는 것이 좋겠어. 클클.”
전투
6월 모일 36사단 808X부대와 헌병특수임무대원들은 강원도 정선 공설운동장에서 하계 청소년 올림픽을 대비한 군, 경 합동 대테러훈련을 하였다. 자대로 복귀하는 길에 군을 포함한 모든 공공시설들이 외계인의 공격받아 완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장동훈 대위님 저희 이대로 복귀해야 합니까.”
동훈은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멘붕 상태에 빠졌다. 이제껏 명령만을 쫓아 여기까지 왔지만 진급을 앞둔 작금의 상황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직은 대기하라.”
큰 폭발음이 들린 후부터 모든 통신 장비들이 불통이 되었다. 통신병들도 이젠 통신장비를 내버려야 할 지 망설이고 있었고, 가족들 걱정에 집으로 연락을 취하였던 대원들도 먹통인 휴대폰을 집어 던져야했다. 척후 대원들을 전방에 보내 놓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으나 자신은 없었다. 자신이 없어도 충분히 제 몫을 할 만한 대원들이 쉰 명이 넘었지만 정작 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자신의 어깨는 무거웠다. 곧 척후조가 돌아와 상황을 설명한다.
“웬 로봇들이 인간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교전을 한다면 저희 대원 모두 전멸할 것 같습니다.”
“저격수들은 아직 그 위치에 대기하고 있나?”
“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몰라 대기하라 전했습니다.”
“잘했네 이현상소위.”
“네.”
다른 조의 부대원들도 속속 상황을 살피고 돌아온다. 모두 동일한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 조의 분대원들이 외계로봇과 교전을 하며 이곳으로 후퇴중이다. 이렇게 꼬리를 달고 오면 안 되는 일인데 연락이 안되다보니 외계병력을 달고 돌아온 것이다.
“저격수들에게 저격 준비하라 이르게.”
“엣썰.”
로봇 병사들이 몰려든다. 처음에는 저격수들의 활약으로 로봇병사들이 속속 총알을 맞고 부서져 쓰러졌지만 어떻게 된 게 더 많은 병력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동훈은 병력을 뒤로 물리기로 했다. 얼마나 많은 로봇병력이 있는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싸움을 지속할 수 없었다. 그들의 탄환도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격수들은 이제 다 모이라 하고 우선 여기에서 벗어난다.”
“옛썰.”
장동훈 대위는 이대로 시가전을 벌이며 퇴각해야 하는지, 전투를 지속해야 하는지. 아니면 무조건 뒤로 내빼야 하는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장병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소중하였기때문에 한사람도 잃을 순 없었다. 그때 이현상소위가 다가와 묻는다.
“대위님 괜찮으십니까.”
“아직 괜찮네만 우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싶네.”
“이대로 퇴각해 산악지역으로 이동하는 게 나을 듯싶습니다. 저 로봇도 장애물이 많은 산에서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고맙네, 자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
부대는 곧 가까운 비봉산으로 이동했다. 이동중 외계로봇과 교전을 벌였지만 빠른 퇴각으로 인해 큰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외계로봇도 쉽게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는데 계속된 추격과 격전속에서 장동훈 대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만을 느껴야 했다. 완전히 산지로 접어들자 로봇도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피해는 얼마나 되나.”
“경상자 5명에 사망자 1명이 있습니다.”
이현상소위가 대원들의 안위를 살피었고 그 중 박의환 일병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교전을 하며 이동을 하였기에 탄환이 많이 부족했다.
“대원들 몇몇 차출해서 가까운 경찰서나 부대에 들러 무기를 확보해야 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장동훈 대위는 부대원들을 하나하나 살펴가며 불안해하는 부대원들을 달래었다. 군은 이미 지리멸렬한 것 같았다. 이대로 군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지인을 찾기 위해 병력을 해산해야 하는가 판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다. 장동훈 대위는 부대원들을 한곳에 모아 그들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여러분의 지휘관으로서 한마디 하겠다. 군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완전 붕괴되었다고 생각된다. 여러분의 가족이나 지인들이 외계병력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다. 여기서 해산하고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던가. 아니면 여기서 죽음를 무릎쓰고 외계로봇과 싸울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돌아가 가족들을 구하여도 되고 제 한 몸 피하여도 상관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지금의 상황에 어울리는 상관은 아니다. 많이 생각해 보았지만 해산하는 게 나을 듯 보인다. 어떻게 하겠나?”
모두 침묵을 지킨다. 각자 흩어져도 목숨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들은 군인. 자의든 타의든 적과 싸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인 것이다.
“저희는 아직 싸울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대로 물러서면 너무 억울할 것 같습니다.”
“로봇들에게 본때를 보여줍시다.”
“대위님 저흴 버리지 마세요.”
여러 곳에서 병사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 이현상소위도 대위에게 외계인을 무찌르자고 권유한다. 군인의 목적은 평시를 위한 게 아니라 이럴 때를 위해 한 목숨 바치라고 있는 거라며 목숨을 안타깝게 여길 일이 아니라 하였다. 적어도 이렇게 해산하면 안된다며, 외계인에게 인간의 저력을 보여주자며 싸울 것을 주문한다. 대위도 그들의 의견을 취합해 함께 외계인을 소탕할 것을 다짐한다.
“여러분의 의견을 종합하여 여기서 게릴라부대를 결성하겠습니다. 모두 저를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
“이제 이들의 데이터는 많이 확보했고, 한 가지만 더 실험을 해보자고. 클클.”
“클클, 아하! 이 녀석을 놓아주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구경이나 하자고? 이미 정해진 운명인데 실험을 더 해봐야 뭐하겠나? 그저 살려주는 척만 하자구. 클클.”
“그거 재밌겠군, 클클. 빨리 준비해야겠어, 클클, 바로 도망칠 녀석이니. 클클.”
***
감옥에는 이미 납치되어 연구대상이 되었던 사회학자 해리 윌슨이 있었다. 그는 오랜 실험 대상이 된 끝에 친분이 생긴 외계 학자의 도움을 받아 모튼을 탈출 시키고자 하였다.
외계인들에게서 듣게 된 이야기는 그를 놀라게 하였다. 별의 자원이 고갈되자 다른 별을 찾게 되었고, 자신의 별에서 시간 여행을 하면 역사가 바뀌게 되므로 그것만은 금지되었더란다. 그리고 그렇게 다녀 본 별 중에는 지배종이 여럿인 별들도 더러 있었는데, 그들은 더욱 뛰어난 기술을 가졌지만 서로 이용만 당한 끝에 멸종되었단다. 단번에 별에 침입하지 않고 연구를 거듭한 뒤 공격한 건 면역을 기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였기 때문이고, 그동안 인간의 사회성에 관한 연구를 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좋았다고, 자신들의 능력 중 어느 범위의 영역 안에서는 사고 공유능력이 있으므로 개인행동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서, 자신들과는 다른 인간의 사회성에 관심을 두게 되었노라 자랑하였다.
“이보게, 이제 실험 데이터를 꽤나 얻었을 테니 풀어주지 않겠나.”
윌슨이 말하자 외계 학자가 말한다.
“글쎄,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서. 클클, 자네는 모처럼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네. 인간의 풍습이라든지 인간의 사회적 행위에 대해 내가 얼마나 궁금해했는지 알고 있지 않나. 클클.”
“그렇다면 저 젊은이나마 풀어줄 순 없겠는가?”
“도와줄 순 있다네, 자네가 지금까지처럼 순순히 협조해준다면 말일세. 클클.”
***
실험을 마친 모튼은 이제야 상황을 깨닫고는 머리를 움켜쥔다. 두통이 그의 머리를 옥죄어온다. 그러다 옆방에 있던 윌슨이 그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니 날 풀어줄 것 같다?”
“그렇다네. 대신 사람들에게 이 위협을 알려야 하네, 그들은 지구상의 면역체계를 이미 갖추었어, 그러니 그런 쪽으로 대처하려 들면 오히려 늦을 것이네. 그들에게는 이미 오랜 전례가 있어.”
그러면서 외계인에게 전해 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개인적인 부탁이 있네. 딸과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주게나.”
“......”
***
“그를 놓아주게.”
윌슨이 말하자 외계 학자가 대답한다.
“알겠네, 클클.”
“그런데 당신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지? 생각도 공유한다면서.”
모튼의 날카로운 질문에 웃으며.
“이 키가 그 해답이네, 그리고 어차피 나 아니면 탈출은 불가능하다네. 클클.”
“믿을 수밖에 없나, 그래 어떻게 하면 되지?”
“이 키를 지니고 내가 말한 곳으로 이동하면 되네. 이 키를 지니면 로봇이 우리의 일원으로 인식하니 염려할 것 없다네. 클클. 명복을 빌겠네. 클클.”
모튼은 곧 풀려났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모튼의 탈출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속일 수 없는 존재였고 또한 여흥을 위해 탈출하도록 입을 맞췄다. 그렇다는 것은 모튼의 탈출이 쉽지 않음을 예견하는 것이리라. 그러한 면에서 보자면 외계인은 잔혹한 성품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또한 모튼이 그들의 예상대로 행동하였을 때나 가능한 일이리라.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증거가 필요해!]
모튼은 모선 내부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외계인이 탈출로를 마련해 놓은 곳으로는 이동하지 않은 채······.
“클클, 놈이 어디로 갔지?”
“다시 한번 잘 찾아보게. 클클.”
사랑 은혜교
이동하는 길은 서로가 같은 방향이어서 무엇보다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다. 현우는 인천, 영호, 아영은 서울, 철준 가족은 어머니가 계신 수원 방향이었다. 모두 기다리는 사람에게로 가는 것이지만 그들이 여태 살아있다고 확신하지는 못했다. 다만 무의식적으로 그곳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모두 그 이상을 생각하면 괴로웠기 때문에 더 많은 생각은 저 멀리 하늘로 날려버렸고 본능적으로 따른 것이었다. 외계로봇과 싸우며 이동하는 통에 전진은 느렸지만 각자 전투의 달인이 되어갔다.
많은 수의 로봇이 어딘가로 이동했으며 이곳은 이제 사람도 적었지만 로봇들의 수도 많지 않았다.
수비형 로봇들만이 거리에 남아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로봇의 이목을 끌기에 총기는 최종수단으로 남겨 둬야 했지만, 파이프, 몽둥이 등으로 무장하고 모퉁이로 유인하여 로봇을 부수고 나면 거리는 한결 이동하기 편한 상태가 되었다. 편의점이나 가정집에서 식수와 식량을 확보하며 이동하였다. 전 지구를, 한국 전체를 전투 로봇이 모두 감당하기에는 그 수가 많지 않았고. 다만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지 큰 공격을 받으면 몰려드는 습성이 프로그램이 되어있는 것 같았다. 더구나 완전히 지구를 장악한 것이 아니어서 끊임없이 교전이 벌어졌고 로봇이 파괴되거나 하면 보충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 수가 조금씩 줄어가는 것이었다. 아마도 미래에서 과거로 워프하는데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이쪽으로 길을 잡아야 할 거 같네.”
지리에 훤한 철준이 방향을 일러준다.
“그래도 무난히 여기까지 왔네요.”
현우가 땀을 닦아내며 말하자
“많은 일이 있었잖소.”
철준은 그동안의 일을 떠올린다. 서로 로봇을 유인해내면 코너에서 로봇을 부수는 일 말이다.
그들은 경기도 이천의 한 사거리에 도착했다.
“여기도 이젠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외계인도 그 무엇도···.”
아영이 말하자 철준이 답한다.
“사람이 살기에 도시는 적합하지 않아서 모두 떠난 것이요. 물도 먹을 것도 구하기 어렵고 전기조차 통하지 않는 도시에서는 더 기대할 것이 없단 말이오.”
“그러게요. 편의점도 이젠 먹을 게 거의 없네요. 다 상한 음식들뿐이에요.”
현우는 아영과 함께 수비형 외계 로봇을 유인하였다. 그러다 아영이 한발 늦게 코너로 진입하는 바람에 현우가 아영을 끌어안고 모퉁이로 뛰어들었다.
"피슝"
“앗.”
현우는 팔을 레이저로 관통 당했다. 그 로봇은 코너에서 나머지 이들이 처리했다.
“괜찮은 거야?”
영호가 걱정스러운 듯 이야기하자 혜정이 피가 쏟아져 나오는 현우의 팔을 천으로 감아 지혈시켰다.
“위험할 뻔했네요. 다행히 위험한 부위는 아니예요.”
아영이 이를 보곤 미안해 하며 안절부절 못한다. 그에 현우가 오히러 아영을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나 아직 멀쩡하다고.”
“선배, 흑, 흑. 저 땜에 흑. 흑.”
현우는 다른 손으로 아영의 머리칼을 헝클어 놓는다.
“괜찮아.”
***
그들은 현우의 상처에 필요한 약을 구하기 위해 약국을 찾았다. 이미 누군가 한바탕 휩쓸고 간 모양이다. 약국은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아스피린, 진통제, 붕대 등 필수 품목은 많이 사라지고 없었다. 로봇과 싸움을 벌이는 단체들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아직 살아남은 군인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전자장비, 반도체가 들어가는 무기들은 여전히 사용할 수 없어 개인 화기정도로만 로봇과 싸우고 있는 형편이었다.
“아직 인간들이 남아있는 모양인데요.”
영호가 말하자, 약을 구하진 못했지만 차라리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는 게 모두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저항군이 있어 약들을 수거해갔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여튼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는 게 고마웠다. 다른 약국을 찾아 이동하며 어렵게 약을 구하여 현우를 치료했지만 마음만은 꺼지지 않은 희망으로 인해 모두의 얼굴이 밝아졌다. 다만 아영만 현우의 상처때문에 안색이 어두웠다.
“괜찮데도.”
“한번 봐 봐요. 아직 많이 아프겠는데요. 약을 좀더 구해야겠어요.”
아영은 매일 같이 현우의 팔에 약을 발라주며 붕대를 갈아주었다. 미안함은 알겠는데 아영이 이렇게 열성으로 치료할 줄은 몰랐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자.
“이젠 괜찮아.”
“어디 봐 봐요.”
아영이 다시 달려들어 상처를 바라다본다. 현우는 아직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신경과 뼈, 힘줄 등은 무사한 모양이다.
“약도 많이 떨어졌네요. 다시 약을 구해야겠어요.”
“그래도 많이 아물었네요.”
침착한 혜정이 현우의 팔을 살펴보고 말했다.
“좀만 더 치료하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제가 워낙 약발이 잘 받는지라. 헤헤.”
“지랄하네.”
영호는 현우의 엉덩이를 발길로 차 버렸다. 영호는 걱정하는 아영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제길, 내가 다쳤어야 했는데!]
그 모습을 보던 철준이 지레 물러서며 입을 가린다.
***
산 위에서 저 멀리 도심 쪽의 전경이 바라다보인다.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과 수비형 로봇이 한바탕전투를 벌인다. 현우의 팔은 이제 거의 아물었다. 슬슬 양손을 사용하여도 될 것 같았다.
“수도가 가까워지니 저항군도 간혹 보이는군.”
철준이 이야기하자 영호가 대답한다.
“그러게요, 화염병을 저리 사용하다니 놀라운데요.”
사람들이 로봇의 시야를 가리기 위해 화염병을 그들의 감각기관에 던지고 있다. 화염병이 터지고, 불길이 솟아오르면 로봇이 일시에 공격대상을 잃어버리고 멈춰 섰다. 사람들이 로봇을 둘러싸고 이동하며 소리를 지르면 로봇은 소리에 반응하여 이리저리 제자리에서 사방으로 움직인다. 그때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로봇을 처리한다. 로봇은 반격을 하지 못하고 망가진다.
“그나저나 어머니는 안전할지 걱정이요.”
철준이 어머니를 걱정한다. 어릴 적 자신들을 키워준 할머니가 걱정이 되어 아이들도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각자 부모님에 대한 걱정에 모두의 얼굴이 수심으로 가득하였다.
“그래요, 생각만 하면 잠도 오질 않아요.”
아영의 말에 현우가 도심을 바라보며 말한다.
“이들을 봐 봐, 아직 살아 계실 거라고.”
“모두 힘을 냅시다.”
모처럼 발견한 희망에도 어둠의 그늘이 지었다.
이동 중에 저항군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였고 가는 길이 달라서, 서로 헤어졌다. 현우 일행은 계속해서 산으로 이동하며 상경했다. 그러다가 식량이 부족해지면 산에서 내려와 도심으로 향하였다. 소수의 저항군은 많았지만 이들을 규합하여 외계인과 대항할 세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
멀리 일단의 무리가 보인다. 그들 중 선두에 선 자가 현우 일행에게 말한다.
“거기 누구요?”
“저희는 이곳을 통과해서 수도로 가려 합니다. 이곳은 안전한지 모르겠네요.”
한 교회의 수장으로 보이는 인물이 대답한다.
“이곳은 우리가 지키고 있으니 염려 마시오.”
한 교인의 말에 영호가 안심이 되는지 경계를 늦추며 말했다.
“이곳은 공격을 안 받았나 보네요, 모든 건물이 거의 멀쩡한 게.”
주변의 인물들이 웅성거린다.
“아니요, 처음 우리도 공격을 받았소, 보다시피 우리가 이렇게 지켜내었소. 그리고 새로 보수를 좀 했지. 큼흠!”
“아, 그러시군요.”
인상좋은 한 노인의 말에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현우는 안전한 이곳에 남아 일행의 살필 것인가 곧 떠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오후가 되자, 그들을 괴롭히던 도둑 남녀도 이곳을 찾아왔다. 서로 말없이 노려보았다. 교회 사람들에게는 남녀가 총기 도둑이라 조심하라고 말하였지만, 교인들은 자신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로 보아 이곳도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은 현우 일행을 따로 배정한 방으로 이끌었다.
“아이씨, 난 급한데, 여긴 화장실이 어디야.”
“왜 이렇게 화장실이 먼데.”
영호는 외계인의 침공 이후 지금까지 아무곳에나 배설하였는데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화장실을 찾게된 게 억울한 모양이다.
“이곳 사람들 한테 물어보지 그래요.”
아영이 말하자.
“글쎄, 처음부터 만나자마자 화장실 간다고 말하기 부끄러워 그러지.”
쑥맥인 영호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러더니 얼마나 급했던지 영호가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간다.
“재는 뭘 먹었다고 저렇게 급하데, 먹은 건 똑같은데. 혼자 챙겨 먹는 것이라도 있나보지.”
***
영호가 볼일을 본다고, 화장실이 급하다며 돌아다니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주민들이 모인 방으로 숨어들었다.
“경계는 어떻게 하고 다 이리로 모였나?”
“그들은 모두 나가떨어졌소.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소.”
처음 현우 일행을 마중했던 교주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한다.
“그들은 총을 가졌어.”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 아니오. 싸우면 서로 피를 볼텐데.”
“예전처럼 그들이 안심하고 있을 때 뒤를 칩시다.”
교주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한다.
“아니요, 이번엔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 남녀를 이용해서 아무도 믿을 수 없으니 총기는 맡겨달라 말 해야겠어.”
“좋은 생각이오”
***
현우는 방안을 서성이다가 철준과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성이는 버릇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그렇단 말이지.”
“예, 너무 이상해요, 다 연세 있는 분들만 있는데 외계인의 공격을 막아 내다니 무슨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요.”
그때 영호가 방으로 들어와 이상한 일을 목격했다고 이야기한다.
“아니, 벌써 눈치채고 있는 거야, 내가 뭘 보고 왔는지 알아?"
아영이 묻는다.
“무슨 일인데요?”
“내가 보고 온 게 뭐냐면······.”
영호는 한 창고에 사람들이 갇혀 있음을 말하며, 지금까지 보고 온 사실을 전한다.
반격의 시작
“어떻게 할까요.”
현우가 묻자.
“뭘 어떻게 해. 다 때려눕혀야지.”
영호가 아무 계획도 없이 내킨 대로 이야기한다. 모두들 영호를 보고 대책이 없다는 듯 혀를 내두른다. 아영은 누가 엿듣는 지 귀를 문에 대고 있었고, 헤정은 아이들을 지키고 있었다. 언제 큰일이 나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우린 수가 적으니 우선 갇힌 사람부터 풀어줍시다”
철준이 방향을 제시하자 나머지는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
“영호야, 창고를 감시하는 사람이 얼마나 돼?”
“지금은 그리 많지 않지만 곧 사람들이 경계를 다시 하지 않을까? 여기도 그렇고.”
“그럼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건데.”
현우가 방안을 서성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건 어때요.”
아영이 사람들을 둘러보고 이야기한다.
“그래,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는 건 어떤가.”
***
그들은 서로 방에서 나와 흩어졌다. 혜정이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의 첨탑에 불을 지른다. 불이 붙고 활활 타오르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엄마 여긴 됐어요.”
“그래 잡히지 않게 조심하고 반대쪽으로 이동해서 거기에도 불을 놓자.”
“예.”
다희와 솔이 대답한다.
교인들이 세부적인 계획을 짜려고 여전히 방에 모여 있다가 첨탑에 불길이 오르는 것을 보고는 불을 끄기 위해 뛰쳐나와 교회로 몰려들었다. 교회 첨탑은 교의 상징물이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첨탑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고, 그들의 경계심을 허무는데 한몫을 한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현우와 영호는 총을 들고 창고로 이동했다. 창고를 지키는 사람 둘이 잡담을 나누고 있다.
“저게 웬 불이래.”
“우리 또 교대 못하는 것 아냐.”
총을 창고 옆에 기대어 세워놓고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래도 불 끄는 것 보다 여기 지키고 있는 게 낫지않겠어.”
“내 잠깐만 보고 올께. 여기서 지키고 있어.”
안경 쓰고 배 나온 인물이 불이 난 곳을 살피러 나왔다가 현우와 영호에게 제압당한다. 입과 팔 다리를 편의점에서 챙긴 테이프로 붙였다. 그리고 나머지 인물에게 몰래 접근해 개머리판으로 사정없이 머리를 내리쳤다. 그가 깨어나기 전에 역시 테이프로 몸을 묶었다. 창고 문을 열고 사람들을 풀어주는 동안.
교주가 불난 곳을 살피다가 의심이 들었는지 옆의 교인에게 창고로 가보라며 명을 내린다. 교인은 총을 들고 창고에 왔다가 현우와 영호가 사람들을 풀어주는 것을 보자 총을 겨누고 위협하며 현우와 영호를 한쪽 벽으로 몰아세웠다.
“거기 총 움직이지 말고, 내려놓는다.”
총을 내려놓았다간 다 같이 죽을 모양, 감히 어떠한 움직임도 하지 못하고 대치중이었다가 교인 뒤에서 나타난 철준에 의해 상황이 종료 되었다. 총구를 교인에게 들이대며 총을 빼앗는다.
“여어, 가만히 있으라고."
철준은 현우와 영호를 창고에 보내놓고 교주의 행동을 살피기 위해 근처에 대기중이었다가 사고가 발생하자 현우 일행을 도운 것이다. 포로가 된 세명의 총기를 빼앗아 창고에 갇혀 있던 인물들에게 넘기고 불을 끄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교인들을 잡기위해 갇혀 있던 사람들과 함께 이동한다. 창고에 잡힌 사람들과 연합하여 총기를 든 인물들을 한 명씩 제압하고 마침내 모두를 제압하여 무릎 꿇린다. 창고에 갇힌 사람들은 현우일행에게 고마워하며 일의 진상을 이야기헸다.
들어보니 교주 일행은 사이비종교로 사람들을 끌어 모아, 외계인에게 제물로 바치고 목숨을 연명하였던 무리였다. 감금당한 사람 중 주한미군 대령 이안 딜런과 언어학 부교수인 김수진 씨가 있었는데, 창고에 갇힌 무리의 리더중 하나였다. 그들을 통해 외계인이 지구에서 하려는 바가 밝혀졌다. 무기력한 인간을 식량화하고 지구의 자원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전천후 전쟁 기지를 세우려던 것이었다. 이안은 풀려나자마자 함께 갇혀 있던 무리와 함께 교주 일행을 심문했다.
“이들의 신변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소."
군복을 차려 입은 이안이라는 사내가 말한다.
“혹 외계인에 대해 뭔가 알아낸 사실은 없습니까?”
현우가 묻자 수진이 말한다.
“그들과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해요. 제가 대신 그들과 통역을 했었죠. 그들은 아마 지구의 모든 것을 차지하려고 할 거예요.”
“그럴 거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현우가 대답하자 수진이 다시 말한다.
“그들의 모선은 한국에만 2대 있어요, 아마 각국이 이런 위기에 처해 있을 거예요.”
“우린 군을 다시 규합해야 하오, 도와줄 수 있겠소?”
이안이 고심끝에 말한다.
“그들이 EMP장비로 전자장비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소. 그 무기를 계속 쏘아 대고 있을거요. 새로 반도체를 교체해도 무용지물이란 말이오. 첨단 무기는 이제 사용불가능하오.”
“그럼 EMP를 쏘는 무기를 없애는 게 순서이겠군요.”
현우가 이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네, 혹 다른 저항군은 만나보았나?”
이안이 묻자 철준이 간략하게 설명한다.
“간혹 만나보았습니다만, 그 수가 너무 적어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승산은 있소. 그 무기만 없앤다면.”
이안은 함께 갇혀 있던 사람들을 풀어 저항군을 모집했다. 현우 일행과 철준도 이에 동참했다. 이렇게 끌어들인 사람들을 모아 계획을 세웠다. 일단 외계인이 이곳을 다시 방문할 것이니 교인들 몇몇은 포로로 꾸며 창고에 가둬 두고 나머지는 무기를 숨기고 잠복 대기하고 이안과 수진은 외계인을 환영하듯 맞는다. 수진이 외계인과 통역을 하였음으로 작전을 짜기에 용이했다. 며칠이 지나고 외계인이 당도했을 때.
“클클. 이번에 새로 수집한 인원이 이게 다인가.”
로봇과 함께 한 외계인은 포로들을 보자마자 영 성에 안 찬 모습으로 말하였다.
“식량으로 삼기에는 너무 늙은 것들만 있는 게 아닌가. 클클.”
수진이 이안에게 이를 전하고 이안이 다시 수진에게 말하자 수진이 이를 외계인에게 전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수가 많이 줄었답니다. 다음번에는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겠다고.”
외계인이 이안을 바라보더니 묻는다.
“사람이 바뀐 것 같은데. 클클.”
“교주가 폭동으로 죽고, 새로 임명된 사람입니다.”
수진이 대답한다.
“그런데 이들은 어디로 옮겨지나요.”
수진이 다시 묻자.
“클클. 평양의 본대로 이송될 것이네. 앞으로 좀 더 잘하라고. 클클.”
수진이 이안에게 이르자 이안이 다시 수진에게 말을 전하고.
"알았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외계인 무리가 다시 돌아가려 할 때,
신호를 받은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숨어 총을 난사하며 외계로봇과 외계인을 공격한다. 이안도 곁에 있는 외계인에게 권총을 겨누며 포박한다. 여럿이 죽고 다쳤지만 이곳에서부터 인류의 반격은 시작되리라. 총격으로 망가진 외계비행선과 제압한 외계인을 이용하여 외계무기체계에 대해 알아보고 비행선 조작방법을 알아냈다. 그리고 대대적인 반격을 위해 저항군들을 더 끌어들였다.
“이쪽은 808X 대위 장동훈 씨고 이쪽은 이현상 소위요.”
하계 청소년 올림픽을 준비하느라 대테러 훈련을 하였던 808X 부대 이하 헌병특수임무대원들은 그 피해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으며 소규모 전투를 벌이다 저항군에 합류하였다.
“네, 그러시군요. 저는 현우, 이쪽은······.”
합류한 저항군의 일부가 모여 회의를 한다. 이안은 사람들을 수거해가는 모선 쪽인 평양으로 진격하여 사람들을 해방시키길 주장했다. 그리나 진주쪽에 있는 다른 모선에 신경을 거두려고 하자. 현우는 외계인의 입장에서 보면 바다로 막혀 있어 수비에 유리한 진주 쪽에 EMP기계가 있을 거라며 이곳도 쉬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담, 양동으로 칠 수밖에 없다는 소린데, 나누기에는 병력이 너무 적어요.”
그러자 한동안 듣고 있기만 하던 장동훈 대위가 한마디 한다.
“그럼 저희가 현우 일행과 함께하죠. 아마 앞으로 좀 나아가다 보면 더 많은 인원이 합류할 겁니다.”
“그러는 게 좋겠네. 그리고 이현상 소위는 나를 좀 도와주시게. 지휘관이 너무 적어서야···.”
이안 대령이 투덜거리며 말한다.
“아저씨는 어떡하실래요?”
현우가 철준에게 묻자.
“난 이안과 함께 하겠어. 아이들도 있고, 이쪽이 더 나을 것 같아.”
“그러세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아직 끝난 건 아니라고. 승리하면 다시 만나자고.”
“예.”
“이야기 다 나눴으면 현우 씨는 나를 잠깐 보고 가지.”
이안이 떠나려는 현우를 불러 세웠다.
***
현우 일행은 808X 부대원들과 다른 소수의 저항군을 이끌고 함께 진주 쪽으로 진군하였다. 많지 않은 병력이지만 정예부대였고 장동훈 대위가 현우일행의 긴장을 풀어주자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적은 인원이 이동하였던 터라 많이 불안하였는데 808X 부대원들과 함께하니 현우의 부담감이 많이 해소되었다. 소수의 기계 병력은 처리하고, 많은 병력을 만나면 산개해 움직이면서 외계 병력을 교란시키며 나아갔다. 차츰 합류한 인원이 많아지면서 보급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수도에서 시골로 이동하는 것이기에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할 수도 있었다.
평양 쪽으로 이동한 이안의 병력도 마찬가지로 북으로 움직였으나 이곳보다는 대 병력이었으므로 아마 적들도 그렇게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하였다. 외계인도 차츰 병력을 끌어 모으고 있는 것 같았다. 소규모전투는 줄어들었고 한 곳에서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평양에서의 전투는 교전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아이들과 몇몇 군인들을 통해 외계 비행선의 탈취도 꿈꾸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의 일이 끝이 아님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현우 일행은 곧 진주에서 외계인의 병력과 부딪힐 것이었다.
비행선 탈취
“이안 아저씨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어요?”
“만약 살아남는다면 너한테 잘해 주라고 하더군. 자신이 가장 후회스러웠던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거라며. 나도 이번 일을 통해 생각해 봤어. 네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어떤데요.”
“특별한 사람. 날 인도해주는 별빛같달까.”
“흠, 그게 뭔데요.”
다 알아들으면서 아영은 되묻는다. 아영은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런 게 있어.”
현우가 아영의 눈을 바라본다. 아영의 눈빛이 별처럼 반짝이며 단박에 현우의 가슴에 박히는 것 같았다.
“피.”
아영이 혀를 내밀고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음. 남들이 뭐라 떠들어도 한결같이 그 길을 가고 있는 선배가 저도 좋았어요. 전 열등감에 시달렸죠. 그래서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한 가지도 잡히는 게 없었고 실망만 했어요. 그러다 선배를 보았는데 무언 가에 그렇게 빠져들 수 있다니 놀랐어요. 남들이 다 공상이라 치부하는 일인데도···. 그렇다고 선배가 현실성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예요.”
현우는 말없이 아영의 손을 꼭 잡는다.
“우리 꼭 살아남자. 살아남는다면 너에게 고백할게.”
다음날 부대는 각개전투를 벌이며 진군하였다. 현우는 전보다 더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영호는 그날 밤의 일을 알았지만 모르는 일처럼 행동하였다. 마음은 아팠지만 밝아진 둘을 보고 오히려 속은 후련하였다.
“뭔 일이래? 얼굴이 밝아졌는데!”
"....,"
***
“반드시 비행선을 탈취해야 하네.”
이안이 말하자 이현상 소위가 대답한다.
“네”
“병력이 많지 않으니 지원은 더 해줄 순 없고, 아이들 쪽에서 지원자를 받아야겠소.”
“안 그래도 철준 가족이 그 일을 하겠답니다.”
“그렇군요. 다른 지원자들도 찾아보세요.”
“옛 썰.”
마침내 평양과 진주에서 결전이 벌어졌다.
전투는 치열하였다. 외계병력은 로봇이니 겁을 모르고 덤벼들었고 인간은 변변한 무기 없이 한 목숨 뿐이었지만 사력을 다해 로봇을 괴롭혔다. 로봇이 단순한 전투 방식이었다면 인간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로봇의 배후를 노렸다. 외계로봇도 인간과 대규모 전투를 벌이기에 병력을 모선쪽으로 모두 불러모은 상태라 인간들은 총기며 탄환등을 보급을 받기에는 편한 상태가 되었다.
“클클. 인간들의 무기를 모두 파괴했어야 했는데.”
***
“이쪽으로 탄창을 보내달라고 하게.”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탄환을 보급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모두 전선에 뛰어들었다. 살이남은 사람들도 소식을 듣고 전장에 속속 합류한다.
그러나 평양 쪽에서는 EMP 기계를 찾아볼 수 없었고 다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외계의 병력뿐이었다. 오히려 외계의 로봇들에 반격당함으로써 후퇴하게 되었다.
한편 진주 쪽에선 EMP 기계가 발견되었지만, 수적 열세를 만회하지 못하고 궤멸 당할 위기에 부닥친다. 현우 일행은 죽음을 불사하고 마지막 전투를 감행한다.
***
[여기도 별것 없군. 모두 어딘가로 몰려나갔나 본데?]
모튼은 모선 깊숙이 침투했지만 피해 다니느라 증거를 확보할 수 없었다. 외계인의 모선 안쪽에 모니터가 보이고 거기에서 그날의 전투가 화면에 잡혔다.
[이런 제길! 벌써 시작된 모양이군. 이젠 증거도 필요가 없겠는데.]
지구인이 궤멸당할 처지에 놓이자 모튼은 안절부절못하며 모선 안에 있던 외계 로봇에 다가갔다.
[날 동료로 인식한다니 다행이로군, 이때 로봇을 부순다면? 다른 로봇들이 몰려드는군! 그러나 날 공격하지는 않아. 그러면 또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려나.]
모튼은 외계인에게 건네받은 키를 몸에서 떼었다 붙였다한다. 적으로 인식 받을 때는 가까운 로봇 뒤에 숨고 그 로봇이 공격받으면 다시 키를 손에 쥐고, 그러다 보니 적의 로봇들이 우왕좌왕하다가 실행오류에 빠져 서로를 공격한다.
[그래, 이거야. 아이작 아시모프에게 3대 원칙이 있다면 이건 모튼의 파괴 제1법칙이라 불러야겠군! 이제 이것만 부수면 되겠어.]
***
저항군은 필사의 각오로 기계 병단을 맞이한다. 사람들은 갑자기 통제가 안 되어 오작동하는 기계들에 뛰어들어 백병전을 감행하고, 모튼의 자폭으로 인해 모선도 곧 폭발한다. 인류는 마침내 EMP 기계를 찾아내 부수고 승리를 만끽한다. 그러나 현우는 외계인이 마지막 발악처럼 쏘아대는 광선을 맞아 죽음을 맞이한다. 아영은 힘없이 쓰러지던 그의 시신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린다. 영호도 승리의 기쁨보다 친구요, 전우였던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저항군은 천신만고 끝에 이뤄낸 값진 승리에 함성을 내지른다. 곧 이안이 준비한 공군기지에서 비행병력이 날아들 것이었다. 그들은 한국 내에 남아있는 모든 외계인을 소탕할 것이었다. 그리고 훗날, 이 싸움은 인류 승리의 시발점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었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