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은 삼한의 하나로, 천안·익산·나주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서 발전하였으며,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었죠. 삼한 중에서 마한의 세력이 가장 컸으며, 마한을 이루고 있는 소국의 하나인 목지국의 지배자가 마한왕 또는 진왕으로 추대되어 삼한 전체의 주도 세력이 되었습니다.
삼한의 정치 지배자 중에서 세력이 큰 것은 신지, 작은 것은 읍차 등으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인 천군이 있었는데, 천군은 신성 지역인 소도에서 농경과 종교에 대한 의례를 주관하였습니다. 천군이 주관하는 소도는 군장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죄인이라도 도망을 하여 이 곳에 숨으면 잡아가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존재에서 고대 신앙의 변화와 제정의 분리를 엿볼 수 있어요.
① 삼한에는 소도가 있었는데, 소도는 제사장이 다스리는 신성 지역으로 제정 분리 모습을 보여줍니다.
② 옥저의 풍속에 대한 설명입니다.
옥저의 혼인 풍속으로는 민며느리제가 있었는데, 이는 장래에 혼인할 것을 약속하면, 여자가 어렸을 때 남자 집에 가서
성장한 후에 남자가 예물을 치르고 혼인을 하는, 일종의 매매혼이었습니다.
장례 풍속으로는 골장제가 있었으며, 목곽 입구에는 죽은 자의 양식으로 쌀을 담은 항아리를 매달아 놓기도 했어요.
③ 부여에 대한 설명입니다.
부여에는 왕 아래에 가축의 이름을 딴 마가, 우가, 저가, 구가와 대사자, 사자 등의 관리가 있었어요.
가(加)는 저마다 따로 행정 구획인 사출도를 다스리고 있어서, 왕이 직접 통치하는 중앙과 합쳐 5부를 이루었습니다.
장례 풍속으로는 순장의 풍습이 있었고, 영고라는 제천 행사, 1책 12법 등의 법률이 있었죠.
④ 고구려에 대한 설명입니다.
고구려도 부여처럼 왕 아래에 상가, 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있어 각기 사자, 조의, 선인 등 관리를 거느렸습니다.
중대한 범죄자가 있으면 이들이 제가 회의를 열어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을 노비로 삼았습니다.
혼인 풍속으로는 서옥제와 형사 취수제가 있었으며,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습니다.
⑤ 고조선에 대한 설명입니다.
고조선에는 8조법이 있었는데 현재는 그 중에서 3개조목만 전해집니다.
이를 통해 당시 사회에 권력과 경제력의 차이가 생겨나고 재산의 사유가 이루어지면서 형벌과 노비도 발생하였다는
것, 그리고 노동력과 사유 재산을 중요하게 여기고 보호하였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 초기 국가의 모습
부 여 | 고구려 | 옥 저 | 동 예 | 삼 한 | |
위치 | 송화(쑹화)강 유역 | 졸본(환인)지방 | 함경도, 강원도 북부의 동해안 | 고조선 남쪽 지역 | |
정치 | ◦ 5부족 연맹제 ◦ 오곡이 잘익지 않으면 왕에게 책임을 물음 | ◦ 5부족 연맹제 ◦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 | ◦ 연맹체를 형성하지 못함 ◦ 고구려의 압력과 수탈로 크게 성장하지 못함 | ◦ 연맹 왕국 ◦ 목지국의 지배자가 삼한 전체 주도 세력 | |
군장 | ◦ 마가, 우가, 저가, 구가→사출도의 통치 ◦ 대사자, 사자 | 상가, 고추가, 대로, 패자 → 사자, 조의, 선인 | 왕이 없이 읍군이나 삼로가 자기의 부족을 통치 | 신지, 견지, 읍차, 부례 | |
경제 | ◦ 농경, 목축 ◦ 말, 모피, 주옥 ◦ 하호 : 생산직에 종사하는 피지배층 | ◦ 부경(지배층 창고) → 약탈 경제 ◦ 맥궁 ◦ 하호 | ◦ 토지의 비옥 → 농경의 발달 ◦ 해산물의 풍부(어물, 소금 등) | ◦ 벼농사의 발달 → 저수지의 축조 ◦ 철의 수출(변한) ◦ 밭갈이에 가축이용 | |
◦ 방직기술의 발달 ◦ 과하마, 단궁, 반어피 | |||||
제천 행사 | 영고(12월) : 수렵 사회의 전통 | 동맹(10월) | 무천(10월) | ․ 수릿날(5월) ․ 계절제(10월) | |
신앙 | 영혼 불멸 신앙 | 조상신 숭배(주몽) | 영혼 불멸 신앙 | 제정분리(소도) | |
장례․무덤 | 순장 | 후장 | 두벌묻기(세골장) | ◦ 독무덤 ◦ 주구묘 | |
결혼 | ◦ 일부다처제 ◦ 형사취수 | ◦ 서옥제(데릴사위) ◦ 형사취수: 재산 유지 | 민며느리제 (예부제) | 족외혼 | 군혼 |
기타 | ◦ 1책12법 ◦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가족은 노비로 함 ◦ 은력의 사용 ◦ 점복(우제점법) | ◦ 1책 12법 ◦ 점복, 절풍 ◦ 중대한 범죄자는 제가회의를 통해서 사형에 처하고, 가족은 노비로 함 | 죽은자의 양식을 담은 항아리를 매달아 놈 | 책화 ◦ 씨족사회의 유풍 ◦ 다른 부족의 생활권을 침범하면 노비, 소, 말로 변상 | ◦ 두레 ◦ 귀틀집 ◦ 반움집 ◦ 토실 |
삼한에 대한 문제를 먼저 제시하고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문제를 제시합니다.
■ 유사 기출문제 더 풀기
삼한의 사회 모습
17회 고급 3번 문제
2. 삼한의 위치 답⑤
이 문제는 1점짜리 중에서도 아주 쉬운 문제입니다.
일명 점수주기용 문제라고 하죠.
'왜인들이 와서 철을 많이 사가지고 간다', 그리고 '낙랑에 철을 보낸다(수출한다)', '신지' 등의 내용에서 쉽게 삼한을 유추할 수 있을 겁니다.
한반도 남쪽에서 발달한 삼한(마한, 진한, 변한)은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농경 사회였습니다.
삼한에서는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경이 발달하였고, 일찍부터 벼농사를 지었습니다.
특히, 삼한 중의 하나인 변한에서는 철이 많이 생산되어 한 군현 중 하나였던 낙랑, 그리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왜 등에 철을 수출하였습니다.
당시 철은 교역에서 화폐처럼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삼한에서 정치적 지배자는 신지(세력 크기에 따라 신지, 부례, 읍차 등으로 불림)였으며, 이와 별도로 신성 지역인 천도를 다스리는 천군이 있었습니다(제정분리 사회).
지도의 (가)는 부여, (나)는 고구려, (다)는 옥저, (라)는 동예, (마)는 삼한 중 변한의 위치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3회 고급 2번 문제
2. 삼한의 모습 답①
바로 직전에 실시되었던 1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는 부여에 대한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이번에는 삼한에 대한 문제가 출제되었네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립한 여러 나라들의 사회 모습, 그 중에서도 부여와 삼한(특히 마한)에 대한 모습을 파악하는 문제가 자주 출제됩니다.
문제에 주어진 사료도 자주 봤던 자료이니 초기 국가 삼한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죠?
'5월과 10월의 제사(계절제)', '천군', '별읍' 그리고 소도에 대한 설명을 통해 쉽게 파악이 될 겁니다.
그럼 삼한에 대해 알아보죠.
고조선 남쪽 지역에는 일찍부터 진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진은 고조선 사회의 변동에 따라 대거 남하해 오는 유이민에 의하여 새로운 문화가 보급되어 토착 문화와 융합되면서 사회가 더욱 발전해 가면서 삼한, 즉 마한, 변한, 진한의 연맹체들이 나타났습니다.
삼한 중에서 마한의 세력이 가장 컸으며, 마한을 이루고 있는 소국의 하나인 목지국의 지배자가 마한왕 또는 진왕으로 추대되어 삼한 전체의 주도 세력이 되었습니다.
삼한의 정치 지배자 중에서 세력이 큰 것은 신지, 작은 것은 읍차, 부례 등으로 불렸습니다.
이들 정치 지배자 외에 제사장인 천군이 있었는데, 천군은 신성 지역인 소도에서 농경과 종교에 대한 의례를 주관하였습니다. 천군이 주관하는 소도는 정치 지배자인 군장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죄인이라도 도망을 하여 이 곳에 숨으면 잡아가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제정의 분리를 엿볼 수 있답니다.
그리고 삼한에서는 해마다 씨를 뿌리고 난 뒤인 5월과 가을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10월에 계절제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러한 제천 행사 때에는 온 나라 사람이 모여서 음식과 술을 마련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겼답니다. 이것이 오늘날 5월 단오와 10월 추석으로 연결된 것이지요.
② 부여에 대한 설명입니다.
부여에는 부족장인 가(加)들이 왕을 추대하기도 하였고, 수해나 한해를 입어 오곡이 잘 익지 않으면 그 책임을 왕에게
묻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당시에 왕권이 강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③ 책화는 동예의 사회 풍습이죠.
동예는 각 부족의 생활권이 있어 이를 침범치 못하도록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만약 다른 부족의 생활권을 침범하면 책화라 하여 노비와 소, 말로 변상하게 하였답니다.
이는 씨족 사회의 폐쇄적인 모습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④ 제가 회의는 고구려의 귀족 회의입니다.
고구려는 중대한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 회의를 통하여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을 노비로 삼았습니다.
⑤ 뼈를 추려 가족 공동 무덤에 안치하는 골장제 풍습은 옥저의 사회 풍습입니다.
옥저는 가족이 죽으면 시체를 가매장했다가 나중에 그 뼈를 추려서 가족 공동 무덤인 커다란 목곽에 안치하였습니다.
또, 목곽 입구에는 죽은 자의 양식으로 쌀을 담은 항아리를 매달아 놓기도 하였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8회 고급 3번 문제
3. 삼한의 사회 모습 답④
이 문제도 위 문제와 같은 사료가 제시되었죠?
다만 위 문제에 제시된 사료의 앞부분만 제시되었네요.
답지도 거의 유사하게 배치되었습니다.
다른 모의고사 문제집을 푸는 것보다도 기출문제를 꼼꼼히 풀어보는 것이 좋다는 것을 강조하는 카페지기의 조언을 이러한 유형의 문제들이 반복 출제되는 것에서 바로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문제는 위에서 자세하게 설명했으니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5월이면 씨뿌리기를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지낸다'라는 사료의 문구에서 삼한의 수릿날을 떠올릴 수 있죠?
삼한에서는 해마다 씨를 뿌리고 난 뒤인 5월의 수릿날, 그리고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10월에 계절제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삼한의 신지, 작은 것은 읍차, 부례 등으로 불리는 정치 지배자 외에 제사장인 천군이 있었는데, 천군은 신성 지역인 소도에서 농경과 종교에 대한 의례를 주관하였습니다. 천군이 주관하는 소도는 정치 지배자인 군장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이를 통해 삼한은 제정의 분리의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① 부여는 겨울철인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행했습니다.
다른 초기 국가들이 보통 가을 추수가 끝나는 10월에 제천 행사를 하는 데 비해 부여는 12월에 제천 행사를 한 것은
수렵 사회의 전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② 고구려는 10월에는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성대히 치르고, 왕과 신하들이 국동대혈에 모여 함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③ 옥저에서는 가족이 죽으면 시체를 가매장했다가 나중에 그 뼈를 추려서 가족 공동 무덤인 목곽에 안치하였습니다.
⑤ 동예의 책화라는 사회 풍습에 대한 설명입니다.
동예는 각 부족의 생활권이 있어 이를 침범치 못하도록 하는 풍습이 있어, 만약 다른 부족의 생활권을 침범하면 노비
와 소, 말로 변상하게 하였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2회 1급 5번 문제
5. 초기 국가 마한 답②
'고조선에서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망명한 준왕의 정치 집단이 이주한 곳'이라고 나와 있네요.
고조선의 준왕은 유이민 집단을 이끌던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뱃길로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진국으로 가서 한왕(韓王)이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곳은 오늘날 한강 유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삼한 중에서 세력이 가장 컸던 마한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마한의 풍속에 대한 설명을 고르면 되겠네요.
고조선 남쪽 지역에는 일찍부터 진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진은 기원전 2세기경에 고조선의 방해로 중국과의 교통이 저지되기도 하였던 기록이 남아 있어요. 진에는 고조선 사회의 변동에 따라 대거 남하해 오는 유이민에 의하여 새로운 문화가 보급되어 토착 문화와 융합되면서 사회가 더욱 발전하여 마한, 변한, 진한의 연맹체들이 나타났습니다.
마한은 천안·익산·나주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서 발전한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삼한 중에서 마한의 세력이 가장 컸으며, 마한을 이루고 있는 소국의 하나인 목지국의 지배자가 마한왕 또는 진왕으로 추대되어 삼한 전체의 주도 세력이 되었습니다.
삼한의 지배자 중 세력이 큰 것은 신지, 작은 것은 읍차 등으로 불렸습니다.
한편, 삼한에는 정치적 지배자 외에 제사장인 천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성 지역으로 소도가 있었는데, 이 곳에서 천군은 농경과 종교에 대한 의례를 주관하였습니다.
천군이 주관하는 소도는 군장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죄인이라도 도망을 하여 이 곳에 숨으면 잡아가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제사와 정치(제정)의 분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① 변한(훗날 가야)에 대한 설명입니다.
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 왜 등에 수출하였다. 철은 교역에서 화폐처럼 사용되기도 하였다.
② 소도는 삼한 사회에 있었던 것이므로, 삼한의 하나인 마한의 풍속에도 해당되죠.
③ 동예에 대한 설명입니다.
동예에서는 각 부족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풍속이 있어 다른 부족의 생활권을 침범하면 책화라 하여
노비와 소, 말로 변상하게 하였습니다.
④ 부여에 대한 설명입니다.
부여에서는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으며,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에는 물건 값의 12배를 배상케
하고, 간음한 자와 투기가 심한 부인은 사형에 처한다는 것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⑤ 고구려의 서옥제라는 혼인 풍속에 대한 설명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2회 2급 3번 문제
3. 초기 국가 마한 답①
제시된 사료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록된 내용으로, 마한을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마한의 구성, 마한 사람들의 집(토실, 땅을 파고 그 위에 짚으로 지붕을 덮은 형태), 그리고 소도를 다스리는 제사장인 천군의 존재가 나타나 있네요.
마한은 천안·익산·나주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서 발전하였습니다.
마한은 54 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고, 모두 10여만 호였으며, 그 중에서 큰 나라는 1만여 호, 작은 나라는 수천 호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한을 포함한 삼한에는 정치적 지배자인 군장(신지, 견지, 읍차) 외에 제사장인 천군이 따로 있어 제정 분리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① 마한의 지배 세력이 마지막으로 자리잡았던 전남 나주에서 발굴된 마한의 무덤입니다.
중앙에 널무덤이 있고 주변에는 해자 모양의 고랑이 있어 이를 주구묘라고 부릅니다.
② 장군총(지린성 지안)은 고구려의 돌무지무덤입니다.
③ 벽돌무덤인 백제 무령왕릉의 내부 모습입니다.
벽돌무덤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④ 옛 동예 지역에서 발굴된 여(呂)자형 집터(강원 횡성 둔내)입니다.
최근 강원도 동해시와 강릉시를 중심으로 철(凸)자 모양과 여(呂)자 모양의 집터가 계속 발굴되고 있습니다.
⑤ 요동에 있는 고구려의 산성인 백암성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12회 고급 2번 문제
2. 부여의 모습 답①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가장 일반적인 문제 유형입니다.
사료를 제시하고 그 나라에 대한 올바른 설명을 고르는 문제...
이런 문제는 주어진 사료를 보고 어느 나라인지 바로 파악하거나
만약 모르는 사료일 경우 사료 내용에서 주요 개념을 잡아내어 어느 나라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죠.
자 그럼 잡아내볼까요?
'국토 면적이 사방 2천리....', 보통 10리를 4km 정도로 봅니다.
그러므로 사방 2천리는 동서남북 사방이 800km라고 하니 엄청 큰 영역을 가지고 있는 나라네요.
서울서 부산이 440km 정도인데 그 두배 정도 면적을 가진 나라는 당시 만주와 한반도 국가 중 부여밖에 없을 듯합니다.
그리고 또다른 힌트는 도둑질한 경우 12배 배상법,
전쟁과 같은 중대사가 있을 경우 소를 잡아 발굽으로 길흉을 점치는 우제점법이네요.
12배 배상법, 부인이 간음이나 시기할 경우 사형에 처하는 것은 부여나 고구려 사회에 동일하게 존재한 것은 확실하고,
우제점법도 고구려에서 비슷하게 행해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확실치는 않아요.
위의 여러 가지 사실을 통해 볼 때 (가)에 들어갈 나라는 부여겠네요.
그럼 답지를 하나하나 살펴보죠.
① 가(加)들이 각각 사출도를 다스렸다....는 부여에 대한 내용이죠.
부여를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공부한 것은 사출도, 제천행사로 영고라는 것이죠.
제시된 사료가 부여라는 것을 알기만 하면 이게 답이라는 것은 0.1초만에 찾아질 듯....
부여에는 왕 아래에 가축의 이름을 딴 마가, 우가, 저가, 구가와 대사자, 사자 등의 관리가 있었는데,
가(加)는 저마다 행정 구획인 사출도를 다스리고 있어서, 왕이 직접 통치하는 중앙과 합쳐 5부를 이루었는데,
이는 부여가 연맹 왕국이었음을 알려줍니다.
② 목지국의 지배자가 진왕으로 추대된 곳은 삼한입니다.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 중에서 마한의 세력이 가장 컸으며,
마한을 이루고 있는 소국의 하나인 목지국의 지배자가 마한왕 또는 진왕으로 추대되어 삼한 전체를 주도했어요.
③ 고구려에 소금, 어물 등을 공물로 바친 나라는 고구려에 복속되었던 옥저입니다.
④ 사자, 조의, 선인 등의 관리는 고구려의 관리들입니다.
부여에도 사자라는 관리가 있었으나 조의, 선인은 고구려에만 나타나는 관리입니다.
⑤ 책화는 다른 부족의 생활권을 침범할 경우 노비나 소, 말 등으로 변상하게 하는 것은 동예의 사회 풍습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11회 고급 2번 문제
2 부여의 모습 답④
이 문제는 대화에서 두 가지 힌트를 잡아내야 풀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순장',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연 재해시 왕에게 책임을 물어 왕을 축출하거나 죽이기도 했다.'라는 것이죠.
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도 나오는 내용으로 부여에 대한 사실입니다.
부여는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 동물의 이름을 딴 사출도가 있어 각 가들이 자기 지역을 따로 다스렸지요.
① 가족 공동 무덤(골장제)은 옥저의 풍습입니다.
② 무천은 동예의 제천 행사죠?
③ 고구려의 서옥제가 일종의 데릴사위제 풍습입니다.
이와 반대로 옥저에는 민며느리제라는 결혼 풍습이 있었죠?
⑤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 구역 소도는 삼한과 관련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고구려의 사회 모습
19회 고급 3번 문제
3. 고구려의 사회 모습 답⑤
고구려 사회 모습은 초기 국가 시기 고구려에 대한 내용을 묻는 문제가 출제됩니다.
그 내용은 주로 초기 국가 고구려의 혼인 풍속을 파악하는 문제인데, 이번에는 초기 국가 고구려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삼국 시대의 고구려 모습을 자료로 주었네요.
밑줄친 '이 나라'는 '조우관을 쓴 관직자의 모습', '대대로(고구려의 수상), 태대형, 대형'등의 벼슬(관직)', '동쪽에는 수혈(국동대혈)'의 내용을 통해 고구려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는 졸본(환인)에서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는데, 이곳은 산악 지대라 힘써 일을 하여도 양식이 부족했습니다.
이 때문에 건국 초기부터 활발한 정복 활동을 통해 주변의 소국들을 정복해 나가 사회 기풍도 씩씩하였습니다.
초기 고구려는 부여처럼 왕 아래 상가, 고추가 등의 5부(部) 대가들이 있어 각기 사자, 조의, 선인 등 관리를 거느렸어요.
이후에는 관등제가 정비되어 각 부의 귀족과 그 아래에 있던 관리들은 왕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한편, 초기 국가 시기에는 중대한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 회의를 통하여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을 노비로 삼았습니다.
삼국 시대에도 반역을 꾀하거나 반란을 일으킨 자, 전쟁에서 패한 자는 사형에 처하였으며, 그 가족을 노비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도둑질한 자는 12배를 물게 하였어요.
고구려의 정치를 주도하며 사회적으로도 높은 지위를 누린 계층은 왕족인 고씨를 비롯해 5부 출신의 귀족이었습니다.
이들은 그 지위를 세습하면서 높은 관직을 담당하였으며, 전쟁이 나면 스스로 무장하여 앞장서서 적과 싸웠어요.
이 시기 농민들의 생활은 불안정하여 노비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아 이를 막기 위해 고국천왕 때 먹을거리가 모자란 봄에 곡식을 빌려 주었다가 가을에 추수한 것으로 갚게 하는 진대법을 실시하였습니다.
고구려는 건국 시조인 주몽과 그 어머니 유화 부인을 조상신으로 섬겨 제사를 지냈고, 10월에는 추수 감사제인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아울러 왕과 신하들이 국동대혈에 모여 함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고구려 지배층의 혼인 풍습으로는 형사취수제와 함께 서옥제가 있었으며, 평민은 남녀 간의 자유로운 교제를 통하여 혼인했어요.
① 옥저와 동예에 대한 설명입니다.
두 나라는 국왕이 없고 각 읍락에 읍군이나 삼로라는 군장이 있어서 자기 부족을 다스렸습니다.
② 부여에 대한 설명으로, 부여는 다른 나라와 달리 수렵 사회의 전통에 따라 12월에 제천 행사가 열렸어요.
③ 신라에 대한 설명입니다.
④ 삼한에 대한 설명입니다.
삼한에는 정치적 지배자 외에 제사장인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 지역인 소도가 있었습니다.
천군은 소도에서 농경과 종교에 대한 의례를 주관하였어요.
소도는 군장의 세력이 미치지 못해 죄인이라도 이곳에 숨으면 잡아가지 못했는데, 이는 제정 분리 모습이죠.
⑤ 태학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 수도에 세운 교육 기관이었어요.
태학에서는 유교 경전과 역사서를 가르쳤으며, 지방에는 경당을 세워 청소년에게 한학과 무술을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6회 고급 2번 문제
2. 고구려의 혼인 풍속 답②
(가)~(마)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세워진 여러 나라들의 위치를 표시한 것입니다.
유사 기출문제 더 보기를 풀어보면 알겠지만, 초기 여러 국가들의 정치, 사회 모습에 대한 문제도 정말 자주 출제되는 주제입니다.
그렇지만 문제 난이도는 높지 않은 편입니다.
따라서 제시하는 기출문제들을 잘 풀어두면 이 주제로 출제되는 문제는 점수를 따는 문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시된 자료에 나타난 혼인 풍속은 고구려의 서옥제(婿屋制)입니다.
자료에 '서옥'이라는 개념이 제시되어 있으니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죠?
서옥제란, 두 집에서 혼인을 정한 뒤 신부집 뒤편에 조그만 집을 짓고(서옥), 거기서 부부가 살면서 자식을 낳아 장성하면 아내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제도였습니다.
고구려는 이 외에도 형이 죽을 경우 동생이 형수와 같이 사는 형사 취수제가 있었습니다.
이 혼인 풍속은 노동력을 중시하는 풍조와 관련 있습니다.
(가)는 부여의 위치입니다.
부여는 고구려와 같은 형이 죽은 뒤에 동생이 형수와 같이 사는 혼인 제도인 형사취수제가 있었습니다.
(나)는 고구려입니다.
고구려는 서옥제와 형사 취수제라는 혼인 풍속이 있었습니다.
(다)는 옥저입니다.
옥저는 민며느리제라는 혼인 풍속이 있었습니다.
이는 고구려와 달리 두 집이 장래에 혼인할 것을 약속하면, 신부가 될 여자가 어렸을 때에 남자집에 가서 성장한 후에
남자가 예물을 치르고 혼인을 하는, 일종의 매매혼이었습니다.
(라)는 동예의 위치입니다.
동예에서는 배우자를 다른 씨족에게서 구하는 족외혼(族外婚)을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마)는 마한으로 특별한 혼인 풍속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5회 고급 7번 문제
7. 초기 여러 나라들의 혼인 풍습 답④
지도 하단에 삼한(마한, 진한, 변한)이 나타나 있으니 지도에 표시된 나라들과 그 혼인 풍속은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세워진 초기 국가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기 국가들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유형으로 출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어느 지역에 어느 나라가 위치해 있었는 지 꼭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는 부여, (나)는 고구려, (다)는 옥저, (라)는 동예가 세워진 곳입니다.
(가) - 옥저의 민며느리제에 대한 설명입니다.
부여의 혼인 제도로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형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혼인하여 함께 사는 형사취수제(兄死娶
嫂制)가 있었습니다.
(나) - 고구려 혼인 풍습으로는 형사취수제와 서옥제(데릴사위제)가 있었습니다.
서옥제란 남자가 혼인하여 신부집 뒤꼍에 조그만 집(서옥)을 짓고 살다가 자식이 장성하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자기집(신랑집)으로 돌아가는 혼인 제도입니다.
(다) - 고구려의 서옥제(데릴사위제)에 대한 설명입니다.
옥저에서는 장래에 혼인할 것을 약속하면, 여자가 어렸을 때에 남자 집에 가서 성장한 후에 남자가 예물을 치르고
혼인을 하는, 일종의 매매혼인 민며느리제가 있었습니다.
(라) - 동예는 같은 씨족끼리 혼인하지 않는다는 족외혼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나), (라)로 묶인 ④번입니다.
14회 고급 6번 문제
6. 고구려와 옥저의 결혼 풍습과 생활상 답⑤
초기 국가들에 대한 문제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자주 출제되는 주제 중에 하나입니다.
지도를 주고 각 나라들의 정치 모습과 사회 특징을 물어보는 문제, 삼한의 정치적 특징을 묻는 문제들이 주로 출제되니 이 부분을 잘 공부해 두세요.
이 문제는 말풍선에 (가)는 서옥제, (나)는 민며느리제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으니 비교적 쉬운 1점짜리 문제네요.
(가)에 나타난 서옥제의 결혼 풍습을 가진 나라는 고구려,
(나)에 나타난 민며느리제는 옥저의 결혼 풍습이니 그 나라들의 특징을 파악하면 되겠네요.
고구려는 부여와 마찬가지로 왕 아래에 상가, 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있었으며, 각기 사자, 조의, 선인 등 관리를 거느렸습니다. 나라에 중대한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 회의를 통하여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을 노비로 삼았죠.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였을 때는 그것의 12배(1책 12법)를 배상하도록 하였어요.
결혼 풍습으로는 서옥제, 그리고 형사취수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건국 시조인 주몽(동명성왕)과 그 어머니 유화 부인을 조상신으로 섬겨 제사를 지냈고, 10월에는 추수감사제인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아울러 왕과 신하들이 국동대혈에 모여 함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옥저는 해안가를 끼고 있어 어물과 소금 등 해산물이 풍부하였고, 토지가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찍부터 고구려의 지배를 받아 소금, 어물 등을 공납으로 바쳤답니다.
옥저는 고구려와 같이 부여족의 한 갈래였으나, 풍속이 달랐고 결혼 풍습에서는 민며느리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죽으면 시체를 가매장하였다가 나중에 그 뼈를 추려서 가족 공동 무덤인 커다란 목곽에 안치하였으며(골장제), 목곽 입구에는 죽은 자의 양식으로 쌀을 담은 항아리를 매달아 놓기도 하였습니다.
① 부여에는 왕 아래에 가축의 이름을 딴 마가, 우가, 저가, 구가와 대사자, 사자 등의 관리가 있었습니다.
이들 가(加)는 저마다 따로 행정 구획인 사출도를 다스리고 있어서, 왕이 직접 통치하는 중앙과 합쳐 5부를 이루었습
니다.
② 삼한에는 정치적 지배자 외에 제사장인 천군이 있었습니다.
천군은 신성 지역인 소도에서 농경과 종교에 대한 의례를 주관하였는데, 이곳은 군장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죄인이라도 도망을 하여 이 곳에 숨으면 잡아가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존재에서 고대 신앙의 변화와 제정의 분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③ 초기 여러 나라들은 각각 제천 행사를 열었는데, 동예는 매년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지냈답니다.
④ 고구려에 대한 설명입니다.
옥저는 정치적 발달이 더뎌 왕이라 칭하는 자가 나타나지 못해 읍군, 삼로로 불리는 군장이 자기 지역을 다스렸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옥저, 동예의 사회 모습
18회 고급 4번 문제
4. 동예의 생활 모습 답⑤
초기 여러 나라들의 풍속과 생활 모습은 꼭 알아두세요.
제시된 사진은 국사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강원도 강릉시 병산동에서 발굴된 철(凸)자형 집터 유적입니다.
최근 강원도 동해시와 강릉시를 중심으로 철(凸)자 모양과 여(呂)자 모양의 집터가 계속 발굴되어 동예의 문화가 고고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강원도 북부의 동해안에 위치한 동예는 변방에 치우쳐 있어 선진 문화의 수용이 늦었으며, 일찍부터 고구려의 압력을 받아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습니다. '왕'을 칭하는 자가 나타날 정도로 성장하지 못해 각 읍락에는 읍군이나 삼로라는 군장이 있어서 자기 부족을 다스렸으나, 이들은 큰 정치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였습니다.
동예는 토지가 비옥하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농경, 어로 등 경제 생활이 윤택하였으며, 명주와 삼베를 짜는 등 방직 기술이 발달하였습니다. 특산물로는 단궁이라는 활과 과하마(果下馬, 말을 타고 과일 나무 아래를 지날 수 있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키가 작은 말을 뜻함), 반어피(바다표범 가죽) 등이 유명하였습니다.
매년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족외혼(族外婚)을 엄격하게 지켰으며, 각 부족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다른 부족의 생활권을 침범하면 책화라 하여 노비와 소, 말로 변상하게 하였습니다.
① 서옥제(婿屋制)는 고구려의 혼인 풍습입니다.
이는 혼인을 정한 뒤 신부집 뒤꼍에 조그만 집을 짓고, 거기서 자식을 낳아 장성하면 아내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돌아
가는 혼인 제도였습니다.
② 영고는 부여의 제천 행사였습니다.
제천 행사는 하늘을 숭배하고 제사하는 의식으로, 농사의 풍요와 성공적인 수렵 활동을 기원하는 행사였습니다.
영고는 수렵 사회의 전통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 때문에 추수기인 10월이 아닌 12월에 열렸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이 때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노래와 춤을 즐겼으며, 죄수를 풀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③ 소도는 삼한에만 존재하였던 것으로, 제정 분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④ 삼한, 그 중에서 변한에 대한 설명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3회 1급 2번 문제
2. 옥저가 있었던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 답④
제시된 자료는 옥저의 혼인 풍속인 민며느리제에 대한 설명입니다.
옥저는 지금의 함경남도의 해안을 접한 지역에 위치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답지를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 보죠.
① 김윤후가 군민을 이끌고 몽골을 격퇴한 지역은 경기도 용인, 충북 충주입니다.
승려였던 김윤후는 몽골의 2차 침입(1232) 때에 민병과 승군을 이끌고 처인성(경기 용인)에서 몽골 장수 살리타(撒禮
塔)의 군대를 물리쳤고, 몽골의 5차 침입(1253) 때에는 충주성에서 관민을 이끌고 몽골군을 격퇴하였습니다.
② 정안국은 발해가 거란에게 멸망한 후 그 유민들이 세운 나라로, 압록강 중하류 유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③ 강동 6주는 청천강 이북~압록강 하류 사이의 지역입니다.
④ 쌍성총관부는 철령 이북(화주), 즉 함경남도 지역 대부분이므로, 이곳은 옥저가 있었던 곳입니다.
⑤ 거문도는 전남 남해안에 위치한 섬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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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자세히 설명해주시네요 ㅠ..ㅠ
이해했습니다!!
공주라는 키워드를 못봐서 틀렸네요 ㅠㅠ 자세한 해설 감사합니다
해설 감사합니다
^^ 아자아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한에 대해서 도움이많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3회 1급 문제는 신선하군요
감사합니다
인강만 듣다가 기출문제 보면 진짜 맨붕..기출문제를 많이 풀어야겠어요!!! 화이팅!!
틀리고 다시 풀어볼때야 힌트가 눈에 들어왔네요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헷갈리는 내용을 반복해서 보니까 저절로 외워지는 것 같아요.감사합니다
철기시대국가들 정리가 되네요~~감사합니다^^
15회 고급 7번에 고구려가 형사취수제가 아니라 부여가 형사취수제 아닌가요?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알게됐습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번에 쳤을때도 이와 같은 그림이 나온거같은데 ㅋㅋㅋ 너무 감사합니다 ㅋㅋ 보고 맞췄어요 ㅋㅋ
마지막 문제가 좀 까다롭네요. 많이 배웁니다.
재미는 있는데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이 필요하네요
감사해요^^
20회 시험봤을때 당황했는데 다시보니 또 당황스러웠어요.
마한인걸 그당시엔 유사 기출문제로 알아냈는데
다시 공부하려니 어렵네요 유ㅜㅜ
삼한시대가 은근히 섞여서 나오면 기억하기가 힘든 거 같습니다. 밑에 추가적인 내용으로 조금 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