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사랑스런 스무 가지 이유
<아버지학교>를 통해 배우게 된 프로그램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내가 사랑스러운 20가지 이유’, 또는 ‘자녀가 사랑스러운 20가지 이유’를 써서 일대일 데이트 때 읽어주고 그것을 코팅해 선물하는 것이다.
항시 학생들과의 만남 가운데는 이벤트성 프로그램이 필요할 때가 많이 있다. 나는 <아버지학교>에서 ‘아내(자녀)가 사랑스러운 20가지 이유’를 하면서 이것을 우리 학생들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버지학교>에서는 아버지들이 써서 아내나 자녀에게 읽어주어야 하는 것이지만, 자녀들이 먼저 ‘아빠가 사랑스러운 20가지 이유’를 써서 읽어 드린다면 어떨까 하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내 딸 다솜이나 다빈이가 “아빠가 사랑스러운 20가지 이유”라고 읽어준다면 나는 무척 감동을 받고 눈물마저 흘릴 것 같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다. 준비하는 나나 해야 할 아이들이나, 또 자녀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아버지들의 마음 가운데 사랑이 깃들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기쁨이 임하고 그래서 더욱 힘을 얻고 격려가 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2학년 문학시간을 담당하고 있어 교과 시간을 활용하는 데도 무리가 없었다. 아이들의 속성상 단시간보다는 몇 시간에 걸쳐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학급의 교과 수업을 마친 후 약 20분 정도 시간을 활용해 깨끗한 백지를 나눠 주었다. 아이들은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워낙 글 쓰는 것을 많이 하도록 지도하는 나였기에 익숙할 만도 했다.
“얘들아, 오늘은 무척 소중한 글쓰기를 하려고 해. 보통 우리들은 엄마에게는 익숙한데 아빠하고는 거리감이 좀 있지 않니?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빠가 우리들을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하고 계신지는 다 알거야.”
아이들은 ‘아빠에게 편지 쓰라는가 보다’하는 듯한 얼굴로 내 얘기를 무심코 듣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아빠가 사랑스러운 20가지 이유”를 쓰는거야. 알겠니?“
그 순간 아이들의 얼굴은 다양하게 바뀌었다. 사랑스러운 이유라니... 그것도 아빠가... 재미있다는 표정, 난감해 하는 아이, 이게 뭔가 하는 황당한 얼굴, 그리고
“뭐예요? 이게...” 외치는 아이.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끝까지 했을 때의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다소 불만스러운 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난 5월 가정의 달에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하는 데 좋은 비디오 영상을 보여 준 적이 있다. ‘가시고기’를 에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인데 후에 소감을 쓰도록 했더니 '무척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특히 아빠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느꼈다고도 고백했다.
아이들은 열심히 쓰고 있었다. 때로는 옆의 친구 것을 힐끗힐끗 보면서 말이다.
“야, 이녀석아. 이런 것도 컨닝하냐?”
나의 농담에 ‘씩’ 한 번 웃어보이고 다시 열심히 쓰는 아이들.
그런데 두세 명의 아이가 멍하니 앉아 있다. 쓴 건지 아닌지... 그렇다. 아이들 중에는 아빠가 일찍 돌아가신 아이들도 있고, 살아계시지만 가족들과 헤어져 계신 분도 있고, 회사일로 지방이나 외국에 오래 계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나는 특히 아빠가 돌아가신 아이와 이혼이나, 별거로 함께 있지 못하는 아이를 염두에 두고 덧붙였다.
“얘들아, 경우에 따라서 아빠가 현실적으로 너희들 옆에 안 계실 수도 있지 않니? 혹시 돌아가신 분이라면 생각나는 대로 사랑스러워웠던 이유를 써 보고, 그것도 어려우면 우리 아빠가 이랬을 것이다 생각해서 써도 좋아. 하여튼 이 시간은 온전히 아빠만 생각하는 시간으로 열심히 써 보렴.”
아빠가 새 여자랑 살림을 차리고 엄마와 집을 나와 살고 있는 해선이는 난감해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몇 줄을 쓴 것 같았다. 20가지를 채우기는 참 어려웠던 듯 싶다. 아이들은 한숨을 내쉬며, 때로는 짜증 비슷한 소리도 냈지만 나는 못들은 척 인내하며 기다렸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하기로 하고 일단 걷었다. 그렇게 하기를 세 차례, 아이들은 거의 20가지를 채웠고, 아빠에 대한 소망도 몇 줄씩 적었다. 걷어와 살피던 중, 평소에 얌전하고 착실한 진영이의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랑스러운 것도... 쓸 말도 없습니다.”
이렇게 단 한 줄 밖에 써 있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진영이가 아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빠는 어떠한 분이신지 짐작할 수 있었다.
몇몇의 아이들이 진영이와 같은 반응을 보였는데, 한 여학생이 쓴 “가끔씩 아빠가 사랑스러운 이유”라는 제목으로 쓴 아래의 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첫째, 가끔씩 친절하셔서 사랑스럽습니다
둘째, 가끔씩 화를 안내셔서 사랑스럽습니다
셋째, 가끔씩 청소하셔서 사랑스럽습니다
넷째, 가끔씩 해달라는 걸 해주셔서 사랑스럽습니다
다섯째, 가끔씩 재미있어서 사랑스럽습니다
여섯째, 가끔씩 같이 놀아주셔서 사랑스럽습니다
일곱째, 가끔씩 밥 차려주셔서 사랑스럽습니다
여덟째, 가끔씩 착해서 사랑스럽습니다
아홉째, 가끔씩 제 편을 들어주셔서 사랑스럽습니다
열째, 가끔씩 모든 면이 좋을 때도 있어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빠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은 일치했다. 가족을 위해 애쓰시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일 아래에 쓰도록 한 아이들의 소망은 대체로 ‘술 담배 줄이세요’, ‘엄마에게 잘해주세요’, ‘일찍 들어오세요’ 등이었다.
‘아빠가 사랑스러운 20가지 이유’를 가지고 숙제를 냈다.
“얘들아, 쓰느라고 수고 많이 했다. 이제 본격적인 숙제가 있거든. 잘 들으렴.”
나는 상세히 설명을 했다.
“여러분들이 쓴 것을 가지고 아빠와 일대일로 자리를 해야 합니다. 다른 가족들은 모르게 말예요. 그리고 꼭 여러분들의 목소리로 읽어드려야 됩니다. 그리고 뒷면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읽어 드렸는지 쓰도록 하고 아빠의 반응을 적어와야 합니다. 특히 아빠가 직접 소감을 쓰셔도 좋구요.”
아이들은 “악!” 소리를 내며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대든다. 이럴 때는 미소 작전.
“하하하, 어려울 것 같지만 아니야. 너희들이 쓴 것을 그대로 읽어드리는 거쟎니?”
사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만큼 우리 아이들은 아빠와 쑥스럽고 어색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것을 무너뜨리려면 다소의 어색함은 감당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따를 수 밖에...
교사가 소신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 그리고 교육적 성과를 확신하고 있는 행함이라면 과정에서 오는 어려움과 아이들의 푸념 섞인 불만은 그다지 큰 장애물이 아닐 것이다.
난감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의 얼굴이 몇 주 후에 환한 웃음으로 터져나오길 기도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한 관계의 회복, 그리고 자녀로서 아빠를 몰랐던 사랑스러움을, 고백을 통해 전달할 때 오는 감동, 눈물, 치유 등을 기대했다.
실제로 나는 아이들이 쓴 것을 걷어 읽을 때에 글이 주는 감동이 있었다. 아빠의 입장에서, 내 딸이 이렇게 쓴 글이라면 모든 아빠들의 마음이 아마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학교>를 통해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자녀들의 문제는 결국 부모의 문제에 귀결되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도 특히 아빠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부모님에 관한 사항에 대해 난감해 하던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 계속 기도하며 이 프로그램을 지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아침부터 얘기꽃을 피웠다. 서로 너희 아빠는 어땠냐고 하며...
아이들이 아빠와 숙제를 한 결과물을 걷었다. 그것을 하나하나 읽으며 나는 또 울었다. 그치지 않는 눈물, 아빠의 권위와 위엄 속에 내재되어 있는 약함이 느껴졌고, 자녀들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별실 공간에 마이크 설치를 했다. 촛불로 조명을 대신 하고 잔잔한 음악을 깔았다. 아이들에게 “아빠를 사랑하는 20가지 이유”중 몇 가지를 읽고 특히 아빠에게 읽어드렸을 때의 소감을 모두 발표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은 분위기에 쉽게 빨려 들었다. 아빠 앞에서 읽었을 때보다 더 떨리는 마음으로 읽는 아이, 읽다가 또 눈물 흘리는 아이, 듣는 아이들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나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아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시간의 효과가 있는 것에 대해 감사했다.
그렇게 세 학급 150명의 아이들이 아빠를 사랑하는 이유를 읽었고, 또 소감을 발표했다. 성경공부반 아이들까지 하면 약 200명 되는 아이들과 아빠들이 참여한 감사한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들에게 표현한 아빠의 반응은 여러 가지였다.
좀 적극적인 경우, ‘나도 널 사랑한다’였고, 어색함을 느끼는 아빠는 ‘그거 숙제라서 했지?’ 하고 말을 돌리는 아빠. 그리고 아무 말없이 눈물 흘리는 아빠들도 있었다. 어떤 아빠는 아무 말없이 아들을 와락 끌어안아 당황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공통점은 아이들이 거의 만 원 이상의 용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지완이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아빠가요. 용돈이라면서 10만원을 주시던데요.”
“우와!”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아우성을 내며 말했다.
“야! 한 번 쏴, 쏴라!”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거 참, 기쁜 일인데... 어쨌든 선생님도 일부 그 용돈에 권리가 있지 않을까, 7:3하자. 내가 3 너희는 7, 어때 좋지?”
아이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하! 이런 때를 ‘썰렁......’이라고 하던가요?
아빠가 사랑스러운 20가지 이유
1. 아버지는 제가 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사랑스럽습니다
2. 제가 바른 길을 가도록 이끌어주신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3. 저와 때로는 장난치며 웃고 즐기는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4. 아침에 일어나 운동 가시는 모습을 볼 때 사랑스럽습니다
5. 집에 계실 때 담배를 안 피시는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6. 엄마와 다정스런 모습을 보이시는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7. 자신이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시는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8. 학교와 학원을 보내주시는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9. 제가 하는 일을 믿어주시는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10. 청소를 깨끗하게 하시는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11. 용돈을 주시는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12. 저의 미래를 개척하는데 도움을 주시는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13. 월드컵 경기에서 같이 열광하는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14. 자유롭게 생활하도록 해주시는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15. 술을 적게 마시는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16. 기분파이신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17. 부족한 것 없이 키워주신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18.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공경하는, 효도하는 모습의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19. 안전 운전하며 법을 잘 지키는 아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20. 아버지가 계시는 그 자체가 사랑스럽습니다
아빠께 읽어드리고
오늘은 우리 아빠의 생일이다. 생일날 이 글을 읽어드리고 싶어서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읽어드리게 되었다. 아빠와 엄마가 계신 안방으로 가 주무시고 계신 엄마를 내 방으로 가게 한 뒤, 불을 켜고 아빠와 마주 앉았다
처음에는 얼마나 부끄럽고 민망한지 읽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처음부터 내 생각으론 그냥 쓴 것을 보여드리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 또 내가 아빠와 이렇게 마주 앉아 아빠의 좋은 점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엄마가 방에서 나가면서부터 아니, 내가 들어오면서부터 어빠는 놀라는 눈치셨다. 그리고 처음부터 아주 빨리 나는 읽어내려갔다. 아빠가 조금이라도 덜 주의 깊게 들으면 쑥스러운 아빠는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한 번 더 읽어달라고 하셨다. 처음에 싫은 티를 내던 나는 아빠의 진지한 눈빛에 다시 읽게 되었다.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말이다. 글을 하나하나씩 읽을 때마다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기도 하였다. 다 읽고 생일 축하드린다는 말을 하였다. 그런데 정말 진짜로 생각도 아니, 상상도 못했다. 분명히 아빠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아주 조금도 티를 안 내려 하셨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다음에 이런 숙제가 또 있다면 조금 더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서툴고 어색한 마음에 잘하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아빠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된거다. 아마도 지금 안방에 계신 아빠와 엄마는 얘기를 하다가 잠드실거다. 꼭 아빠의 잠드신 얼굴에 웃음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또 나의 얼굴에도 말이다. 오늘 아빠의 50번째 생일날 가장 행복한 날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정말로 아빠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아버지와 요 며칠 동안 싸웠었다. 아버지는 나한테 자주 불만을 이야기 하셨고, 나 또한 아버지에게 안 좋은 감정이 쌓이는 동시에 반항심이 생겨나 반항을 했다. 그렇게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아버지께 말 한 마디 건네지 않고 눈길도 안 마주쳤다. 집안 분위기는 아버지와 나 때문에 항상 냉랭했다. 아버지한테 미안한 감정이 조금씩 생겼지만 먼저 사과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문학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 땜에 난감했다. 이것을 읽어드리려면 얼굴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숙제를 대충 해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화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든 나는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고 계신 아버지 앞으로 가서 텔레비전을 끄고 내가 쓴 것을 읽어드렸다. 처음에 아버지 반응은 그냥 무표정이셨다. 하지만 내가 20번까지 읽어드리는 동안 표정은 점점 환하게 변하셨다. 그리고 나선 아버지는 나에게 “희정이가 타 주는 커피가 먹고 싶구나”하셨다. 분명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이렇게 기분 좋게 화해할 수 있어 좋았다.
아빠의 반응
밤늦게 아버지를 불렀다. 바깥에서 우린 약간 빛이 있는 곳을 찾아가 앉았다. 이걸 처음 읽으려고 할 때 솔직히 좀 떨렸다. 쑥스럽다고나 해야 할까? 정말 이상했다. 하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자 술술 읽어져 내려갔다. 아버지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종이로 가리고 계속 읽었다. 드디어 끝.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아버지께서 웃으시면서 “정말이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힘들지?”하며 다시 내 걱정을 하셨다. 솔직히 요즘에 공부를 안했는데 이렇게 물어보셔서 죄송했다. 날 이렇게 걱정하시고 나의 이 글에 환하게 웃으시는데... 앞으로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나도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아들이 되어야겠다.
6월 18일 우리 아빠는 강원도에 계신다. 그래서 아빠께 전화로 읽어드렸다. 아빠는 오늘 8강 한 것보다 보잘 것 없는 내 글이 더 감동적이고 좋다고 하셨다. 또 이 세상 그 어떤 아빠보다도 어느 누구보다도 더 행복하고,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가진 것 같으시다며 크게 웃어주셨다. 또 멋쩍게 사랑한다 하며 말씀해 주시는 아빠께 차마 사랑한단 말은 해드리지 못했다. 그렇지만 난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우리 아빠를 가장 사랑한다.
아버지가 출장중이셔서 직접 얼굴을 보며 하지는 못하고 내가 전화를 하였다. 난 요즘 아버지와 별 이야기도 못 나눈다. 처음에 전화를 걸 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아버지께서 딱 받는 순간 무엇을 먼저 말해야 될지 몰랐다. 좀 꾸물거리다가 난 대충 읽어버렸다. 별 반응이 없으실 것 같던 아버지가 나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 딱 한 마디지만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시골 가셔서 집에 안 계셨다. 집에 돌아온 시간은 약 5시 20분. 그 시간대에는 아빠가 배달을 잠시 쉬고 잠을 청하기 위해 집에 계신다. 아래층 문을 열자 아빠는 피곤하셨는지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주무시고 계셨다.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 입고 대충 6시 넘어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숙제를 하기 위해서... 주무시는 아빠를 깨우고 불은 꺼둔 채로 숙제를 하였다. 아빠는 말없이 듣고만 게셨다. 그런 자리가 어색한 나는 속도를 내어 숙제를 마쳤고, 평소 나름대로 감수성이 풍부한 아빠는 조용히 울고 계셨다. 난 분위기를 바꿔보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빠에게, 올라가겠다는 말과 가게에 나가보라는 말을 했다. 그러고보니 우리 아빠 얼굴이 참 많이 변한 듯 싶다. 그리도 우리 아빠 얼굴은 잘 생겼다. 이번 숙제는 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난 왜 그동안 아빠한테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못 해 본 것일까.
18년 만에 아빠께 이런 걸 처음 해 본다. 아빠께 읽어드리려니 무지하게 쑥스럽고 읽을 때도 더듬더듬 읽었는데... 사실 아빠께서 내가 공부를 안 해서 혼냈는데 이걸 읽어드리고서 아빠께서는 더 이상 화도 안 내셨다. 바쁜 일이 있다고 금방 나가신 아빠 덕분에 조금 서운했었다. 그런데 저녁에 아빠가 전화를 해서 내 가슴을 찡하게 만드셨다. 고맙다고... 역시 우리 딸밖에 없다고... 우리 아빠는 철인 무쇠인 줄 알았는데... 아빠께 너무너무 감사하다. 앞으로 이런 걸 자주 해서 아빠와 대화를 하도록 하고 먹을 것도 사 달라고 조르기도 해야겠다.
사랑하는 아들, 아빠는 항시 철부지로 알고 엄마 없는 그늘진 모습이 보일까봐... 혹시 사고뭉치로 중요한 고교시절을 망칠까... 걱정이 많았는데 너의 이토록 아빠에 대한 사랑을 알고 나니 너를 염려한 아빠 걱정을 싹 씻고 싶다
고맙다 내 사랑하는 아들... 장하다. 너의 그 대견한 아빠 사랑에 눈물까지 고인다
먼저 20가지나 되는 사연을 다 기억하고 느끼고 또 생각하는 것에 부모로서 고마웠고 투명한 부자관계를 느꼈다. 그리고 아빠한테 실망한 20가지를 경은이가 다 쓰지 못하게 방해공작(?)을 펴야겠다.
아빠한테 이걸 들려줬을 때 아빠의 모습이 궁금했다.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아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다 읽고 아빠는 나한테 이런 모습이 언제 있었나 하시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집앞에 있는 고기 집에서 맛난 거 먹었다.
바라는 점 : 건강을 위해 술을 줄이셨으면 좋겠다
이 숙제는 아빠랑 단 둘이 있을 때 해야 하는 숙제인데 그런 때가 많이 없었다. 엄마랑 셋이 있을 때, 온 가족이 다 있을 때, 아빠가 늦게 들어오거나 내가 늦게 들어왔으니까, 근데 어제 학교에서 끝나자마자 집에 갔을 때 아빠가 계셨다. 처음엔 용기가 안 났는데 머쓱하게 다가가... 할말이 있다 하고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아빠는 처음엔 당황하시다가 나중엔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셨다.
자랑스런 내 딸 소진에게
참으로 나이에 비해 너무도 성숙한 너의 생각, 아빠가 감사하고 싶다. 앞으로 더더욱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면서 너희들 옆에서 자랑스런 아빠가 될 것을 약속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매일매일 가까이 나아가는 우리 가족이 되자꾸나(아빠로부터)
가정에 사랑스러움이 넘쳐나길
아이들의 엄마가 서운해 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왜 내건 없냐고... 하며 말이다. 그러나 엄마보다는 아빠와의 대화가 단절된 경우가 많아 아빠에게 먼저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아빠의 친필로 답장을 받아온 아이들이 있는데 그 자체만으로 그 가정은 회복의 물꼬가 트인 것이라 믿는다.
사랑하는 마음은 있지만 사랑하는 방법은 잘 알지 못했던 아빠라는 모습. 이제 그 사랑의 방법을 자녀들이 먼저 제시한 꼴이 되었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엄마에 이어 아빠, 엄마의 “자녀가 사랑스러운 20가지 이유” 등을 통한 회신이다.
아이들이 쓴 20가지 이유 중 무엇이 아빠를 감동시켰을까 생각했다. 그것은 “~ 때문에 아빠를 사랑합니다” 중 ‘
~때문에’가 아니라, ‘사랑합니다’의 반복에 그 핵심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가정에 아빠와 자녀로 있으며 얼마나 “사랑한다”라는 표현을 해 왔는가.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사랑합니다”, “사랑스럽습니다”라는 고백을 20번 이상 하게 되는 자녀, 듣게 되는 아빠,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