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느티나무는 죄가 없다 - 오봉수

[오봉수(오완열)]

느티나무는 죄가 없다

                                      오봉수

 

수령이 대략 오백 년쯤 되었다는 느티나무 밑 정자.

경남 전설군 k 마을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수박과 참외를 먹고 있다.

이장인 석동철은 그 가운데에 끼지도 못하고 멀찍이 서서 부러운 듯이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장은 최근 마을에 들어온 기부금을 횡령해 주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는데, 형사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횡령한 돈은 모두 토해내고 망신을 당했다.

주민들 중에서는 경찰서에 고소를 하자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지만, 전형적인 친, 인척 관계로 형성된 마을이라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석동철은 죄지은 사람처럼 마을에서 조용히 살았다.

도마 위에서 해동되는 고등어처럼 축 처지고 무력한 삶이었다.

며칠 후에는 이장 자리도 내놓아야 하는 처지다.

술에 취한 동철은 어깨가 축 늘어진 채로 집으로 들어오니, 누렁이만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짖어댔다.

동철은 만사가 귀찮아서 누렁이의 엉덩이를 걷어찼더니 녀석은 번개에 맞은 것처럼 대문 밖으로 도망을 갔다.

텔레비전에는 충청도의 어느 마을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지역 방송에 나오면서 마을도 유명해지고, 관광객도 많이 온다는 자랑을 한다.

동철은 한참 동안 텔레비전을 보다가 로또 2등에 당첨된 것처럼 무릎을 쳤다.

귀신도 깜빡 속을 기발한 생각이 났다.

곧이어 서울에서 방송국에 일하는 외아들인 민호에게 전화를 하였다.

민호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휴대폰 알림 창에 아버지의 이름이 나타나자 미간을 찌푸리면서 전화를 받았다.

"아들아! 아버지다. 이번 주말에 집으로 오너라. 급하게 의논할 일이 있다."

"이번 주말에 중요한 약속이 있습니다. 아버지!"

"잔말 말고 무조건 내려와라"

석동철은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민호는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주말에 시골집으로 갔다.

동철은 민호를 데리고서 느티나무 정자로 갔다.

동철은 아들에게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이 느티나무는 약 5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니가 방송국에 근무하니까 우리 마을 느티나무를 좀 소개를 해서 우리 마을을 전국적으로 홍보를 했으면 한다.

너도 알다시피 아버지가 마을에서 공금횡령 사건 때문에 죄인처럼 살고 있다.

이번 기회에 느티나무를 홍보해서 마을에 큰 도움을 주고 다시 일어서고 싶구나."

"그냥 평범하고 늙은 느티나무인데 무슨 홍보를 한다고 그러십니까?"

"전설이나 미담은 꾸며내기에 달려있다. 아무도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조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불임부부가 느티나무에서 기도를 하고 임신을 하였다든지, 몇 년째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다가 느티나무에 기도를 하고 나서 공무원 밥을 먹게 되었다는 식으로 하면 된다."

"아버지!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사기이고 범죄입니다."

"잔소리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임신을 했다거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람은 내가 적당히 알아서 구해오마."

민호는 아버지의 말이 너무나 황당했지만 대충 알았다고 하면서 서울로 올라갔다.

석동철은 재차 아들인 민호에게 전화를 하여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유산을 한 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였다.

민호는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아버지의 뜻대로 하겠다고 하였다.

솔직히 민호는 투자했던 주식의 폭락으로 항상 돈에 쪼들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동철은 먼 친척 중에서 돈을 주고 느티나무에서 기도를 하고 임신과 공무원이 되었다고 연기를 할 사람을 구해왔다.

석민호는 방송국 PD 들과 함께 고향을 방문하였다.

동철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느티나무 정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방송국에서는 느티나무를 촬영하였고, 가짜 연기를 하는 사람들을 인터뷰도 하였다.

동철은 팔짱을 끼고 마을 사람들에게 으스대면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촬영이 끝난 후 석동철은 방송국 직원들에게 멸치 1박스와 봉투 1개를 몰래 건네주었다.

얼마 후 지역 방송에서 k 마을 느티나무가 신통력이 있고, 간절한 기도를 잘 들어준다면서 소개가 되었다.

방송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였다.

군청 민원실과 k 마을 회관에는 느티나무마을의 주소를 묻는 전화가 수시로 걸려왔다.

갑자기 조용하던 시골마을은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으며,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몰려와서 느티나무에 기도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석동철이 마을을 위해서 큰일을 하였다고 칭찬을 하였으며, 동철은 이장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었다.

군수도 전설군 k 마을을 전국적으로 알린 석동철을 직접 찾아와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면서 안내판을 설치하고 마을 진입도로를 확장해 주었다.

며칠 후 석동철은 군수의 집무실을 홀로 방문하였다.

동철은 군수에게 말했다.

"군수님! 저희 마을에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와서 좋기는 한데, 관광객들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 등의 문제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지원책이 필요합니다."

"이장님,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나요?"

"느티나무 근처에 작은 매점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관광객들에게 커피나 음료수 등을 팔아서 생기는 수익금으로 마을 청소 비용 등으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군수는 웃으면서 동철에게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제가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석동철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매점 판매 수익금의 대부분은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었으며, 마을 청소는 부인인 명옥자에게 맡겼다.

관광객이 드문드문 오는 평일날 오후.

모자를 꾹 눌러쓴 술에 만취한 남성 1명이 동철의 매점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동철에게 대충 인사를 했다.

"형님, 접니다. 장사는 잘 되나요."

동철은 독사눈으로 남자를 째려보았다.

알고 보니 술 취한 남자는 느티나무를 방송할 때 기도를 하고 공무원이 되었다는 남자였다.

동철은 거칠게 말했다.

"자네가 여기에는 왜 왔나! 그때 돈은 넉넉하게 주었는데."

"형님, 제가 보기에는 이 매점이 보기에는 허름해 보여도 알짜배기 아닙니까, 저도 k 마을을 유명하게 만드는데 크게 도움을 주었으니 저에게도 판매 수익금 중에서 50퍼센트를 주어야 되지 않나요."

석동철은 너무나 기가 차서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남자는 동철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오겠습니다. 그때 돈을 받아 가겠습니다. 저를 속일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남자는 매점 밖으로 나가서 주차해 둔 흰색 포터 차량을 타고 시내 쪽으로 달려갔다.

화가 난 동철은 경찰에 " 흰색 포터 운전자가 술을 먹었다."면서 신고를 하였다.

약 30분 후에 동철은 경찰관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흰색 포터 운전자를 음주 운전으로 단속했습니다. 신고제보를 감사드립니다."

군수는 전설군의 전국적인 홍보를 위해서 K 마을의 느티나무를 경남의 문화재로 등록하였다.

느티나무 문화재 등록 축하 행사 날.

군수와 석이장 및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 주위에 둘러앉아서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신나게 웃고 있었다.

군수가 석동철에게 공로패를 전달하려고 할 때, 비서실장이 급하게 달려왔다.

비서실장은 군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군수의 얼굴은 갑자기 붉으락 푸르락 하였다.

비서실장은 군수에게 신문을 건넸다.

신문을 읽은 후 군수는 석동철을 째려보았다.

신문을 동철의 얼굴에 던지고 공로패를 땅바닥에 내팽개친 후 나가버렸다.

동철은 땅에 떨어진 신문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지방 일간지의 톱기사 내용이다.

"전설군 K 마을의 느티나무 이야기는 가짜다. 마을 이장 석00이 돈을 주고 친척들을 매수하고, 방송국에 근무하는 아들을 이용해서 가짜 이야기를 만들었다."

석동철은 이곳에 있다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아 죽을 것이라 생각되어 재빨리 집안으로 피신했다.

느티나무 뒤에서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조용히 웃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에 동철에게 돈을 요구하였다.

동철은 대문을 굳게 잠그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당 안에다 개도 풀어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석동철의 집으로 몰려가서 돌과 계란을 던졌다.

군수는 느티나무의 미담에 관해서 사실관계를 확실히 조사를 하지 못한 점에 대하여 사과를 하였으며, 석동철 이장을 사기죄로 고발하겠다고 하였다.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동철은 느티나무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젠 다시는 고향땅을 밟기가 어렵겠구나"

동철은 옷을 대충 가방에 넣고 홀로 마을을 떠났다.

방송국 사장은 석민호를 급히 호출했다.

사장은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거칠게 민호에게 건넸다.

신문을 본 석민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잠시 후 석민호는 방송국에서 해임 통보를 받았다.

석민호는 조용히 자신의 짐을 챙기고 고개를 푹 수그린 채 회사를 떠났다.

[開東 이시찬]

재밌네요.
다는 아니겠지만 시골 동네 무슨 일 생겼다 하면 꼭 이장이 문제더군요.

[오봉수(오완열)]

감사드립니다.

[玄光/윤성식]

인간의 탐욕이 항상 문제입니다.
그 탐욕이 아들의 인생까지도 망쳤군요.
가독성 있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있어요.
잘 읽었습니다.

[오봉수(오완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