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46 서양철학14 명상록 4
[인문학 고전콘서트] 28부-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4강-실전보살도의 보고(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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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깨어있는 정신으로 돌아가서 그대 자신을 회복하라.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면, 당신을 괴롭혔던 것들이 단지 꿈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이 꿈을 바라보듯이, 깨어있는 동안 당신을 괴롭혔던 것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6-31)]
잠에서 깨어나서 당신을 괴롭혔던 것들이 단지 꿈에 불과했다. 그 무서운 욕망들이요 그거 안 되면 큰일 날 것 같고요 당장 그 욕을 안 하면요 내가 막 죽을 것 같았던 그 분노들이 탁 깨어나서 바라보시면 별거 아니더라 하는 이런 관점이 생기시겠죠. 이거 불교로 치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이런 겁니다. 지금 똑같아요, 원리가. 마음이 똑같으니까 딱 깨치신 거예요. “내가 괴로운 건 다 꿈이야”라고. 꿈을 바라보듯이 깨어있는 동안 당신을 괴롭혔던 것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거 불교에서 법공이라고 하는 경제입니다. “오온이 본래 공하구나” 하고 바라볼 수 있는 정도의 철학자의 시선이에요. 일체 만상이 본래 꿈이요. 꿈속의 일이고 나는 깨어서 로고스를 구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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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이분 엄청난 경지입니다, 서양철학자지만. 서양철학자가 아래라는 얘기가 아니라 이 지금 불교적인 얘기를 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서양철학자인데 똑같다는 겁니다. 22번.
[22. 미래의 일들로 당신의 마음을 괴롭히지 마라. 만약 부득이하게 그것들과 직면하게 되더라도, 당신이 현재의 일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바로 그 이성이 해결할 것이다. (7-8)]
미래의 일들로 당신의 마음을 괴롭히지 마라. 만약 부득이하게 그것들과 직면하게 되더라도 당신이 현재의 일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바로 그것, 이성입니다. 이성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다. 미래 걱정하지 마라. 지금 이게 뭔 말인지 아십니까? 불교식으로 말하면 미래 걱정하지 마시고 지금 이 순간에 육바라밀을 온전히 구현하고 있으신지만 보시라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보시바라밀 남의 이익도 고려하고 계십니까? 지계바라밀 남한테 피해 안 주고 계십니까? 인욕바라밀 감수해야 될 걸 지금 감수하고 계십니까? 받아들여야 할 거. 몸 아프다. 상황이 안 좋다. 뭐가 어떻다 다 지금 감수해야, 이미 일어난 일, 받아들여야 할 일들 그냥 흔쾌히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오케이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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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뭔가 묵은 짐이 확 풀려요.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돼?” 하시면 무거운데요. 오케이 하면 가벼워집니다. 정진바라밀 또 이 양심을 구현하려고 노력하고 계십니까? 선정바라밀 평정심 유지하고 계시나요? 지혜바라밀 지금 생각들은 여러분 하시는 생각 자명하십니까? 남이 물어봐도 딱 바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명쾌한 생각들입니까? 지금 이렇게 이성 이게 이성을 쓰는 겁니다. 서양철학에서는 로고스를 쓰시는 거예요. 로고스가 반야바라밀이에요. 로고스를 써가지고요 옳고 그름을 명확히 하고 계시면요 그렇게 살아가신다면 미래의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 그 미래에 또 로고스가 알아서 해결하겠죠. 최선책을 그때그때 계속 내겠죠. 매순간 양심대로만 살고 계시다면 앞으로 닥칠 미래를 걱정하실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욕망에서는 미래 걱정이 돼요. “미래에 혹시 또 손해 볼 일 없으려나” 하고 미래를 걱정하시는데 욕망은, 양심은 지금 이 순간의 양심을 온전히 구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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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정확히 양심을 설명해 주시는 겁니다. 23번도 멋진 말입니다.
[23. 누가 무슨 행동을 하고 무슨 말을 하든지, 나는 반드시 선善해야 한다. 금이나 에메랄드, 혹은 자주색 옷이 “누가 무슨 행동을 하고 무슨 말을 하건, 나는 반드시 에메랄드이며, 나의 색깔을 유지한다!”라고 늘 말하고 있는 것처럼. (7-15)]
누가 무슨 행동을 하고 무슨 말 하든지 남들은 다 악을 한다고 치죠. 나는 반드시 선해야 한다. 같은 말이죠. 아까 나왔던 말이랑. 비유가 아주 멋져요. 금이나 에메랄드 혹은 자주색 옷이 누가 무슨 행동을 하고 무슨 말을 하건 나는 반드시 에메랄드이며 나의 색깔을 유지한다라고 늘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해되세요? 보석이나 어떤, 어떤 특정 색깔의 옷이 늘 그 색깔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 주변에 흔들리지 마시라는 겁니다. 여러분 양심 덩어리여야 되고 여러분이 양심 덩어리라는 측면에서는요 주변이 아무리 약하게 돌아가도 흔들리시면 안 된다는 끝까지 “나는 에메랄드야” 하고 버티셔야 됩니다. “난 다이아야.” 이해되세요? 이런 게 이 군자의 각오 아닙니까? 세상이 다 소인배가 횡행해도 “나는 군자야”라고 버티시라는 겁니다. 색깔 잃어버리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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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자기가 결정하는 거지 외부에 의해서 결정하는 인생이 아닌 주체적인 인생이죠. 말들이 너무 주옥같죠, 다. 그래서 24번이요.
[24. 언제 어디서나, 당신이 처한 현재의 조건을 경건히 받아들이고, (인욕바라밀) 당신의 주위 사람들에게 정의롭게 행동하며, (지계바라밀) 검토를 거치지 않고는 어떠한 것들도 침입하지 못하도록 당신의 현재 생각들을 잘 닦아놓는 것(반야바라밀)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7-54)]
언제 어디서나 당신이 처한 현재의 조건을 경건히 받아들이고. 인욕바라밀입니다. 제가 불교랑 비교하게 해놨는데요. 똑같아요 발상이. 자기가 처한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여요. 있는 그대로. 인욕바라밀. 당신의 주위 사람들에게 정의롭게 행동하며 지계바라밀, 계율을 지켜주는 룰을 지켜주는 겁니다. 피해를 안 주는 겁니다. 검토를 거치지 않고는 어떤 것들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당신의 현재 생각들을 잘 닦아놓는 것 반야바라밀. 자명하지 않은 건요 절대로 여러분 머릿속에서 발언권을 가지면 안 돼요. 이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건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다. 여러분 지금 당장 하실 수 있어요. 육바라밀. 그런데요.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왜 남이 악하다고 내가 나도 같이 악해야겠다는 말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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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거 하실 수 있는데. 주변 상황이 어떻든 간에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육바라밀을 다 하는 겁니다. 예. 그 상황에서 남한테 죄를 짓지 않고 그 상황에서 자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데 왜 나는 환경 때문에 악을 하게 됐다든가 환경 때문에 선을 못하게 했다든가 이런 말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겁니다. 이런 게 보살도죠, 사실. 그래서 실전 보살도의 팁들이 무궁무진합니다, 명상록에. 근데 재밌는 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은요 진짜 지천에 깔려 있어요. 가보시면요 휴게실에 가면 휴게실에도 꽂혀있고. 그 뭐죠? 고속버스 휴게실에도 팔고요. 싼 책 비싼 책 온갖 종류 문고판 뭐 해서 사실 우리나라 지천에 널려 있는데 거기에 실전 보살도의 팁들이 다 담겨 있다고 하면 이거 진짜 그 보물을 옆에 두고도 몰랐던 그런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다른 철학 책보다 이 책을 택한 이유가요 내용이 너무 좋으면서도 우리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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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누구나 한 번 집에 가면 아마 있으실 거예요. 대부분의 가정에는 가보면요아마 있을 거예요, 이 책이. 무슨 책에 딸려왔건 아마 있을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이 집에서 한번 쉽게 볼 수 있는 책으로 보살도 익히시라고. 서양철학도 알고요 보살도도 익히고 양심적인 삶의 팁도 얻고 너무 좋지 않습니까? 그래서 명상록을 택했습니다. 25번이요.
[25. 당신이 오늘 죽었다고 생각하라.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당신에게 허락된 남은 생애는 본성을 따르며 살아가라.(7-56)]
당신이 오늘 죽었다고 생각하라. 여러분 오늘 돌아가신 겁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라. 지금 방금 끝나신 거예요. 당신에게 허락된 남은 생애는 어떻게 사실래요? 본성대로 좀 사십시오. 지금부터라도 좀 로고스 따르십시오 하는 걸 이렇게 지금 협박을 하면서 지금 시키는데요. 지금 여러분 돌아가신 겁니다. 욕망만 따르던 삶은 이제 끝난 거고요. 이제 지금 다시 태어나셨다고 치고 앞으로 삶은 좀 덤으로 산다고 치고요 로고스 좀 한번 해보시자는 겁니다. 이제부터라도 로고스 좀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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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번.
[26. 내면을 들여다보라. 내면에 ‘선善의 샘’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파면 팔수록 더 많은 샘물이 솟구칠 것이다. (7-59)]
내면을 들여다보라. 내면에 선의 샘이 있다. 온갖 공덕이 들어있죠, 선의 샘이라는 거는요. 당신이 파면 팔수록 더 많은 샘물이 솟구칠 것이다. 이런 건 정말 불교를 설명할 때도 정말 좋은 지금 설명들이에요. 불교에서는요 이게 지금 불성이죠. 우리 에고 작은 자아 안에 불성이 있잖아요. 이 불성을 뭐라고 합니까? 불성 안에는 무량공덕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 공덕이 무슨 말이냐 하면요 무한한 그 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 이분은 뭐라고 하나요, 표현을? “선의 샘이 있다.” 파면 팔수록 여러분이 마음을 내면 낼수록 무한한 선의 샘이 솟구쳐 나온다. 이걸 불교에서는 무량공덕(無量功德)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거를 어려운 말로 만덕구족(萬德具足) 그래요. 온갖 온갖 좋은 좋은 품성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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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출 구(具)자에 만족스럽게 다 들어있다. 우리 로고스 안에는 온갖 선이 다 들어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팔려고 노력만 하면요 무한한 선한 능력들이 나온다. 여기서 뭐가 나옵니까? 불교에서는 특히 여러 무량공덕 중에 대표적으로 꼽는 게 뭡니까? 육바라밀이죠.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공덕이 있으니까 여러분이 욕망대로 해결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몰라 괜찮아 하고 욕망을 내려놓고 로고스에 참나에 관심만 가져주시면 보시바라밀이 튀어나와서 보시의 공덕이 튀어나와가지고 베풀게 만들어주고, 여러분이 유혹에 시달릴 때도 욕망 입장에서는 욕망을 몰라 하고 참나한테 힘을 실어주시면 욕망을 이겨내는 지계바라밀이 튀어나오고요. 상황을 못 받아들이겠을 때 도저히 이성적으로 옳은 줄 알겠는데 감성적으로 못 받아들일 때 참나한테 도움을 요청하면 받아들이는 인욕의 힘을 주고요. 도저히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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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양심적으로 못 살겠다고 싶을 때 참 나한테 힘을 실어주시면 정진바라밀이 튀어나오고, 마음이 산란할 때는 선정바라밀, 뭐가 옳은지 모를 때는 반야바라밀이 튀어나와서 옳고 그름을 명확히 갈라줍니다. 이거 실생활에서 체험하시나요? 저도 지금 이걸로 버팁니다. 이렇게 하면 나는 지금 어디로 가야 되나? 이런 상황이 이렇게 되면 나는 이제 앞길이 캄캄하다 이럴 때요 절대 거기서 캄캄하다 해서 끝나시면 욕망 차원에서 끝납니다. 영혼 차원에서 캄캄하다 하는 그걸 그대로 안으로 던지고 몰라 괜찮아 참나 상태로 계셔 보세요. 안에서 선의 샘이 솟구쳐요. “이렇게 해보지 그래” 하는 생각이 나옵니다. 긍정적인 힘이 튀어나와요. 이 자리는요 부정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어요. 긍정 덩어리예요. 이 자리는요 긍정도 있고 부정도 있지만 이 자리에는 부정이 없어요. 부족한 게 없거든요. 겁나는 것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에 접속만 하시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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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긍정의 힘이 튀어나와요. 해보는 방향으로 뭔가 답이 나와요. “이렇게 이렇게 해서 한번 해결해봐.” “이렇게 한번 해보자.” 무한한 아이디어가 안에서 솟구쳐 나옵니다. 이게 무한한 아이디어만 나오는 게 아니라 능력이 나와요. 못할 것 같았는데 할 수 있겠다는 힘이 나오고 안 될 걸 되게 하는 또 능력이 나오고 이런 것들을 기적을 체험하셔야만 아까도 말씀드린 게 이게 기적 아닙니까. 집에 갔더니 가족이 저한테 싫은 소리를 했는데 평소 같았으면 내 욕망의 차원에서는 같이 맞받아쳐야 되는데 못 참을 것 같았는데 억지로 참으면 병나니까요. “몰라. 괜찮아”만 해서 참 나한테 힘을 실어줬더니 평정심이 오면서, 이게 능력이 이미 생긴 겁니다. 평정심을 갖추게 됐어요. 능력이 하나 생겼어요, 없던. 그러고 보니까 상대방이 좀 이해도 돼요. 왜 그런지? 반야가 나왔어요. 그다음에 입에서 험한 말이 안 나오고 좀 많이 돌려서 나왔어요. 이런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하게 됐어요. 이런 능력들이 튀어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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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니까 상황이 다르게 변해버리죠. 저쪽은 이제 한 방 크게 싸울 준비하고 크게 때렸는데 저쪽에서 “아 미안하다” 해버리니까 다음 주먹을 날리기가 되게 애매해진 거죠. 그러면 서로 타협하고 끝나는 거죠. 이게 맞아 돌아가야 싸움이 나는데 한쪽이 힘을 빼버리니까 싸움이 못 나는 거죠. 근데 힘을 빼도 재수 없게 빼면 싸움이 더 날 수가 있는데 되게 날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힘을 빼버리니까 이쪽에서 애매해진 거죠. 그럼 “나도 미안해. 내가 너무 또 내 생각만 했네” 하고 끝나기가 쉽겠죠. 아무래도 이게요 이성으로는 아무리 그게 가능 아무리 이게 시뮬레이션을 해도 막상 그 상황 딱 다치면 나올까요? 욕망으로는 안 나올 확률이 커요. 내가 분하다 하는 그게 나오기가 쉬운데 깨어 계신 분은요 참나의 힘을 끌어다 쓰기 때문에 가능해요. 이게 말로 하면 참 이상한 얘기 같은데 써보시면 늘 나오시니까. 이분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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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도 선의 샘이 있는데 팔수록 쇳물이 더 솟구친다는 게 얼마나 이게 설명을 잘해준 건지는요 여러분이 실제 해보시면 느끼실 겁니다.
[27. 당신은 3단논법, 재물, 명성, 향락, 어디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과연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것을 행하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그것을 행할 수 있는가? 자신의 감정과 행동의 원천이 되는 ‘원칙들’을 지니고 있으면 된다. 어떤 원칙들인가? 그것은 ‘선과 악’에 관련된 것들이다. 자신을 정의, 절제, 용기, 자유로 인도하지 않는 것에는 선한 것이 없으며, 앞에서 말한 것에 위배되는 것에는 악한 것이 없다는 신념이다. (8-1)]
당신은 삼단논법이나 논리학이죠. 재물 명성 향락 어디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할 것이다. 즉 단순한 지적인 작업에서는 행복이 안 온다 이겁니다. 단순한 추론, 머리 좋아지는 그런 삼단논법 이거 안 된다 이거나 재물 명성 향락 이건 다 외적인 거라고 보는 겁니다. 행복은 거기에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거기서 행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과연 행복은 어디 있는 걸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것을 행하는 것에 있다. 본성이 요구하는 게 뭘까요? 로고스요. 본성 차원입니다. 에고의 본성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본성이 요구하는 거, 로고스. 이걸 행할 때만 행복해진다. 여러분 지금 몇 개 쭉 보시니까 서양철학 아시지 않겠어요? 논리가요 몇 개의 논리가 지금 계속 돌아요. 이것만 아시면 돼요.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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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말장난이면 여러분이 그냥 “아 서양철학 내가 다 알았어” 하고 끝내실 텐데 그게 아니라 구현해 보셔야 되기 때문에 그 몇 마디 안 되는 말이 어마어마한 무궁무진한 맛이 있다는 거는 이제 여러분의 이제 삶에서 여러분이 소화하면서 맛보실 거고. 핵심 기둥들이 간단해요. 로고스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요 실제로 그래서 저는요 이렇게 말장난하는 서양철학들 아주 싫어합니다. 그런 건요 하나 주면 한 둘은 빼가요. 여러분한테 뭐 하나 아이디어 하나 자랑할 만한 지식 하나를 주면요 여러분의 마음에서 또 한 둘은 또 흔들어놔요. 선악이 계속 헷갈립니다. 요거 참신한데, 어디다 얘기하면 사람들이 막 너 대단하다고 얘기할 그런 멘트인데, 이 말을 하고 나면 내가 나의 삶에 또 원칙 하나가 흔들리고, 막 이렇게 계속 꼬이게 돼 있어요. 그런데 이런 말들은 친구들한테 했다가는 정말 욕 안 먹으면 다행인 말들인데 삶의 원칙에서는요 여러분한테는 엄청나게 확고한 신념을 줄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요 실제 남들도 좋아해요.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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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다면 여러분 여러분 주위에 이렇게 사는 분들 보면요. 여러분들도 왠지 의지가 되지 않겠어요? 다 사기 쳐도 쟤는 나한테 사기 안 칠 것 같다. 이런 마음을 주는 친구. 중요합니다. 실제는 그래서 이런 사람이 되자 하는 게 이제 서양철학도 동양철학과 똑같다 하는 겁니다. 과연 행복은 어디 있나 인간 본성이 요구하는 걸 행하는 거에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그것을 행할 수 있나? “인간은 그럼 어떻게 그 본성을 행할 수 있는데?”라고 한다면요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즉 영혼의 움직임의 원천이 되는 원칙들을 지니고 있으면 된다. 원칙은 로고스에서만 오는 겁니다. 원칙이 옳은지 그른지는요 로고스만 알지 영혼은 몰라요.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남한테 하지 마라. 이게 사실은 원칙입니다. 인간이면 다 동의할 원칙이에요. 내가 당해서 싫은 일 남한테 하지 마라. 근데 영혼의 입장에서는요. 좀 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있어요. “당장 나한테 큰돈이 떨어진다면 좀 하면 안 되나?” 근데 저 내면에서는 그게 옳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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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또 뭔가가 있죠. 그게 로고스예요. 로고스에 힘을 실어주시면 못 하는 거고요. 욕심에다 힘을 실어주시면 이걸 알면서도 위배를 해요. 위배하고 나서도 찜찜하죠. 이런 게 인간의 삶입니다. 저 안에서요 정확히 양심의 원칙들을 알고 있는 그 의식이 있어요. 그게 로고스라는 겁니다. 이 로고스가 갖고 있는 원칙들이 우리가 지금 여기서 말하는 원칙들이죠. 어떤 원칙들인가? 그건 선과 악에 관련돼 있다. 내가 당해서 싫은 걸 남한테 하지 말고요 내가 받고 싶은 걸 남한테 해주는 건 선이죠. 이 반대로 하면 악이죠. 자신을 이런 것들은 뭐 어떤 덕목들이냐면요? 자신을 정의롭게 하는 거, 절제 있게 하는 거, 용기롭게 하는 거, 자유롭게 인도하는 거, 이거는 선이고 이러지 않은 거는 선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에 위배되는 것에는 악한 것이 없다는 신념이다. 뭐죠, 이 말이? 자신을 정의 절제 용기 자유로 인도하지 않는 것에는 선한 것이 없다. 아무튼 이것들이 선한 거라는 겁니다. 선에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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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니 절제니 용기니 자유니 하는 아까 불교식으로 말하면 그런 공덕들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로고스를 따르면 자유가 나타나고 용기가요 없던 용기가 생겨요. 이게 참 신기한데 보세요. 욕망한테는요 용기가 꼭 나온다고 보장 못합니다. 욕망은 더 이익이 되는 거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성향인데 욕망이요 이렇게 양심에, 양심과 동조될 때 양심과 하나로 볼 때는요 이 영혼이 로고스에 집중해주면요 사실은 영혼 전체까지 다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를 따르는 그 마음이 됐기 때문에 영혼은 그때 질이 달라요. 로고스의 구현자로서의 영혼이 되기 때문에 이때의 영혼은요 로고스랑 같이 움직입니다. 영혼이 로고스랑 독자적으로 움직일 때는 문제거리인데 같이 움직일 때는 영혼만큼 든든한 게 없죠. 영혼이 모든 걸 구현해 주니까요. 로고스가 하자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다 영혼이 하는 거거든요. 이해되시죠? 이렇게 이렇게 영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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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만 따른다면요 그 안에서 정의니 절제니 용기니 자유니 하는 게요 막 샘솟습니다. 그래서 욕망으로는 용기가 안 날 용기인데 전쟁터에서 독립운동가들도 그러지 않을까요? 자기 욕망으로만 본다면요 총 맞을까 겁나서 움직이겠습니까? 그런데 내 가족 내 나라를 지켜야 된다라는 그 로고스의 작용 때문에 잠깐 겁이 없어지는 겁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저는 이런 생각 많이 해봐요. “총알이 날아오는데 넌 맞을 수 있냐?” 저 못 맞을 것 같아요, 겁나서. 그런데 만약에요 제가 사랑하는 가족한테 총알이 날아가면 저도 모르게 아마 몸이 갈 것 같아요, 그쪽으로. 어떻게든 막아보겠다고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저를 다르게 움직이게 할까요? 이게 양심과 동조된 영혼인지 양심을 위배한 영혼인지에 따라서 저는 이게 다르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거를 좀 이해해 보시면 여러분도 남을 위해서라면 없던 용기도 생길 수가 있어요. 나와 어떤 내 가족, 더 큰 덩어리를 위해서라면요 잠깐 정신을 잃을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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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물에 빠진 사람을 뛰어들어서 막 구하고 나서요 본인 정신에 구하고 나서 놀랠 수도 있어요. “죽을 뻔했는데 내가 왜 그랬지.” 저도 그런 비슷한 경험도 있어서.. 깜짝 놀랄 수 있어요. “내가 왜 그랬지? 나도 죽을 수도 있었는데.” 미처 생각을 못한 거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렇죠. 여러분들 일상에서 한 번씩은 다 있으실 겁니다, 그 순간 판단 못하고. 길에 강아지가 하나 차에 치일 것 같아서 얼른 구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가 치일 수도 있었잖아!” 그 순간에는 어떤 생명을 구해야 된다는 생각만 있었던 거죠. 이렇게 알 수 없는 힘들이 안에서 나와요. 제가 아주 구체적인 힌트를 이제 예를 들어드리는 겁니다. 여러분 멀리 생각하지 마시라고요. 빨리 해서 끝내죠, 뭐. 이때 쉬고 하면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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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번.
[28. 알렉산더, 카이사르(시저), 폼페이우스를 디오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소크라테스와 비교해보라. 그들(철학자들)은 사물과, 사물의 본질(이데아, 형상), 사물의 질료에 정통하였으며, 그들을 지배하는 원칙들이 동일하였다. 그러나 앞의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사물들에 마음을 빼았겼으며, 얼마나 많은 사물들의 노예였던가? (8-3)]
알렉산더 카이사르 시저죠. 카이사르. 폼페이우스를 디오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자들입니다. 소크라테스랑 비교해보라. 황제들을요 철학자들이랑 비교해보라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들 철학자들은 사물과 사물의 본질, 이데아나 로고스 진리죠. 그리고 사물의 질료, 사물은 지수화풍공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서양, 이 스토아학파지 않습니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거기서는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졌다고 봐요.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사물의 질료. 그래서 이 질료는 무상해요. 그런데 로고스는 영원해요. 그 질료를 가지고 우주를 계속해서 구성해가는 그 신적인 질서는 영원해요. 그래서 이런 사물의 본질과 사물의 질료에 정통하였으며 그들이 지배하는 원칙들이 동일하였다. 그들을 지배하는 원칙은 선은하고 악은 하지 마라죠. 그러나 앞에 사람들 황제들을 한번 보라. 얼마나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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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에 마음이 빼앗겼으며. 즉 철학자들은 사물을 정확히 냉정하게 보고 알맞게 로고스에 알맞게 썼는데 이 황제들은 사물에 부림을 당했다는 거죠. 뭐 하나 더, 권력을 하나 더 얻으려고 영토를 넓히려고 그 욕망에 휘둘린 측면을 말하는 겁니다. 위대한 측면도 있지만 아무튼 철학자랑 비교해서 사물들에 얼마나 마음을 빼앗겼으며 얼마나 많은 사물들의 노예였던가! 이러면서 이제 철학자, 로고스를 지키는 사람이 황제보다 더 위대하다는 얘기를 한 겁니다. 황제도 우리보다 위대하니까 그 자리에 갔겠죠. 다만 철학자들은 더 위대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지금 얘기를 한 겁니다. 29번이요.
[29.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敬, 깨어있음의 확충) 왜냐하면 모든 것은 ‘우주의 본성’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 그다음에는 당신이 하는 일의 본성을 잘 살펴보되, (智, 시비지심의 확충)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당신의 임무라는 것을 기억하고, (仁, 측은지심의 확충)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것을 지체 없이 행하며, (義, 수오지심의 확충) 말을 할 때는 가장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것을 말하되, 선의를 가지고 겸손하고 진실하게 말해야 한다. (禮, 사양지심의 확충) (8-5)]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 제가 이번에는요 인의예지에다 한번 갖다 붙여봤어요. 유교에다가. 아까 불교에다 갖다 붙였죠.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글을 보면요 유교 같을 때도 있고 불교 같을 때도 있어서요 갖다 붙이기가 좋아요. 제가 진짜 갖다 붙인 건지 아닌지 여러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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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하시고 보세요. 무엇보다 중요한 거는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거다. 선정바라밀이죠. 그런데 유교에서는 뭡니까? 경(敬) 깨어 있어야 깨어 있어야 모든 일을 이제 올바로 판단할 수가 있죠. 왜냐하면 모든 것은 우주의 본성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에는 당신이 하는 일의 본성을 잘 살펴보되, 시비지심의 확충,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라는 겁니다. 지혜. 여러분 안에 유교적으로 말하면 이게 뭡니까? 유교에서는요 갖고 있는 공덕이 인 의 예 지 신 또 깨어있음, 이런 거예요. 깨어있음이 밖으로 터져 나옵니다. 참나에 양심에 집중해 주시면 깨어있음이 밖으로 나오고요. 또 시비지심이 밖으로 나와서 옳고 그름을 판정하게 해줘요. 그렇게 해서 아닌 건 아니라고 하고 맞는 건 맞다고 합니다. 그다음에요.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당신의 임무라는 걸 기억하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측은지심을 확충하게 되고요. 그다음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거를 지체 없이 행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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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수오지심이 확충되며 말을 할 때는 가장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것을 말하되, 남에게 옳은 말을 하되 선의를 가지고 겸손하고 진실하게 말해야 된다. 즉 남의 마음 거슬리지 않게 표현해야 된다. 예절이죠. 인의예지의 약간 또 차이는 있지만 유사하게 지금 말하는 측면이 있죠. 이런 것도 한번 비교해 보시라고 해놓은 거예요. 서양철학과 유교를, 깨어 있으면서, 그렇죠, 깨어 있으면서 본성을 잘 이해하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잘 이해한 다음에 당신이 선한 사람이 돼야 되고, 남에게 착한 사람이 돼야 되고, 동시에 또 인간이 본성 요구하는 옳다고 여기는 거는 지체 없이 옳은 건 실천하고 옳지 않은 거는 배제해야 되면서 동시에 그런 걸 실천하는 과정에서 겸손하게 해야 된다. 이게 여러분 양심잠 우리 학당에서 양심잠(良心箴), 사단 분석할 때 체크해야 할 항목들이랑 유사하죠. 그래서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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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간의 의식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요 서로 다른 정보에서 시작해도 비슷한 결론이 나더라. 이런 거 한번 잘 살펴보시라고 넣었습니다. 30번이요.
[30. 당신이 누구를 만나든지 즉시 자신에게 물어보라. “이 사람은 선과 악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까?” 왜냐하면 쾌락과 고통, 그리고 각각의 원인, 명예와 굴욕, 삶과 죽음에 대하여 그가 그런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그런 행동을 하더라도, 조금도 놀랍거나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8-14)]
당신이 누구를 만나든지 즉시 자신에게 물어보라. 이 사람은 선과 악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까?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여러분 사단 노트 쓰실 때 있죠. 남의 입장 분석하실 때 있죠. 상대방은 지금 무슨 심정일까? 이거 이해 안 되면요 양심 분석 안 돼요. 상대방이 무슨 마음인지 모르는데요 상대방한테 피해를 줬는지 이득을 줬는지도 계산이 안 됩니다. 상대방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이해를 못하실 거 아닙니까? 역지사지가 됐다고 할 수가 없죠. 양심 분석의 핵심은 역지사지예요. 내가 상대방인양 상대방 마음을 읽어내는 건데 지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설명을 아주 잘해준 겁니다. 상대방은 뭘 선이라고 여기고 뭘 악이라고 여기는지만 알아내면 돼요. 상대방은 즉 뭘 원하고 뭘 두려워하는지 알아내시라는 겁니다. 그러면요 상대방 행동이 이해가 돼요. 상대방이 갑자기 나한테 와서 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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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해를 해 보세요. “상대방은 어떤 선악관을 가지고 있지?”라고 보면요. 상대방은 자신이 어떻게 받들어지는 걸 선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무시당하는 걸 악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그래서 이 사람은 어디 가서도 받들어지길 원하는구나. 그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구나. 즉 상대방 마음, 에고가 돌아가는 프로그램을 읽어내라는 얘기입니다. 선악관을 찾아내라는 건요 상대방이 뭘 원하고 뭘 두려워하는지만 읽어내면요 상대방 에고가 돌아가는 방식을 대충 알 수가 있어요.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줘야 상대방이 원망하지 않을지, 어떻게 해줘야 좋아할지도 아시겠죠. 그런데 꼭 그렇게 해줄지는 안 해줄지는 양심 분석을 더 해보셔야 알고요. 일단 이 정도는 분석해놓고 얘기를 해야 된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한테 잘해주는 것 자체가 여러 사람한테 피해가 되면 안 해야 될 때도 있고요. 이왕이면 좀 맞춰서 그 사람 기분을 풀어줘야 할 때도 있고요. 판단은 상황마다 다릅니다. 이게 이걸로 인해서 여러 사람이 피해를 볼지 이득을 볼지까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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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을 해야 되니까. 다만 일단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뭘 두려워하는지는 읽어내셔야 돼요. 그러면 그 사람이 수긍이 되죠, 행동이. 그래서 앞으로 뭔 짓을 할지 예상까지 돼요. 그래서 직장에 가신 분들은요 직장에 사이코패스들이 많지 않습니까? 사이코패스들의 선악관을 빨리 읽어내셔야 돼요. 그래야 여러분도 방어운전을 할 수가 있어요. 방어운전을 하려면요 저 저게 어떤 방식으로 지금 저 차가 움직이는지를 알아야 돼요. 그래야 예측을 해야 나도 피하는데 그렇죠 저 차는 좀 온전히 좀 이상한데 어떤 방식으로 이상한지 빨리 알아내야지 거기에 맞게 피하죠. 잘못 피했다가는 오히려 뛰어드는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뭘 두려워하는지 빨리 읽어내시는 게 관건입니다. 그래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 사람은 선악, 선악에 대해 어떤 견해가 있지?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왜냐하면 쾌락과 고통, 원하는 거랑 두려워하는 거, 그리고 각각의 원인, 명예와 굴욕, 삶과 죽음에 대해 그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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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런 행동을 하더라도 조금도 놀랍거나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즉 상대방 행동이 이제 더 이상 신비롭지 않아요. 다 읽혀요. 이 경지로 가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된다. 즉 그러고 나면요 상대방이 용서도 돼요. 이해도 되고요 기본적인 용서도 된다는 겁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할 수밖에 없지. 삶의 원리가 그거다 보니까 “저렇게 행동 안 할 수가 없지”라고 오히려 이제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긴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좀 내가 막아줘야겠다 하면요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안 된다라고 해야 될 때는 안 된다라고 또 해주는 게 또 정의지만 일단 인의 차원에서 상대방 마음을 이해하는 힘이 이 정도는 돼야 돼요. 제가 가끔씩 자명한 분노, 상대방한테 정의에 기반해서는 분노도 해야 되고 처벌도 해야 된다고 제가 강력히 주장합니다만 그 전제는요 절대 이쪽이 감정에 휘둘려서 그걸 하면 안 돼요. 그건 제 욕망으로 하는 거기 때문에 안 돼요. 정말 냉정하고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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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중에 정말 저 사람을 나와 둘로 보지 않고 용서하는 중에 일어나야 돼요. 그래서 저는 용서만이 답이라고 보지 않지만 용서는 기본적으로 깔려야 된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둘이 아닌 입장에서 저 사람이 나라고 해도 나한테 이렇게 안 하면 안 될 것이다 하는 그 정도 거를 남한테 해주라는 겁니다. 내가 상대방이라 하더라도 이건 수긍 안 할 도리가 없다. 누가 나한테 이렇게 해주는 걸 나도 원했겠다 싶으면 그걸 해주세요. 그럼 상대방도 상대방 에고는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저 깊은 곳에서는 만족을 할 겁니다. 즉 범인들 잡히고 나면요 형사님들한테 감사하다 그래요. 이제 좀 편히 쉬겠다고. 죄책감 때문에 시달리다가 잡히니까 오히려 이제 좀 내가 뭔가 빚을 갚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사람 마음에 이런 부분까지도 읽어내셔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단순히 “용서했다. 가라.” 이렇게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하지만 용서는 기본 전제여야 돼요. 용서를 하지 않고 만약에 내가 뭔가 처벌한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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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한테 분노한다든가 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내 분에 못 이겨서 일어나고 있을 확률이 커요. 그래서 냉정한, 냉정한 게 필요한데 단순히 냉정한 게 아니라 이성적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뜨거워야죠. 감성적으로 상대방을 나처럼 여긴 뒤에, 이렇게 양심을 써서 상대방을 이해한 뒤에 상대방한테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시는 거 이게 인간의 길이라고 봅니다. 31번이요.
[31.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인류의 이익을 위해 이것을 하고 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나는 이 일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일어나는 모든 일의 근원이 되는 ‘신’과 ‘만물의 원인’과 관련시킨다.(8-23)]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인류의 이익을 위해 이것을 하고 있다. 자문자답입니다. 난 뭘 하고 있나? 난 인류의 이익을 위해서 인류에게 도움 되는 이걸 하고 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나는 이 일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일어나는 모든 일의 근원이 되는 신과 만물의 원인과 관련시킨다. 말이 어려운데 자 보세요. 자문자답을 하는 겁니다. 이 얘기는 뭐냐면요 이런 일만 하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하시는 일을요 나는 무엇을 하는가? 할 때 나는 인류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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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 하실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안 그런 일은 아예 하시지 마라는 거예요, 이 말이. “너 뭐 해?” “나 인류의 이익을 위해서 지금 밥 짓고 있어” 말하실 수 있어야 돼요. 뭐 가족도 인류 아닌가요? 딱 나도 인류고. 하지만 사고가 늘 인류를 위해서 해야 된다는 사고가 확고해야지 로고스가 좋아해요. 로고스를 만족시켜주는 삶은요 단순히 나 하나 살자고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주를 살리려고라고 마음을 먹으셔야 돼요, 모든 일에. 그러면요 매사에 분명히 인류를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보이실 거고 그런 부분을 찾아서 그런 부분에 마음을 내셔야 이 말이 바로 나오겠죠. “너 뭐 해?” “나 인류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어.” 인류의 해가 되는 일은 안 하셔야겠죠, 당연히.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서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을 빨리 찾아내셔서 그 부분을 명확히 인지하고 행동하셔야 할 거고요. 두 번째 질문은 뭔지 아십니까? “지금 너에게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러면 나는 그 일을 로고스랑 관련시킨다는 얘기는요 로고스, “로고스가 원하는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해되시죠? 사물의 원인과 내가 하는 일을 관련시킬 수 있어야 된다는 거는 로고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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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니까 이 일을 하는 거야. 그리고 이 일이 로고스에 어떻게 도움이 돼? 로고스를 따르는 것에 이 일이 어떻게 도움이 돼? 이걸 분명히 알고 있어야 된다는 거. “너 뭔 일 하는 거야?” “인류에 도움 되는 일 하고 있어.” “뭔 일 일어나는 거야?” “로고스대로 하다 보니 이렇게 지금 일을 하게 됐어.” 이거를 마음속으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시라. 매 순간 그렇게 살아가시라. 이런 뜻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32번.
[32. “나에게는 어떠한 악이나 욕망, 혼란도 내 영혼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능력이 있으며, 모든 사물을 볼 때 나는 그들의 본성이 무엇인지 알고 그 가치에 알맞게 사용한다.” 자주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망상을 씻어내라. 자연이 부여한 당신의 능력을 상기하라. (8-29)]
나에게는 어떤 악이나 욕망, 혼란도 내 영혼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능력이 있으며 모든 사물을 볼 때 나는 그들의 본성이 무엇인지 알고 그 가치에 알맞게 사용한다. 나는 어떤 욕망도 몰라 해버릴 수 있는 그 힘이 있고요. 이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죠. 불교로 치면 선정바라밀이고요. 그다음 반야바라밀입니다. “나는 모든 사물을 볼 때 그들의 본성이 뭔지 알고 어디다 써야 될 물건인지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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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에 맞게 활용할 뿐.”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럼 여기에는 사실은 육바라밀이 다 들어가 있죠. 선정과 지혜바라밀이면서 동시에 이걸 잘 활용한다까지 얘기가 나가면 이 선에 맞게 잘 쓰고 있다. 자 자주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망상을 씻어내라. 자연이 부여한 당신의 능력을 상기하라. 여러분 욕망만 덜어내시면요 여러분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있어요. 꺼내서 쓰시면 돼요.
[33. 인간들은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니 그들을 가르치거나 참아라.(8-59)]
인간들은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이게 유학이나 대승불교나 서양철학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또 기독교에서 예수님이요 한 마리 어린 양을 못 구해도 내가 가슴 아프다 하는 그 정신 있죠. 신적인 것만 좋아하다 보면 인간을 되게 하찮게 여길 수가 있어요. 신을 믿지 않는 인간은 다 버려도 좋다. 이런 식의 발상을 안 해요. 대승적인 사람들은. 인간을 참아내고 인간을 가르치고 하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거든요. 이 일을 못 감당하니까 쉽게 인간을 버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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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대승적인 철학에서 이 말이 반드시 나옵니다. 홍익인간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어떻게 표현됐냐면 인간은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서로가 도와야 되는 존재다. 따라서 그들을 가르쳐주거나 아니면 참아줘라. 가르치거나 못 가르치겠으면 일단 참아라도 줘라. 이 이해되시죠. 이런 정신으로 이 홍익인간 정신을 실천하는 겁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참 참아주거나 아니면 가르칠 수 있으면 가르쳐서 바로잡아 놓거나. 바로잡거나 아니면 참아주거나. 이걸로 인간을 우리가 대해야죠. 뭐. 서로 서로가 서로를 이롭게 하려면 이 수밖에 없지 않냐 이겁니다. 34번.
[34. 정의롭지 못한 것은 불경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의 본성’은 이성적인 동물들이 각자 역량에 따라 서로 해치지 않고 서로 돕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의 뜻’을 위반하는 자는, 명백히 신을 거스르는 죄를 짓는 것이 된다. (9-1)]
정의롭지 못한 건 불경이다. 여러분이요 남에게 해를 끼치는 건요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남한테 해버리는 건요 불경, 신한테 죄를 짓는 거다 이겁니다. 불경죄다. 왜냐하면 우주의 본성, 즉 신은 이성적인 동물들이 각자의 역량에 따라 서로 해치지 않고 서로 돕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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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서로에게 해를 끼치는 거는 신의 뜻을 입어야 한 거고, 신의 뜻을 위반한 자는 명백히 신을 거스르는 죄, 즉 불경죄를 저지른 것이다. 지금 저기 제가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게 저기 명동이나 이런 데 가면은 이거 나팔 부시는 분들 있죠. 주변 사람들한테 그 고성으로 아주 폐를 끼치는 분들입니다. 자기 종교 믿으라고요 남 괴롭히는 이런 게 저는 불경죄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짜증 나지 않으세요 거기 지나갈 때? 우리 신 안 믿으면 다 지옥 간다라고 말하는 그런 분들. 그런 분들이 저는 불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 내 이웃을 내 자기 몸처럼 생각한다면요 자기도 남이 자기 신 믿으라고 하면 좋지 않을 거예요. 그거랑 황금률을 지킨다면, 예수님 말씀이 황금률인데, 황금률 지킨다면 남한테 그렇게 못하겠죠. 오로지 자기만 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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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 생각이 제일 많고 내가 제일 귀하고. 그래서 남한테 함부로 피해 주면서도 자기가 불경죄를 저질렀다는 것도 모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건요 상대방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마라” 이게 황금률입니다. 이게 예수님이 이웃을 니 몸처럼 사랑해라 하는 그 뜻인데 이렇게 사랑을 실천한다면요 절대 기독교가요 개독 소리 안 듣습니다. 개독 소리를 듣는 건요 정의를 어겼을 때만 들어요. 어느 종교도 그래요. 정의를 어긴 사람들은 그 말 듣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니까요. 피해를 안 주면서 사랑으로요 다른 사람을 홍익인간 이롭게 한다면요 왜 그 종교를 미워할까요? 그 종교가 잘 되길 바래주지. 그래서 이 간단한 원리인데 “왜 남들은 우리를 자꾸 욕하지?” 이제 그런 분들은 또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를 질투하나?” 그래요. 문제 있는 분들은요 하나가 문제 있으면 다 문제가 있어서 “야 날 우릴 질투하나 보다. 우리가 우리만 천국 가니까 질투하나 보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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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말이 안 통하는데요. 아무튼 그런 일도 잘 기회가 꼭 한번 뭐라고 해주고 싶었는데 이런 얘기가 나오고. 짜증이 나 죽겠어요, 거기 지나가면. 35번.
[35. 남에게 죄를 짓는 사람은 결국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또한 남에게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자신을 악하게 만드니, 결국 자신에게 불의를 행하는 것이다. (9-4)]
남에게 죄를.. 도대체 예수님까지 미워지려 그래요, 그분 때문에. 제가 예수님을 아주 존경하는 분인데 그분들 때문에 “아 예수님 도대체 뭐라고 하신 거야?”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예요. 이런 것도 아마 편집해 주시겠죠. 남에게 죄를 짓는 사람은 결국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또한 남에게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자신을 악하게 만드니. 이 말 재밌죠. 남에게 죄를 짓는 사람은요 사실은 자기 양심을 더럽히기 때문에 자기한테 먼저 죄를 지어야 돼요. 사람이 남한테 죄를 지으려면 반드시 먼저 나한테 죄를 먼저 짓게 돼 있습니다. 이게 재밌죠. 이게 리얼이에요. 여러분이요 남의 물건을 훔친다고 치죠. 먼저 여러분은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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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한테 죄를 짓게 돼 있어요. 무지랑 아집으로 여러분 양심을 더럽힌 뒤에야만 여러분은 남한테 해를 끼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사실은 빚도 이중으로 갚아야 돼요. 남한테 훔친 물건은 그냥 다시 줄 수도 있지만 그걸로 인해 상한 내 양심은요 내가 지혜와 자비를 얻을 때만 고쳐져요. 치유돼요. 이중의 죄를 짓습니다. 로고스한테 갚아야 할 빚이 있고 남한테 갚아야 할 빚이 있어요. 그래서 이걸 이걸 잘못된 도덕들은요 이거 이런 게 있어요. 남의 물건 훔쳐도요 다시 그냥 돈만 갖다 주면요 더 죄를 안 묻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그건 옳은 방식은 아닙니다. 근원적으로 이 사람 속은 지금 썩어 있는데 치료가 안 되고 있어요. 도둑질한 그 마음, 그 심보가 지금 살아있는데요 돈만 갚아주면 되나요? 걸렸다고. 이거는 좀 욕망 위주로 굴러가는 사회에서는 이런 식으로 처벌이 될지 모르지만 이 건강한 사회라면요 이 사람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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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에게 갚아야 할 빚도 갚을 수 있게 도와줘야 됩니다. 본인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이런 양심의 정화 작업도 꼭 필요합니다. 양심 욕망의 정화죠. 사실은 양심을 이 욕망 전체에 드러내는 이런 작업도 꼭 필요합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그래서 업장을, 불교식으로 업장을 갚았다. 이게 쉬운 얘기가 아닙니다. 남한테 해코지한 그것도 갚아야 되지만 여러분 양심 더럽힌 여러분이 더 여러분의 양심도 다시 복원시켜줘야 돼요. 그래서 명상도 해야 되고 이렇게 반야바라밀 육바라밀을 이성을 총동원해서 살아갈 때 그 업장은 조금씩 지워져요.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면서 남한테 해를 끼친 거는 그 청구서가 날아오는 대로 또 족족 갚아야 됩니다. 그것도 이중으로 빚을 갚아야 돼요. 이해되시죠? 그래서 36번. 현재의... 얘기를 다 안 끝냈나요? 남에게 불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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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하는 사람 자신을 악하게 만드니 결국 자신에게 불의를 행하는 것이다. 자기를 악하게 만든다는 것 자체가요 자기한테 죄를 먼저 짓는 거예요. 이런 발상이 다 똑같습니다. 36번.
[36. ‘현재의 의견’이 이성을 토대로 하고 있고, ‘현재의 행동’이 사회적 선을 지향하고 있으며, ‘현재의 마음’이 일어나는 모든 일에 만족하고 있다면, 이것으로 충분하다. (깨어있는가? 자명한가?) (9-6)]
현재의 의견이 이성을 토대로 하고 있고. 지금 여러분 의견 생각이요 이성적인가요? 자명하십니까? 제가 학당에서 늘 묻죠. 여러분의 지금 행동이 사회적 선을 지향하고 계십니까? 공익인간을 지향하십니까? 남한테 해를 끼치지 않으십니까? 그러고요 여러분 현재의 마음이요 지금 하시는 일, 여러분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만족하고 계십니까? 이게 사도바울이 멋지게 표현했죠. 범사에 감사하라. 이게 하나님 마음이거든요. 나한테 일어난 모든 일에 감사하는 거. 이게 인욕바라밀입니다. 그대로 수용하는 그 마음이십니까? 지금 여러분한테 일어나는 일 다 만족해하십니까? 지금 몸이 좀 불편하다. 상황이 어쩌다 돈이 없다 뭐가 없다 일단 만족하세요. 그러면 긍정적인 힘이 안에서 나와요.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나오고요. 이거에 만족을 못 하시면 해결하지 못할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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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거리만 계속 마음에서 나타납니다. 감사해버리시면요 해결할 힘이 나와요. 신기하죠, 원리가. 그래서 현재 하시는 행동이 사회적 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여러분의 지금 지성이 자명하시다면 지금 반야바라밀 또 뭡니까? 지계바라밀, 지금 간단하게 대충만 살펴도 인욕바라밀을 총동원하신 거 아닙니까. 그러면 이것으로 충분하다. 학당에서 지금 말씀드리는 깨어 있으십니까? 자명하십니까 생각은? 정신을 차리고 계십니까? 이 두 마디면 또 이게 다 포괄되지만 이렇게 다 통하게 돼 있습니다.
[37. 가능하면 남의 행동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은 왜 이런 행동을 할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습관을 가져라. 그러나 우선 자신에게서부터 시작하여 스스로를 점검해보라. (10-37)]
가능하면 남의 행동을 볼 때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할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습관을 가져라. 그러나 우선 자신에게부터 스스로 물어보라. 이게 우리 양심 사단 분석의 첫 번째죠. 인 인 분석할 때 내가 원하고 두려워하는 거 먼저 이해를 해야 되고요. 그다음 상대방이 원하고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를 해야 됩니다. 두 사람의 입장을 여러분이 제3자가 돼서 공정히 봐줘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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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타협책이 나와요. 내 마음을 모르고 있어도 안 돼요. 솔직히 내 마음은 지금 돈 잃는 게 아쉬워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건데 이거를 모르는 척 양심적인 척 포장해버리면요 나의 에고와 상대방 에고가 다 만족하는 그런 답을 못 내리겠죠. “솔직히 너 뭐가 두려워?” “나 좀 솔직히 돈이 아까워.” “상대방 마음은 어떨까?” “솔직히 상대방도 이럴 것 같아” 그러면 둘 다 이렇게 하는 게 최선이지 않겠니? 이게 자기 입에서 다 나올 수가 있는데 자기가 자기 마음을 속여버리는 일도 있어요. 나는 정당한데, 나는 막 돈만 생기면 다 나라에다 바치려고 했는데 막 이런 식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하고 계시면 올바른 타협책이 안 나오죠. 솔직한 자기 얘기를 해야 돼요. “너 뭐가 두려워? 솔직히 나 나라에 돈 좋은 일 하고 싶은데 노후가 걱정돼.” 그럼 이걸 솔직히 해야 뭐 얘기가 나오죠. “그러면 너 얼마는 더 갖고 얼마만 나라에 내자.” “그러면 딱 좋을 것 같아.” 자기도 지금 자기 마음을 몰라요. 자기가 자기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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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돼요. 그리고 상대방도 왜 그런지 알아야 돼요. 두 마음을 알고 나면요 상식적으로 여러분이 일반 상식만 있어도 타협책이 보여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네.” 이 말이 툭 나와요. 그대로 하시면 돼요. 이해되십니까? 이게 양심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이게 마침 좋은 얘기가 있어서 제가 설명 드렸는데 그다음에요. 이것도 또 유교랑 잘 맞아 돌아가는 말이 나오네요.
[38. 이웃에 대한 사랑, 진실, 겸손, 그리고 자신을 존중하는 것, 이것이 ‘이성적 영혼’의 특징이며, 동시에 ‘법칙’의 특징이다. 따라서 ‘올바른 이성’과 ‘정의의 원칙’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11-1)]
이웃에 대한 사랑 뭡니까? 이웃에 대한 사랑 인(仁)이죠. 또 진실. 지혜죠. 진리. 그다음 겸손 예절이죠. 그다음 자신을 존중하는 것, 자기를 정의롭게 만드는 것. 인의예지가 다 나오죠. 이것이 바로 이성적 영혼의 특징이다. 양심의 특징이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딱 이것만 얘기해요. 사랑, 진실, 겸손 ,자신의 자신을 정의롭게 만드는 거. 이것이 이성적 영혼의 특징이며 동시의 법칙의 특징이다. 우주 법칙은 이렇다. 그러면 우리나라 성리학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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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지 않습니까? 성리학의 핵심이 뭔지 아세요? 인의예지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 사실은 알고 보면 우주적인 천리다라는 게 성리학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사실은 우주 법칙이다라는 걸 주장하는 겁니다. 이게 성리학이에요. 인의예지 하고 싶은 우리의 본성이요 양심이 갖고 있는 본성이 우주 돌아가는 공식이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인의예지만 잘하면 지금 4대문에 새겨놨죠. 북쪽에 이제 홍지문(弘智門) 따로 빼서 새겨놨죠, 문에다가. 이 인의예지만 잘하면 우주에서 우주 법칙 그대로 사는 우주적인 존재가 된다는 게 성리학의 핵심이에요. 지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똑같은 말을 하는 겁니다. 이런 이 덕목들은 이성적 영혼의 특징인데 동시에 우주적인 법칙의 특징이다. 따라서 올바른 이성과 정의의 원칙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올바른 이성대로 살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우주 법칙 그대로 정의롭게 살 수 있다. 이 얘기입니다. 그래서 성리학적인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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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끝낼게요. 39번.
[39. 만약 당신이 지배적 능력으로부터, 감각에서 받은 인상, 다가올 사물이나 과거의 사물을 분리시키고, 자신을 엠페도클레스가 말한 완전히 둥글며 그 안에서 즐겁게 쉬는 구체처럼 만들어야 한다. 또한 당신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면, 죽는 날까지 마음의 동요 없이 고귀하게 살 수 있을 것이며, 당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다이몬’(daemon, 신성)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12-3)]
만약 당신이 지배적인 능력으로부터 감각에서 받은 인상, 다가올 사물이나 과거의 사물을 분리시키고, 자신을 지배적인 능력으로부터. 이게 로고스입니다. 지배적인 능력은 무조건 로고스예요. 로고스에서 영혼을 분리시키는 겁니다, 욕망을. 로고스에서 오감에서 받은 인상 보고 듣고 한 그 잔상들이요 다가올 사물이나 과거의 사물들에 대한 또 걱정이나 이런 인상들을 다 내려놓고 나면요. 자신을 엠페도클레스가 말한. 이 어려운 이 번역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는데요. 완전히 둥글며 그 안에서 즐겁게 쉬는 구체(球體)처럼 만들어야 된다. 뭔 말일까요? 이거 풀이하는 분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엠페도클레스가 말한 완전히 둥글며 그 안에서 즐겁게 쉬는 구체, 엠페도클레스는요 이 동그라미를요 한 점 흠결이 없죠. 완벽하면서 가장 편안한 상태라고 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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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圓)을 이렇게 설명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 로고스가 영혼의 때에 전혀 물들지 않으면서 온전히 자기 스스로 찌그러지지 않은 채로 온전한 구체로 존재한다면 이런 뜻이에요. 여러분이 몰라 하신 상태예요. 욕망을 다 몰라해버리고 영혼이 조금도 찌그러지지 않은 채로 그대로 온전히 드러나 있는, 극도로 참나 그대로인 상태. 명상의 극치입니다, 저게 사실은. 불교로 치면 4선정 멸진정 이런 상태예요. 참나만 온전히 조금의 어떤 에고의 때도 묻지 않은 채로 온전하게 있는 그 상태. 그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이거는 명상 안 해보신 분은 이거 풀 수 없는 구절입니다. 또한 당신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면. 이렇게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고 현실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죽는 날까지 마음의 동요 없이 고귀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로고스대로만 산다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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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다이몬 신성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신성, 자신 안에 있는 신성을 구현하는 방법이다. 이게 설명이 좋습니다. 이게 선문답에서 있어요, 이게 선문답에도. 이게 조금만 찌그러져도 안 되죠. 이 참나를 선문답에서 이거랑 유사한 맛이 나는 게 있어요. 호떡. 참나를 호떡이라고 설명할 때가 있어요. 호떡 터지면 안 되죠. 호떡이 구멍 나면 이게 잼 나오죠. 참나는, “불성은 뭡니까?” 그럴 때 “호떡.” 이럴 때가 있어요. “호떡 터졌네 방금.” 이런 뜻이에요. 부처를 궁금해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찌그러진 거예요. 이해되세요? 부처가 뭘까요? 나는 부처가 아닙니다. 부처가 되고 싶습니다. 부처는 뭘까요라고 묻는 행위가 호떡 터진 소리라는 겁니다. 호떡. 이겁니다. 호떡 터졌다. 빨리 그거 봉해라. 그 말 싹 다시 몰라 해버리면 호떡에 흠이 하나도 없어요. 이해되세요? 요상한 화두죠. 호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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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 터지는 소리 하지 마라. 호떡 터졌네. 그래서 이거 지금 뭡니까? 이게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도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호떡 터지게 하지 마라. 온전하게 한마디 말도 때도 묻지 않은 그 순수한 상태를 내면에 보존하면서 그 상태 그걸 기본으로 해서 움직일 때는 로고스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살면 그 삶은 다이몬, 신성 그대로, 성령 그대로의 삶이다. 이게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성령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이게 이제 명상록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익히 영상록 보셨더라도 제가 풀이해드린 명상록 보면 전혀 다른 책 같죠. 같은 책인데. 그래서 이 내용들을 이렇게 좋은 내용들이 많이 있으니까 제가 소개 안 해드린 부분도 많아요. 읽어보시고. 예전에 가톨릭의 “준주성범(遵主聖範)”도요. 보물들이에요. 실전 보살도의 팁들이 쌓여 있고요. 가톨릭 혹시 있으신 분들은 준주성범을 많이 보시고 뭐 또 철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명상록을 많이 보시면 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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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는 말 못 하실 걸요. 제 강의 한번 들으시고 보시면 더 잘 보이실 겁니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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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녹취)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46 서양철학14 명상록 4 (홍익학당) | 작성자 수호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