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4일(월) 가정예배순서
인도자(가장 혹은 가족 중 1명)
1. 신앙고백 - 사도신경
2. 찬송 – 325장
3. 기도 - 맡은이
4. 성경봉독 – 마태복음 8:5-13(신약 11면)
5. 말씀 – 가족사진 (설교문을 함께 읽는다.)
6. 합심기도 -코로나19 회복을 위하여/교회의 영적부흥을 위하여
7. 찬송 – 330장
8. 주기도문 - 다같이
가족사진
어느 가정이든지 걸어 둘만한 가족사진 한 장 정도는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더욱이 5월이 되면 화목한 가족사진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있습니다. 만약 오늘 말씀에 나오는 백부장의 가족이 모여 가족사진을 찍었다면 어떤 분위기였을까요? 우리의 가족과는 달리 식구들도 부하들도 하인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 중 중풍으로 누워있는 하인은 아마도 사진 찍을 엄두도 못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누워있는 하인을 들것에 뉘어서라도 능히 같이 했을 것입니다. 추즉한대로입니다. 백부장은 예수께 나아가 말하기를 주여 내 하인이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이렇게 간구하지 않았습니까? 아마도 중풍인 하인은 누워있는 몰골이 안 좋은 자신의 사진을 보면서도 행복했을 것입니다. 나에게도 기억나는 사진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운동회때의 사진입니다. 배를 움켜쥐고 얼굴은 찡그린 상태이면서도 오른손에는 사이다 한 병을 꽉 쥐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억으로는 먼 친척 형이 사진관을 하고 있어 배가 몹시 아파도 기꺼이 찍어야 한다면서 나를 달래려고 사이다를 사준 것입니다. 웃음만 나옵니다. 그러나 ‘네가 아파도 우리는 한 가족이니까’라고 한마디 들었다면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오래 간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 때문에 가족 화목의 중요성을 늘 갖게 되면서 기억되고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 와서 ‘주여’라고 부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자신의 주인이라는 고백을 한 것이고 그리고 내 하인이 중풍으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고 간구하는 것은 내 하인도 예수님의 보호자가 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고 하십니다. 백부장이 인정이 많아서 그랬을까요? 누가복음 7장에는 유대인의 장로가 예수께 백부장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회당을 지었기에 백부장의 간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백부장은 “예수님이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다”고 하면서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말합니다. 백부장은 믿음으로 구한 것입니다. 백부장이 하인의 중풍을 말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백부장의 하인도 비록 중풍이지만 내 가족이기에, 내 가족의 주되신 예수님께서 치료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임마누엘의 믿음, 이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아니던가요? 예수님은 이런 백부장을 보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중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칭찬하십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 백부장의 가족사진을 다시 찍었다면 그 하인은 일어서서 환한 기쁨으로 뿐만아니라 모든 가족이 이 일로 기쁨을 갖고 끈끈한 가족의 힘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도 빠짐 없이 함께하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을 것입니다. 내가 먼저 우리 가족을 돌아봅시다. 혼자서 속상해하는 사람은 없는지 그리고 우리도 백부장처럼 이런 믿음을 갖고 간구합시다. 가족들이 감동할 것입니다. 복음으로 화목한 5월을 이룹시다.
오늘의 기도
우리 가정이 주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서로를 진정 돌아보는 일에 앞장서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0년 5월 5일(화) 가정예배순서
인도자(가장 혹은 가족 중 1명)
1. 신앙고백 - 사도신경
2. 찬송 – 556장
3. 기도 - 맡은이
4. 성경봉독 – 요한일서 4:7-9 (신약 392면)
5. 말씀 – 하나님이 주신 가정과 교회 (설교문을 함께 읽는다.)
6. 합심기도 -코로나19 회복을 위하여/교회의 영적부흥을 위하여
7. 찬송 – 559장
8. 주기도문 – 다같이
하나님이 주신 가정과 교회
부모가 자녀의 행복을 바라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을 살라고 주신 두 기관이 있는데, 그것이 가정과 교회입니다. 이 둘의 공통점이 있는데 이를 알면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럼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첫째, 가정과 교회를 움직이는 동력은 사랑입니다. 가정은 두 사람의 사랑으로 부부가 되어 자녀도 낳으며 이렇게 사랑과 행복의 공동체가 됩니다. 교회 역시 주님의 사랑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서로 고향도, 자란 배경도, 학교도 다른 사람들이 한 교회에 모일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가정은 곧 깨어지게 되고, 사랑이 없는 교회는 인간의 욕심의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질됩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사랑이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자원은 십자가에서 나옵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야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가 아니고는 타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둘째, 가정과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가정이나 교회는 사람이 주인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주인이 되면 가정도 쉽게 무너지고, 교회는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가정의 행복은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온전해집니다. 교회 역시 하나님이 주인이실 때 부흥의 역사가 있고, 교회 다울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이 위기에 서게 된 원인은 사람이 주인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하나님이 주인 되지 않으시면 온전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가정과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가정과 교회는 새롭게 늘어가야 합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을 잘 양육하여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가 부모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부모의 사명 완수는 결국 자녀가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떠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축복하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땅에 충만해지는 비결은 바로 가정이 새롭게 늘어나는 것입니다. 교회 역시 함께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지만. 결국에는 교회에 새로운 사람들이 전도되고, 새롭게 작은 구역이나 목장들로 확장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멈춰진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주님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가정과 교회는 이렇게 늘어가야 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복된 인생을 살라고 가정과 교회를 주셨습니다.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의 통로이기에 이 두 곳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삶의 행복을 교회에서는 영적인 행복을 누리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가정과 교회에서 행복할 때, 세상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주신 가정과 교회에서 참된 기쁨과 은혜를 누리며 살게해 주시고 그 안에서 참된 행복을 얻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0년 5월 6일(수) 가정예배순서
인도자(가장 혹은 가족 중 1명)
1. 신앙고백 - 사도신경
2. 찬송 – 557장
3. 기도 - 맡은이
4. 성경봉독 – 사도행전 16:11-15(신약 215면)
5. 말씀 – 믿음으로 사는 가정 (설교문을 함께 읽는다.)
6. 합심기도 –코로나19 회복을 위하여/교회의 영적부흥을 위하여
7. 찬송 – 383장
8. 주기도문 – 다같이
믿음으로 사는 가정
모든 조건을 다 갖추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온 가족이 함께 예수님을 믿는 것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그렇기에 가족 중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가족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며 은혜 중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신앙의 대상이 하나여야 합니다. 주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대상이 한 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 부모와 자식이, 또는 형제간에 신앙이 다르다면 이것은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가족은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라보는 곳과 가는 곳이 같아야 합니다. 모든 종교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고 추구하는 이상이 있기에 한 가족이라면 가는 곳과 바라보는 곳이 같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궁극적인 목적지는 하나님의 나라이기에 그곳에 가족이 함께 가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빌립보 지방에 살며 자색 옷감 장사를 하고 있던 루디아라는 여인의 가정입니다.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중 마케도냐 지방에서 맨 먼저 빌립보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임시 기도처를 수소문 하던 중 어느 날 강가에서 복음을 전하다 만난 여자가 루디아였습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라고 했습니다. 루디아와 그 가정은 유럽선교에서 얻은 최초의 신자였습니다. 루디아는 하나님을 공경했던 여인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이 있었고 공경하는 경헌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마음씨가 고운 여자였고 그 마음으로 그래서 하나님을 공경한 것입니다. 우리도 순한마음, 부드러운 마음, 너그러운 마음,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14절에 보면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 지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 속에 은혜의 삼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를 맡긴다는 것이고 내 속사정과 형편을 모조리 말씀 드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둘째 단계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은 입체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듣고 마음으로 들어야 그 말씀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영화관에 가서 두 눈을 감고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눈도, 귀도, 마음도, 손도, 자세도 총동원하여 말씀을 잘 들어야 은혜를 받습니다. 셋째 단계는 따르는 단계입니다. 본문은 ‘바울의 말을 따랐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말을 따랐다는 것은 듣고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즉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약점은 듣기는 하는데 따르는 것이 약한 데 있습니다. 가정교육이나 자녀교육의 문제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은 아버지의 뒤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닮고 따라가서 손해 되는 경우가 있고 행복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은 영원히 행복해지는 방법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가정은 주님이 그 곳에 머무시는 가정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그런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가정이 믿음으로 하나 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가정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0년 5월 7일(목) 가정예배순서
인도자(가장 혹은 가족 중 1명)
1. 신앙고백 - 사도신경
2. 찬송 – 370장
3. 기도 - 맡은이
4. 성경봉독 – 욥기 4:5-6 (구약 764면)
5. 말씀 – 성숙한 신앙으로 (설교문을 함께 읽는다.)
6. 합심기도 - 코로나19 회복을 위하여/교회의 영적부흥을 위하여
7. 찬송 – 450장
8. 주기도문 – 다같이
성숙한 신앙으로
사탄의 참소로 인해 욥은 고난을 겪습니다. 사탄은 욥의 신앙의 동기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모든 것을 형통하게 해 주기에 믿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고난이 닥치면 신앙을 버릴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하늘에서 일어난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를 욥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욥은 신앙으로 견뎌 낸 것입니다. 그는 전 재산을 잃고 자식도 모두 죽고 그리고 무서운 질병까지 얻습니다. 문제는 욥은 이런 고난이 왜 자기에게 주어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욥에게 주어지는 정말 힘든 영적 전쟁은 세 친구 엘리바스, 소발, 빌닷과 뒤에 있던 엘리후가 찾아와서 논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욥의 고난은 단순한 물리적인 고통이 아니라 친구들이 와서 “네가 죄를 범하였기에 고난을 당한다”는 친구들의 말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마치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높은 자리에서, 욥이 당하는 아픔에는 전혀 동참하지 않고, 말하는 심판과 정죄는 고난을 당하는 욥의 고통을 두배로 만들었습니디. 예수님의 고난도 육체적인 고난보다는 거짓 증인들의 조롱과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믿겠다는 말이 예수님을 더욱 아프게 한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고통 당하는 자의 원인도 모르면서 내가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심판자가 되어 심판했습니다. 이것이 욥이 받은 고난의 극치였습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의 원인을 하나님께 물었지만 침묵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끝까지 주장함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 깊이 탄식했습니다. 친구들이 정죄와 비판 속에서도 욥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특히 23장을 보면 그는 아무리 용광로에 넣어서 자신의 죄를 살피려고 해도 자신은 여전히 의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도발적인 탄식도 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일마저도 저주를 받았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탄식은 불신앙이 아니라 정말 신앙을 가진 이의 새로운 표현입니다. 욥이 하나님의 계시로 깨달은 것은 인생은 “야생”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 인생을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욥기 38장-41장을 보면 인간 역시 야생동물과 같이 이 역사의 한복판에 던져진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야생동물들을 먹이시듯 나의 인생도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와 경륜 가운데 보호받고 다스림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천박한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욥의 회개는 윤리적인 타락을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회개는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아무리 힘든 세상에서도 놀라운 계획으로 나를 다스린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귀로만 들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눈으로 직접 보게 된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알지 못하고 한 말들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친구들을 책망하시고 욥을 칭찬하시며 그에게 갑절의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평안하십시다.
오늘의 기도
탄식할 수밖에 없는 험한 세상에서도 믿음으로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0년 5월 8일(금) 가정예배순서
인도자(가장 혹은 가족 중 1명)
1. 신앙고백 - 사도신경
2. 찬송 – 302장
3. 기도 - 맡은이
4. 성경봉독 – 누가복음 5:1-11(신약 95면)
5. 말씀 – 인생의 빈 배에 (설교문을 함께 읽는다.)
6. 합심기도 - 코로나19 회복을 위하여/교회의 영적부흥을 위하여
7. 찬송 – 336장
8. 주기도문 - 다같이
인생의 빈 배에
오늘 본문 말씀은 베드로가 고기를 잡는 장면입니다.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 게네사렛 호수에서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지만, 물고기의 씨가 마른 것처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피곤한 몸으로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예수님이 오셔서 베드로의 빈 배에 올라타시고 배를 육지에서 좀 떨어지게 하시더니, 육지에 있는 무리들을 향하여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신 후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평생 어부로 산 사람으로서 순종하기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라서 나무로 만드는 일은 무엇이든 잘 하실 테지만, 물고기 잡는 일에 있어서 만큼은 베드로가 더 능숙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며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끌어올리지 못해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고 할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 그때 고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던지 두 배에 잠길 정도로 많이 잡았다고 말씀은 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이를 놀라워하며 함께 만선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비내를 타고 망망대해에서 지표의식을 상실할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빈 배를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다 절망하고, 낙심하고, 고통 가운데 탄식하며 눈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빈 배를 채우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그분 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그분을 가까이 하는 것만이 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빈 배를 승리로, 성공으로, 풍요로, 행복으로 가득 채워주시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동안 세상을 살면서 내 얕은 지식이나 경험, 불완전한 수단과 방법으로 살다 실패하여 절망하고 있다면, 이제는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서, 그분의 말씀 속으로 깊이 들어가 봅시다. 골로새서 2장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모든 가정들이 다 평안하고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가정에 빈 것이 많다면 이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 안으로 깊이 들어가 봅시다. 그러면 믿음의 빈 배, 기도의 빈 배를 가득 채우게 될 것이고, 실패의 빈 배, 절망의 빈 배, 가난의 빈 배를 가득 채우고 살맛나는 인생으로 주님 영광 위하여 살다 아픔 없고, 슬픔 없고, 고통 없고, 또 다시 죽는 것이 없는 그 좋은 천국에 가서 영원히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축복의 가정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 가정이 말씀 속으로 깊이 들어가 좋은 것을 가득 잠기게 채우고 주님 영광 위해 사는 축복의 가정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0년 5월 9일(토) 가정예배순서
인도자(가장 혹은 가족 중 1명)
1. 신앙고백 - 사도신경
2. 찬송 – 330장
3. 기도 - 맡은이
4. 성경봉독 – 창세기 26:21-25(구약 36면)
5. 말씀 –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설교문을 함께 읽는다.)
6. 합심기도 - 코로나19 회복을 위하여/교회의 영적부흥을 위하여
7. 찬송 – 425장
8. 주기도문 - 다같이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생명체의 구성 성분을 분석해 보면 수분이 70% 이상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물을 공급받지 않고, 물이 없는 상태로는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지구도 그러하고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풍부한 곳에는 생며이 넘치고, 물 없는 곳, 무미건조한 곳은 더러운 영이 구하는 자리입니다(눅 11장). 우리의 심령에 회개의 눈물이 메말라 버려 영혼의 사막화가 일어나 물이 없는 장소가 되어 버리면 더러운 귀신이 찾아오기 안성맞춤인 자리가 되어 버립니다. 물의 부재는 즉시 죽음을 불러일으킵니다. 15세기 르네상스와 16세기 종교개혁을 관통하던 핵심적인 말은 “근원으로 돌아가자”였습니다.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원천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영호느이 해갈은 중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악을 행한 자들을 지적하시면서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불러들이는 일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삭은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은(창26:12)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삭은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유하게 되었는데 현실에서는 벽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샘을 점령하고서 물 소유 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때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창26:18).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메웠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샘 근원을 얻었는데 또 그랄의 목자들과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이삭은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이처럼 이삭은 다툼이 일어났을 때 다툼의 자리 안에 머물지 않고 ’거기서 옮겨‘(창26:22) 하나님이 주실 은혜를 믿고 창조적으로 상황을 돌파해 나갔습니다. 그 모습을 성경은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다고
’르호봇‘(창26:22)이라 간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생존의 문제로 우물을 팠다면, 이삭은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생존을 넘어서 생활의 통착력까지 얻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조상이 샘물을 퍼마시던 이러한 ’언어와 행위‘(사3:8)를 자세히 보고 배워야 합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새로운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을 열어 주시면 다툼에서 평화로, 대립에서 공존으로, 좁음에서 넓음으로, 쇠잔에서 번성으로 나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또 다른 우물을 파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샘 근원을 곳곳에 예비해 두셨습니다. 주님께로 돌아가서 주님께서 샘 근원을 보여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믿음으로 또 다른 우물을 팝시다. 샘 근원을 파면서 건강해지고, 샘 근원을 만날 때 주님께 감사 영광을 돌립시다! 그리고 찬양합시다.
오늘의 기도
평화의 주님만 바라는 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르호봇의 은혜로 우리를 이 땅에서 번성하게 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