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통운동본부 CCCC| 소통 ! 여러분의 고견과 댓글로 대한 국민<가족> 소통 운동에 적극 동참을 소망합니다 !
박근혜정부에서는 동서남북 소통행정<소통정치>를 하실 줄 압니다. <<미래창조과학기술부 소관 주관하에>>.
나에게 의식주 문제를 담당한 분이 누구인지를 아시나요 ?<부모형제처자> 나의 건강 생명 사랑의 주관자 누구인지 아시나요?<조물주=창조주 하나님>
"인연을 소홀히 하면 내생에 악연이 되어 다시 만난다. 오다가다 옷깃만 스쳐도 만남은 삼백생의 인연이요,
같은 좌석에 앉아 대화를 하면 오백생의 인연이요,
같은 솥의 밥을 먹으면 칠백생의 인연이라..
같을 피를 나누면 구백생의 인연이요,
부부로 만나는 것은 천생의 인연이니라.......
금생의 인연이 참으로 중하니 어떠한 인연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 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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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소통 김 평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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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오늘의 말씀
① 시편 14장 전문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
7.
② 잠언 14장 전문
○ 정직한 자와 거짓된 자
1.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룻4:11
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5.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6.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7.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8.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10.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룻1:20, 갈6:5, 갈6:4
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13.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14.
마음이 패려한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만족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16.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18.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19.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 부요한 자와 가난한 자
20.
가난한 자는 그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잠19:4
21.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22.
악을 도모하는 자는 그릇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23.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24.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그 미련한 것이니라
25.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왕상4:20
28.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시105:12
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30.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합3:16
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마25:40
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33.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34.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35.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의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오늘의 역사
① 3선개헌안, 변칙 국회 통과(1969) : 9월 14일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을 목적으로 추진된 3선개헌안이 변칙적으로 통과되었다.
민주공화당은 1967년 6월 제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개헌가능선인 2/3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다.
민주공화당 내부에서도 개헌에 대한 반발이 심해 1968년 5월 국민복지회사건과 1969년 4월 4․8항명파동을 거치며 반대 세력을 제거한 후에야 본격적으로 개헌 작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야당인 신민당은 3선개헌에 동의한 의원들을 제명하기 위해 9월 7일 당을 해산하고, '신민회'로 국회교섭단체 등록을 한 후 적극적으로 개헌반대운동에 나섰다.
신민회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3선개헌안에 반대하는 농성을 벌였다.
야당 및 학생들의 치열한 개헌반대시위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인 9월 14일 새벽 2시 122명의 여당계 의원들은 국회 제3별관에 모여 기명투표를 실시해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헌안은 10월 17일 다시 국민투표에 부쳐져 총유권자의 77.1% 참여에 65.1%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그 결과 박정희는 민주공화당 후보로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선거에 다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② 남대문시장 대화재(1977) : 서울의 남대문시장은 조선 태종 때 조정에서 남대문 부근에 점포를 지어 지정된 상인들에게 빌려준 데서 유래된 것으로, 임진왜란 후 1608년에 세공(歲貢)․세곡(稅穀)을 보관하고 베와 돈의 출납을 맡았던 선혜청이 지금의 남창동 부근에 설치됨에 따라 남대문 밖 칠패(七牌)에는 자연스럽게 객사와 주막, 시장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1912년 조선농업주식회사의 송병준을 설립자로 지금의 남창동 일대에 남대문시장이 생겼으며, 1954년 큰 화재 이후 현대식 건물로 그 면모가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1977년 다시 대화재가 발생하게 된다.
③ 의열단원 박재혁 의사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1920) : 1895년 좌천동에서 태어나 사립육영학교 (현 부산진국민학교)를 거쳐서 부산공립상업학교(현 부산상업고등학교)를 1915년에 수료하였다.
그 후 부산에서 무역사을 경영하던 중 1917년 사업차 상해에 건너갔다가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의열단장 김원봉의 권유로 1920년 9월 국내의 일본관청을 파괴할 사명을 띠고 부산에 도착한 후 14일 아침 중국인 행상으로 가장하여 부산경찰서장 하시모또와 면담 중 폭탄을 투척하여 그에게 중상을 입혔고, 자신도 상처를 입고 체포되었다.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대구감옥에서 단식투쟁으로 사형집행전 27세의 나이로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④ 김포공항 폭발물 테러사건 발생(1986) : 서울아시안게임 개막을 불과 1주일 앞둔 1986년 9월 14일 서울 김포공항 국제선1층 청사밖 5번과 6번 출입문 사이의 철제쓰레기통에서 고성능 사제시한폭탄이 터져 전송객부부 등 일가족 4명과 공항관리공단 직원 등 모두 5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중경상을 입은 폭발참사가 발생했다.
치안당국의 조사 결과 고성능폭약인 '콤포지션4' 계열의 폭약과 시한장치가 철제쓰레기통에 숨겨져 있다 터졌으며 사망자들은 쓰레기 파편에 맞아 숨진 것으로 밝혔다.
경찰은 사건전후에 김포공항을 출입한 외국인 2백67명과 국내범행가능자 2만8천명, 인터폴을 통해 입수한 국제테러리스트의 입국여부, 공항주변부민 6천명, 국내폭발물 제조 판매 저장업소 1천7백71개소 및 시민제보 1백여건을 모두 조사했으나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 사건은 여러가지 상황과 당시 국내외 정세를 분석해 볼 때 북한이 파견한 테러리스트 혹은 북한의 조종을 받은 국내외 테러리스트가 외국인의 왕래가 많은 한국의 관문인 김포 국제공항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을 무차별하게 살상하여 한국의 치안상태가 극히 불안하다는 인상을 국제 사회에 심어 줌으로써 서울에서 열리는 '86 아시안 게임 참가를 저지하고 더 나아가 인류의 제전인 서울 올림픽을 방해할 목적으로 저질러진 사건으로 여겨졌다.
⑤ 헨델의 메시아(Messiah) : 헨델은 독일 태생의 작곡가로 바하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오페라 작곡에 전념하였다가, 더블린의 자선음악단체인 필하모니아 소사이어티의 자선음악회 프로그램을 위한 신작을 의뢰받아 만든 작품이 성경을 토대로 한 오라토리오「메시아」이며, 이 곡은 대성공을 거두어 헨델을 여러 가지 곤경으로부터 구해주었다.
1741.8.22부터 9.14까지 3주간의 짧은 기간에 작곡된 이곡은 그리스도의 일생을 서사적으로 묘사, 전인류의 구세주인 그리스도의 존재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구성은 제1부「예언과 성취」,
제2부「수난과 속죄」,
제3부「부활과 영생」
의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이 곡은 1742.4.13 헨델 자신의 지휘로 더블린에서 초연, 큰 성공을 거두었고, 1750년 이후 매년 이 「메시아」를 연주, 이후로 이 곡은 세계 각지의 자선연주회에서 연주하게 된 것이다.
⇨2월 23일.
⑥ 남아공 평화협정 조인(1991) : 흑인에 대한 백인정권의 차별정책으로 인종분쟁이 끊이지 않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1991년 오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백 지도자들은 유혈 정치분규를 끝내기 위한 평화협정에 조인합니다.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 민족회의 의장과 클레르크 남아공 대통령, 그리고 망고수투 부델레지 인카르타 자유당 지도자 등 세사람이 평화협정 조인의 주인공입니다.
협정문에는 선동적 언동의 금지 정치폭력 문제를 다루기 위한 특별법원의 설치등이 규정돼 있습니다.
⑦ 보스니아 총선 실시(1996) : 3년여간 지속돼 무수한 생명을 앗아간 보스니아 내전!
1996년 오늘 보스니아 내전을 청산하기 위한 역사적인 총선이 실시됩니다.
3명의 대통령과 상하양원 의원 등 수백명의 공직자를 선출하는 총선에는 29개 정당의 후보 3천여명이 난립합니다.
오랜 기간 내전으로 시달린 보스니아 국민들은 이번 총선으로 정국이 안정돼 평화로운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선거 결과 3인 집단지도체제의 대통령 선거에서 회교도 이제트베고비치가 국가원수인 수석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또한 대통령 선거와 함께 실시된 각 민족별 총선에서는 민족주의 정당들이 우세를 나타냅니다.
⑧ 보디빌딩 대회(1973) : 1973년 오늘!
말레이시아의 수도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보디빌딩 대회!
미스터 아시아를 뽑는 이번 보디빌딩 대회에는 열 한 개 나라가 참가했습니다.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우람한 근육과 균형잡힌 몸매를 자랑합니다.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시작된 보디빌딩!
오늘날과 같은 보디빌딩 대회는 1903년 미국에서 최초로 개최됐습니다.
⑨ 미국, 멕시코시티 점령(1847) : 1847년 9월 14일 미국 원정군이 멕시코시티를 함락했다.
미국과 멕시코 간의 분쟁은 1845년 일어난 미국의 텍사스 합병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자국의 영토를 빼앗긴 멕시코인들은 분개했고, 이후 국경선 문제로 인한 분쟁이 계속되었다.
멕시코가 주장하는 국경선이 뉴에이서스 강인 데 반해 미국은 리오그란데 강을 주장했다.
미국이 텍사스를 합병한 직후인 1845년 3월 멕시코는 미국과의 관계를 끊었다.
같은 해 9월 미국 대통령 제임스 K. 포크는 텍사스 국경 분쟁을 협상하고, 멕시코 정부가 미국 시민에게 진 빚 문제를 해결하며 최고 3,000만 달러에 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를 사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멕시코시티에 비밀사절을 파견했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가 미국의 사절을 만나주지도 않자, 이를 빌미로 포크 대통령은 1846년 1월 분쟁지역을 점령할 것을 명령했다. 1846년 4월 25일 멕시코 군대가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와 테일러군을 공격하자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미국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 결과 1848년 2월 2일 과달루페이달고 조약이 맺어졌으며, 미국은 리오그란데에서 태평양 연안에 이르기까지 130㎢가 넘는 멕시코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⑩ 나폴레옹 모스크바 입성(1812) : 9월 14일,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거느리고 모스크바를 침공하여 함락시키려고 하였다.
나폴레옹은 추운 겨울이 닥치기 전에 승전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러시아 사람들이 모스크바 시를 전소시키는 바람에 나폴레옹 군대는 굶주림과 추위 속에 기진맥진한 가운데 러시아 기병대에 쫓겨 결국 3만명 정도의 패잔병만 간신히 파리로 되돌아가는 비참한 패배를 경험했다.
1812년 가을에 나폴레옹은 모스크바에서 겨울을 편안하게 지내기 위하여 12만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그 곳에 진주했다.
첫 눈이 10월 30일에 내렸는데 예년에 비해 3주나 일찍 내린 것이 었다.
나폴레옹은 실망에 차 곧 퇴각을 서둘러 폴란드에 있는 여러 우호적인 도시에 겨울 진영을 설치할 것을 결정했다.
그것은 1천 마일이 넘는 황량하고 쓸쓸한 지역을 횡단하는 행군이었다.
1주일 후 그 거대한 군대는 완전히 모스크바를 벗어났다.
그 들의 적들은 경계가 허술한 곳마다 그들을 기습했다.
명령과 훈련은 망각되었고 계급은 무너졌으며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생 존을 위하여 다투었다.
죽은 자들과 죽어가는 자들이 발에 밟혔고, 수백필의 말들이 식용으로 살해되었다.
정복의 꿈은 모두 다 사라졌다.
나폴레옹도 자신을 운명의 손에 맡겼다.
⑪ 석유수출국기구(OPEC) 창설(1960) : OPEC는 석유수출국기구의 약칭으로 1960 년 9 월, 바그다드에서 열린 이라크,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등 5 대 석유수출국회의에서 그 창립을 결정하였다.
이 기구의 창립목적은 석유가격의 안정을 위해 국제석유회사와 생산 할당에 관해 협의하고 국제석유회사로부터 보다 많은 이권료를 획득하기위해 석유수출국이 공동교섭에 임하도록 하는데 있다.
2000년 현재 가맹국은 11 개국이며, 기구산하기관으로는 총회, 이사회, 사무국 등이 있다.
⑫ 소련 무인탐사위성 루니크2호 최초로 달에 착륙(1959) : 세계 최초의 유인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가 도착하기 2년전 최초로 무인 인공위성인 루니크 2호가 달에 착륙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⑬ 테니스 스타 나브라틸로바(Martina Navratilova) 망명 발표(1975) : 1975년 오늘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테니스 스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가 미국으로의 망명할 뜻을 발표한다.
당시 18살이던 나브라틸로바는 US오픈 테니스대회 준결승전에서 패한 뒤 곧바로 뉴욕시의 이민국으로 찾아가 망명의사를 밝혔다.
나브라틸로바는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국제대회에 자유롭게 출전하고 싶어 미국 망명을 결정했다고 밝힌다.
망명요청은 한 달도 안 돼 받아들여졌다.
나브라틸로바는 국적을 바꾼 지 3년 만인 1978년 윔블던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왼손잡이로서 강한 서브와 뛰어난 발리(volley) 기술을 구사하며 일약 세계를 제패하는 국제적 테니스 스타로 성장한다.
⑭ 매카트니 사건(1793) : 청나라 조정에 비상이 걸렸다.
영국 특사 매카트니(George Macartney)가 건륭제에 대한 삼고구배(三叩九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삼고구배란 머리를 세 번 땅에 찧고 아홉 벌 절하는 만주족의 인사방식.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의 치욕 때도 청 태종에게 항복한 인조가 삼고구배를 했다.
속이 탄 청국 관리들은 건륭제의 의자 뒤에 영국왕 조지3세의 초상화를 거는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매카트니는 꿈적도 안 했다.
결국 수 차례 연기된 접견이 열하의 별궁에서 이뤄진 1793년 9월14일, 매카트니는 왼쪽 무릎을 굽혔을 뿐이다.
청은 '천자의 80세 생일잔치를 망쳤다'며 분노했고 매카트니는 통상관계 수립이라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
영국이 애써 마련한 증기엔진과 면방기, 직포기와 시계, 대포와 소총, 허셀 망원경, 진동방지 장치가 부착된 마차 등 선물을 건륭제가 살펴볼 기회도 사라졌다.
건륭제는 영국 왕의 국서에 '중국은 부족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 교역도 필요없다.
그대의 충성심을 알았으니 일부러 사신을 먼 길로 보낼 필요도 없다'는 답신을 보냈다.
매카트니 사건은 비밀로 분류됐으나 수행원들의 입을 통해 유럽 사회에 퍼졌다.
매카트니 사절단이 5개월여 동안의 중국체류 경험은 '차와 도자기ㆍ비단으로 유럽의 금과 은을 쓸어가는 부국'이라는 환상을 깨뜨리고 '정체된 종이호랑이'라는 인식을 심으며 침략의 씨앗을 뿌렸다. 매카트니보다 13년 앞서 건륭제의 생일 축하연에 참석한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감탄한 선진문물의 중국이 유럽인들의 눈에는 '낙후된 침략 대상'으로 여겨진 것이다.
동서양 교류사의 변곡점이었던 매카트니 사건 216년이 흐른 오늘날, 중국은 다시금 세계의 달러와 원자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새로운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흐를까.
(인터넷한국일보, 2009/09/13)
⑮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협정 조인(1993) : * 팔레스타인문제 [요약] 팔레스타인의 귀속을 둘러싼 아랍인과 유대인과의 대립 ·분쟁에서 일어난 여러 문제.
[본문]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여러 지역을 포함하며, 대체로 서쪽의 지중해에서 동쪽의 요르단강까지 그리고 북쪽으로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지대, 남쪽으로는 가자지구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20세기에 들어 지금까지 유대인과 아랍의 민족운동 진영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맹의 결정에 따라 이 지역은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놓였다.
이 위임통치는 영국이 정책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유대민족국가 수립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1917년 밸푸어선언을 구체화한 것이다.
영국의 통치는 1948년까지 계속되었으나 다수 민족인 아랍인과 세력이 점점 커가는 유대민족 모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합(UN) 총회에 팔레스타인문제를 넘기게 되었다.
UN총회에서는 1947년 11월 29일 팔레스타인에 아랍인 국가와 유대인 국가를 따로 세울 것을 제안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수립이 선포되면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영국 관리들도 철수하였다.
그후 이스라엘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주변 아랍국들의 정규군이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하면서 벌어진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갈릴리 지방, 연안지역, 이집트 점령 가자지구 일부, 네게브 사막, 예루살렘 북서부지역을 포함해서 UN의 원래 분할안보다 50% 정도가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약 72만 명의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이스라엘을 떠나 주변 아랍국가들에서 난민생활을 하게 되었다.
1950년 요르단 왕국이 UN의 계획대로라면 이 지역에 세워질 아랍국의 영토에 포함된 요르단강 서안을 공식적으로 합병했으나 국제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후에 웨스트뱅크로 알려진 이 요르단 점령지역은 1967년 가자지구, 시나이반도, 골란고원, 동예루살렘과 함께 이스라엘에 점령되었다.
1979년 캠프데이비드협정이 조인되면서 규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1979~1982년에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되돌려주었으나 웨스트뱅크, 가자지구, 골란고원, 동예루살렘은 계속 점령하고 있다.
아랍연맹은 1974년 10월 모로코의 라바트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유일한 대표기구로 인정하였다.
PLO는 1969년 헌장에서 분명하게 밝힌 것처럼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제거하고 팔레스타인 위임통치 지역 안에 이슬람교도, 그리스도교도, 유대교도 각각의 독립국가를 건설할 것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1988년에는 이를 약간 수정하여 팔레스타인문제 해결을 위한 2개 국가 수립안, 즉 이스라엘과 공존하게 될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안에 대해서 처음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1993년 9월 오늘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평화협정이 맺어져 가자와 웨스트뱅크 지역에 팔레스타인 자치기구의 설립이 확정되었다.
(두산백과사전.2009)
⑯ 기타 오늘의 역사
1265 피렌체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볼로냐 대학에서 배움
1300 이웃나라인 생 제미냐노의 특파대사를 했고, 통령의 한 사람으 로 뽑힘
1818(조선 순조 18) 다산 정약용, 18년 동안의 유배 생활에서 풀려 남
1887 제3차 미감리회 한국선교회에서 배재학당장과 감리사에 아펜 젤러, 시병원장과 배재 선생 스크랜튼, 이화학당장에 스크랜 튼 부인 임명
1901 미국 데오도어 루스벨트, 제26대 대통령에 취임
1910 <황성신문> 페간
1933 토마스 목사 기념 예배당 대동강 언덕에 건립
1936 노벨 의학상 수상한 소련의 생리학자 파블로프 세상 떠남
1937 총독부, 군수동원법 실시를 결정
1938 독일-만주 통상협정 조인
1941 독일군, 레닌그라드 교외 돌입
1945 조선프롤레타리아 미술동맹 결성
1945 맥아더장군, 일본점령 특별성명
1946 프랑스-월남 정치협상 체결
1946 구세군 사관총회 개최. '구세군'과 '구세단' 두 명칭 중 '구 세군'으로 확정.
1948 경부선서 해방호 열차 충돌
1949 중공, 장개석정부에 8개항 최후통첩
1949 목포 형무소에서 500여명이 탈출하는 탈옥사건 발생
1950 트루만, 대일강화 교류개시 지시
1959 소련 우주로켓, 달 표면 도달
1960 대한예수교 성경(聖經)장로회 창립총회(예장대신의 전신). 초 대 총회장 김치선 목사
1962 동부 터키서 지진으로 10만여명 이재민 발생
1962 브라질 내각총사퇴, 비상사태 돌입
1966 한미 평화봉사단협정 체결
1968 서울시, 도시 계획에 따라 덕수궁 대한문 22m 후진
1972 워싱턴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잠입한 혐의로 전직 백 악관 보좌관 2명등 묘두 7명 기소. 워터개이트사건 시작.
1972 서독-폴란드, 33년만에 국교 회복
1972 일본 도쿄에서 제1회 한-일 축구정기전 열림
1972 장로교 분열 20년만에 4개 교단 총회장 연석회의.
1973 국무회의, 해병대 해체하는 국군조직법 개정안 의결
1974 인도-파키스탄 국교정상화
1981 프랑스, 중성자탄 개발계획 발표
1984 한적, 북적의 수해물자 제공제의 수락
1985 경찰, 고대앞 시위 관련 박찬종 조순형 의원 등 집시법 위반 혐의 불구속
1986 김포공항서 폭발물 폭발. 5명 사망, 30여명 중경상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앞두고 김포공항에 폭탄테러사건. 5명 사망
1990 이라크, 쿠웨이트주재 4개국 외국공관에 난입
조 18) 다산 정약용, 18년 동안의 유배 생활에서 풀려남
1991 남아공의 흑인파벌간 폭력종식 평화협정 체결
오늘의 인물
① 안윤덕(安潤德 ; 1457(세조 3) - 1535(중종 30).9.14) :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선경(善卿)이다.
사헌 감찰(司憲監察)을 지낸 안종생(安從生)의 손자이고, 안동 판관(安東判官)을 역임한 안팽로(安彭老)의 아들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477년 생원시를 거쳐 148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가 되었다.
그뒤 성균관 학유(學諭) ․ 박사(博士)가 되고, 1487년 종부시(宗簿寺) 주부(注簿), 1488년 정언(正言), 1489년 호조 좌랑(戶曹佐郞) ․ 병조 좌랑(兵曹佐郞), 1494년 지평(持平), 1495년 형조 정랑(刑曹正郞), 1497년 문과중시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그뒤 사인(舍人) ․ 지제교 겸사관(知製敎兼史官)이 되고, 그 이듬해 사간(司諫), 1499년 직제학(直提學), 1500년 승정원에 들어가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고 누천(累遷)하여 도승지(都承旨)에 올랐다.
1502년 경상도 ․ 경기도의 관찰사를 거쳐 형조 참판이 되고, 1503년 예조 참판이 되어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김제에 유배되었다가 중종 1년(1506) 중종반정 후 형조 참판 ․ 병조 참판을 거쳐 한성부 좌윤이 되어 약 5개월 동안 봉직하고, 1507년에 다시 형조 ․ 병조 참판을 지냈다.
1510년 삼포왜란이 일어나자 장재(將才)가 있다 하여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올라 경상도 도순찰사 겸 부원수(副元帥)가 되어 이를 토평하는데 공을 세우고, 그해 9월에 한성부 판윤이 되어 20개월 이상 수도의 행정책임자로 있었다.
그뒤 형조 판서를 거쳐 1515년 평안도 관찰사로 나가 단군(檀君)과 기자(箕子)의 사당을 수축하여 유풍(儒風)을 크게 떨쳤다. 한때 병으로 사직하였다가 1519년 공조 판서에 오르고, 1526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가 1527년 의정부 좌참찬에 올랐다. 자녀로는 안한영(安漢英), 안한웅(安漢雄), 안한준(安漢俊), 안한언(安漢彦) 등 4남과 2녀가 있다. 시호는 익헌(翼憲)이다.
② 이서구(李書九 ; 1754.9.14 - 1825.9.29) : 조선 순조 때의 학자․시인.
자는 낙서(洛瑞).
호는 강산(薑山), 석모산인(席帽山人).
본관은 전주.
선조(宣祖)의 별자(別子) 인흥군(仁興君;瑛)의 후예, 낭선군(郎善君)의 5대손이며 영의정 이원(李遠)의 아들이다.
1774년(영조 50)에 문과에 급제, 교리․삼사(三司), 평안 관찰사, 호조판서 홍문관 대제학을 거쳐 1824년(순조 24)에 우의정에 이르렀다.
연암 박지원의 문하인으로 이덕수(李德愁)․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와 더불어 한학(漢學)의 4대가로 일컫는다.
저서에 <서구문학정련(書九文學精鍊)><경술엄아(經術淹雅)><강산집(薑山集)> 등이 있다.
③ 강정일당(姜靜一堂 ; 1772 - 1832.9.14) : 조선시대 여류문필가.
강희맹(姜希孟)의 12대 손이며, 윤광연(尹光演)의 아내로 초서와 해서에 특히 뛰어났고, 시와 문장에도 능하였다.
④ 이 상(李箱 ; 1910.9.14(음8.20) - 1937.4.17(음3.7) : 이상은 실험정신이 강한 작품을 남긴 한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3세 때부터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큰집에서 살았는데, 권위적인 큰아버지와 무능력한 친부모 사이에서 심리적 갈등이 심했으며 이런 체험이 그의 문학 전반에 깔린 불안의식의 뿌리를 이루었다.
건축을 공부하고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技手)가 되었으나 1933년 결핵이 발병해 퇴직했다.
그후 요양차 황해도 백천온천에 머물렀는데,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금홍을 만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934년 '구인회'에 가입했으며, 1936년 구인회의 동인지 <시와 소설>을 편집했다.
<오감도>를 비롯한 시작품에서 그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뒤섞거나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숫자를 빌려 쓰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관념을 표출해냈다.
또한 소설에서는 객관적인 현실을 반영한 인물들간의 갈등과 대립을 그리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처한 객관적인 현실을 관찰하는 자의식 강한 인물의 내면세계를 주로 그렸다.
특히 대표작 <날개>는 내용의 난해함과 형식의 파격성으로 1930년대 한국소설의 한 전형이 되었다.
이러한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이상문학상'을 1977년 문학사상사에서 제정해 매년 10월 시상하고 있다.
⇨8월 20일.
⑤ 황순원(黃順元 ; 1915.3.26 평남 대동 - 2000.9.14 서울) : 시인․소설가.
[개요] 본관은 제안(齊安).
자는 만강(晩岡).
시인으로 등단해서 뛰어난 단편소설가로, 다시 장편소설가로 거듭 변신하면서 문학세계를 넓힌 작가이다.
[생애와 활동] 평양 숭덕학교 고등과 교사였던 아버지 찬영(贊永)과 어머니 장찬붕(張贊朋)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3․1운동 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평양 시내에 배포해 1년 6개월 동안 징역살이를 하기도 했다.
오산중학교를 거쳐 숭실중학교를 마쳤으며, 1934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제2고등학원에 입학, 재학시절 이해랑․김동원 등과 극예술연구단체인 '동경학생예술좌'를 조직했다.
1935년 여름방학을 이용해 귀국했다가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도쿄[東京]에서 시집 〈방가〉를 펴냈다는 이유로 평양경찰서에 29일간 구류되었다.
1939년 와세다대학 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생활하다 1946년 월남했다.
서울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57년 경희대학교 문리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1980년 정년퇴임 후 명예교수를 지냈다.
[문학세계] 숭실중학 시절 시 〈나의 꿈〉(동광, 1931. 7)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시창작에 몰두하는 동안은 당시 문단의 큰 흐름이었던 모더니즘 시를 주로 썼다.
시집 2권을 펴낸 다음 1930년말부터 소설창작에 전념하게 되었다. 초기 단편들인 〈별〉(인문평론, 1941. 2)․〈목넘이 마을의 개〉(개벽, 1948. 3)․〈황노인〉(신천지, 1949. 9)․〈노새〉(문예, 1949. 12)․〈독짓는 늙은이〉(문예, 1950. 4) 등은 빼어난 서정성을 바탕으로 인간의 섬세한 내면세계와 인간 사이의 교감을 그려내는 휴머니즘이 주조를 이룬다.
또한 시적 정취를 자아내는 간결하고 서정적인 문체는 당시 문체미학의 새로운 경지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8․15해방 후 장편 〈별과 같이 살다〉(여러 잡지에 분재하다가 1950년 단행본으로 펴냄)를 발표한 이후 단편소설보다 장편소설에 주력하여 잇따라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내놓았다.
장편소설을 통해 본 그의 문학세계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카인의 후예〉(1954)․〈인간접목〉(1957)․〈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 등은 6․25전쟁 전후의 사회적 혼란과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그려낸 데 반해, 〈일월〉(1962)․〈움직이는 성〉(1972)․〈신들의 주사위〉(1982) 등은 신분적 질곡, 현대사회의 윤리와 전통의 문제, 종교문제 등을 다루어 소설적 주제가 매우 다양해졌다. 이중 〈별과 같이 살다〉는 그의 첫 장편소설이며, 곰녀라는 한 여인의 짧은 생애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민족수난사를 그려냈다.
곰녀는 〈카인의 후예〉에 나오는 오작녀와 매우 닮은 인물로, 그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의 한 원형을 이룬다.
〈카인의 후예〉는 8․15해방 직후 북한의 토지개혁과정을 통해 인간의 소유욕과 윤리적 패덕에 대한 강한 응징을 보여준 작품이며,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전쟁 체험이 낳은 비극적인 인간성 파괴를 다룬 작품으로 장편소설로서의 진가를 유감 없이 발휘한 문제작으로 꼽힌다.
황순원은 수많은 작가들이 일제의 조선어 말살정책에 굴복해 일본어로 작품을 쓰거나 친일 작품을 휘갈겨댄 일제말 모국어로 작품 쓰기를 고집하고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며 평생 잡문을 쓰지 않은 작가로서 크게 존경받았다.
시집으로 〈방가〉(1934)․〈골동품〉(1936)과 소설전집으로 〈황순원전집〉(1964)․〈황순원문학전집〉(1973)․〈황순원전집〉(1985) 등이 있다.
1955년 아세아자유문학상, 1960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61년 3․1문화상,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3년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받았다.
2000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⑥ 토마슈 마사리크(T.G.Masaryk ; 1918 - 1937.9.14) : 1937년 오늘 체코슬로바키아의 초대 대통령을 지냈던 토마슈 마사리크(T.G.Masaryk)가 87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원래 철학자인 마사리크는 체코 독립운동을 지도해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독립과 함께 대통령에 선출됐다.
이후 1935년까지 17년 동안 네 차례의 임기를 수행하면서 민주주의의 아버지로서 존경을 받았다.
그는 또 미국, 영국 등 서방국과 중도 관계를 유지해 국제사회에서 외교관계를 안정시키고 체코의 경제 발전을 이끈 것으로 평가됐다.
******체코의 정치가 토마슈 마사리크가 프라하 근처 라니에서 사망했다.
향년 87.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기도 했던 마사리크는 체코 건국의 아버지라 할 만하다.
그가 태어났을 때 체코는 오스트리아제국의 일부였고, 그가 열일곱 살 때인 1867년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 협정을 맺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되었다.
철학 교수로 프라하대학에 재직하던 마사리크는 체코민족당 소속으로 오스트리아 국회에 진출했다.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독일 등 동맹국을 한 축으로 하고 프랑스.영국.러시아 등 연합국을 다른 축으로 해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마사리크는 스위스.프랑스.미국 등지로 망명해 가며 체코슬로바키아 독립군을 조직해 연합국 편에 서서 싸웠다.
그는 전쟁 중 파리에서 체코슬로바키아 임시정부를 조직했고, 1918년 종전의 열매로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을 얻자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작고하기 두 해 전인 1935년 건강 악화로 사임할 때까지 마사리크는 프랑스.영국.유고슬라비아 등과의 협력 속에서 독일을 견제하며 이 신생국가를 이끌었다.
그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체코슬로바키아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발달한 산업국가가 되었다.
조국을 독일군의 군화 밑으로 쑤셔넣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보지 못하고 죽은 것은 그에게 행운이라 할 만했다.
마사리크의 저서로는 구체적 논리학(1885), 체코 문제(1895), 러시아와 유럽(1913) 등이 있지만, 그의 정치적 견해는 작가 카렐 차페크의 마사리크와의 대화(1935)에 더 선명히 드러나 있다.
토마슈 마사리크의 아들 얀 마사리크(1886~1948)는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질 때 체코슬로바키아 외무장관이었다.
그는 전쟁 중 영국에 망명해 있다가 종전 뒤 귀국해 정치를 재개했지만,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장악한 직후 투신자살했다(고종석, 2004).
⑦ 훔볼트 출생(1769) : ⇨5월 6일.
27살의 고위직 귀족 청년.
막대한 유산까지 물려받은 그는 쏟아지는 혼담을 마다한 채 보따리를 꾸렸다.
소망했던 탐사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근대 지리ㆍ지질학이 여기서 나왔다.
주인공은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1769년 9월14일 프로이센의 군인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4개 대학을 옮겨 다닌 끝에 광산학교를 나왔다.
고급공무원을 원했던 집안의 희망과 적성이 맞지 않았던 탓이지만 덕분에 화학과 지리, 지질ㆍ천문ㆍ생물ㆍ광물ㆍ해양학을 망라하는 박식가라는 명성을 얻는 토양을 쌓았다.
귀족에 대한 특혜로 어린 나이에 광산 감독관으로 지내던 중 모친이 사망하자 그는 탐사길에 올랐다.
유럽의 산맥과 지질을 연구하던 그는 1799년 스페인의 허가를 받아 6년간 당시 세계 최고봉에 오르는 등 중남미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산과 나무가 물을 저장하는 기능을 가졌다는 사실과 고도에 따른 동식물 분포 차이가 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밝혀졌다.
페루 해역에 쌓인 새의 배설물인 구아노를 비료로 활용하자고 제안, 유럽 농업의 혁명적 생산 증대도 이끌었다.
귀환 후 20년간 집필한 30권짜리 ‘여행기’는 찰스 다윈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진화론으로 이어졌다.
책에는 파나마 지역의 운하건설 제안도 담았다.
‘천연기념물’이라는 용어도 여기서 최초로 쓰였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 1859년 90세로 사망한 훔볼트는 독일에 자손 이상의 선물을 남겼다.
수백 개 나라로 분열돼 영원한 2류 민족으로 여겨지던 독일인들이 자연과학 연구의 주류를 형성하는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와 아인슈타인의 모교이자 노벨상 수상자 29명을 배출한 훔볼트대학교를 세운 형 빌헬름(교육가ㆍ언어학자)와 더불어 근대 독일이 낳은 최고의 형제로도 기억되고 있다.
(권홍우 편집위원.서경.2007)
⑧ 단테(Alighieri Dante ; 1265.5.30 - 1321.9.14) : 르네상스(유럽 문예부흥기)의 가장 뛰어난 이탈리아의 시인으로 당대 세계 4대 시인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단테가 쓴 〈신곡〉이란 책은 중세기 시절의 기독교 사상을 잘 나타내고 있어 오늘날까지 가장 뛰어난 종교문학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이 읽히고 있다.
⇨8월 31일.
⑨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 ; 1902.7.28 ~ 1994.9.14) : ⇨7월 28일.
영국 철학자.
영국 런던 교외의 버킹엄셔에서 철학자 칼 포퍼가 작고했다.
그는 빈에서 오스트리아인으로 태어났고, 1946년 이래 영국인이었다.
아흔두 해의 생애를 살았다.
위대한 정신의 내면은 깊은 연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 안에 칸막이를 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포퍼의 글쓰기 영역을 굳이 나누자면 크게 과학철학(인식론)과 사회철학(실천론)으로 대별할 수 있다.
전자가 그의 첫 저서이자 유일한 독일어 저서인 탐구의 논리에서 큰 틀이 완성된 뒤 추측과 논박, 객관적 지식 등의 저서에서 더 정교해졌다면, 후자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과 역사주의의 빈곤에서 확고한 표현을 얻었다.
포퍼 인식론의 처음이자 끝은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을 구별하는 기준이 반증 가능성에 있다는 주장에 있다.
그래서 포퍼가 보기에 프로이트주의나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이 아니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어떤 관찰에 의해서도 반증이 불가능하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이론을 끊임없이 수정함으로써 반증의 기회를 봉쇄하기 때문이다.
포퍼는 나치즘을 피해 뉴질랜드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썼다.
플라톤과 마르크스에 대한 격렬한 비판으로 가득 찬 이 책에서 그는 정의를 향한 인간의 노력은 그것이 개인의 자유 신장을 수반할 때만 진정한 진보를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포퍼는 또 역사주의의 빈곤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세계관 노릇을 한 역사주의, 곧 역사 진행의 밑바탕에는 경향성촵법칙촵리듬이 있다는 견해를 단호히 비판했다.
경험과 토론을 통해 오류를 고쳐가며 자유의 신장과 고통의 극소화를 꾀하는 그의 점진적 사회 공학은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기 시작한 1989년 이후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고종석,2002).
⑩ 오이켄 사망(1926) : ⇨1월 5일.
⑪ 이사도라 덩컨(Isadora Duncan ; 1877.5.26 - 1927.9.14) : ⇨5월 2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이사도라 덩컨은 어린시절 약간의 발레수업을 받았으나 곧 신체의 움직임과 기교만을 강조하는 발레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무용세계를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순수하게 자신의 정서표현의 원천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덩컨은 1896년 뉴욕의 어거스틴 데일 극단에서 단역을 맡으며 데뷔하였고 1897년 런던으로 가서 여러살롱에서 최신무용을 선보였다. 1900년에는 파리에까지 진출하였고 1902년 부다페스트에서 무용활동에 비약적인 전진을 하게된다.
그리고 1905년 무용학교를 열었다.
1908년 파리에 정착하기는 했지만 지속적으로 유럽순회공연을 하였고 점점더 엄청난 추종자와 존경을 얻게된다.
반면에 그녀가 미국에 되돌아 갔을때, 반응은 냉랭하였다.
그후 1921-22년 모스크바에서 또 다른 학교를 세웠다.
그녀가 차 사고로 사망했던 1927년에는 나의인생이라는 자서전이 출판되었다.
이사도라 춤의 근원은 "바람과 파도 그리고 새와 벌의 날개 짓"이라고 할만큼 자연과 자연의 현상에서 창조적 에너지를 얻었다.
이런 이사도라 무용에서의 자연주의란, 인공적인 기교 제일주의의 고전 발레에 대한 반발인 것이며, 또한 기성의 음악곡으로부터 받은 인상을 그대로 춤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그녀는 기법이나 표현 그 자체에 대한 표현을 주장하였고 춤을 소수의 전문가로부터 개방하여 대중의 손으로 옮기는 일을 개척하였다.
영혼 회귀의 깊은 사고는 지극히 단순한 행위들인 걷기 뛰기 깡총거리기와 도약하기 등 지극히 일상적인 행동을 바탕으로 표현되어졌던 그녀의 춤과는 달리 그녀는 매우 복잡한 남자관계들로 세간에 눈길을 집중시키기도 하였으며 자동차 사고로 두 아이를 잃는 어머니로서의 가장 큰 비애를 맛보기도 했다.
무용가에게는 아주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비만증과 음주벽으로 생의 마지막 일 년을 보냈던 이사도라는 긴 스카프가 자동차 바퀴에 말려들어 질식사로 1927년 50 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⑫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 1929.11.12 ~ 1982.9.14) : 미국 영화배우 출신의 모나코 왕비.
⇨11월 12일.
⑬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 ; 1883.9.14 ~ 1966.9.6) : ⇨9월 6일.
미국의 산아제한운동 지도자.
뉴욕 출생.
여성은 제 몸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생명을 생성하거나 그 생성을 억제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는 그녀의 지당한 주장에서 청소년이 배제돼야 할 이유는 없다.
⑭ 웰링턴(Arthur Wellesley Wellington ; 1769 ~ 1852.9.14) : 영국의 군인․정치가.
인도․코펜하겐․포르투갈에서 무공을 세워 공작이 된 그는, 1815년 나폴레옹의 군대를 워털루(Waterloo)에서 크게 물리쳐 이름을 떨쳤고, 후에 토리당(Tory 黨)의 수상이 되었다.
⑮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 1843.1.29 ~ 1901.9.14) : 미국의 제25대(1897년~1901년) 대통령이다.
1901년 9월 6일 뉴욕 버팔로(Buffalo)에서 폴란드계 무정부주의자 청년의 저격을 받은 윌리엄 맥킨리(William McKinley) 미대통령이 결국 이 날 사망했다.
이로서 부통령이었던 42세의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가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그의 자리를 계승하게 되었다.
두 번째 임기 6개월만에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맥킨리 대통령은 재임 시절 미국 역사상 최고의 고 관세와 팽창주의 정책을 추구했다.
1898년 하와이 합병한 데 이어, 미서전쟁(미국-스페인 전쟁)의 승리로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괌 등을 획득했다.
버팔로 범 미 박람회(the Pan-American Exposition) 행사에 참석 중이던 맥킨리 대통령을 저격한 인물은 28세의 레온 촐고스(Leon Czolgosz)라는 이름의 폴란드 청년이었다.
이 청년은 당대의 저명한 무정부주의자였던 엠마 골드만(Emma Goldman) 등과의 만남으로 '무정부주의'에 심취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특정 단체에 가입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무정부주의자들은 국가 원수와 행정 관료, 부유한 자본주의가, 성직자 등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레온 촐고스 역시 이런 맥락에서 무정부주의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촉매제로 '대통령 암살'을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32구경 권총 두 발을 멕킨리 대통령에게 발사했고, 사건 8일 뒤 대통령은 결국 눈을 감았다.
⇨9월 6일.
⇨1월 29일.
⑯ 크리소스토무스(Johannes Chrisostomus ; 347 ? - 407.9.14) : 카톨릭 성인.
설교가.
안티오키아(안타키아의 옛이름)에서 그리스도교, 특히 성서의 가르침을 설교하였고, 후에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옛이름)의 총주교가 되었다.
교회 내의 도덕적 개혁에 주력하였는데, 반대자들의 박해를 받고 여행하던 중 피로와 열(熱) 때문에 죽었다.
그의 이름은 '황금의 입'을 의미하는 말인데, 그가 얼마나 웅변적인 설교가였는가를 나타내는 이름이다.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⑰ 기타 오늘의 인물 ⑱ ⑲
1601 멜레티우스 사망. 희랍정교회 소속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로 신학 논쟁과 교회정책을 통해 16세기 동방 기독교 계 전체에 걸쳐 희랍정교회 주도권확립
1638 하버드 사망. 메사추세츠 자치 부락부의 회중파 목사.하버 드대학의 명칭은 바로 그의 이름을 따른 것임.
1648 노이만 출생. 루터교 신학자이며 찬송가 작가.
1735 주일학교 창시한 영국 목사 레이크스 출생.주일학교의 창시 자.범죄를 예방하기 위하여 무료학교를 세워 교육시키자는 의도로 성당예배에 모아오고.그 댓가로 돈과 선물을 줌.
1849 러시아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 출생
1864 렌스키 출생. 그는 콜럼버스신학교에서 주로 주석과 교의학, 설교학 등의 분야에서 가르침.
1880 전택후 출생. 장로교 목사.북간도지방 개척전도자.1912년 신 앙의 자유를 찾아 북간도로 이민갔다.
1888 장로교 주남선 목사 출생. 신사참배 거부운동으로 옥고 치름. 고려고등성경학교 교장 역임
1899 영화감독-제작자 할 윌리스 출생
1944 여배우 조이 히더튼 출생
오늘의 세시⇨ 1월 14일.
① 매월 14일 기념일(十四日記念日) : 14일 기념일 또는 14일 데이는 대한 민국에 매월 14일마다 있는 연인들의 기념일이다.
밸런타인데이 외에는 대한민국에 국지적인 것이다.
(화이트데이는 일본과 타이완을 포함한다.)
⇨ 5월 14일.
[편집] 1월 14일 : 다이어리데이
연인에게 1년 동안 쓸 다이어리를 선물하는 날이다. 일년을 시작하는 의미로 제일 먼저 준비하는 것이다
9월 14일 : 포토데이
연인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나누어 갖는 날이다. 다이어리이. 좋은 선물이 되리라.
다이어리를 선물할 때 그 안에 기념일이나 생일 등을 표시해주면 서로 잘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②③④⑤
오늘의 샘터
① 이상의 <날개>에서 :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② 우화(寓話) <와각(蝸角)의 싸움> :『옛날 옛적에 달팽이의 왼쪽 뿔에 나라를 세운 자가 있었다.
이를 촉씨(觸氏)라고 했다.
오른쪽 뿔에는 또 다른 나라가 있었다. 이를 만씨(蠻氏)라고 했다.
두 나라간의 영토다툼은 끝내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번졌다. 전쟁은 15일이나 계속되다 간신히 끝났지만 그 동안에 서로 많은 피해를 보았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우화(寓話)다. 이를 ‘와각(蝸角)의 싸움’이라 한다.
두 뿔의 싸움으로 달팽이는 심한 몸살을 앓게 됐다.
③ 오늘의 문답 :'코‘ 이야기
제01문 : 당신의 코(鼻;nose)는 건강합니까?
제02문 : 당신은 축농증(蓄膿症 ; ozena)을 아십니까?
제03문 : 당신은 이비인후과(耳鼻咽喉科)를 아십니까?
제04문 : 당신은 남과 같이 나도 냄새를 잘 맡는다고 생각합니 까? <생각하지 않습니까?>
의 졸저<원저 편저자 (1973년도 초판)> 평택 소통 김평탁입니다.
1973년 초판 이래 조선일보를 비롯 각 신문들과 각방송국 특히 ytn 을 비롯하여 컴퓨터 인터넷.......오늘까지도 각 방송들과 신문 인터넷의 덕택으로 원저자의 보람을 온 국민들과 함께 만끽하며 감사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소생은 하나님의 말씀<성경>과 개인<일기>를 60여년 동안 지금까지 쓰고 보존해 오면서,
오늘의 국민 소통 운동과 우리 한민족 한가족 소통 운동을 제창하게 되었으며 다행히도 박근혜정부<한민족미래창조과학기술부>의 탄생을 한없는 기쁨과 소원<소망>을 기대하고 있답니다.
국민 여러분 !
그리고
국내외 동포<가족> 여러분 !
어서빨리 동서남북 우리나라 남북 평화 통일을 이루십시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샬롬 !
2013년 08월 13일 광복절을 앞두고
CCCC C-man 평택 소통 김 평 탁 올림
(국민소통운동본부.017-727-3863,(031)692-3650
평택건강생명사랑상담소<교회> 본교회는 상담 대화 토론 소통 중심의 교회입니다.
소통이란 말<용어>부터 살펴봅니다.
영통 0통 1통 2통 3통 4통 5통 6통 7통 8통 9통 10통 100통 1.000통 10.000통………….
소통은 바로 영통부터 시작됩니다.
소통=영통
소통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한 말이고, 영통은 사람과 하나님과 관계된 말로서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통한다는 말입니다.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사람 곧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는 절대관계 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 이며, 하나님은 창조주<조물주>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상대관계입니다.
절대관계 절대 !
상대관계 상대 !
우리 국가<민족>동포의 지도자<영도자>는 <영통>부터 시작하여(영통령)<소통령><중통령><고통령><대통령>(원통령)이어야 하겠습니다.
(국민소통운동본부.CCCC 017-727-3863,(031)692-3650 ,1588-9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