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국경을 넘어 네팔로 들어오면 인도 국민이나 네팔의 국민들이 다 가난해 가난해 보지이만 도로나 주변의 건물들을 보게 되
면 국력의 차이를 느낄 수가 있다.
당연히 네팔의 도로나 주변의 건물이 낡아있다.
네팔은 아시아에서 꼴찌에서 몇 번째 갈 정도로 가장 가난한 나라여서 전기도 시간제로 들어오는 나라이다.
우리가 갈 때는 1월로 그곳도 절기로는 겨울이기 때문에 저녁에는 쌀쌀하기 때문에 각자가 가지고 간 침낭을 침대위에다 놓고
침낭 속에 들어가서 잠을 자야 한다.
점심식사를 하러 들어가서 룸비니와 포카라 카트만두 등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니 이곳이 네팔인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인도의 소나울리와 같이 붙어 있는 네팔의 국경도시 벨라히야.. 쓸쓸한 모습이다....숙소를 가기 의해서 배낭을 짊어지고 간다.
네팔의 국경에서 룸비니로 들어가는 길은 잠간으로 해가 질 무렵이었는데 룸비니는 도시는 고사하고 마을도 보이지 않는다.
날이 저물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룸비니의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은 큰 담장으로 둘러쳐저 있고 나무들도 울창하여 안을 볼 수
가 없지만 주변은 추수가 끝난 넓은 들판에 까마귀만 날아다니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저녁에 잠을 그냥 자기가 뭣해서 걸어서 룸비니 게이트 앞에 있는 가게로 걸어가 봤지만 염주와 같은 불교 기념품과 용품을 파
는 곳이 몇 군데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벨라히야에서 룸비니로 가는 도중의 모습..해가 질 무렵이라서 더 적적해 보인다.
시타르타라는 게스트 하우스 지금도 있는데 3성 호텔로 나온다....짐을 내리고.
이 게스트 하우스는 석가 탄생지 바로 옆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이다.
방을 들어가는데 방은 썰렁하다...이곳은 전기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난방은 안된다고 보아야 한다.
저녁 식사는 숙소에서 줄 때도 있고 아니면 자신이 알아서 사먹어야 하거나 해 먹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숙소에서의 전망...까마귀만 들판 위에 날아다닌다.
시타르타 게스트 하우스라고 하였는데 힌두교 신들만....
룸비니 정문이 있는 쪽 담장..건물이 보이는 쪽에 정문이 있다.
옥상에서 보이는 동쪽..주변이 다 이렇게 생겼다.
들어가는 정문.....정문 아치 위에 있는 상징물을 보게 되면 네팔의 불교는 티벳불교의 계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룸비니에서 부처님이 태어나신지는 지금부터 2570년 전으로 전세계의 불교신자들의 마음의 고향이나 마찬가지 이지만 네팔도
힌두교도가 81%가 되고 불교는 11% 이슬람이 4%라고 하니 네팔의 국교는 힌두교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래서 이곳 역시 사르나트처럼 세계 불교인들의 순례지요 관광지의 성격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밖에 없다.
만약 네팔이 불교국가 였더라면 국가적 차원에서 이곳을 성역(聖域)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곳이 석가의 탄생지로 확인이 된 것은 1895년 독일 고고학자인 포이러(Feuhrer)가 이곳에서 석주 하나를 발견하여 그 석주
가 아쇼카왕의 석주로 밝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불교가 쇠퇴하였다고 하더라도 불교는 그 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가서 국교화가 된 나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
고 석가의 탄생지가 잊혀지게 된 것은 불교가 힌두교나 이슬람으로부터 배척을 당했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페허를 만들고 땅
속에 묻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렇게 흔적이 이렇게 사라질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패자의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말살이 되는 것처럼 그 지역에서 패배한 종교는 흔적이 말살되는 것이 인생사와 다를 바가 없다
는 생각이 든다.
이곳이 석가의 탄생지로 밝혀지면서 발굴을 하게 되고 룸비니의 석가의 탄생과 관련된 유적지가 1997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
으로 등제되었다고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룸비니 경내
숙소에서 걸어서 룸비니 정문으로 들어가서 정문에서 아쇼카왕의 석주와 석가가 탄생한 자리 위에 세워진 마야 데비 템플이
있는 곳까지는 한참을 걸어들어간다.
걸어가면서 주변을 둘려보니 장방형으로 된 경내가 무척이나 넓다.
아쇼카왕 석주 근처에는 동남아의 불교국가들과 개인 순례자들 그리고 관광객들이 기도를 하거나 단체로 설명을 듣거나 하면
서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
경내라고 하더라도 아직 정비가 되지 않은 곳이 많다.
이런 길을 한참 걸어서 들어간다.
우리 말고도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이 보이고....
마야 데비(석가의 어머니)사원의 담장에 걸려 있는 타르쵸...이곳은 티벳불교의 영향을 받는 듯
우리는 순례를 위해서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면서 둘러보아야 하기 때문에 차분하게 들러 볼 시간이 없다.
따라서 중요한 부분들만 주마간산 식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여기도 아쇼카왕의 석주가 세워져 있다.
여기에 있는 석주는 석주 위의 사자상만 없을 뿐 온전하게 남아 있는데 마찬가지로 아쇼카왕의 석주를 보고 부처님의 탄생지
를 확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여기가 부처님이 탄생한 곳이라면 주변에 불교유적지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유네스코에
서 주변의 불교 유적지들을 발굴하고 있다고 한다.
경내에는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보리수나무들이 많으며 보리수나무에는 손바닥한 천에 불경을 적은 타르초라고 불리는 깃발
들이 만국기처럼 달려있고 사람들이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예배를 드리고 설법을 듣는다.
아쇼카왕 석주 앞에서...비록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이 곳에 태어나심과 인류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고행한 것에 대한 감사기
도를 올렸다.
구룡연못...마야부인이 석가를 낳기전 목욕을 하고 낳고 나서 석가를 씻긴 곳이라고 한다.
구룡연못과 보리수 나무 보리수 나무를 잡고 석가를 낳았다고...
이 보리수는 그 때의 보리수가 아니다....2,50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니
타르초가 걸려 있고 사람들이 기도를 한다.
보리수 나무 밑에 기도를 하기 위해서 모인 승려들(?)...참고로 타르쵸와 룽다는 경문을 프린트 하여 바람의 힘으로 경문을 전파
하는 목적은 같으나 룽다는 장대에 세워서 깃발처럼 달아놓은 것을 룽다라고 한다.
기념진을 찍는 승려들...복장을 보니 아마도 티베트의 승려들인 듯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예불을 드린다.
마야 데비 템플... 내부에는 석가가 탄생한 장소와 석가가 걸었다는 발자국이 있다는데 는데...내부는 사진을 못 찍게 한다.
탄생의 신비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닌지
아쇼카왕의 석주...순례를 온 사람이 기념품을 걸어 놓았다.
마야데비 템플과 아쇼카왕의 석주를 보고 난 뒤 경내를 둘러보기로 한다.
https://youtu.be/G_Q_JfFwlRs?si=vILG7Z-hUGnxCB28...룸비니 유튜브
첫댓글 싯다르타 왕가가 다스렸던 나라가
인도 변두리 빈국이란 것만 알았는데
이제야 제대로 알았습니다.
여행기.
의미심장하게 읽었습니다.
불교신자라면 꼭 한 번 네팔과 인도는 가 보아야 할 곳이지요
불교신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간과 종교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싶다면
반드시 가 보아야 할 곳이 네팔과 인도지요
시타르타 게스트하우스.
석가가 탄신한 바로옆이라. .
룸비니옆. 그주위는 흰두교 상들. 국교가 흰두교이다보니.성지순례하는분들만 찾게되겠네요
패자와승자. . 인생사. 라
화려하지않지만 불교신자들에겐 조용히 생각할수있고 불경드릴수있는 . 좋은곳이란생각이 듭니다..
불교신자로서
뽕망치님의글과 사진보면서
경건함을 갖습니다. .
타종교에 대한 몰이해와 배척 ...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깝지요.
어떤 나라가 정복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그 나라의 종교를
박해하거나 말살하게 되는데 종교가 구심점이 되기 때문에 그 구심점을
없애기 위해서이지요 통치나 합병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땅에 유교가 없어지게 된 배경도 그렇습니다.
일제가 유교를 말살시켰지요..
일반인에게 유교는 제사나 차례 같은 문화행사 정도로만 남게 된 것도
같은 배경입니다
정복을 하면 제일 먼저 구심점이 되는 종교부터 제거를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