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에는 이기적
요한일서 4:7~11 / 이규현 목사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한일서 4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과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주기 원하십니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요한일서를 기록한 사도 요한은 사랑의 사도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사도 요한을 가리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요 21:20)”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사랑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려야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셀 수 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교리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대하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우리 가까이 오셨습니다. 우리와 교감(交感)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해지면, 하나님과 사랑하는 관계가 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요한일서 4장 10절에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지식적으로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소극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양보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양보한다면,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한 번 경험한 사람이 더 경험하기 원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받을수록 사랑을 더 받고 싶어 합니다. 사랑이 깊어지기를 원합니다. 사랑을 아는 사람이 사랑을 갈망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고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고백하셨습니다. 아가서를 보면,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매우 사랑하여 술람미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사랑하는 솔로몬을 피해 도망갔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우 적극적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시는데,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마음 문을 쉽게 열지 않는 듯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짝사랑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이기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간절히 갈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원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아가 8장 6~7절에 보면,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적극적으로 사랑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열렬히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소극적으로 반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지식적으로 알 뿐 하나님의 사랑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만큼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합니다. 사랑을 충분히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사랑을 충분히 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온전한 사랑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충분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절망합니다. 괴로워합니다. 방황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완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충분히 사랑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가장 강력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교리로 이해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야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바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움직입니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라면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부모로부터 사랑을 충분히 받은 사람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어려움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세상에서 받은 상처가 치유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내면에 상처가 많습니다. 십자가는 모든 상처를 치유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묵상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8~19절에 보면,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찬송가 304장 3절에 보면,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을 때,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자존감이 생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십자가를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을 사랑합니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무시합니다. 자기를 멸시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무시하고 멸시하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낍니다. 이런 사람은 인간관계에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오늘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를 학대하고 멸시하고 경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아야 합니다.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란 사람은 자존감이 높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기애가 중요합니다. 건강한 자기애는 건강한 삶의 기초가 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비난해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주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실 만큼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십자가를 깊이 경험한 사람은 열등감이 전혀 없습니다. 모든 상처가 치유됩니다. 십자가를 통해 상처보다 더 큰 사랑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순수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거짓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러한 사랑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언가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조건을 전혀 갖추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자신이 소중한 존재인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소중한 존재인 것을 깨달은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소중한 존재인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통해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 참된 사랑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우리는 참된 사랑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 참되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시듯이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주실 만큼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1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삶의 근거가 됩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합니다. 사랑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노력해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을 받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은 만큼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사람을 사랑할 줄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사랑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사랑으로 반응합니다. 이것이 예배요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진 자로 삽니다. 하나님께 진 사랑의 빚은 우리가 일평생 노력해도 갚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보답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음으로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반응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가진 향유가 얼마나 비싼 것인가를 잊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본 가룟 유다는 마리아에게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요 12:5)”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마음이 넓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사랑하는 방법을 압니다.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압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가를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길 줄 압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관심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마음이 넓습니다. 시야가 넓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삶이 풍성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좁아집니다. 독선적입니다. 무엇을 하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종교생활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합니다. 우리는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 자기중심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합니다. 다른 사람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때로는 폭력적입니다.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아가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성장합니다. 사랑을 받을수록 관대해집니다. 부드럽습니다. 다른 사람을 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충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할 때, 원망과 불평이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불안, 두려움, 절망이 없어질 것입니다. 상처와 아픔이 모두 치유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감(交感)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예배와 찬양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만큼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통해 회복될 것입니다. 삶이 풍성해질 것입니다.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
출처: ╋예수님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