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은 계속하여 진화한다. 2019년 10월 '안녕인사동'이라는 복합문화공간이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동 건물 지하에서 2020년 9월 13일까지 전시하는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관람을 기회로 방문하였다.
트렌디한 분위기의 '안녕인사동'은 놀거리, 먹거리, 쇼핑거리, 그리고 잠자리(호텔)까지 겸비한 말 그대로 한 공간에서 모든 것을 즐기는 공간이다. '인사둘레길'이라고 불리는 길을 따라서 구경하는 것도 좋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건물 전면에 2개의 박물관과 전시 간판이 눈에 들어오는데, 빨간색 광고판은 6층의 '컬러풀 뮤지엄' 과 그 아래 지하1층의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이다. 나는 오늘 초현실주의 작가 마그리트 전시회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인데, 여기에서부터 마그리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성인 1인당 티켓은 15,000원이다.
입장하기 직전 티켓 부스 옆의 모자 벤치이다. 그 뒤에 사과로 가린 중절모 신사의 그림 <사람의 아들>(1964)이 보인다. 회화에서 유명한 화가들은 고금을 막론하고 잘 그렸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기억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린 예술가라면 성공한 것이리라.
그런데 아래 그림의 왼쪽 팔꿈치 양복 주름 선을 자세히 보면, 왼쪽 팔꿈치가 돌아가 있다. 갑자기 소름~ 또한 사람의 얼굴에 사과를 놓아 얼굴 표정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은, 뭔가를 숨기고자 하는 사람의 이면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위의 그림과 함께 보면 재미있을 듯하여, 르네 마그리트(1898~1867)가 중절모를 쓰고 사과를 들고 있는 사진을 아래 붙여보았다. 그는 양복재단사인 아버지와 모자를 파는 가게를 운영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입장하면 르네 마그리트 관련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날개를 단 천사가 다리에서 저 편을 향해 응시하고 있는데, 반대쪽을 사자가 응시하며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는 기존 화가들이 기존에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대상들을 어떻게, 어떠한 다른 방식으로 그려내는지 촛점을 맞추었다면, 마그리트는 그려야 할 대상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왜' 그러한 그림을 그리는지, '어떻게' 그리는 지에 대한 방법은 무시했다.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무엇'을 그리는 것에 골똘히 생각했다.
그는 1898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196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사망했다. 초현실주의 작가로서 상업적인 광고 작업을 진행했다. 예술도 산업화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과거 소수에 의해서만 향유되던 예술품들이 복제를 통해 또한 광고를 통해 무한 재생되는 시대가 되었다.
무한 재생산되는 복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그래서 '르네 마그리트'전시회도 원작이 아니라 미디어와 스토리로 꾸며진 잘 설명된 전시회를 경험하고 있다. 본 전시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멀티미디어 체험형 전시라고 한다. 그림들에 따라서 반드시 원본을 봐야 감동일 일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최근 가수 혹은 화가인 조영남 사건으로 비추어, 아이디어가 중요하니 말이다.
마그리트는 1915년 브뤼셀예술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받았다. 1920년대초 그림들은 기하학적인 구도에 기반을 두고있다. 입체 미래주의(Cubo-Futurism)이라 칭한다. 그런데 그는 추상미술에서 1차세계대전으로 파생된 다다이즘에 관심을가졌고, 이후 조르주 데키리코 그림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게 된다
위 왼쪽 <군사 후퇴>(1920) 종이에 템페라, 위 오른쪽 <피아노 치는 소녀>(1921), 캔버스에 유채, 아래쪽 <여기수>(1922) 판지에 유채
위에서처럼 그는 처음부터 초현실주의 작가는 아니었다. 1922년 즈음 이탈리아 조르주 데 키리코의 작품을 보고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서 '무엇을 그릴 것인가'로 전환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단독적으로 뭔가를 이루지 않는다. 항상 주변의 무언가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한다.
아래 그림이 마그리트가 영향받은 키리코의 <사랑의 노래>(1914)이다. 서로 어떠한 연관이 있는 대상들일까? 여기에서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 기법이 나오게 된 것이다. 서로 관련 없는 물건들을 한 공간에 그리는 것 말이다.
<은빛 심연>(1926) - 나무껍질 안에 차가운 금속같은 은색의 물질이 보인다. 상반된 느낌의 두 물질의 결합이다.
여기저기에서 등장하는 그의 그림인 <연인들>(1928)이다. 머리에 천을 뒤집어 쓰고 있는 추정 남녀가 윗 그림에서는 키스를 하고 있고, 아래에서는 그냥 나란히 사진사를 응시하는 듯한 2개의 그림이다.
무엇이라는 정답이 있는 그림들일까? 해석은 관람자 각자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자기만의 해석을 가지면 된다. 예를 들면 얼굴 없는 사랑, 정체성 없는 인간 군상, 비밀을 간직한 연인들 등등으로.
<불가능을 시도하다>(1928)이다. 마그리트가 그의 아내 조제트를 그리는 광경을 그리고 있는 장면이다.
아래의 흐릿한 사진은 그가 조제트를 그리고 있는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이다. 사진술의 발달은 작가들의 상상을 더 넓혔다. 사진에서는 조제트가 옷을 입고 있다.
제목인 <불가능을 시도하다>에 따르면, 마그리트는 그녀의 오른쪽 팔을 그리다 만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이라는 것의 경계를 확실히 하고 있다.
<잘못된 거울>(1935)이다.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을 보고 있는 눈동자를 그렸다. 왜 잘못되었는지는 모른다. 어떤 경우 작품 제목에 너무 경도되지 말라고도 한다. 그냥 우리가 보고 느끼는 대로 생각하면 된다. 그 아래에 <붉은 모델>(1937) 그림은 물건인 신발과 사람 신체의 발을 융합시켜 놓았다. 신발이기도 하고 사람의 발이기도 하다.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에 양가성이 있다. 우리는 뭐라고 확실하게 단정지을 수 없다. 항상 뭔가 확실한 것을 향해, 답을 향해 가지만 답은 없다.
왼쪽은 <흑마술 Black Magic>(1945) - 자연과 인간의 합성이다. 자연이 되고자 하는 인간을, 혹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자연이다.
오른쪽은 <불확정성 원리>(1944) - 사람인데, 그림자는 새이다. 사람인가 새인가? 새처럼 훨훨 날아가고자 하는 자유를 열망하는 인간인가, 사람이 되고 싶은 새인가?
<전생>(1944) - 1940년대 2차세계대전이 한창인 시기이다. 전쟁의 우울한 분위기에 오히려 인상주의 기법으로 화려한 색감을 사용하고 있다. 그의 '르누아르 시기'라고 부른다.
<인간 혐오 The Misanthrope>(1942)이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이다.
바슈 시기의 그림이다. 야수파인 포비즘(fauvism)을 패러디하여 프랑스어로 암소를 뜻하는 '바슈(vache)'라고 하였다. 맨 오른쪽 그림은 마티스 기법과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거친 후 마그리트는, 다시 자기 스타일로 돌아온다.
아래 바탕 그림이 그 유명한 <골콩드>(1953)이다. 혹은 <겨울비>라는 제목도 가지고 있다. 휴스턴의 매닐 컬렉션에서 소장하고 있다. 특징 없는 동일한 사람들이 하늘에서 끊임없이 내려온다. 비처럼. 재생산 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처럼 말이다. '골콩드'는 인도에서 과거 다이아몬드 광산이었는데 오늘날 폐허가 된 곳이라고 한다. 혹자는 네이팜탄이 떨어지는 전쟁의 공포를 표현한다고 했다. 해석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마그리트는 관람객이 자신의 그림을 보고 상상하고 생각해 보기를 원했다.
내가 마그리트를 알게 된 것은 맑은 하늘 아래 어두컴컴한 밤의 가로등불 회화 때문이었다. <빛의 제국>시리즈인데, 동일 주제의 변주곡과 같이 가로 세로가 다른, 또한 나무들이 다른 여러 버전의 그림들이 있다.
<빛의 제국>(1949)
<빛의 제국>(1950)
<빛의 제국>(1954)
<빛의 제국>(1952)
이제부터는 관람객이 체험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관람객이 직접 거울 앞에서면 마그리트의 회화 기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창 밖에 똑같은 인간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다. 모든 것이 똑같은 획일화된 모습, 영화 <매트릭스>가 마그리트로부터 일부분 영감을 받았다.
마그리트의 트레이드마크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Ceci n'est pas une pipe.'이다. 타이틀은 <이미지의 배반>(1929)이다. 관람객은 이 조형물 안에 들어가서 직접 파이프를 잡고 사진 촬영도 할 수 있다.
위의 그림에 영향을 받아 미셸 푸코가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파이프 그림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쓴 것은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대표적인 해석이 "그래, 나무로 만든 물질로서의 파이프다 아니지 않는가? 그냥 종이 위에 펜으로 그려놓은 것일 뿐이지."
관람객의 체험관은 계속 된다. 내가 그림 앞에 섰더니, 아래와 같이 표현되었다.
그의 사진들 모음 공간이다. 젊었을 때의 풋풋함이 느껴진다. 그는 한 명의 아내인 조제트와 평생 함께 했고, 나란히 묻혀 있다.
마그리트를 공부하고, 마그리트를 체험하고, 이제 마그리트 그림들을 한꺼번에 미디어 아트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에 왔다. '인사이드 마그리트 미디어 아트관'이다. 상영시간은 총40분이다. 그냥 벤치에 앉아 있어도 되고, 걸어다니면서 감상해도 된다. 그의 작품들이 총 망라되어 있다.
아래 돌그림의 글자는 <REVE>, '꿈'이라는 뜻이다. 황량한 사막에 꿈이라고 쓴 단어와 그 파편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모든 관람을 마치고 나서면 마그리트와 같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설명이 있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프랑스 작가 이브 탕기(1900~1955)
이탈리아 작가 조르조 데 키리코(1888~1978)
독일 작가 막스 에른스트(1891~1976)
독일 태생 스위스 작가 메레 오펜하임(1913~1985)
스페인 작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
Exit로 가는 길이다. 방 안에 꽉 찬 파란사과.
관람을 마치고 아래 공간에서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다. 천장에 솜으로 만든 구름들이 둥둥 떠 있다.
최근 기획을 통해 진짜 작품을 보지 않고도, 작품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행해진다. 문화를 향유하는 대상이 평준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