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73) - 가마 탄 아씨
가난 탓 공부 그만둔 춘복이
고구마 팔다 소녀를 보는데…
추수가 마무리되자 훈장님도 바빠졌다.
치부책을 펼쳐놓고 학동들 학비가 제대로 들어왔는지 하나하나 점검을 하는 것이다.
“춘복아, 너는 남아서 나하고 이바구 좀 하자.”
열여덟명 학동은 우르르 서당을 나가서 집으로 달려가는데 춘복만 남았다. 용건이야 뻔한 일이다.
“훈장님, 어머니가 밤잠 안 자고 바느질해도 병석에 누워 있는 아버지 약값….”
땅땅, 훈장님이 장죽을 놋재떨이에 두드리는 소리에 춘복은 화들짝 놀랐다.
“네 어머니도 사람이 낯짝이 있지그래.”
춘복은 담 밖에서 실컷 울고 우물에서 세수하고 집으로 들어가 여섯달째 누워 있는 아버지 다리를
주무르다가 산으로 올라가 솔잎을 긁어모아 부엌 아궁이 옆에 쌓았다.
어머니가 잔칫집 허드렛일을 해주고 남은 음식을 싸 와서 솥에 넣고 장터 바닥에서 주워 온 배춧잎을 보태
꿀꿀이죽처럼 끓여서 한끼를 때웠다.
이튿날 서당을 가지 않는 춘복을 감싸 안고 등을 쓰다듬으며
“글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란다”며 어머니는 목이 메었지만 열세살 춘복은 울지 않았다.
춘복은 산에서 진흙을 퍼 와 장터에 화덕을 만들었다.
석쇠 위에 솔잎을 깔고 그 위에 고구마를 얹어놓고 마른 솔잎에 불을 지폈다.
군고구마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장사는 잘됐다.
어느 장날, 두 사람이 메는 조그만 가마가 지나가다가 멀찍이 멈추더니 앞의 가마꾼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춘복에게 와 군고구마 한냥어치를 달라고 하는데 가마 창문이 열리며 열댓살 먹은 여자애가 파리한 얼굴로
신기한 듯이 쳐다봤다.
춘복은 창피하기도 하고 이유 없이 적개심도 생겨 몰래 군고구마에 침을 퉤 뱉었다.
서당 다닐 때 공부하던 천자문 책 한장을 북북 찢어서 뜨거운 고구마를 싸줬다.
이레가 지난 다음 장날, 또 그 가마를 이번에는 좀더 가까이 세워놓고 가마꾼이 왔다.
가마 창이 열리고 그 여자아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이번에는 군고구마에 침을 뱉지는 않았지만
‘저년은 무슨 팔자로 태어나 가마를 타고 하인을 저렇게 부리나그래’ 하고 생각했다.
소설이 지나 날씨가 한층 추워졌다.
장날이 돌아왔는데도 그 가마는 오지 않았다.
춘복은 자기도 모르게 가마를 기다리고 핼쑥한 그 여자아이도 기다렸다.
달력 한장을 건너뛰고 그다음 장날, 가마는 오지 않고 가마꾼 혼자서 왔다.
군고구마 세냥어치를 사 가며
“우리 아씨가 이걸 너한테 전해주라고 하더라. 아씨가 손수 뜨개질한 거다.” 귀덮개였다.
“아저씨, 군고구마값 안 받을래요.” 가마꾼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춘복은 벌렁벌렁 가슴이 뛰었다.
귀덮개를 고이 품 안에 넣고 대폿집으로 들어가 생전 처음 막걸리 한잔을 쭈욱 들이켰다.
그다음 장날도 가마는 오지 않았다.
‘가마가 오면 내가 손수 고구마를 싸 들고 가마 창 안으로 넣어줄 텐데….’
그다음 장날도 또 그다음 장날도 가마는 오지 않았다.
핼쑥한 그 여자아이를 잊으려 해도 매일 쓰는 귀덮개 때문에 생각이 났다.
어느 날 밤 꿈속에서 춘복 자신은 사모관대 차림에 그 창백한 여자아이는 족두리를 쓰고 맞절하고 있었다.
아직도 추위는 완전히 물러가지 않았지만 입춘이 지나자 봄기운이 완연했다.
어느 장날 춘복이 깜짝 놀랐다. 장꾼들 틈에서 가마꾼이 보였다.
“아저씨, 제가 대포 한잔 모시겠습니다.”
“자네는 누군데…?”
“군고구마 장수예요.”
“그래그래.” 춘복이 태어나서 두번째로 술을 마셨다.
가마꾼 아저씨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가마를 타고 다니던 화심은 유 대인의 손녀로 하나뿐인 핏줄이다.
유 대인의 삼대독자인 화심의 아버지는 무관으로 병자호란에 참전하여 전사,
유골을 받아 든 화심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몇달을 버티다가 남편 뒤를 따라갔다.
화심은 극심한 소아마비로 혼자 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마를 타고 다녔어요?”
“그려, 거기다가 폐병까지 왔지 뭔가.”
춘복 눈에 눈물이 고였다.
“대설 때 저 부모 따라 갔네. 불쌍한 우리 아씨.”
이튿날, 고개 넘고 강 건너 춘설이 난분분한 산으로 가마꾼 아저씨는 술 호리병을 들고
춘복은 군고구마를 싸 들고 열다섯에 이승을 하직한 화심의 묘 앞에 엎드렸다.
[출처 ] 농민신문 사외칼럼 -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