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인도 태생의 소년 파이가 가족과 함께 캐나다 이민 길에 올랐다가
태평양 한복판에서 폭풍우로 배가 침몰하자 배에 실려 있던 동물들과
구명보트 안에서 표류하게 되는 스토리를 가진 영화였다.
영화의 원작은 영국의 부커상을 받은 스테디 셀러 소설로
227일간의 조난에서 살아남은 어른 '파이'가 어떤 소설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
영화화에서는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
이 영화가 3D와 CG그래픽을 동원했다는 것도 나에게는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내가 본 것은 디지털이었다.)
다만 태평양 한 복판에서 조그마한 구명보트 안에 맹수와 동반하게 된 소년의 상황이
마치 악몽 속의 장면처럼(그러나 기이한 아름다움을 주는) 괴기스러웠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우리가 공포 소설이나 괴기. 재난 영화를 즐기는 것은
우리 무의식 속에 잔류해 있는 '낯설지만uncanny, 익숙한canny' 무의식적 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유아기의 의식이 경험한 공포를 영화나 소설을 통해 반복 추체험함으로써
그것을 안전하게 재구성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이 언제 낯선 것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역시
그러한 재난 영화나 공포 소설을 원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소년은 졸지에 가족을 잃고 우리를 벗어난 벵갈 호랑이와 함께 동거하게 되었으니
공포의 조건은 완벽하게 충족된 셈이다.
이 영화는 결코 맹수와 인간 사이의 우정을 다룬 감동적인 어드벤쳐 영화는 아니다.
소년은 구명보트에 연결된 쥬브로 피신해 무서운 호랑이의 생존욕과 대결한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오히려 바다 속에서 물고기를 잡아올려
호랑이를 먹여살리는 나날로
생명을 이어가는 기묘한 처지에 빠진 것이다.
그것도 우정이라면 우정이겠다.
그런 기묘한 상황이 재난이 아니라 일상적인 현실에서 가능할까.
나는 그러한 상황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본다.
죽지 않기 위해 살아야 하는 현실이 어디 태평양 한복판에만 존재하랴.
오히려 그 편이 예외적인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 점이 태평양 한복판에서 홀로 호랑이와 조우하게 된 소년의 그림이 가져다 주는 기이한 아름다움이었다.
한 폭의 그림과 같은 그 장면이 기이하게 낯설고 기이하게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악몽 속에서 언젠가 본 듯한)주는 이유였다.
소년과 호랑이는 227일 간의 사투 끝에 또 한번 폭풍우를 만나 해안 가에 이르고
소년이 사람들에게 구조되는 한 편으로 호랑이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으로 발걸음을 옮겨놓는다.
그런 호랑이를 보면서 소년은 안도감과 함께 묘한 배반감을 느낀다.
그토록 극적으로 생사를 같이 했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서 가다니....
이 마지막 진술은 역시 맹수와 인간은 함께 할 수 없다는 메세지를 들었다고 한다면 절반만 이해한 셈이다.
인간인들 아무리 생사고락을 같이 했다고 한들 떠나야 할 때가 오면 떠나야 하지 않는가.
뒤를 돌아보든 안 보든 그것은 외관상의 차이에 불과할 것이지 않는가.
떠날 때는 말없이...그것은 아마도 의지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소통이 불가능하고 의미를 잃는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과의 사이에, 인간과 인간과의 사이에 아무리 언어를 채워넣고 의미를 채워넣어도
채워지지 않는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 역시 인간에 대해서 완벽하게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자연의 일부인 것이 아닐까.
그것이 타인이 아닌가. 타인은 언젠가, 어느 순간 저 벵갈 호랑이처럼 나에게 등을 보이고 숲으로 걸어들어가는
존재가 아닌가.
애인들은 그것이 안타까워 밤새도록 서로를 바래다 주다 새벽을 맞는 것이 아닌가.
언제쩍 애인을 배웅해 주는 플랫홈에서 전차가 출발하자 곧장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는 그녀를 보고
나는 실망해서 다시 그녀를 볼 용기를 잃은 적이 있었다.
그 후로 나는 헤어질 때면 반드시 물리적인 이유로 시선이 차단되지 않는 한
오래도록 상대에게 눈을 주는 버릇이 생겼다.
최소한 열차의 창이 몇개는 지나갈 때까지 차 안의 상대를 찾으며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야만 그녀가 간 자리에서 풍기는 고독감과 낯설음을 모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상대 역시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진 않는다.
그것이 단순히 나에 대한 무관심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거나 사소한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래도록 나를 잡아두고 싶지 않은 배려에서 즉시 시선을 거두어갔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아무튼 타인이란 그런 존재다. 타인에겐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을 존중하도록 하자.
콜라텍에서 나는 가끔 실험을 할 때가 있었다.
내 시야에 포착된 한 여인에게 눈을 주며 저 여인이 나를 돌아본다면
그녀에게 다가가 프로포즈를 할 것이고
몇 분이 지나도록 돌아보지 않는다면 춤 신청을 포기한다는 식으로....
그러나 그런 무언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녀가 돌아본다면 당연히 다가가겠지만(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돌아보지 않아도 나는 그 약속을 스스로에게
취소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단지 나에게는 결심을 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래의 그림은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순수의 시대'의 한 장면.
1870년대 미국의 상류사회의 관습을 다룬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약혼녀와, 이혼을 하고 돌아온 평이 좋지 못한 사촌 여인 사이에서 선택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남자이다. 그는 관습과 정열 사이에서 방황하는 남자다.
저 그림은 그가 문제적이지만 매혹적이라고 생각하는 이혼녀 사촌 여인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몽환적인(!) 장면인데
그녀의 등진 모습을 몰래 바라보며 주인공은 그녀가 뒤돌아보면 그녀를 선택하고
뒤돌아 보지 않으면 평범하지만 장래가 보장되어 있는 약혼녀를 택하겠다고 무언의 실험을 한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뒤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포기한다고 그는 자신의 감정을 합리화한다.
세월이 흐른 후 그녀가 이민 가 살고 있는 영국의 런던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던 그는
그녀의 집 창문 아래까지 찾아가지만 그때 역시도 그녀를 방문하지 못하고 뒤돌아선다.
역시 그 집 창문을 올려다보며 그는 창문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열리기를 바랐던 것일까.
** 최근에 어떤 여자를 바래다 주려 한 적이 있었다.
이 여자는 나에게 " 여기서 헤어지는 게 편하다." 라고 나에게 바래다 주는 것을 거절하는 게 아닌가.
기분이 드러웠다.
애써 그녀를 바래다 주고 싶은 나의 마음에는 꼭 그녀에 대한 이성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동기는 언제나 최저선과 최대치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난 단지 사람의 정을 발휘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기껏 바래다 준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닐 텐데..나는 친하다고 여겨서 바래다 주고 싶었던 뿐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녀는 애초에 나의 행동을 차단해서 어떤 여지를 두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경계선 장애자일까?
이런 자기 검열이 슬프고 화가 났다.
앞으로는 친해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게 분통이 터지는 일인 게다...
박찬욱의 영화 '스토커'에 보면 형이 동생에게 "우리는 너무 사랑해서는 안 돼. 조금만 사랑하는 거야." 하고 거리를 두자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생은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었고 형은 퇴원한 그를 아내와 딸이 있는 자기 집으로 데려가는 것에 우려를 느낀 것이다.)
"알았어, 형. 그럼 조금만 사랑할게."
하고 동생은 길가의 돌멩이를 주워 형을 때려죽이고 형 집에 들어가 형수와 질녀를 유혹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내겐 언제나 인간 관계를 사고할 때 이 장면이 떠오른다.
경계를 정해놓고 행해지는 인간 관계?
글쎄다.
나도 그런 경계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첫댓글
아무튼 타인이란 그런 존재다. 타인에겐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등ᆢ
해설속에 의미심장한 글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ㆍ
이따 또 읽어 볼께요
유월의 첫 주말 ,
기쁨으로 가득하시길 ~~
핵심을 아시는군요. 감사합니다. ㄱㄱ님
다른 쟝르의 세가지 영화를
연결하여
디테일한 감정을
디테일 하게 표현 하셨네요
역시,
골트문트 아니 지우1님
아니, 지솔님 😋
역시 프시케, 아니 사이키, 아니 프시케^^
https://youtu.be/UJ8RBj_P0KQ?si=JNLS2I_gcVcfgGSV
이곡을 선물합니다
노래도 좋지만
영화
조블랙의 사랑
영상이 좋아서
실은
길에서
서로 시간차를 두고
계속 뒤돌아보는
그 장면 참 좋았는데
PLAY
이 글을 보며
급 떠오른 영화
엉뚱 프시케🤭
.
실은 그 영화를 안 보았습니다.
(나에게는 자주 있는 일)실은 나에게 내재해 있는 비슷한 컨셉이 훼손될까 봐, 실망할까 봐 보는 것을 미루고 있었는데 프시케님이 권하시니 보지 않을 수 없겠네요.
@지솔
강추~! ^^
참 재미난 영화 이야기에서 깊은 정신의 사유를. 끄집어 낼줄아는 지솔님~~
믓진글 잘 읽고 갑니다.
자기의 느낌은 자기의 것... 그냥 그런가부다 하는게 젤 좋은 듯요~
그리고 실지 그러하고요~^모든 것은 실상 그닥 진지하지 않기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