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평가지침 (잠2-131)
2024년 6월23일 (주일)
찬양 :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본문 : 잠26:13-16절
☞ https://youtu.be/4b3_I4Sd80Q?si=6pPmPLVnc8Kp9nvd
거룩한 주일 아침, 내 온몸과 영혼이 주님을 예배하는 자 되기를 소망한다. 주님 받으소서. 모든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여러 생각들이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시다. 오늘 40년을 목회하시고 은퇴하시는 목사님이 계시다. 40년 한길을 걸어오시면서 많은 일을 겪었음에도 주님을 향해 달려오신 목사님의 사역을 응원하며 앞으로의 길에도 주님의 선한 손이 인도하시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게으른 자>에 대한 4가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13-16절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이것은 게으른 사람이 일하기 싫어서 핑계를 대고, 상상 속의 위험을 과장하여 변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게으른 사람은 이렇게 늘 다양한 변명과 핑계를 만들고 상상의 위험을 과장하여 일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문짝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게으른 자는 침상 주위를 돌 듯 자신이 무엇을 생산적으로 하려는 의지와 활동 없이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말한다.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게으른 사람이 얼마나 모든 일에 귀찮아 하는지를 보여주는 재미난 비유다. 밥 그릇에 손을 넣고도 올려서 먹는 일도 괴로워할 정도로 나태하다는 것이다.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이것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며, 실제로는 아무런 성과도 없으면서 자신의 생각이 가장 옳다고 생각하고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 생각에 빠져 타인의 조언과 비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거룩한 주일 아침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내게는 두 가지가 걸린다. 하나는 <사자가 있다>는 핑계거리를 찾는 마음들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는 타인의 조언과 비판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교만한 마음이다.
삶을 살면서 위험을 과장하며 변명과 핑계거리를 찾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려는 마음들이 내 안에 있음을 자백한다. 적극적으로 찾아가려는 마음으로 변명거리를 내려놓아야 한다. 웨이브리즈 플랫폼은 이런 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분야다. 내가 잘 모르기에 자꾸 <사자가 있다>는 변명이 끊임없이 나온다. 이것을 넘어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게으른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란 사실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내게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며 상대방의 소리를 진심으로 듣고 조언과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함이 부족하다. 들으려하기 보다 변명하려는 마음이 강하다. 이것이 게으른 자의 모습이란 사실이 새삼 큰 울림으로 들려진다. 근본적으로 변화를 향해 나아가려는 마음이 없는 게으른 자의 모습이란 주님의 지적이 나를 정확히 찌른다. 주님 ~
왜 그럴까?
그것은 구체적이고 정확한 자신을 향한 평가의 자리가 없이 막연한 생각만 있고, 현재에 안주하려고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제 60이 넘었지만,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평가를 한 경우가 과연 있었는가? 그저 나타난 현실의 무게들로 평가하며 살아왔음을 자백한다. 그러기에 스스로 과대포장하고,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소중한 조언과 비판을 듣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나를 향한 객관적인 평가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때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누구도 내게 무엇을 말하기 어려운 때다. 그러기에 내가 객관적으로 나를 살피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생각에 빠져 살아가게 될 수 있다. 주님 ~ 감사드립니다.
게으른 자에 대한 막연한 생각으로 나는 게으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게으름이란 수동적으로 움직이려 하고, 성과 없이 그 자리에서 돌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게으른 것이며, 새로운 도전의 자리에 변명과 핑계거리를 찾아 피하는 모습이 게으른 자의 소치임을 정리하며 내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함으로 남은 생애를 보람있게 살아가는 길을 정리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어디서나 창조적 리더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게으를 때 우리는 창조적 리더가 아닌 다른 사람의 부림을 받는 인생이 된다고 잠언은 말씀했다. 잠12:24절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그러니까 게으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른 삶을 포기하는 매우 위험한 자리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오늘 주님이 깨닫게 하신 말씀을 통해 창조적 리더로서 다스림의 권세를 사용하는 삶이 부지런함에 있고, 게으름에는 부림을 받음을 당하게 됨을 분명하게 정리하면서 내게 있는 게으름을 정확히 평가하며 부지런함으로 나아가는 날 되기를 다짐한다.
어떤 경우도 핑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길을 찾아보고 나서 판단하는 습관을 가지자. 그리고 다른 사람의 조언과 비판에 대한 먼저 감사하며 소중하게 듣는 습관을 갖고 그 평가를 가지고 나를 돌아보며 수용하는 태도를 갖자. 그리고 주어진 일에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일하는 자가 되자. 이런 기준으로 내가 게으른 사람인지를 수시로 평가하여 주님이 부르신 자리에 창조적 리더로 쓰임받는 자가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주님, 오늘도 거룩한 주일 창조적 리더로 쓰임받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 안에 들어온 교묘한 사단의 생각들 변명과 핑계거리로 주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행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을 다 거부합니다. 진실로 객관적인 평가의 기준을 분명하게 세우고 게으른 자가 아닌 부지런한 자로 지혜로운 자로 주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받게 하시고 또한 내게 보내주신 소중한 이들의 조언과 비판을 겸허하게 듣고 수용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중보기도 제목>
1. <웨이브리즈> 플랫폼을 통해 주님 뜻 이루게 하소서.
2. 목회사관학교를 통해 진짜 목사가 세워지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3. 100명의 새로운 후원자와 3억의 출자금이 공급되게 하소서.
4. 박정제 목사와 팀원들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하소서.
5. 스페이스 알 사역을 통해 젊은 세대 사역자를 일으키게 하소서.
6. 땡스기브가 세운 틴케이스 공간이 소중히 쓰임받게 하소서.
7. 2024년 작은교회 부흥을 이루는 해가 되게 하소서.
8. 충주 라마나욧이 세워지는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