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면서 사람들에게 빌린 것은 어떤 것들인가?
“내가 비 내리는 날 누워서 일생동안 남에게 빌린 물건을 생각해보니 낱낱이 셀 수 있었다. 내 성품이 매우 옹졸하여 먼저 남의 눈치를 살펴서 어렵게 여기는 빛이 있으면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상대방이 내게 대하여 조금도 인색하지 않음을 안 뒤에야 비로소 말했다. 남의 말이나 나귀를 빌린 것은 단지 6.7회 뿐이고, 그 외는 모두 걸어 다녔다. 혹시 남의 하인이나 말을 빌리면 그 굶주리고 피곤함을 생각하여 마음이 매우 불안하였으니, 결코 천천히 걸어 다니는 것만큼 편치를 못했다. 부모님이 병중에 계셨는데도 약을 지을 길이 없어서 친척에게 돈 백문과 쌀 몇 말을 빌린 일이 있다. 일찍이 아내가 병들어 원기가 크게 쇠하였으므로 친척에게 약을 빌었는데 마음이 서먹하여, 부모님이 병환 때에 구하는 것과 같지 않았다. 물정에 어두워서 때로 일을 그르치기도 했지만 역시 크게 욕됨은 면했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인 이덕무의 <이목구심서> 에 실린 글이다.
아다모의 노래와 같이 눈이 내리는 겨울날, 글은 잘 안 써지고 이 생각 저 생각하다 이덕무의 글을 읽다 보니, 나 역시 이 세상에서 빌려주기도 하고 빌리기도 한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나간 세월이라 내가 잊어버린 것도 있고 아스라하게 떠오르는 것도 있는데, 사람들마다 다 나와 비슷하게 빌려주고 또 주고 한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옛말처럼 미안함보다 서운함이 더 많은 것 같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빌린 사람보다 기억력이 좋다.”라는 말 때문일까?
“빚은 비인격적이다. 그러나 비인격적인 이 성질에는 정이 깃들어 있지 않다는 무정함, 냉혹함도 있는 한편, 예속되어 있는 것은 돈일 뿐, 그 밖의 인간성은 되찾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하고 톨스토이는 말했지만 알랭은 오히려 빚이 있는 편이 낮다고 강변한다.
“우리의 생활에서 괴로운 일의 하나는 남의 빚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빚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오히려 빚이 없는 사람보다는 어느 정도 빚이 있는 것이 낫다. 빚 걱정이 없는 사람은 매일 소화불량 따위나 걱정하지 않으면 오늘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걱정 없는 인생을 원하지 말고 걱정에 물들지 않는 연습을 해라.”
보이는 빚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빚이 더 중요한 것인데도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며 살고 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을 살면서 모자라고 넘치는 돈 뿐만이 아니라, 이 걱정 저 걱정에 날을 지새우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2023년 1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