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2월에 일어난 러일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대한제국에 왔던 영국인 어니스트, 토머스베설이 양기탁을 비롯해 민족진영 인사들에게 도움을 받아 1904년 7월 18일에 창간한 대한매일신보가 8월30일 일본이 인수하여 매일신보로 이름을 변경되었다.
대한매일신보는 발행인이 영국인 어니스트, 토머스베설이었기에 통감부에 검열을 받지 않고 항일 논설을 자유롭게 실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일반 민중의 지지도가 높았고 발행 부수도 가장 많았고, 영문판의 제호는 《The Korea Daily News》로, 양기탁이 편집과 경영의 실질적 책임지고 주요 논설의 대부분은 양기탁이 집필을 해서 신채호와 박은식을 비롯해 애국지사들의 논설을 많이 실었다.
그리고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해 1904년 4월에는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도 설치하고, 1907년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체 역할을 자임하며,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정면으로 저항하자 일제는 창간 주 어니스트 토머스베설을 1907년과 1908년 2차례에 걸쳐 재판에 회부했다.
실질적 책임자인 양기탁도 국채보상의연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결국 무죄로 석방되었다.
또한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의 부당성과 일제의 야만스러운 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등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이같이 대한매일신보는 항일논설을 이용해 일제의 침략 야욕을 폭로하면서 항일논조를 견지하며. 조선 민중의 민족의식을 드높여 신교육과 애국계몽운동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1910년 6월 1일부터는 발행인이 이장훈으로 변경되었고, 결국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에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每日申報)로 전락하고 말았다.
9월30일에는 일본이 조선 토지 조사사업 착수 10월1일에는 조선총독부가 설치되고 초대총독에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부임해왔다.
10월7일에는 일본이 조선귀족령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이완용등 75명에게 작위를 수여 했다.
11월1일에는 한성고등학교와 한성여학교가 총독부립 경성 일본인 학교로 바뀌면서, 각각 경성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여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한편 간내월에서는 광국이 일 년 농사가 마무리 되면서 가을 추수기가 다가오자 제동에게 이야기를 해 탈곡기를 들여왔다.
그리고 드디어 광국이 농사지은 벼를 타작하는 날 저녁 수확한 벼 열 섬 중 다섯 섬이 지주의 몫으로 가져가는 것을 본 남순이 그간에 있었던 일을 큰오빠 제동으로 부터 들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떻게 자신을 속이고 재산의 절반을 의병활동을 하는 시아버지를 같다 줄 수 있는지 도대체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왔다.
그날 저녁 광국과 남순은 결혼 후 처음으로 심하게 다투었다.
다툰다고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한편 갈 곳을 잃은 영린은 지환을 비롯한 서너 명은 떠돌이 신세로 전락 하고 말았고 왜놈들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은 행동반경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곳저곳에서 농사일손을 돕고 호구지책 해나가는 신세로 절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오늘은 이집에 타작하는 일 내일은 저 집에서 도리깨로 콩을 터는 일을 하며 한강을 건너 김포까지 오면서 가을 추수철이 지나자 호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제물포가 제법 사람이 늘어나서 나무를 팔기에 적당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날씨도 하루하루 쌀쌀해 지는 시기가 된지라 가제골 어느 집 행랑을 빌려서 네 사람이 매일 나무를 해다 제물포에 가서 파는 나무꾼으로 전락 하고 말았다.
영린과 지환 일행은 나무를 해가지고 제물포에서 파는 걸로 소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무기라고는 신식총은 총알이 없어 쓸모가 없어서 다른 대원을 한정만 대장에게 보대며 다 보내고 조총 넉 정이 전부이고 그마저 감춰두고 쓰지 않은지 오래 되었으나 지환이 사냥꾼인지라 잘 관리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보니 제물포항에는 가끔씩 일본서 군함이 들어와 병력을 내려놓고 다시 기차를 타고 하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리고 나무는 돈이 되는 장작을 해서 쌓아놓고 팔았고 나무를 다 팔면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울분을 삭이고 했다.
그런데 일본에서 군함이 오는 날은 전 날 부터 헌병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해서 내일 또 왜놈들이 들어오는가를 감지 할 수가 있었다.
한편 간내월 에서는 그동안 틈틈이 준비했던 재목을 켜고 다듬고 해서 다섯 칸짜리 초가집을 짓는데, 제동의 집이 있는 쉬골에서 작은 언덕 넘어 강가에 터를 닦고 커다란 돌을 밧줄로 묶어서 네 사람이 들었다가 놓았다 하면서 터를 다지고 주춧돌을 놓을 때도 구덩이를 파고 작은 돌을 두자 이상 다져넣고 그 위에 주춧돌 12개를 놓는데 하루가 넘게 걸렀다.
다음날 기둥을 세우고 중방과 보와 도리를 끼우고 그날 저녁 무렵에 상량식을 했다.
대들보라고 조금 건실한 놈으로 마루가 될 곳 아래에 놓고 제동이 붓을 들어 龍 庚戌年十月 十日 立柱上樑 龜 라고 쓰고 그 밑에는 應天上之五光 備地上之五福 이라고 두 줄을 써 내려갔다.
남순이 이고 온 시루떡과 북어 한 마리를 상위에 놓고 광국이 절을 올렸다. 그리고 북어는 실로 대들보 머리에 묶어놓고 대들보 양쪽에 밧줄을 걸어서 올려 끼우는 것으로 하루가 마무리 되었다.
사흘째 되는 날은 석가래를 걸고 못을 박아서 고정을 시키고 다음날은 석가래 위에 선자를 대고 외를 역어서 씌우고 다음날은 새우를 받는다고 하는데 진흙은 펴다가 마당에 놓고 작두로 짚을 성글게 썰어서 넣고 물을 뿌려 가면서 진흙을 이겨서 지붕에 붓고 다지자 그때 까지 엉성하게 세우고 조립을 했던 집이 진흙의 무게로 자리를 잡고 흔들림이 조금 덜 했다.
다음날은 위에 솔가지를 덮고 그동안 역은 이엉을 올려서 덮어씌우고 속고삿을 석가래 끝에 묶고 다시 그 위에 이엉을 더 덥고 겉고삿을 석가래 끝에 묶는 걸로 지붕이 완성되었다.
그런 가운데 제물포에서는 일본 헌병들이 분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니 내일 또 많은 일본군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지환이 영린에게.
“서방님 이레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진데 내 손주 까지 보고 살 만큼 살았으니 내일은 저놈들 죽이고 살 값이나 할 까 하는데 어떻소.”
하면서 그동안 생각 했던 것을 애기 했다.
지환의 의지는 대단했고 비장했다.
“알았소. 차동지의 결심이 그러하다니 장하오. 내 좋은 날이 오면 꼭 동지가 한 일을 명호에게 장한 아버지였다고 전하고 후세에 꼭 전하도록 하겠소.”
그렇게 네 사람은 술을 나누워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모두가 만감이 교차해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몇 칠전 해다가 쌓아서 말려 놓은 장작 속에 조총과 화약 총알을 준비해 지개에 나누어지고 재물포로 나갔다.
그리고 일본헌병들도 장에 나무를 팔러가는 나무꾼으로 알고 별다른 검색도 없이 무사히 장터 한 귀퉁이 그러니까 부둣가에 가까운 한쪽 귀퉁이에 지환이를 장작더미에 안쪽에 조총과 화약 탄환을 함께 넣고 장작을 가려서 쌓았다.
한참 후 왜놈들이 배에서 내리는데 노란 옷을 입어서 홉사 땅벌(땡삐)떼처럼 보였다.
그리고 현병들이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두 대원은 멀리 떨어진 다음 영린이 천천히 장작가리에서 떨어지기 시작해서 십여 보쯤 떨어지자 바로 총성이 울리고 왜놈하나가 거꾸러졌다.
순간 소동이 일어나고 왜놈들은 우왕좌왕 하고 헌병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이에 또 한발의 총성이 울렸다.
또 한 놈이 거꾸러지고 놈들은 우왕좌와 했지만 어디서 총알이 날아 왔는지도 모르고 그러는 사이에 또 한방의 총성이 울리고 한 놈이 거꾸러지고 놈들은 모두 엎드리고 감히 일어서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총을 쏜 곳을 찾기 위해 일어서면 여지없이 총성이 울리고 또 한 놈이 거꾸러지고 모두 엎드렸다.
그렇다고 마냥 엎드려 있을 수많은 없으니, 대장 인, 한 놈이 빨리 찾아 하고 고함이 쳤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집들을 수색하기 시작하면 총성이 울리고 또 한 놈이 거꾸러졌다.
잠잠해지자 다시 또 빨리 찾으라고 고함소리가 있었고 한방의 총성과 함께 또 한 놈이 쓰러졌다.
순간 모두 엎드리고 사방을 살폈다.
그리고 다시 고함소리에 주변의 집들을 수색이 시작 되었는데, 이번에는 총성과 함께 장작가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신약과 선약의 순서를 바꾸어 넣고 흔들고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그러니 불발탄이 되면서 순식간에 연기가 피어 오른 것이다.
“저기다.”
하면서 놈들이 몰려들어 장작더미를 헤쳐내고 지환을 끌어내어 그들의 상징인 일본도로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쳐버렸다.
순간 영린의 입에서도 작은 신음소리가 나왔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놈들은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모두 일본도를 빼들고 난도질을 쳐서 지환은 짓이겨져 매 밥이 되었다.
순간 숨어서 보던 영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놈들은 우리의 국모 명성황후도 저런 식으로 살해 하고 불태워 졌구나.
하니 온몸이 떨렸다.
그리고 현병들이 수색을 시작해서 주의에 있는 집집마다 사람을 끌어내어 장마당에 세우고 있었다.
이젠 남은 두 의병과 함께 잡히는 건 시간문제로 각자가 흩어져 도망을 쳤다.
“저 놈 잡아라.”
하면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총성이 울렸다.
달아나던 한 대원이 총을 맞고 쓰러졌다.
그 사이에 또한 대원이 그곳에서 반대편으로 숨어서 도망을 치다가 놈들의 눈에 띠고 말았다.
“저놈 잡아라.”
하면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현병들이 우르르 달려기 시작했다.
영린도 그 틈을 노려서 숨어서 시장 통으로 신속히 도망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멀리서 몇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렇게 시장 통을 거의 빠져 나왔을 때 헌병에 눈에 띠고 말았다.
“서라.”
순간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이 제일먼저 들었다.
뛰어서 달아나기 시작 했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며 그놈은 열심히 쫒아오다가 멈추는 가 싶더니 총성이 울렸다.
총알이 영린을 스치듯 지나가고 그렇게 쫒아오면서 총성이 울리기를 몇 번 만에 왼쪽 허벅지 부근이 화끈함을 느꼈다.
총알을 맞은 것이다.
순간 골목을 꺾어서 돌아서 뛰다가 문이 열린 집으로 들어가서 집 뒤 장독대 뒤에 숨었다.
허벅지에서 흐르는 피가 솜바지를 적시고 있었다.
이웃집에서는 개짓는 소리가 들리고 총소리를 듣고 몰려온 헌병들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수색을 하는 모양이었다.
상처는 그리 크지 않은 모양이었다.
급히 숨을 곳을 찾다보니 정월이 되면 장을 담으려고 씻어서 엎어놓은 커다란 장독이 보였다.
저거다 하고 생각이 미치자 독을 들어 머리서 부터 뒤집어쓰고 가만히 앉아서 피가 흐르는 허벅지를 움켜쥐고 버텨내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고 조금 조용해지고 해서 독을 조금 들어보니 땅거미가 졌는지 어두워 보였다.
나가도 괜찮을까 하다가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한참 뒤 독을 들어보니 어두워 진 것이 분명해서 조심스럽게 독과 함께 조심스럽게 몸을 뉘이고 엉덩이부터 빠져 나오는데 독이 구르려고 해서 발로 버티는데 아까 입은 총상이 쓰리고 아팠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빠져나와 독을 아까의 그 장소로 옮겨놓고 살금살금 사랑채까지 나와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방안에서 헛기침 소리가 나면서
“들어오너라.”
아마 며느리가 자리끼를 떠 가지고 온 것으로 안 모양이었다.
영린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인은 깜짝 놀라서.
“뉘. 뉘 슈.”
하면서 영린을 두려운 눈빛으로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저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까 장터에서 도망친 의병입니다.”
그제야 주인장은 고개를 끄떡여 알겠다는 표시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목숨을 부지하려다 보니 이렇게 주인장을 놀라게 해드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부상을 당한 모양이구려.”
“예.”
“어서 들어와 앉으시구려.”
“예 감사 합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나저나 어찌 되었답니까?”
“둘은 아주 끔찍하게 도륙을 내고 하나는 많이 다쳤는데 단가에 실고 갔는데, 쯧 쯧 쯧 그리고 하나는 놓쳤다 하더니만.”
영린은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아까 지환이 당한 것을 보았지만 나머지 대원 둘마저 그렇게 되다니 그리고 시신마저 거둘 수가 없게 되다니, 영린이 흐느끼며 어깨가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주인장은 한참을 그러고 있는 영린을 보고 있다가
“치료부터 해야 하겠네요.”
하는데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문을 두드리고 주인영감이 헛기침을 하면서
“들어오너라.”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던 며느리는 깜짝 놀랐다.
주인장이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하고.
“나라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시다. 다른 건 차지하고 바지저고리 한 벌하고 상처를 싸매야 하니 소창하고 솜과 가위를 가지고 나오너라.”
잠시 후 며느리가 시아버지가 지시한 물건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며느리에게
“밥 한상 차려오너라 그리고 입조심하고.”
“예 아버님.”
며느리가 방을 나가고 옷을 바지를 벗고 보니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상처를 살펴보니 총알이 왼쪽 허벅지를 관통을 해서 바지가 온통 피에 젖어 있었다.
솜으로 상처 부위를 닦아내고 주인장이 솜을 대고 소창으로 정성스레 감아 주었다.
그리고 새로 내온 옷을 입고 나니 조금 후 밥상이 나와서 밥을 먹고. 상을 물렸다.
잠시 후 상을 가지고 집안으로 들어갔던 며느리가 조심스레 피에 젖은 옷을 자배기에 담아서 내갔다.
그날 밤 영린은 부상부위에 통증과 온갖 잡념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대로 단월로는 갈 수 없고, 그렇다고 이러한 거지꼴을 해가지고 명색이 사돈인데 처남 집에 곁방살이 하고 있는 아들을 찾아 가기란 더욱 힘든 노릇이었다.
상처가 아물어야 어디로 가든 갈 텐데 상처가 아물면 만주나 의암이 떠난 연해주로 가야 할 텐데 그러려면 그래 수구지심이라고 우선 탑거리로 가서 상처부터 낳고 보자라는 생각을 굳혔다.
그렇게 깨고 잠들기를 여러 번 만에 날은 훤하게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새로 입은 바지를 보니 웬걸 밤새 피가 새어나와 새로 입은 솜바지 겉으로 조금 비치고 깔아놓은 요에도 조금 묻었다.
정말 미안한 마음이 잔뜩 들어 있는데 아들이 세수대아에 더운물을 가지고 나왔다.
손과 얼굴을 씻고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주인장이
“다 나라를 위해 일하시다 그렇게 되신 분이다. 암만 말고 들어가 새 바지를 가지고 나오고 소문나지 않게 입단속 잘 해야 한다.”
아침을 먹고 나서 영린이 입을 열었다.
“주인장 이렇게 생명을 구해주셔서 어떻게 은해를 갚아야 할지 백골난망 입니다.”
“어유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그래서 말씀이온데 바로 떠나야 하겠습니다.”
“아니 그 몸을 해가지고 어떻게 떠나려 하시오.”
“제가 여기에 있으면 이 댁도 편안치 않을 것이고, 이곳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몸을 피신해야 할 것 같아서 입니다.”
“뭐 정 그러시다면 더는 잡을 수가 없네요. 하지만 그 차림세로는 당장 들통이 날 텐데 의관을 잘 정제하시고 떠나도록 하시오.”
그리고 아침상을 물리자 주인장이 며느리에게 새 바지에 두루마기 그리고 망건에 갓을 내어오라고 하여서 옷을 갈아입고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하고 길을 나섰는데, 장터 장작더미를 쌓아놓았던 자리와 어제 차지환이 난도질 쳐진 자리로 돌아보지 않으려고 해도 눈길이 갔다.
그 자리에는 장작불을 땐 자리가 확연이 남아 있었다.
놈들은 명성황후 에게 했듯이 차지환의 시신을 불태워 버렸다.
영린은 아주 천천히 지팡이를 짚고 발걸음을 옮겼다.
다리를 절지 않으려고 아주 천천히 걸었지만 어색한 걸음걸이는 어쩔 수가 없었다.
간신히 오쟁이를 지나서 간신히 행주나루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미시가 훨씬 지나 신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행주나루에서 두루마기를 걷어 올리고 뱃전에 앉았을 때에 허벅지로 부터 심한 통증에 입으로 부터 신음 소리가 절로 나는 걸 어금니를 앙다물고 참아야 했다.
한강을 건너서야 포위망을 벗어났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지만, 오늘 안으로 답거리까지는 무리일 것 같고 어차피 가는데 까지 가서 멀리 가야만 더 안심이 될 것 같아서 부지런히 걸었지만 상처 입은 다리가 쑤셔오기 시작했다.
겨우 원당의 어느 주막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게 되었는데 쉬어도 마당치않을 다리를 끌고 백 여리를 넘게 걸었으니 밤새 쑤시는데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아픈 다리를 끌고 다시 공양왕릉 앞을 지나 오죽골을 지나서 박달산을 넘었을 때에는 점심때가 지나 있었고 겨울 해는 짧아서 은봉산을 넘어 도락산에 올랐을 때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어두워지는 산길을 더듬어 내려와 독쟁이에 사는 사촌동생 상옥의 집을 찾았을 때에는 술시가 지나고 해시가 되었을 때였다.
영린은 조심스럽게 대문을 두드려 상옥을 불렀다.
“이보게 아우 이보게 아우.”
“뉘 시요.”
“날 세 나 형이냐.”
상옥이 문을 열고 나와서 영린을 보고 깜짝 놀라며
“아니 형님 어서 들어오세요.”
하면서 맞아들였다.
예전에 볼 적에는 장삼 차림이었는데 오늘은 보니 두루마기에 한복을 입고 나타났으니 상옥이 예상하기도 쫒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영린을 안으로 맞아들인 상옥은 아내에게 밥을 짓게 하였다.
저녁을 마친 영린은 피곤이 몰려와 한잠에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상옥이 요를 깔고 요위에서 주무시라고 깨우자.
“나 그냥 자게 내버려 두게.”
“아 그래도 요 위에서 주무셔야지요.”
“아닐 세, 나는 이게 편해 이렇게 자 버릇이 되놔 서.”
한사코 요위에서 자는 걸 싫어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한숨을 자고난 영린의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몸을 해가지고 하루 종일 걸었으니 배겨날 장사가 없었다.
상옥은 다음날 아침에야 어제 영린이 한사코 요를 깔지 않고 자려고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지로 배어나온 진물을 보고.
“아니 형님 다치셨잖아요.”
“별거 아니야 몇 칠 지나면 나을 거야.”
했지만 어젯밤 밤새 쑤신 것을 참느냐고 한숨 밖에 못 잤다.
상옥이 자꾸만 보자고 했지만 괜찮다고 하면서 상처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갈아입으라고 새로 옷 한 벌을 내오고 옷을 갈아입기 위하여 옷을 벗었을 때 싸맨 부위를 보니 꽤 심각해 보였다.
한사고 싫어하는 영린에게 붕대를 새로 감자고 하여서 풀어내고 보니 아물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고 진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처에는 이게 최고라며 겨우 넣은 게 마른 담뱃잎 두 장씩 앞뒤에 대고 소창을 감았는데 처음엔 괜찮았는데 얼마쯤 지나서 더 쑤시고 아팠다.
상욱이 서른여섯에 나은 여섯 살 먹은 족하 영묵이 무릎에 앉으려고 했지만 안아 줄 수가 없었고, 제수는 이때에 홀몸이 아니고 임신 초기라 입덧이 몸씨 심했다.
그러한 곳에서 여러 날 머무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큰집 사촌 영수도 수년전 가평으로 이사를 갔다가 올 여름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태어난 탑거리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갈 곳은 동생 영훈이 살고 있는 물골안 밖에 없다.
그래 몸이 조금 나으면 물골안으로 가자.
그러는 동안 간내월 광국은 도리와 중방에 통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둥근 막대를 깎아서 끼우고 수수깡을 가로로 대고 칡을 끊어다 외를 엮는데 안방과 윗방 방 두개를 하는데 나흘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부엌 밑 중방에서 부터 윗방 을 지나 굴뚝이 나갈 자리까지 땅을 파고 고르고 돌을 주어다 진흙을 이겨서 돌을 길게 쌓으면서 고래를 만드는데 닷새가 걸리고 그 위에 구들장을 안방 아랫목은 두꺼운 것으로 윗방으로 갈수록 얇은 것으로 흔들리지 않게 고이고 진흙을 이겨 붙이며 깔고 그 위에 진흙은 이겨서 얇게 덮었다.
그리고 뒤쪽으로 굴뚝을 조그마케 쌓아 올리고 부엌에는 부뚜막을 두개 만들어서 한쪽은 커다란 가마솥을 걸고 또 한쪽은 양쪽으로 작은 솥을 두개 걸었는데, 안쪽엔 밥솥 바깥쪽은 국을 끓여먹는 노구솥을 걸었다.
이 노구솥은 시어머니 연희가 시집올 때 해온 것으로 광국이 특별히 아끼던 솥이었다.
그리고 부엌이 완성되자 솥에 물을 길어다 붓고 불을 때서 초벌로 바른 흙을 말렸다.
한편 영린은 동생 상옥과 상훈의 집을 오가며 몸을 웬만큼 추스르자 천보산을 넘어 가산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사촌동생 영찬의 집에서 하루를 지내게 되었다.
그때 영찬의 아들 경묵은 광국보다 한살이나 더 먹었지만 제 작년 노총각을 면하고 결혼을 해서 그에게는 아직 손자가 없었다.
그곳 역시 살림이 곤궁하여 오래 머무를 수가 없어서 지팡이에 의지하고 다시 물골안으로 향했다.
괄라리에서 족하 며느리가 싸준 주먹밥을 먹고 검단이 고개를 넘어서 미시가 지날 무렵 방골 영훈의 집에 다리를 쩔뚝거리며 들어섰다.
동생 영훈이 반갑게 맞으며 다리를 쩔뚝이는 영린을 보고
“형님 이게 웬 일이세요. 많이 다치셨어요?”
“아니 조금 닫쳤을 뿐이네.”
“어서 들어와 앉으세요.”
“참 작은 아버지를 뵈어야 하는데.”
영린은 쩔뚝거리면서 사랑방에 들려서 기호에게 절부터 올렸다.
일흔여섯의 기호는 영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열심히 살기나 할 것이지 의병을 합내 해가지고 형님 속을 썩이더니 다쳐가지고 찾아오다니.
“그래 얼마나 다친 거냐?”
“예 그저 조금 다쳤을 뿐 이예요.”
“그래도 언 상처니 조심하여 한다.”
사랑을 나와서 안방에 가서 작은어머니를 뵙고 인사를 올렸다.
예순일곱의 작은어머니 길민은 더욱 못 마땅하였으나 아들의 친형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영훈의 부축을 받아가며 사랑방으로 나와서 앉았다.
“형님 얼마나 다쳤는지 봅시다.”
“아니야 별로야 그냥 조금 다쳤을 뿐이야.”
“그래도 좀 보여주세요.”
“다 나아가고 있어 걱정 말게.”
하면서 보여주지를 않았다.
저녁을 내와서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몹시 쑤시고 붓기 시작했다.
낮에는 참고 있어서 나오지 않던 신음소리가 밤이 되니 자신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나왔다.
그때 영훈은 아들 넷을 두었는데 큰아들 형묵은 스물네 살로 작년에 장가를 들어 재천이라는 두 살 된 아들이 있었고 둘째 완묵이 열아홉 살 셋째 흥묵이 열여섯 살 막내 양묵이 열두 살이어서 다복하게 살고 있었고 노동력이 풍부하여 열심히 일해서 살림이 불어나고 있었다.
작년에 우당일가가 처분한 전답에 산까지 사다보니 내핍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영린은 동생 영훈이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니 매우 흐뭇하였다.
그나저나 다리는 계속 부어오르고 농까지 나왔고 밤이면 밤마다 신음소리를 내며 앓고 있었다.
영훈에게는 다 나아간다고 하였으나 병을 키우고 있었다.
한편 간내월에서는 집을 짓는 일이 계속되고 있었다.
외를 역어놓은 벽에 짚을 잘게 썰어 넣은 진흙을 발로 밟아서 이겨서 바르는데 나무로 깎아 만든 흙손으로 안쪽부터 애벌을 바르는데 안방만 하루 윗방 하루 외벽 이틀 그러다 보니 벌써 날씨는 써늘해 지고 이겨 놓은 진흙은 아침이면 얼음이 얼기 시작해서 서릿발이 섰다.
그런데 물골안에 영린의 병세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광능내 주재소에서 왜놈 헌병이 현병보조를 앞세우고 쇠푸니 고개를 넘어서 물막골로 들어서고 있었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현병 보조의 묻는 말에
“왜 그러쇼, 여기서 방꼴이 얼마나 되요.”
“한 오리가 넘소,”
“거기에 영훈이란 사람이 살죠.”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하면서 머리를 긁었다.
그들은 조금 걸어서 물막골을 벗어나 서너 집이 살고 있는 동내 입구에서 제법 커다란 집이 있는 집 앞에 나와 있는 40대 중년에게 말을 걸었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이 동내에 영훈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까?”
“아 여기는 아랫말이고 도림개말을 지나서 개울을 건너가야 방꼴입니다.”
그러면서 천호가 힐끗 보니 먼발치에 일본군이 보였다.
그들이 뒷간 옆길로 사라져 보이지 않자 바로 천호는 들어가 아들 영학을 불렸다.
“영학아! 영학아!”
“내 아버지.”
“급하다 급해. 저 빨리 저 울 너머로 해서 꽃재 서낭당 고개 넘어 방골 양묵이네 집에 가서 왜놈이 왔다고 전해라.”
“내 아버지.”
열 살의 영학이는 뛰어서 신 대장 모이를 지나 언 논길을 달려서 보리밭 고랑을 뛰어넘으며 꽃재 서낭당 고개를 넘어설 때. 일본군은 도림개말 주막에서 영훈의 집이 어딘가를 묻고. 그곳에 부상을 당한 사람이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글쎄요?”
하면서 모두들 낯놀림을 했다.
영학이 얼어붙은 개울을 건너 논둑길로 뛰어가고 있을 때 왜놈과 헌병보조는 방꼴을 향하는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영학이 영린의 집에 도착해 급히 대문 안으로 들어가
“아저씨 아저씨!”
“영학이 네가 웬 일이냐?”
“울 아버지가 아저씨내 집으로 왜놈이 온다고 빨리 가서 말하라고 했어요.”
“알았다.”
그렇게 영훈은 급히 사랑방에 누워있는 영린을 안채로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사랑방에 있던 이부자리를 개어서 치웠을 때 헌병보조와 왜놈이 들이 닥쳤다.
“여기가 김영훈 씨 집 맞죠?”
“그렀소이다.”
“당신 영린이라는 형이 있지요?”
“예 있지요?”
“당신 형이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형님은 사년 전 아버지 대상 때 뵙고 못 보았는데요. 울 형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뭐 별일은 아니고. 집안을 둘러 봐도 되겠소?”
“그러시오.”
첫댓글 저런 부상당하고 쫓기고 거기에 다시 동생의 집까지 외놈 헌병이 들이 닥쳤네요. 부디 무사 하여야 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