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의 기억-야마노이야스시
야스시는 2011년 아시아황금피켈상, 2021년 황금피켈상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단독으로 고산거벽에서 알파인클라이밍을 한 등반가다. 단편적인 기사만으로는 궁금했던 그의 산에 대한 철학과 등반을 알 수 있어 좋았다. 그 동안 읽은 책 중에서도 손꼽는 멋진 책이다.
이 책에는 브로드피크, 메라피크서벽, 아마다블람서벽, 쵸유남서벽, 레이디스핑거남벽, 마칼루서벽, k2남남동립, 캬충캉북벽의 등반기가 실려있다.
야스시가 히말라야 얼음의 세계를 동경하는 이유는
“거칠고 건조한 대지, 깊은 계곡에는 탁류 소리가 울려 퍼지고 높은 언덕에는 조금 돋아난 푸른 풀을 찾아 가파른 경사면을 방목된 염소들이 돌아다닌다. 저 멀리에는 장대한 빙하가 이득히 이어지고 입을 벌린 크레바스가 무수히 보인다. 강한 자외선은 모발을 푸석푸석하게 만들고 선크림을 바른 피부도 지글지글 태운다. 상공은 빠질 것 같은 블루, 고봉 능선에서는 맹렬한 바람이 쌓인 눈을 마구 흩날리게 한다. 정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예상되는 옅은 산소를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호흡은 깊고 크게 된다. 생명체를 거부하는 비위와 눈과 얼음의 세계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고는 살 수 없다. 혹독한 환경이 잠들어 있는 나를 되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한다.
사람들은 야마노이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고 말하는데 그때그때 계획안에서 자신의 기술과 체력이 앞으로의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진심으로 올라가고 싶은지 고민하고 실제 등반중에도 산으로부터의 위험을 읽고 자신의 능력을 바라보고 그 중 최고의 결단을 내려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보다도 겁이 많을 정도로 신중하고 아무리 날씨가 나빠도 아무리 여린 바위가 나오더라도 한순간도 포기하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무리 한계상황에 빠져도 살아남으려는 강한 의지, 생각을 옛날부터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알파인클라이머는 항상 죽음을 곁에 두고 산을 오르지만 클라이밍에서는 죽음의 공포도 중요한 요소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사신이라면 오르지 않겠다. 일상생활에서도 죽음을 느낄 수 없다면 살아있는 의미는 반감될 것이고 오르는 행위의 매력도 반감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이 없다면 추락의 공포나 아슬아슬한 살떨리는 등반을 이겨냈을 때의 희열이나 성취감도 없을 것이고 또 어려움에 도전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야스시가 스폰서를 거부하는 이유는
알파인클라이머가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죽음의 향기와 모험은 필요불가결한 것 같다.
도전하고 싶은 곳은 많지만 항상 원정 자금이 문제다. 스폰서를 받으면 반드시 정상 사진을 목표로 해서 올라야 해 너무 슬플 것 같다고 한다. 클라이머는 항상 무엇을 찾고 싶은지, 정말 뭘 하고 싶은지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부인 카에코와 함께 등반한다. 둘 다 알파인클라이머라 언제 죽을지 모른다. 둘은 죽으면 무덤을 만들지 말자고 한다. 아스시가 죽으면 상수리나무를 심고 타에코가 죽으면 감나무를 심기로 한다. 야스시가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데 유일하게 감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갸충캉 북벽에서 야스시와 타에코 부부는 손가락 발가락을 거의 대부분 잃었다. 그 처절한 필사의 탈출 과정을 생생하게 글로 표현하고 있다.
조금 요약해 보면
정상 직전 마지막 캠프에서 야스시의 발가락은 이미 동상에 걸렸다. 타에코는 정상을 포기하고 하산하고 야스시 혼자 정상을 등정하고 하산하는데 눈보라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발의 감각이 없어 세 걸음 걷고 주저 앉는 상태에서 눈사태를 두 번 맞고 고글이 날라갔다. 올라온 길을 포기하고 현수빙하를 하강하는데 또 큰 눈사태가 올라온 길을 쓸고 내려간다. 다행이라 생각한 순간 또 눈사태를 맞아 타에코가 날아 떨어졌다. 야스시는 로프를 잡고 버티는데 로프가 움직이지 않는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리 소리쳐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야스시는 제발 살아 있기를 바라며 버티지만 언제까지 버텨야 할지 로프를 끊어야 할지 절망할 때 로프 끝이 8자 매듭인 채 올라온다. 타에코가 살아서 로프를 뺐구나 안도하며 하강하지만 눈을 파내고 크랙을 찾아야 하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다. 장갑을 벗고 맨손가락으로 크랙을 찾아 피톤을 박고 흐미하게 아래에서 빛나는 타에코의 랜턴빛을 보고 하강한다.
타에코는 눈사태를 맞아 떨어져 정신을 차려보니 7mm 로프가 암각에 걸려 거의 반이 잘려있다. 다행이 옆에 70경사의 빙벽이 있어 몸을 흔들어 빙벽에 피켈과 아이스바일을 박고 로프를 풀어 야스시에 살아있음을 알린다. 하지만 타에코도 눈이 보이지 않기 시작하고, 추락할 때 오버미튼과 장갑까지 벗겨져 왼손은 딱딱하게 얼어 있다. 수중에 로프도 피톤도 없이 그저 야스시를 기다려야 한다.
잘린 로프로 한 번에 15m씩 하강하는 야스시는 피톤을 박고 한 번 하강하는데 1시간이 걸린다. 맨손으로 눈을 쓸며 크랙을 찾아 손가락은 감각이 없어지고 4시간 넘어 타에코와 합류하게 된다.
눈보라는 계속 치고 눈사태는 계속 떨어진다. 하지만 딱딱하게 얼은 손가락으로 크랙을 찾아 피톤을 박지 못해 벽에서 비박한다. 어젯밤부터 한 잔의 차를 마신 것이 전부, 먹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한 계속 하강..... 그리고 지금 여기는 7000m의 벽, 너무 위험한 탈수상태고 이대로라면 내일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꽁꽁 언 손가락으로 버너를 켜야 하는데 라이타까지 떨어뜨리고 만다. 타에코는 닷새 동안 못 먹었는데도 물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고, 몇 걸음 가고 주저앉아 위액을 토한다. 야스시는 먼저 가기로 하며 살아서 보는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타에코의 사진을 몇 장 찍는다. 내일이면 타에코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도 상상조차 하기 힘든 그 처절한 하강과 죽음 직전의 상태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야스시와 타에코, 지금도 손가락 발가락이 없어도 등반을 즐기는 그들이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