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의 소청 자락도, 남설악의 흘림골과 그 너머 미천골도 단풍이 들더니 인제 자작나무 숲도 단풍 물감이 짙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고작 열흘이 봄꽃 추억을 이기려는 듯 북풍 설한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바람꽃에 봄을 실려 보내왔습니다. 아직은 봄이 희미하다 하였더니 노루귀와 얼레지에 봄을 짙게 꾸며 보내왔는데 그래도 안심되지 않았는지, 초롱 꽃술에 은향을 가득히 피워 근사한 봄 향기를 뿌려 놓고 5월을 끝으로 마련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봄은 그 자리를 여름에 넘겨주었습니다. 여름은 작심한 듯 작렬하는 뜨거운 태양과 폭풍을 이겨내며 성큼성큼 열매를 성숙시켜 놓고 불같은 성질과 정을 죽이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시간을 이어받은 가을은 높고 푸른 하늘을 빌리고 강렬하고 투시력이 좋은 빛을 이용하여 세상을 농익게 만들어 산천을 알록달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가을은 아무래도 색에 마술사인가 봅니다. 봄, 여름의 무거운 시간을 물려받아 이룬 가을의 모든 것에 대한 공로의 고단함을 풀기 위하여 안주라 하였는데, 만추의 자태를 그새 이기지 못하고 가을은 우리들 곁을 떠나려 합니다. 절기가 오고 가는 것은 계절에 숙명, 그 속사정을 알기에 가을을 배웅하기 위하여 가을 길 따라나섰습니다. 참 곱네요.
어느 곳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 하듯이 바스러져 단풍은 빛을 잃고 낙엽 되어 또는 마지막 잎새로 자리매김도 하고 있지만 삼둔 속 깊은 곳은 구령령 넘어까지 절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새로운 한 주간부터는 새재와 더불어 그 이하가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소요산 단풍과 북한산 김상궁 바윗골 계곡 안부는 10월 말 까지도 황홀한 가을 자태가 깊습니다. 우선 새재 아래 마을 가을, 그 이야기를 사나흘 들려 드리고 서둘러 10월 말 즈음 북한산 자락에 숨어 있는 비경에 대하여 하루치로 엮어 보려 합니다.
남녘에서 하루 이야기~~~
출발 전날 딸은 늦은 저녁시간 손주와 함께 왔습니다. 그리고 당일 7시 출발을 계획하였으나 조금 늦게 출발하게 됩니다. 목적지 도착 예정시간은 호텔 체크인 시간에 맞춰 놓았고 동선을 면밀히 검토해 놓아 휴게소 3곳을 경유하기로 하였습니다. 마지막 경유지 휴게소는 범어사 휴게소로 정해 두었으며 다음 부산 방문 최초 목적지는 부산교구 관할 성지인 오륜대 순교성지 순교자 묘 참례와 순교와 관련된 그리고 한국 천주교사를 총망라하여 기록물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결정해 두었습니다.
긴 동선을 극복하는 방법은 동선 주변을 살피며 목적지로 향하는 것이지만 하향 시보다는 상향 시에 이용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중첩된 여독으로 심신에 피로가 쌓였을 때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컨디션 조절 방법입니다. 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내려가면서 단풍지도가 그려졌습니다. 예상한 바와 같이 문경새재 부근이 좋고 대구 팔공산 부근도 만추의 시간으로 다가가는 중이었습니다. 대구를 지나면서부터는 아직 단풍은 기미조차 느낄 수 없었습니다.
어렵사리 도착한 오륜대 순교성지, 증축공사로 참례가 불가능하여 아쉽게도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좁은 길에서 유턴이 불가능하여 한참을 직진하여 돌아 나온 후 해운대에 있는 호텔로 바로 가 차를 주차한 후 부근에 있는 재래시장을 찾았습니다. 곰장어 구이를 시켜먹은 후 가족들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튀김류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 후
바다에서의 클래식 콘서트를 관람하며 밀물과 썰물이 모래톱을 타고 겹쳐지는 소리와 함께 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가을밤을 깊어가게 하였습니다.
해안선 따라 오륙도까지 산책을 하며 딱딱한 딤딤의 일상에서 벗어나 딛는 매 순간 허물어져 버리는 모래바닥을 통해 공고함의 가치를 놓을 수 있었습니다. 습관에서 벗어나는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인데 모래사장을 걸으며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때로 새로운 경험은 새인식의 통로로 다가가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핼러윈(Halloween) 축제라고 하면 무시무시한 복장으로 변장을 한 채로 참가하는 가장무도회와 집집마다 사탕을 구하러 다니는 아이들로 북적대는 밤을 떠올리게 됩니다. 핼러윈 축제가 다양한 모습으로 축제가 벌어졌으며, 그 역사는 2,000년을 훨씬 넘습니다. ‘환락과 유희의 밤’으로 변화된 핼러윈은 아일랜드 켈트족의 삼하인이라 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삼하인은 죽음의 제왕인 샤먼을 섬기는 신성한 의식인데, 사람들은 성인(聖人)의 날 하루 전날인 10월의 마지막 밤에는 온갖 요정들이 세상으로 나오는 날이라고 생각했으며, 인간이 ‘영(靈)의 세계’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날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세상의 중심인 시기에 핼러윈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기독교가 핼러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서기 601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그들이 믿고 따르는 토착신앙과 관습에 관한 칙령을 반포하게 됩니다. 교황은 선교사들에게 토착신앙을 말살하기보다는 이용할 것을 권했으며 결국 9세기가 되자 미신적인 요소가 강렬하게 남아 있었던 삼하인 축제는 크리스마스로, 그리고 11월 1일은 ‘모든 성인(聖人) 대축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몇 세기 흐른 후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삼아야 했는데, 이날은 죽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핼러윈 축제는 이교도들이 행했던 정령 축제가 못된 장난을 치며 즐기는 밤으로 변한 것입니다.
산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캔맥주 3 통과 여러 종류의 간단한 맥주 안주를 차려 놓고 딸과 마주 앉았습니다. 딸도 그렇지만 저 역시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는 것 같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해운대 해안선 따라 들고 나는 파도와 포말선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내일 분주한 하루를 일정이 잡혀 있어 일찍 잠을 청할 목적으로 마신 두 켄의 맥주 취기가 파도처럼 몰려와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습니다.
아침 빛이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져 잠에서 깨어보니 해안과 길 따라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이었습니다. 시계를 찾아 시간을 체크 6시 10분경, 곧바로 일어나 세신을 한 후 하루 일정을 준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침으로 선택한 유명 국밥집, 우선 손주와 겸상하기 위하여 주문하고 제노와 딸을 점심식사로 선택한 모식당을 찾아가 예약을 해두어야 점심시간에 맞춰 먹을 수 있다며 서둘러 예약을 하러 떠나 우선 손주와 둘이서 아침을 챙겨두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약을 끝낸 후 돌아온 두 모녀도 아침을 챙겼습니다. 식사 후 해변 산책을 할 목적으로 재래시장을 돌아보고 빌딩 사이를 걸어서 해안으로 접근하였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강렬한 코발트색이 모든 것을 상쾌함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해변의 기슭을 걸으며 아침 기운을 챙겨 두었습니다. 종일 발품을 자연에게 넘겨주어야 하고 간혹 아주 조금 문명의 이기도 사용하면서 보내려면 지혜는 총명하게 걸음은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최적의 걸음 여행인 것입니다.
산책 후 부산 동부권역 비밀의 해변을 찾기 위하여 숙소에서 차를 이용하여 청사포로 향하였습니다. 청사포로 가는 길을 일부러 달맞이 공원 숲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청사포를 찾은 이유는 2020년에 출범한 블루라인 파크에서 운영하는 미포와 청사포를 운행하는 캡슐 지상 미니 전철과 그 아래 해안선을 따라 미포 블루라인 광장 - 미포 정거장 - 달맞이 터널 - 청사포 정거장 - 다릿돌 전망대 - 구덕포 정거장 - 송정 종점을 왕복 운행하는 해안 열차를 타기 위함입니다. 캡슐 차량은 미포 블루라인광장에서 청사포만 운행하고 해안열차는 송정과 미포 광장까지 운행하고 있습니다.
미포에서 송정까지 운행도입니다.
아래는 해안열차, 상층부는 캡슐 차량.
미포로 가면서 잡아 본 청사포 전경, 참 아름답습니다.
미포 방향으로 가는 캡슐 차량 좌측 끝으로 오륙도가 보이고 이 기슭을 돌아서면 미포 옆으로 해운대 백사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를 따라오는 캡슐 좌측의 캡슐 차량과 미포에서 청사포로 가는 우측 캡슐 차량입니다.
미포에서 캡슐 차에서 내린 후 1층으로 내려 가 해안열차를 다시 타기 위하여 수속을 밟은 후 탑승하였습니다. 열차 내부 의자는
나무의자로 해안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횡렬로 배치되어 있어 해안 풍경을 상세하게 조망할 수 있습니다.
기존 폐선을 이용하여 만들어 놓은 해안열차에 시작점이며 종점입니다. 가족들은 서로 사진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 혼자 송정역 일대를 살펴보았습니다.
송정역사에 걸린 시계 우리들이 도착한 시간은 3시 40분을 확인하며 새삼 시간에 대한 역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억겁의 탈을 쓰고 한 시도 쉼 없이 흘러 왔고 그 초침은 한 시도 쉼 없이 흘러오고 흘러갈 것입니다. 시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들여다볼 재주가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점인 것 같습니다.
구역사를 그대로 보존하며 해안열차와 관련된 업무로 역에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디런가 전화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혹시 모친이신 김 영옥 님께 라도...
송정역 광장에도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여행의 속성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찾아 탐방하다 제 자리로 필연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가정을 품고 다니기 마련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 중이라도 가족들과 어울려 살고 있는 삶에 쉼터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귀소본능이 자신도 모르게 잠재적으로 강렬합니다.
잠시 대기석에서 기다리다 열차에 올랐습니다. 우린 다시 다릿돌 전망대까지 타고 가서 전망대에 올라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주변을 조망한 후 전망대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감을 통해 일상에서 잠시 물러설 계획입니다. 그리고 열차를 버리고 걸어서 차가 주차되어 있는 청사포까지 걸음 여행을 즐기며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릿돌 전망대입니다. 인기가 많아 바로 옆에 원형으로 다시 만들 공사를 시작하고 있는 중입니다.
탁 트인 전망대, 알게 모르게 뭉쳐있던 여러 가지 사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는 마력이 있는 곳입니다.
전망대로 진입하기 전 전망대 바닥을 보호하기 위하여 덧신을 제공하여 신고 들어가야 합니다. 약간 미끄러운 기분이 들지만 보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훤히 보이는 바닥은 투명한 유리와 데크 판재와 강철 뚫린 발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데크재를 빼고는 유리나 강철 발 판재는 고소공포증을 불러올 만큼 엉금 거리게 만들거나 주저앉게 한답니다.
시야에 펼쳐진 망망대해와 해운대에서 기장군까지 연결된 해안선이 참 아름답습니다. 잔망대를 벗어난 후 다시 해운대 방향으로 걸어서 산책을 이어가며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드라마 세트장으로 건축된 죽성 성당, 이후 태풍 영향으로 일부 파손되자 기장군에서 현재의 성당 모습으로 재건축하게 됩니다. 재건축하면서 고상이나 성모님 상은 철거되고 실내는 갤러리로 바뀌어 종종 전람회가 열리는 곳입니다. 전례가 이루어지거나 성직자가 상주하는 것도 아니지만 죽성이란 작은 어촌 바위 턱에서 세워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행객들에 시선을 끌기에 족한 곳입니다. 성당과 함께 서 있는 등대 또한 모조품입니다. 성당 뒤쪽으로는 바위와 바위 사이에 깊은 못 같은 바닷물이 고여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잠시 들러 보면서 신앙심이 깃든 마음과 평화의 시선으로 돌아보았습니다.
죽성 아래 가까운 해녀마을을 찾아 모둠 해물과 전복죽을 시켜 아침 겸 점심으로 해결하였습니다.
해안선 따라 어항 부근을 산책하면서 지내다
해동 제일의 명승지에 고려 나옹선사에 의하여 건립된 용궁사를 찾았습니다.
방문객들이 혼잡을 이루어 절 특유의 정적과 여백의 환희심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도량이기보다는 관광지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며 군중 속에 고독을 떠올려 보면서 경내를 천천히 순회하였습니다. 그리고 상주하시는 스님들에 일상이 보편적일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가져 보았습니다. 만물에 대한 해탈을 이루시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절 환경이 아닌가 하면서 속삭이듯 성불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인사를 남긴 후 절에서 물러 나오다 해안 따라 만들어진 길을 걸어 용이 살았다는 용 바위굴로 다가가 보았습니다. 좁을 바윗길 사이로 파도가 치며 급물살을 이루며 다가왔다가 다시 물이 빠지면서 수많은 자갈을 흩고 흐르면서 내는 소리에는 정화의 의미가 깊이 깃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종교란? 모름지기 마음에 정화를 통하여 올바른 마음에 질서를 잡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거듭하며 용궁사를 벗어나 귀경 길에 올랐습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돌아 다니면서도 머무는 곳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나의 집이지요. 나의 가족들이 머물며 살고 있는 가족들에 정원이라 할 수 있는 가정입니다. 사람들은 여행을 하면서도 되돌아갈 가정을 늘 마음에 품고 다닙니다. 그 마음이 없다면 여행자의 신분은 방랑자가 되는 것입니다. 되돌아갈 곳이 있기에 여행자가 되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행에 대한 끝을 마음에 의지처인 노아의 방죽과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지닌 배론성지를 제노와 상의하여 잡아 두었습니다. 방문시간 때도 어두움이 몰려오기 두 시간 전 때 즈음으로 잡아 두었습니다. 한 번의 휴게소을 찾은 후 줄곧 달려온 중앙고속도로 신림 ic로 나와 6km 남하한 후 도착한 배론 성지 단풍이 화려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성지 중앙에 서서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했다고 하신 말씀에 의미를 새삼 깨달으며 지금 이곳에 서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모두를 주시는 주님에게 저에 모든 것을 주님에게 맡겨드립니다. 그리고 또한 소박한 신앙의 뜻과 같이 소박한 겸손의 의지대로 남은 삶의 시간을 보낼 것을 약속드리겠나이다.
손주를 데리고 황사영 알렉시오께서 은거하며 백서를 써 나려 간 토굴을 찾아 순교자의 삶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조용히 참례를 마친 후
성모님 앞에 섰습니다. 주님과 함께 성모님을 통해 일생에 처음으로 큰 깨달음에 시간을 갖었던 기억을 놓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은 나의 밖에서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사랑을 통하여 나 자신 안에 있음에 대하여 늘 깨어 있겠습니다. 관대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또한 제가 당신들보다 앞서 가지 않게 하시고 뒤를 걷지 않게 하시고 온전히 언제 어디서나 당신들과 함께 걷게 하시옵소서 ~~~ 아멘.
그리고 마음에 시선을 통해 받은 성지에서의 붉은 단풍잎 하나를 마음에 곱게 펴서 자리를 잡도록 한 후 가을 여행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황혼의 아름다운 시간만큼이나 아름다운 정경의 사진을 통하여 관대한 자비에 대한 화두를 완성하도록 자신과 약속을 성지 남겨 놓은 후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ps/
북한산 정기 가을 산행
10월 정기산행으로 북한산성 보국문 자락인 갈바위 능선을 선택하였습니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삼각산 정수리와 그 옆으로 펼쳐지는 도봉산 파노라마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추가 서서히 흩어져 가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절기인 봄을 유추하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악우들과 만나는 시간은 9시 40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참석하러 오다 보니 모임 시간을 칼로 무엇인가 베듯이 시간을 정한다는 것은 너무 경직된 사고라는 생각에서 시간적 여유공간을 정해 둔 것입니다. 20분간 모임 준비공간을 설정해 둔 것입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삼삼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차 한 잔을 나누며 서로에 삶에 동정을 살피고 어눌해진 생명력 덕분에 늦어진 시산을 초조해하는 심리에 여유를 주기 위한 선택입니다. 두 번의 전철을 이용한 후 도착한 성신여대 역사에 빠져나와 성원을 기다린 후 정각 10시에 마을버스에 올랐습니다 성북구 생태공원에 도착한 후 행장을 다시 추슬렀습니다. 걷기 편한 복장으로 변신하기 위함입니다. 겉옷을 벗어 knap sack 줄에 걸어두거나 안에 담기 위하여 스틱과 카메라를 빼내어 공간을 확보해 줍니다. 그러한 공간이 없을 경우 공동의 개념으로 지니고 온 물품을 공간이 여유로운 악우에게
대리 운반을 맡기는 것도 행장 정리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목적지를 하달하고 자기 방식대로 산행에 행보를 쌓으며 걸어 목표점에 모이면 되는 것이지요.
이미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산 길을 퇴락의 의미와 이를 토대로 한 부활의 삶에 연결 고리를 찾으며 고도를 높여갑니다.
심장에서는 더 많은 산소를 요구하는 아우성이 몰아치면 잠시 걷던 길을 멈추고 사방을 조망하며 들숨에 여유를 챙겨줍니다.
오를수록 거칠어져 가는 숨은 더욱더 거칠어져 가고 극한이라 생각이 들 즈음 슬쩍 기도문을 꺼냅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기도문을 끝내면 족히 100보 이상 이동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순간을 서너 차례 넘기고 나면
드디어 마루에 서게됩니다. 노적봉, 만경대, 너머로 백운대 그 옆 인수봉 등 삼각산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그냥 파노라마라면 재미가 없지만 자신에 마음이 지속적으로 정상의 환영으로 발걸음을 유혹하여 만든 노고는 그답을 얻어내게 됩니다. 그 답이 바로 환희에 파노라마를 마음에 쌓는 일입니다. 미련 없는 끝없는 실제적 행복이지요.
다시 건각을 세운 후 마지맏 정점을 벗어나면 화강암 긴즐같은 북한산성 성곽이 휘돌고 휘몰아 나갑니다. 문루를 보호 삼아 동서남북의 깃점을 살피면 북서와 북동의 삼각산 머리채를 만든 화강암 덩어리는 철옹성으로 다가오고 동장봉을 마주한 용혈봉은 굳건한 대한 남아 기맥을 연상시킵니다, 남으로 터진 조금 가라앉은 곳 문루는 대남문 그 양 옆으로 문수와 보현이 영웅을 보위하여 절을 짓고 그 자리에 영웅의 옥호를 문수사라 합니다. 그 아래로 길고 긴 계곡이 세검정까지 흐르면서 언저리에 평창보를 만들어 성곽 안 깊은 곳에 숨겨 놓은 궁궐에서 사용할 곳간이란 용처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유난히 성곽 유지와 전란 시 방어를 목적으로 승병들이 머물 곳을 많이 둔 곳이 바로 북한산 곳곳에 있는 절집들입니다. 이러한 역사에 파편들을 제대로 주으려면 하루 빛 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삼각산 산행입니다. 가을 끝트머리 성곽에 서서 산악의 선한 신비에 대하여 느끼며
樂山樂水 진면목을 추억하며 하산 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참 즐거운 삼각산 정담을 마음에 새기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