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자매님들 한 주일 안녕하셨어요.
오늘이 24절기의 15번째인 백로군요.
가을 기운이 완연하고 농작물에 이슬이 맺힌다 하여
백로라 한다지요.
큰 태풍이 빗겨가서 다행이고, 나머지 태풍도
그냥 사그라졌으면 좋겠지요.
여름내 가꾼 농작물들이 추석을 맞이하여
더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말이지요.
저는 어제 서정문학 회원님들(주로 시인)하고
강릉 허난설헌, 오죽헌, 경포대 호수가 시비를 구경하는
문학기행을 다녀왔습니다.
부족하지만 스케치 해 올려 봅니다.
안녕히계세요.
허난설헌
허균, 허난설헌 생가 바로옆에는 이들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전시해 놓은 기념관이 있다.
강릉이 낳은 대표적인 작가 남매를 기리는 기념관 치고는 너무 작고 조촐하다.
앞에서는 허균에 대해서 알아 보았으니 이번에는 허난설헌에 대해 알아보자
허난설헌(許蘭雪軒)에 대하여
1563년(명종 18)∼1589년(선조 22).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 강릉 출생.
엽(曄)의 딸이고, 봉(篈)의 동생이며 균(筠)의 누이이다.
가문은 현상(賢相) 공(珙)의 혈통을 이은 명문으로 누대의 문한가(文翰家)로 유명한 학자와 인물을 배출하였다.
아버지가 첫 부인 청주한씨(淸州韓氏)에게서 성(筬)과 두 딸을 낳고 사별한 뒤, 강릉김씨(江陵金氏) 광철(光轍)의 딸을 재취하여 봉·초희·균
3남매를 두었다.
이러한 천재적 가문에서 성장하면서 어릴 때 오빠와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웠으며, 아름다운 용모와 천품이 뛰어나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 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짓는 등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허씨가문과 친교가 있었던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웠으며, 15세 무렵 안동김씨(安東金氏) 성립(誠立)과 혼인하였으나 원만한 부부가 되지 못하였다.
남편은 급제한 뒤 관직에 나갔으나, 가정의 즐거움보다 노류장화(路柳墻花)의 풍류를 즐겼다. 거기에다가 고부간에 불화하여 시어머니의 학대와 질시
속에 살았으며, 사랑하던 남매를 잃은 뒤 설상가상으로 뱃속의 아이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친정집에서 옥사(獄事)가 있었고, 동생 균마저 귀양가는 등 비극의 연속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책과 먹〔墨〕으로 고뇌를 달래며, 생의 울부짖음에
항거하다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조선 봉건사회의 모순과 잇달은 가정의 참화로, 그의 시 213수 가운데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시가 128수나 될 만큼 신선사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 일부를 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에는 일본에서도 분다이(文台屋次郞)
가 간행, 애송되었다.
유고집에 《난설헌집》이 있고, 국한문가사 〈규원가 閨怨歌〉와 〈봉선화가 鳳仙花歌〉가 있으나, 〈규원가〉는 허균의 첩 무옥(巫玉)이,
〈봉선화가〉는 정일당김씨(貞一堂金氏)가 지었다고도 한다.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중기에 재주많은 여인이 고된 세파를 헤쳐나가기는 그리 쉽지 않았을것이다.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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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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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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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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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사임당 신씨는 뛰어난 여류 예술가였고 현모양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며, 신씨의 아들 율곡 이이는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였다.
오죽헌은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최치운(1390∼1440)이 지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에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사용했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도 새부리 모양으로 빠져나오는 간결한 형태로 짜은 익공계 양식으로 꾸몄다.
우리나라 주택 건축물 중에서 비교적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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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곡선생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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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동안 핀다는 백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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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돌 원영동 선생의 감자꽃 태산 시비 앞
경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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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피서객들은 오간 데 없고 파도만 너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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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두레 1년 안젤로(김중구)
첫댓글 좋은 곳 다녀오셨네요. 함께 하신 벗님들이 아름답습니다. 언젠가 한 번 저도 가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비오 형제님 잘 지내셨어요. 저의가 잘 몰랐던 허난설헌님의 천재적인 글들을 볼 수 있고 알게되어 큰 수확이었습니다.
앞으로 허난설헌 시인의 시들을 공부하고 널리 소개하고 싶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끝까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찍
요절하신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추천 해드리고 싶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수고 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정자나무님 장마에 잘 지내시죠.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