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요한 6,51)
지난 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에 이어 교회는 오늘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으로서 우리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로 지냅니다. 하느님의 외아들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음으로서 보여주신 극한의 사랑을 기억하고 이를 재현하는 미사성제, 그 가운데에서도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우리를 위한 양식으로 내어놓은 사랑의 기적인 성체성사를 기억하는 오늘, 이 미사 안에서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탈출기의 말씀은 모세를 통해 이집트 종살이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 이르러 그곳에서 주님이신 하느님을 뵙고 그 분과 사랑의 계약을 맺게 되는 장면을 전합니다. 시나이 산에 도착한 모세는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함께 하느님의 명에 따라 시나이 산에 올라 주님이신 하느님을 뵙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시는 계약의 법규들을 받아들고 산 밑으로 내려와 그들을 기다리던 백성들에게 계약의 내용을 일러주며 제물로 잡은 황소의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에 맺어진 계약의 성립을 다음과 같은 말로 선포합니다.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탈출 24,8)
이 같이 오늘 제 1 독서의 탈출기의 말씀이 전하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에 맺어진 계약의 표징으로서 뿌려진 희생 제물의 피가 오늘 복음 안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합니다.
오늘 복음을 전하는 마르코 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시는 모습, 곧 최후의 만찬의 모습을 전합니다. 이제 곧 있을 십자가 상 죽음을 앞둔 예수님은 제자들과 나누는 소박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마지막 식사의 자리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시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건네십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르 14,22.24)
구약 시대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어진 하느님 사랑의 계약이 제물로 바쳐진 황소의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서 성립되었던 순간을 상기시키는 예수님의 이 모습은 예수님께서 이루실 십자가상 죽음이 구약에 맺어진 옛 계약을 완성하는 새로운 계약임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며 동시에 이제는 더 이상 황소와 염소의 희생 제물의 피가 아닌 예수님 당신 스스로 제물이 되어 당신의 몸과 그 분이 흘리시는 피로서 새 계약의 완성이 이루어 질 것임을 드러냅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이 드러내는 예수님이 이루시는 이 같은 새로운 계약의 의미를 오늘 제 2 독서의 히브리서의 말씀이 보다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상 죽음으로 완성된 새 계약, 곧 신약의 의미를 구약과 대비시켜 설명하며 예수님이 이루신 희생 제사, 곧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시면서 흘리신 피와 희생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히브 9,15)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희생은 구약의 시대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사랑의 계약을 완성하는 새로운 계약, 곧 신약의 완성이라 할 수 있으며, 바로 이 신약을 통해, 부르심을 받은 모든 이들이 //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인 구원을 얻도록 해 주시는 하느님 사랑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로 하다면 나의 목숨 따위 아깝지 않게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랑, 그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사랑, 인생의 한 때를 불같이 타오르게 만드는 이성 간의 사랑, 그 모두는 바로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의 일부이며 그 사랑의 부분적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점에서 예수님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이고자 당신의 온 몸을 내어 놓으며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 사랑이 바로 십자가 위에서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이며, 모든 이를 위해 자신의 몸을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놓는 사랑, 그리고 모든 이를 죄를 씻기 위한 희생 제사로 자신의 피를 내어놓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이 사랑이 바로 매일 봉헌되는 미사 안에서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성체성혈의 신비를 통해 우리 눈앞에서 재현됩니다. 그 사랑을 잊지 않기를, 행여나 그 사랑을 잊고 외로움과 고독에 살아가는 이들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후의 만찬을 통해 그 사랑을 우리의 마음 깊이 새겨주신 이 예수님의 사랑은 바로 십자가 위에서 보인 하느님의 사랑의 연속이자 연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사랑하는 송동 교우 여러분, 미사 때 사제가 성체를 들어 올리며 바치는 이 기도문 안에 담긴 예수님의 음성을 기억하고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신 사랑을 잊지 말고 기억하십시오. 그 사랑이 우리를 부르며 그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잊지 말기를, 또 그 사랑으로 세상이 주는 무거운 짐과 버거운 현실의 모든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기를 바라며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도,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사랑으로 부르십니다. 그 사랑에 응답해 보십시오.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를 거행하며 우리 모두가 함께 들은 오늘의 말씀이 전하는 이 예수님의 사랑의 외침을 기억하며 십자가와 성찬의 식탁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잊지 않고 매일의 미사를 통해 재현되며 우리에게 전해지는 그 사랑에 여러분 모두가 흠뻑 젖어, 하느님의 그 사랑에 깊이 물들어 여러분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는 그리스도 향기 가득한 한 주를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요한 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