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은데 때려준다고 코로나는 때론 좋은 구실을 해준다. 설이나 추석명절 때면 손자들 등살에 곤혹을 치루는데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고가 아니라 오면 성가시고 가면 기쁜 게 그놈들이다. 나만 유별나서 그런가 하고 주변에 물어보니 말은 안해서 그렇지 장삼이사가 대충 대동소이 하였다. 나라에서 올 추석에도 모이지 말라고 엄포하니 우리도 이 참에 여행이나 가자며 집을 나셨다.
삼천포에서 남해로 넘어가는 창선대교를 건너자 본격적인 바다가 나타났다.
대충 어림짐작으로 해안도로를 유유히 달려 먼저 독일마을에 닿았다.말로만 듣던 독일마을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관광명소였다. 경주처럼 문화재만 관광자원이 아님이 확연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것을 이제야 실감했다. 독일마을 설립취지가 관광객 유치가 주목적이 아니지만 이색적인 유럽풍 가옥 39채로 이국정취를 느껴보려는 정서에 부합하여 급속하게 입소문을 타고 급기야 남해의 1급 관광지로 변모한 듯하다.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어 독일에서 온 파독원주민보다 상업성을 띤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도 앉아서 독일 여행기분을 낼 수 있는 독일맥주나 음식들과 매주 연다는 독일축제로 미래 관광상품의 이정표를 보는 것 같았다.
골목 골목마다 들여다 보기 바쁜 옆지기를 재촉하여 푸르디 푸른 수평선이 가로선으로 하늘을 분간하는 해안도로로 한참을 내달리니 보물섬은 없는데 보물섬전망대라는 전망대가 나타났다. 요새 전국 어디를 가나 한물 간 스카이워크가 있어 신선함이 떨어져 시큰둥하게 올라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 일찍이 바다를 좋아하고 부산에 산지 40년이 다 되어가도 여기처럼 호쾌한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흔히 좋은 바다뷰를 일망무제(一望無際)라 하는데 그 무제는 일면 단조로움일 수도 있는데, 천길 낭떨어지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가슴에 혹시나 남아있는 군더더기 하나라도 남기지 않고 모두 훑어 버려야만 하는 바다이게 했다. 눈을 떼기 아쉬운 광경을 남겨두고 하루밤 유할 곳을 서핑하려 나셨다. 상주해수욕장은 옛날의 해수욕장이 아닌 듯 하여 패스하고, 왠만하면 일몰 광경을 볼 곳을 찾았으나 전망대에서 너무 시간을 지체하여 지는 해를 아쉬워 하며 분위기 있어 보이는 포구가 있는 팬션에서 파도소리를 해조음으로 들으며 늘어진 잠을 잤다.
금산보리암 일출을 고대하며 떠났으나 해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아 포기하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다랭이 마을로 찾아갔다.
3평에서 큰 것은 300평이라는 계단식 논이 680개가 있단다. 산이 높아 경사가 심한 비탈에 논을 만들다 보니 높이가 2.3메타는 족히 되는 구불구불한 논이 마침 황금색으로 바뀐 벼들로 장관을 이뤘다. 다락처럼 높다하여 다락논이라 한다는데, 그 많은 돌을 어디서 지고왔는지 경탄스러웠다. 예전에 이곳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펐는지 젊은세대는 어림짐작도 못할 것이지만 내눈에는 어제일인 양 했다. 마을은 중턱에 있고 논은 가파른 위 아래에 있으니 일일이 지게를 지고 오르내렸어야 하는 그 고생이야 글로써 어이 헤아릴 수 있으랴.
어디 할 것 없이 이농현상으로 이 동네도 묵혀진 이름없는 폐농촌마을이 되었을 것을 이 마을 출신 면장이 꽤 높은 이 동네 뒷산인 설흘산에 등산로를 내는 바람에 등산객들의 입소문으로 20년전부터 알려지게 되고, 그게 전국적인 관심을 끌어서 해마다 백만명이 다녀가는 유명 마을이 되었다 하니 상전벽해도 이런 벽해는 어디에도 없을기라.
남해군 해안일주도로가 산복도로로 개설되고 도로변에는 넉넉한 공간에 주차장도 있어 접근성도 좋아서 CNN 50개 한국명소에 지정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10대 명승으로도 손색이 없다 싶었다.
민박에 팬션에 맛집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이 역역하였으나 어차피 이 마을 원주민은 노인들일테니 농사는 끝났고, 마을을 원래 모습대로 유지시키고 다락논의 형태를 원형 상태로 잘 보존하여 스위스목장 초원의 축사처럼 관광자원으로 오래 활용되도록 남해군 당국에 기대해 본다.
돌아나오는 길에 무너진 논뚝석축을 보수하는 포크레인을 보면서 나의 조바심이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멋진 1박2일의 남해여행길을 기분좋게 마무리 했다.
첫댓글 한사람의 번뜩이는 지혜가 다랭이마을을 벽해로 만들고 CNN 10대 관광지로 만들었다니 많을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수많은 유적이 있는 경주 자만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유적들을 꾀어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함을 일깨워줍니다. 선배님 많을 것을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지기님께서 여론을 조성해보세요
경주도 독일축제를 벤치마킹하면 졸겠습니다
베틀형식의 화랑선발대회 같은 것도 좋겠지요
대릉원주변에 넓은 공간도 활용하고요
@유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