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한 「초원을 찾은 나그네」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종희
나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인가 보다. 퇴직 후의 생활이 암담했을 때 김길남 선생님의 생활 프로그램을 듣고 2011년 2월 수필에 입문해 8개월 만에 수필가라는 별칭을 붙였다. 더불어 그해, 한 해 동안 쓴 글을 모아 12월, 전라북도청에 문예진흥기금 보조금 지원신청을 했더니 덜컥 200만 원이라는 거액을 지원 받아 이듬해 「임도 보고 뽕도 따고」라는 첫 수필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다시 3년 만에 도전해서 또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어 2015년 11월, 「초원을 찾은 나그네」라는 책명으로 두 번째 수필집을 상재하게 되었으니 운 좋은 사람이 아닌가.
첫 수필집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반응이 좋았다. 어떤 이는 받은 그날 저녁에 다 읽었다고 다음 날 나를 만나더니 말해주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도 힘이 불끈 솟는다는 고등학교시절, 외가에서 단편소설 전집을 빌려다가 날밤을 새우지 않았던가. 날밤을 새운 작가의 작품들은 지금도 내 머릿속 한쪽에서 자리 잡고 비켜날 줄을 모른다. 얼금뱅이에 왼손잡이라 여자와는 거리가 먼 허생원, 그의 친구 조선달, 젊은 장돌뱅이 동이 등이 등장하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을 무대로 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비롯한 많은 단편소설이 기억되는 것은 그때 읽은 것들이다. 어떤 이는 나를 지그시 쳐다보며 평범하면서 여운을 남겨주는 글이라서 자꾸 읽어진다고도 했다. 물론 듣기 좋으라고 해준 말인 줄 알면서도 싫진 않았다.
내 두 번째 수필집을 준비하면서 깜냥에 욕심을 부렸다. 잘못된 생각인지는 몰라도 일반적으로 한 부에 10편씩, 6부 60편으로 편집하는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도 첫 수필집을 그렇게 냈으니까. 여러 곳에서 발간되는 문학지를 읽으면서 구상하다보니 하나씩 걸려드는 것들이 있었다. 텍스트 문자로만 엮은 책에서 중간에 사진자료를 삽입해 보고 싶었다. 흑백의 문자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다보니 싫증이 났다. 부를 달리할 때마다 사진자료에 짧은 수필을 가미한 포토에세이를 끼워 넣으니, 바쁜 일상 중에 접을 필요 없이 그 사진만 기억하면 되었다. 더불어 한 편의 작품이 짧아 여백이 많을 경우, 작품과 관련된 사진이나 내 일상이 담긴 장면을 자그마하게 넣었다. 내가 소일하는 사군자와 서예로 표지를 구성하고. 출간하기 위해 인쇄 작업을 제외한 모든 일을 내 손으로 하고 싶었다. 인쇄를 맡은 공익사 김서종 선배님의 각별한 배려로 내가 구상했던 이상으로 출판물이 나왔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이제 지인들에게 보내는 차례다. 또다시 떨렸다. 받아보고 어떤 반응으로 되돌아올까?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갖고 받을 분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주소라벨 작성요령을 배워 파일을 만들고, 300여 권의 책을 싣고 아내와 함께 우체국에 가서 붙였다. 밤샘을 해가며 묶은 책 다발을 풀어 확인을 거듭했다. 완성이란 없는 것인지 붙이고 나니까 생각나는 지인, 주소가 잘못되어 반송된 것들을 다시 작성해서 보냈다. 휴대폰 메시지로, 카톡으로, 전화로, 엽서로, 만나면 인사로 고맙다며 잘 읽겠다고 돌아왔다.
그중 유독 색다른 소감을 보내온 분이 있다. 후배이며 동료였던 안재올 교장의 답신이다.
“「초원을 찾은 나그네」, 상재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등 여러 편 읽고 나니…. 참으로 진실한 삶을 사시는구나 하고 감탄했어요. 좋은 작품, 특히 포토에세이 등 구성이 돋보입니다. 축하해요.” 이것은 전체적인 소감이고, 다음은 책을 읽고 감상문을 적은 일부를 사진으로 찍어 보낸 소감이다. 볼펜으로 쓴 육필이다.
두 번째 수필집이 우편으로 배달되었다. 저자와는 오래전 인연이 있어 내가 존경하는 선배님이신데 축하부터 해야겠다. 첫 번째 수필집을 읽고 퇴직 후의 방향설정에 정보를 얻었는데, 많은 취미활동과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에 애착을 갖고 성실하게 사시는 점을 본받고 싶다. 손자들과 같이 체험하며 가정을 이끄는 따뜻한 가족 간의 사랑도 느꼈다. 가끔 고향의 이야기에 40년이 넘는 옛 추억을 더듬으며 그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였다. 장을 달리 할 때마다 포토에세이를 넣어 사진을 배우는 내게 시선을 더 머물게 하였고, 제6부는 전주의 관광안내 길잡이로 활용해도 좋을 듯하다. 승승장구 하시어 벌써부터 다음 수필집도 기대된다.
제Ⅴ부 할아버지랑 잘래요(포토에세이 ⑤ 모성애母性愛):새, 닭어미 병아리)
어느 날, 네 어미한테 할아버지와 함께 자야하는 이유를 말했다지? 엄마 아빠랑은 늘 함께 잘 수 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렇지 못하니까 만날 때는 함께 자야한다고 말이다. 할아비는 네 생각을 할머니에게 전해 듣고 어떻게 어린 네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 가슴이 울컥했단다. 그러고 나서 곰곰 생각해보니 네 백일 후 20여 개월 함께 살았던 정이지 싶어 기특하기 짝이 없었다. 다른 애들은 제 어미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데 말이다.(p.221.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자야하는 이유)
제Ⅵ부 맛 따라 멋 따라, 인심 좋은 전주로(포토에세이⑥ 덕진채련德津採蓮):덕진공원)
전주는 맛과 더불어 멋을 아는 고장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쥘부채(합죽선)를 척 펴면서 판소리 한가락을 뽑아 올리는 그 모습이야말로 멋쟁이가 아니던가. 아낙네의 정성어린 손바느질로 만든 한복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내 사진이 많이 있지만 장인 회갑 때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제일 화려하고 멋있어 가끔 꺼내본다그뿐인가. 소리를 하는 사람의 손에 들린 쥘부채야말로 장인의 혼이 밴 창작물이다.(p.227)
제Ⅶ부 세상 밖으로(신문사 기고 작품)(포토에세이⑦ 경복궁 경회루와 전주월드컵경기장 야경)
‘왕따’, ‘닌따’에 이어 ‘책따’까지
-달라지고 있는 교실의 풍속도, 이래도 되는가-
교실의 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인성과 지성을 쌓아야할 교실에서 친구를 따돌림하는 ‘왕따’로 사회적 이슈가 된지도 오래되었다. ‘왕따’된 학생은 얼마나 학교가 싫겠는가. 그런데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를 하지 않으면 따돌림 당하는 ‘닌따’라는 말이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되더니, 최근에는 책을 읽는 친구를 무시하거나 비아냥거리는 ‘책따’라는 말까지 생겼다니 한국교육의 미래가 암담하다.
정말 고마웠다. 내 글이 좋은 것보다 선후배 간의 정이 잘 읽어주지 않았나 싶다.
전 전북문인협회 소재호 회장님은 엽서로, 정군수 회장님은 전화로, 곧바로 자신의 소감을 전해 주었다. 이분들 외에도 긍정적으로 소감을 전해주신 분들이 많다. 특히, 시인이자 은퇴 신부님인 서석구 신부님께서도 엽서로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보내주셨다. 36년 전, 완주 비봉초등학교에서 가르쳤던 제자들과 연이 닿아 보내줬더니 만나자고 성화였다. 전주에 사는 제자들과 서울에 사는 제자들과 만나 그때의 베일에 가렸던 비밀들을 들춰내며 배꼽을 잡아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
어깨가 무거워진다. 세 번째 수필집은 또 달라야 할 텐데. 어떻게 구성할까. 두 권의 수필집을 냈는데, 수필 한 편을 빚어보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초년병 때 매주 한 편씩 쓸 때는 어떻게 썼는지 모를 정도다. 배울수록 어려운 게 공부였는데, 쓸수록 어려운 것이 수필인가보다. 내게 관심을 보내주신 분들을 위해서, 아직 만나지 못한 독자를 위해서 또 시작한다. 아니, 내 자신을 위해서. (2016. 0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