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 작은 불이 왜 큰불 됐나
[속보, 사회, 지역] 2003년 02월 19일 (수) 01:30
대구 지하철 화재는 삽시간에 상상도 못할 정도의 재앙으로 변했다.
객차 한 칸에서 일어난 불길이 의자 등 가연성 물질을 태우면서 순식간에 규모가 커져 전동차는 물론이고 마주 오던 열차까지 모두 태운 것이다. 특히 대구지하철공사 사령실에서 "역사 안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지 못한 전동차가 '불구덩이' 역사로 진입하는 바람에 사상자가 늘었다.
◇엉성한 방재 체계=대구지하철공사의 운행시간표에는 화재가 발생한 하행선 전동차의 중앙로역 도착시간이 18일 오전 9시52분40초, 상행선 전동차는 오전 9시56분45초로 돼 있다.
뒤늦게 중앙로역에 도착하도록 돼 있는 상행선 전동차의 경우 이전 역인 대구역을 오전 9시55분35초에 출발하도록 돼 있어 최소한 3~4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상행선 전동차는 사령실로부터 아무런 정보나 지령도 받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승객들을 불구덩이로 이끌었다.
이에 대해 대구지하철공사 측은 이날 오후 "하행선 전동차가 역에 들어온 뒤 한참 지체하다 화재가 발생해 후속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은 지하선로에서 화재라는 중대 사태가 발생했지만 승무원들이 즉각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거나,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체계가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안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와 함께 상행선 전동차의 기관사가 제동장치를 제때 가동하는 등 역사 안에서 적절하게 대처했는지도 의문이다. 역사 안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을 아무리 늦어도 역사에 도착해선 알 수 있었는데도 차량을 세웠기 때문이다.
◇방염처리 내장재가 없었다=우리나라 지하철 객차는 온통 가연성 물질로 꾸며져 있다. 시트는 물론이고 천장 손잡이에서 도료에 이르기까지 가연성 물질 일색이다. 일본 등 선진국들이 철저히 방염 처리된 재료를 사용하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또 객차들은 진동을 줄이기 위해 화학섬유 재질로 만든 주름막으로 연결돼 있다. 그러나 이번 불은 이 주름막에 옮겨 붙은 뒤 곧바로 다른 객차로 잇따라 번져 나갔다. 반대편 선로에 있던 전동차와의 거리도 1m가 채 안됐다. 뜨겁게 달아 오른 객차의 불꽃이 건너편 선로의 전동차 도료로 옮겨 붙는 것은 너무 손쉬운 상황이었다. 전문가들은 지하 갱도의 경우 전동차가 이동하지 않아도 일정 풍속의 바람이 계속 불어 불길이 빨리 번졌다고 설명한다.
◇인명구조 비상장치 미비=이번 화재 피해자는 맞은 편 선로에서 들어온 전동차에서 많이 발생했다. 화재로 전동차가 정차한 뒤 전원이 자동적으로 끊기면서 출입문이 열리지 않은데다 사방이 어두워 객차에서 재빨리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최소한 출입문이 수동으로 손쉽게 작동될 수 있도록 돼 있거나, 비상 탈출구를 나타내는 야광표지판이라도 제대로 설치됐다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떼죽음은 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