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대전현충원 참배,순례 #1
2022.6.12(일) 코로나로 인하여 2년 동안 실시하지 못하였던
민족통일동해시협의회의 2022 통일연수 및 회원세미나 추진사항으로 대전지역 안보현장을 찾는다.
민족통일동해시협의회 회원 37명이 참가한 가운데
오전 6시경 동해를 출발하여 횡성휴게소 등에서 휴식을 취한후 첫번째 방문지인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한다.
일제침략과 6·25전쟁, 월남전 등에서 활약한 애국지사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55년 7월 15일 서울 동작동에 설립한 국립묘지의 안장능력이 한계에 이르게 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지방 국립묘지 설치검토를 지시하였고,
1976년 4월 14일 충남 대덕군 유성읍 갑동리(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의 현 위치에
대전국립묘지를 설치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국방부는 1976년 5월 11일 지방 국립묘지 설치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1979년 4월 1일부터 공사를 본격 착수하여
1985년 11월 13일 전체 면적 약 322만㎡(97만 4천평)의 현 국립대전현충원을 준공하게 되었다.
공사기간 중이던 1982년 8월 27일부터 안장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국립대전현충원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장렬히 산화하신 호국영령 및 순국선열을 모시고 그분들의 생전의 업적을 추모하고 있다.
이후 국립대전현충원은 2006년 1월 30일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소관부처가 국방부에서 국가보훈처로 바뀌게 되었다.
10:00 대전 유성톨게이트를 지난다.
대전 월드컵 경기장
국립대전현충원은 문필봉을 조종산(祖宗山)으로 옥녀봉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있으며,
명산인 계룡산을 태조산(太祖山)으로 삼고 있다.
택리지에 의하면 태조산인 계룡산은 삼각산, 오대산, 구월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4대의 역량 있는 큰 터 중 하나라고 한다.
문필봉은 형상이 붓끝같이 되어 있어 유래한 이름이며,
우뚝 빼어난 봉우리는 불길이 이는 듯하고, 이 불빛이 성역을 두루 비치고 있는 듯하다.
이 문필봉에서 다시 솟구쳐 내려 이룬 옥녀봉은 마치 옥녀가 금반(金盤)을 대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처럼 국립대전현충원의 지형은 명산인 계룡산의 맥을 이어 받은 문필봉과 옥녀봉을 정점으로
병풍처럼 둘러친 좌우능선이 좌청룡·우백호를 이루고 있어 묘역으로 아주 이상적인 명당(明堂)자리라 하겠다.
10:10 국립대전현충원 경내로 들어선다.
천마웅비상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며 세필의 천마가 힘찬 기세로
조국을 영원히 약진, 번영으로 이끈다는 의미이다.
국립대전현충원 민원안내실 주차장
현충탑 참배는 오전 10시 30분으로 계획, 20여분의 여유시간이 있어
보훈동산내의 서해수호 55용사 부조가 설치되어 있는 곳은 먼저 찾는다.
민원안내실
국립대전현충원 안내도
보훈공연장 전경
이곳에서 많은 행사가 진행이 되는 곳이다.
서해수호 55용사 흉상 부조,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 내용 설명과
연평도 포격전 부조
보훈매점
10:34 보훈동산의 서해수호 55용사 부조 등 탐방후 현충탑으로 이동한다.
홍살문
호국분수탑의 조각인물상
호국분수탑은 1983년 12월에 준공이 된 것으로 전면에 대형화강석 좌대에 조형물과
좌우에도 4인의 조각인물상이 있으며,
중앙 제일 높은 곳에는 대형 청동 십장생 투조는 호국영령의 영생을 기원하는 위에 대형 조형물이 있다.
조형물 주변에는 분수대가 있으며, 주변에는 낮은 회양목이 심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