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엡 1:15-23절
제 목 : 바울의 기도를 통하여 배우자3
일 시 : 2024. 2. 28.
에베소서 1:15-23/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지난 주에 17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영광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간의 노력과 방법과 지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셔야 하는데, 그 방법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서입니다.
오늘은 18-19절을 중심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했습니다.
1. 먼저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눈이란 우리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마음에 눈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과 영적인 존재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깨닫고 이해하고 감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육신의 오감을 통해서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귀를 통해서 소리를 듣기도 하고, 촉감을 아픔과 덮고 춥고 따스함을 느끼기도 하고, 코로 냄새를 맛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영이신 하나님을 느끼는 것입니다.
왜 마음의 눈이 밝아져야 합니까? 이사야의 예언에 따르면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6:9-10/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보좌에 올라가서 삼위 하나님의 회의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께 말씀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꼬? 라는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말씀을 대언하러 갈 사람이 자기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대답합니다. 그 이후에 주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13: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고 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고후4:4/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방법으로는 결코 성경을 깨달아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들을 만나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예수님 자신에 관한 모든 말씀들을 풀어 주셨을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을 볼 수 이었습니다. 그래서 눅24:31/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라고 했으며, 이어서 눅24:45/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성경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안 주셔서 받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받아 누리지 못합니다.
지난 시간에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 주셔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2.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란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소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요일3:3/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소망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불러 주신 소망인데 바로 앞 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일3:1-2/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순간 이 땅에서의 모습은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여도 육체적인 죽음을 통해서 천국에 올라가 보면 우리의 모습은 예수님과 똑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일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3. 성도 안에 있는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기업이란 상속권, 세습 재산, 또는 소유물, 유업이라는 뜻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러 받는 상속권과 상속재산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도 안에 있는 그분의 기업이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에게 물러 주신 상속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롬8:17/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상속받게 된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복을 물러 받았습니다. 바로 그것을 깨닫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받아 누리는 상속재산이 얼마나 크고 풍성한지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아 누리게 됩니다. 롬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약1:17/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9가지 은사와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주셨습니다. 또한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거기에는 모든 귀신을 다스리고 귀신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도 주셨습니다. 모든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또한 시34:10/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4.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깨닫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과 관련해서 네 가지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1) 먼저 힘이란 이스쿠스라고 하는데 강력함, 능력, 권세, 권능, 힘이라는 뜻으로 육체적이며 남성적인 힘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타고난 힘을 뜻합니다. 각자의 육체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강한 힘을 의미합니다.
2) 두 번째는 위력이란 크라토스라고 하는데 세력(큰) 통치, 세력(있게), 권능, 힘이라는 뜻으로 저항과 통제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엡6:10/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했습니다. 악한 영들을 대적하는 능력입니다.
3) 역사하심이란 에네르게이아이라고 하는데 효력(힘), 작용, 강함이라는 뜻으로 세상에 영향을 끼치거나 영적인 존재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마귀를 쫓아내고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4) 능력이란 뒤나미스라고 하는데 풍부, 힘 있게, 이적적인 권능, 강력, 폭력, 전능한(놀라운)일이라는 뜻으로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잠재력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성도의 기업의 풍성함에 대해서 말씀 드린 것과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반복되는 것은 생략하고 한 가지만 추가해서 말씀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란 곧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바로 그 동일한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따라서 앞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더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열어주셔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무엇인지 더 많이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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