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잿더미였다. 사람들이 죽었고, 민간인이 학살됐으며, 이산가족이 생겼다.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하면서 남북은 허리가 잘렸다. 반공과 반미가 서로 맞부딪치며 우리 민족은 치열하게 대립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영화인들은 한국전쟁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들은 한민족의 고통, 비참한 가족사, 전쟁의 잔인성 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평화와 공존의 의미를 물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대부분 북한을 증오했고, 반공산주의를 외쳤다.
반공영화는 남북이 화해무드에 들어서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반공이 아니라 전쟁의 비극을 중점적으로 담아낸 영화들이 제작됐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다투고 싸우는 아픔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 이 지독한 싸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일반 민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단의 문제를 다룬 영화들은 서서히 달라졌다.
정치가 뒤로 돌아가고, 냉전의 시대가 도래하자 영화판에도 덩달아 반공바람이 불었다. 영화 ‘간첩’, ‘알투비:리턴 투
베이스’, ‘
베를린’ 개봉에 이어 북한을 냉전시대의 주적으로 간주한 영화 ‘적’,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등이 계속해서 개봉될 예정이다.
‘북한’은 진정 증오할만한 살인마 집단인가?한국전쟁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북한에 대한 왜곡과 증오심으로 넘쳤다. 북한을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광으로, 한반도를 적화통일 시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으로 묘사했다.
1959년대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중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는 1955년작 ‘피아골’이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 이후 벌어진
지리산 빨치산토벌작전을 소재로 그린 영화다. 이 작품은 당시 도식적인 반공영화들과는 다른 면을 부각했다. 이데올로기와 인간성의 갈등을 정면으로 담아내면서 공산주의자들도 똑같은 인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그 뿌리에는 반공이 있었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거
발표됐다. 내용은 전쟁의 비극과 가족애와 사랑을 담았지만 반공과 국군의 활약을 중점적으로 부각시켰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영화로는 1961년 ‘5인의 해병’, 1963년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4년 ‘빨간 마후라’ 등이 있다. 특히 북진을 거듭하다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죽음 맞은 한 해병부대의 이야기를 담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과 평양폭격전투에서 죽은 전우의 미망인을 사랑하는 한 조종사의 이야기를 그린 ‘빨간 마후라’는 영화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밖에도 1965년 ‘남과북’과 ‘언제나 그날이면’, 1966년 ‘군번 없는 용사’과 ‘대폭군’ 같은 영화들도 발표됐다.
1970~80년대에도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들의 내용은 비슷했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데다 경제발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한국전쟁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다. 이 시기에는 영화 제작 편수도 많지 않았다. 대표작으로는 1973년 ‘전우’와 ‘천사의 분노’, 1975년 ‘특공외인부대’, 1976년 ‘
낙동강은 흐르는가’, 1977년 ‘난중일기’, 1980년 ‘최후의 증인’, 1981년 ‘인천’, 1982년 ‘아벵고 공수군단’, 1983년 ‘3840 유격대’, 1987년 ‘블루 하트’ 등이 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이 남긴 비극을 본격적으로 꺼내놓았다. 1990년 ‘남부군’을 필두로 1991년 ‘은마는 오지 않는다’, 1992년 ‘하얀전쟁’, 1994년 ‘태백산맥’ 등 한국전쟁을 다각도로 조명한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는 한국전쟁을 인간 본연의 아픔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이 발표됐다. 그중 가장 유명한 영화가 2004년 ‘
태극기 휘날리며’, 2005년 ‘웰컴 투 동막골’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북한에 대한 증오보다는 인간성을 철저하게 파괴해버린 전쟁의 폭력성을 부각하면서 가족의 가치를 일깨웠다. ‘웰컴 투 동막골’은 동막골이란 유토피아를 통해 분단된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줬다. 미군의 동막골 폭격을 막기 위해 남북 군인들이 서로 힘을 합치는 줄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반공영화들이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반공영화 중에는 100억원의 제작비를 투자한 영화까지 등장했다. 전쟁을 일으키려는 북한을 우리 공군이 응징한다는 영화 ‘알투비:리턴 투 베이스’와 북한 노동당에 반기를 들고 무력통일을 주장하는 군 세력이 남한에 내려와 전쟁을 일으킬 목적으로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을 점령한다는 영화 ‘적’이다.
분단 영화, 자극적인 소재로 돈만 벌면 되나영화는 우리에게 즐거움도 주지만 교훈을 남기기도 한다. 한국전쟁이나 분단, 민족의 운명을 소재로 한 영화가 그런 부류다. 이 영화들은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면 어떤 결과에 이르는지 알려줬고, 남북이 공생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미래상을 그려야하는지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반도에 전쟁 위험이 불어 닥치고 있다. 지난 전쟁의 비극이 다시 시작될 전조가 일고 있다. 핵실험에 이은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 키 리졸브-독수리 한미 연합군사훈련,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등이 계속되면서 전쟁의 불안을 해소할만한 뚜렷한 해법이 나오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제2의 한국전쟁은
반세기가 넘는 동안 서로 으르렁거리며 대적해왔던 남과 북을 또 다른 역사의 비극 속에 빠지게 할 것이다. 이미 영화에서 직간접적으로 증언된 미래다. 이러한 때 영화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한국전쟁과 분단은 여전히 우리의 정서에 가장 잘 부합되는 데다 상업적으로 보증이 된 소재다. 그렇다고 해도 남북한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때 서로를 천추의 적으로 간주하는 내용의 영화를 꼭 제작해야 하는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