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전에서 뜻밖의 일격을 당한 빙그레는 염종석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친 고졸 신인 정민철을 내세우며 승리에 대한 강한 집념을 나타냈다. 반면 롯데는 시즌 8승을 올린 연습생 출신 윤형배를 내세우며 ‘져도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맞섰다. 정민철은 5회 2사까지 단 한 명의 롯데 타자에게도 1루를 허락하지 않는 완벽한 투구를 자랑했다. 6회 2사 후 첫 안타를 허용했고 7회 초에도 조성옥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8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 냈다. 하지만 빙그레 타선은 한 점도 뽑아 내지 못해 8회까지 0-0으로 손에 땀을 쥐는 투수전이 전개됐다.
롯데 선발 윤형배가 8회까지 5피안타 무실점으로 버틴 것은 수비수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1회말 1사 2루에서 장종훈의 2루타성 타구를 우익수 이종운이 그림 같이 잡아내며 실점 위기를 넘겼다. 또 2회말 1사 후 강석천의 직선 타구를 건져 낸 2루수 박정태, 6회말 1사 2루에서는 김민호가 총알 같은 타구를 껑충 뛰어 잡아내는 호수비를 펼쳤다. 반면 빙그레는 주루 미숙까지 나오며 승기를 잡을 기회를 놓쳤다. 4회 1사 2루에서 나온 강정길의 유격수 땅볼은 타자주자만 1루에서 아웃되고 2사 2루가 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2루 주자 이중화가 3루로 내달리다가 2루로 돌아왔으면 됐는데 우물쭈물하다 협살에 걸려 아웃됐다.
살얼음을 걷는 0-0 승부가 요동을 친 것은 9회다. 김영덕 감독은 8회까지 단 2안타만을 허용하며 롯데 타선을 잠재운 정민철을 빼고 1차전 선발 투수인 송진우를 올렸다. 롯데 타선이 좌타자 전준호부터 시작되고 좌타 라인이 강한 것을 고려한 승부수였다. ‘좌타자는 좌투수에 약하다’는 야구계 격언에 충실했지만 이것이 결과적으로 악수가 됐다. 송진우는 첫 타자 전준호를 1루 땅볼로 잘 처리했지만 2번 대타 한영준부터 5번 박정태까지 4연속 좌전안타를 맞으며 1실점했다. 이어 나온 한용덕이 공필성의 내야안타와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하며 점수는 3-0으로 벌어졌다.
빙그레는 마지막 아웃카운트 3개를 남겨뒀지만 역전승을 거둘 마지막 기회가 있었다. 9회말 선두 타자 장종훈의 2루타에 이어 삼진, 볼넷으로 1사 1, 2루의 기회를 잡은 것. 롯데는 잘 던진 윤형배를 내리고 윤학길을 구원 등판시켰다. 강석천이 땅볼로 물러나며 2사 1, 3루가 됐지만 대타 진상봉이 볼카운트 0-2에서 중견수 뒤로 큼지막한 타구를 날리며 1루 주자까지 불러들였다. 3-2. 그러나 맞는 순간 홈런으로 착각한 진상봉은 전력 질주를 게을리했고 결국 1루에 머물렀다. 후속 타자가 내야안타, 1루 땅볼에 그쳤지만 진상봉이 2루까지 가며 롯데 마운드를 압박했으면 경기 결과가 뒤바뀌었을 확률도 낮지 않았다. 1989년부터 한국시리즈 10연패에 빠진 빙그레는 2연패 이상으로 정민철, 송진우, 한용덕 등 주력 투수를 다 쓴 것이 더 뼈아팠다. ‘준우승 징크스’에 따른 조급증이 비정상적인 투수 교체로 이어졌고 이것이 빙그레의 패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