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과 하나님 형상의 사람은 다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특히 기독교계열의 신도들은 영낙없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일컬어 "하나님 형상의 사람" 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인즉, 창세기 6일창조 맨 끝에 하나님이 마침내 사람을 지으시게
되었을 때, 하나님 형상의 남자와 하나님 형상의 여자를 지으셨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세기의 6일창조를 기록한 모세 역시 창세기 5장 1,2절에서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라고 했기 때문에, 여지없이 사람이라고 하면 무조건 태고때부터 하나님 형상의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니다. 이는 크게 잘못된 착각이요 오해인 것이다.
우선 창세기의 필자 모세부터 하나님의 6일창조가 무엇을 뜻하는 비유인지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문자 그대로 인간을 포함한 자연계 창조로 보았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모세는 아담과 그의 아내가 하나님 형상으로 지어진 최초의 인간조상으로
보았으나, 그게 잘못된 모세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성경필자란 본디 무엇을 알았다거나 깨달아서 기록한 게 아니다.
그저 하나님이 쓰도록 감동을 주신대로 기록할 뿐임을 다니엘도
고백한 바가 있다.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라...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단12:8-10)]
이 같이 성경필자는 알고 기록하는 게 아니다. 다만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되어져 있다가, 오직 지혜 있는자가 나타나 깨달아서
전파케 하도록 의도되었다.
마지막 때 성경을 깨달을 지혜 있는자는 오늘날의 재림주 한분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창세기 6일창조 역시 모세가 기록을 하였으나, 그는 알지 못하고
오늘날 재림주 한분만이 창세부터 감추어진 것을 밝히 드러내시게 되는데
6일창조는 모두 자연계의 사물을 들어서 모두 인간심령 창조에 대한
비유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6일창조 중, 창조 여섯째날 가장 끝에 지어진 하나님 형상의 남자와
하나님 형상의 여자만이 완전히 완성된 사람의 모습이다.
(그 이전의 모든 동식물과 해, 달, 별등은 창조미완의 인간심령들을 뜻함)
먼저 지어진 하나님 형상의 남자는 하나님의 영(진리의 새말씀)을 뜻하고,
뒤에 지어진 하나님 형상의 여자는 그 하나님 영을 받게 되는 이 땅의
살마육체를 뜻한다.
즉 하나님 형상의 남자와 하나님 형상의 여자는 합하여 사람으로 오시는
한 분 하나님을 뜻한다. 이분이 누구인가?
이분이 바로 오늘날 가장 마지막 때에 지혜 있는 분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말씀을 깨닫게 해주심으로써 우리를 살려주시는 재림주가 되신다.
재림주만이 우리를 모두 하나님 형상의 사람들로 출생시켜 주신다.
이러므로 창조 6일중에 여섯째 날, 가장 마지막 때 재림주가 이 땅에
오신 후부터 마침내 하나님의 형상의 사람들이 배출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날 택함받는 자들로서 죽음이 없이 영생하는 몸이 된다.
그 이전의 사람들은 제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다고 큰소리 쳐도
하나님 형상의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자연계의 사물과 다름 없는 자연인일 뿐이다.
자연계의 모든 사물이 순환하듯이, 자연인 또한 먹고 자고 배설하며 살다가
그 수명을 다하면 죽고, 다시 태어나는 순환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그 이전의 창조날짜에서 지어진 모든 동식물들과 하늘의 해 달 별들과 빛,
그리고 어둠은 외관상으로는 모두 사람은 사람이지만, 하나님 형상의 사람이
아니고 이같은 자연계의 자연인(自然人) 을 뜻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영적 수준이 짐승이고, 기는 것이고, 육축이고,
새와 물고기이고, 하늘의 해, 달, 별 들과 같다는 것이다.
이천년 전 초림예수님 때는 창조 다섯째 날이다.
그날에 하나님은 새와 물고기를 지으셨다고 했던대로, 사람을 일컬어
하나님 형상의 사람이라고 하지 아니했다. 적어도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에는
신자들을 일컬어 물고기로 표시했음은 이에서 무관하지 않다.
하나님을 아는 영적 수준이 미물인 물고기 수준밖에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떠나가시고 바울을 중심으로한 초기 그리스도인 사회에서는
다시 물고기를 쓰지 아니하고 사람을 일컬어 "하나님형상" 이라고 대폭
격상시켰다. 교만해진 것이다.
[고전 11: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
라고 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바울은 창세기의 여섯째날에 먼저 기록된바
하나님형상의 남자와 하나님형상의 여자를 그만 하나님의 형상에서
여자는 제외시키고 남자의 영광이라고 했다는 점이다.
남자만이 하나님의 형상이고, 여자는 남자의 기쁨조 같은 뜻으로 말했다.
이같이 성경에도 없는 남여차별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는 자체부터 바울을
비롯하여 초기 그리스도인들 모두 거룩한 하나님 형상이 아님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하겠다. 그들은 모두 미물인 물고기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우기며
거룩하지 못한자일수록 더욱 거룩하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형상에서 먼 사람일수록, 즉 완성도가 낮은 자들일수록
자기네들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펄펄 뛰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길
좋아한다. 유치하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다. 거룩하지 못하다.
이기심과 우월심과 탐욕과 사특함이 가득하다.
하나님형상이 아니기 때문에, 온갖 사회악을 발생시키고 피비린내 진동케 했다.
유영철이나 조승희 같은 살인마가 어떻게 하나님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국가주의와 민족우월주의로 인종청소의 대학살극을 벌인 살인마들이
어찌 하나님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인류전멸의 가공할 전쟁무기 제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세상 사람들이 어찌 하나님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성폭력범, 방화범, 살인강도범, 유괴범, 토막살인범들이 우글우글 들끓어서
오늘도 우리 아이가 무사히 집에 돌아오기만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우리사회 구성원들이 어찌 하나님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제 그만 좀 뻔뻔하기로 하고, 여기서 반성좀 하기로 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형상의 사람이 아닌, 자연인이며 죄인이라고
반성해야 한다. 반성을 해야 하나님 형상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 형상의 사람이 되는 그 기회는 바로 지금 이 때부터
첫 열매를 거두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인데, 그 이유인즉
하나님 형상이신 재림주로부터 하나님을 알려 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경청하여 득도하는 자들이 모두 하나님 형상의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재림주는 오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론적 의미에서는 자연인도 “하나님의 형상” 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조건이 내재되어 있다. 모든 자연만물과 함께 인간도 하나의
자연현상임에는 틀림없으나, 인간은 자연만물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한가지 더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자연만물에게는 하나님과 교류할 수 있는 영혼이라고 하는
채널이 없지만, 인간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을 찾는 종교적 동물로써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과 자기존재의 정체성을 묻는 지성체라는 점에서
하나님 형상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그 누구라도 하나님과 교류할 수 있는 영적 채널이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 형상” 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 조건을 충족시켜 주시기 위하여 오늘의 재림주는 오셨던 것이다.
원문카페: 시온산 제단(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한 논리로 완전해독) |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