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미 수복 "김화 군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부지런을 떨었고, 청량리 세무서 앞에서 8시에 10대의 버스가 빗 길을 출발하였다.
평소 나를 아껴 주시는 분이 회장이신데 꼭 참석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기에, 만사
제폐하고 나선 길이다.
11시경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사단 입구에서 선두 헌병차와 민사 참모의 안내를 받아,
지난 2월에 준공을 보았다는 승리 전망대를 향하게 되었는데, 우연이도 내가 탄차는 망향제를 지내기 위하여 차를 바꿔 타게 되어, 헌병 차로 전망대에 도착하여 대대장으로부터 부리핑을 받았다.
비가 말끔이 개인 전망대에서는 시계가 좋아 북쪽의 초소나 능선들이 훤히 보였다.
155마일의 중앙에 위치한 전망대이며, 금강산을 가던 철길이 통과하던 곳이고, 1천여
세대가 살고 있다는 북쪽의 아침이 마을은, 아침을 먹고 금강산 구경을 갔다는 유래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니, 지척에 금강산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좌즉 11시 방향의 오성산을 점령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능선 하나를 점령 하기 위해 6만5천명이 희생되었으며, 47회나 주인이 바뀌었다고 치열했던 전투를 설명하면서, 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것은, 북쪽 잇 간판의 문구가 달라졌고, 비방 방송이 체제 선전이나 음악방송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전망대, 땅굴, 판문점 등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이지만 늘 느끼던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우리는 다시 30여분을 돌아 "김화 군민대회" 행사장에 도착했다. 미수복 김화 군민들이
지척이 고향인데도 철책선 바로 아래인 같은 군 땅, 김화읍 안정리 철길 옆, 군부대 연병장에서, 20여 동의 천막을 치고, 망향의 한을 달래는 500여분의 애절한 소망은, 고향의 피부치와 만나 조상의 묘에 성묘하는 것이란다. 나도 그분들의 소박한 원이 하루 속히 이루어 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했다.
하루 종일 버스에 시달리다 저녁 9시경에 용인에 도착하여 동행한 분과 정배를 나누며
뉴스를 통해 아시안게임 입장식을 보았는데, 남과 북의 선수들이 한라산과 백두산에서 점화한 성화를 함께 성화대에 점화하고, 한반도 기를 남북의 선수들이 함께 들고 손에
손을 잡고 입장하는 모습.....
누가 남의 선수이고, 누가 북의 선수인지 구분 할 수도 없는데..... 이제 우리는 하나 될 먼 훗날의 확실한 목표를 세워 놓고, 그래 서로 믿고, 나누고, 왕래하면서, 서로의 격차를 줄여 가면, 언젠가는 우리들의 생각도, 사상도 하나 되고, 북의 경제 사정도 좋아저서 우리와 대등한 위치가 된다면, 오늘 내가 다녀온 전망대는 휼륭한 관광지가되겠지...? 결코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는 통일 운동을 계속하리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