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정신은 한곳에 머물 수 없다.
“소동파의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림은 형세만 같게 그리면 된다고 하는데,
이런 소견은 어린애의 소견과 다를 바 없다.
시를 지을 때도 경물을 그대로 노래하니,
이런 사람은 정말 시를 모르는 사람이다.
후세의 화가들이 이 시를 종지宗止로 삼아 연한 먹물로 거칠게 그림을 그려서,. 그 사물의 본질과 어긋나게 되었다. 지금 “그림을 그릴 적에는 형체가 같지 않아도 되고, 시詩를 지을 때에는 실제의 경물景物을 노래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말이 되겠는가?
우리 집에 소동파가 그린 묵죽墨竹 한 폭이 있다. 가지하나, 앞 하나 모두 실제의 대나무와 꼭 같다. 이것이 바로 진경眞景을 그렸다는 것이다. “정신情神이란 모습(形體) 속에 있는 것인데, 모습이 이미 같지 않다면 어찌 정신을 전할 수 있겠는가?” 소동파가 지은 위의 시는, 대체로 형체만 같게 하고, 정신이 결핍되면 비록 실물과 같을 지라도 광채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림은 정신이 담겨야 하는데 형체가 같지 않으면 어찌 실물과 같을 수 있겠으며, 또 광채가 있어야 하는데 다른 물건처럼 되면 어찌 실물이라 할 수 있겠는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성호 이익은〈성호사설〉에 실린 “논화형사論畵形似‘에 실린 글이다.
글과 그림만 그럴까?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할 것이다.
겉만 아름답고 속은 텅 빈 것을 “속빈 강정”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외형이 볼만해도 속이 텅 비어 있거나
그만의 독특한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다면
저마다의 ‘우주’가 아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하등의 생명이나 진배없을 것이다.
속담에도 “속인들은 이익을 중요시하고, 청렴한 선비는 명예를 중요시하며, 어진 선비는 뜻을 존중하고, 성인은 정신을 귀하게 여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소박하다는 것은 다른 것과 뒤섞이지 아니한 것을 말함이요, 순수하다는 것은 그 정신이 이지러지지 않은 것을 말함이니, 순수하고 소박함을 체득한 자를 참 사람(眞人)이라고 부를 수 있다. “
<장자>에 실린 글이다.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소박함이나 순수함, 그리고 창의성과 맑은 정신을 견지하고 살기 위해서는 부단히 현재와의 결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예술가의 정신은 한곳에 머물 수 없다. 낮선 새로운 땅을 찾아 부단히 떠나야 하는 곡마단의 숙명을 지니고 있다.“ 피카소의 말이 새삼 가슴을 치면서 지나간다.
2023년 2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