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사도행전 11,1-18 요한 10,11-18
영혼의 안테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인지 명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지만 이 마저도 자신의 깨달음은 아니었으니
그분을 진실로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그분의 말씀을 들은 바리사이들은 “무슨 뜻인지 깨닫지”못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그분의 말씀의 뜻을 묻곤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복음을 수없이 듣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 이해하고
그분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며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성령은 하느님의 깊은 것을 깨닫게 하는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성령만이 인간을 하느님과 하나 되어 살아가도록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오직 성령으로 변화된 이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으로 변화된 베드로 사도는 성령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임에도
아직 따지려드는 이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였습니다.
으뜸인 수제자를 무시하는 행위로 여기지 않고 교회의 반석으로써의 위상이 깍이는 불쾌함을
표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만 주어진 그분의 특별한 은총에 대한 우월감을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에 집중한 결과라 믿습니다.
그분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마음을 이해한 성령으로 변화된 사람의 모습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그분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 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끝내 변화시키실 그 사람을 결코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그분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들 모두 에게
“똑같은 선물을” 주실 하느님의 성령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매일 들려주시는 기쁜 소식은 우리의 행함을 넘어선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걱정과 염려 우리의 근심과 고통 우리의 오해와 비판과 무관심을 능가하도록 하시는
성령의 활동입니다.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세상의 무엇보다 훨씬 소중한 진리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무엇 때문에 오시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가를 깨닫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성령은 그분의 주파수에 정확히 맞춘 영혼의 안테나로 수신됩니다.
고장 난 안테나는 그분의 뜻을 왜곡시키고 엉뚱한 주파수에 맞춰진 안테나가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그분의 뜻을 수신하기 위해서 영혼의 안테나를 늘 점검해야 할 까닭입니다.
진실로 그분의 뜻을 수신한 이는 자신의 논리와 주장을 버립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땅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작업은 내가 변화되는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수신된 주님의 말씀에 자신의 삶을 맡겨드리는 우리 모두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부산교구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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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베드로 신부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사도행전 11,1-18 요한 10,11-18
내가 살던 신학교의 창밖에는 집채만한 큰 단풍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그때 시험을 준비하느라 밖에 자연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가을날 아침, 커튼을 제치는 순간 단풍나무가 온통 빨갛게 물들어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는 장관을 보게 되었습니다.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닫혔던 문을 여는 순간,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에 들어가는 듯한 체험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문은 막혀 있던 곳에서 탁 트인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을 체험하게 합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 10,9).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의 목자이며, 또한 드나드는 문이라고 비유하셨습니다.
문은 열리고 닫히면서 내면의 세계와 외부의 세계를 연결시켜 주고,
사람들을 서로 만나서 친교를 나누게 하며, 새로운 차원으로 눈을 열어줍니다.
예수께서는 말씀의 문을 열어 세상과 하늘나라를 연결시켜 주시고 사람들이 드나들게 해주십니다.
예수님이라는 문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드나들게 됩니다.
인간의 모든 심각한 문제의 원인은 사랑의 결핍에 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은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거부하고 단죄하면서 폐쇄적인 태도로 공허하고 병든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의 문이 열릴 때에 그 마음은 새로운 눈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내롭게 사랑으로 그를 지탱해 주며 생명의 문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우리가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갈 때 풀밭에 이르는 문을 찾고
좋은 풀을 배불리 먹도록 도와주십니다.
무엇인가 막히고 닫혀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의 충만한 사랑과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수원교구 김동원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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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사도행전 11,1-18 요한 10,11-18
요한 복음은 목축업에 익숙한 유다인들에게 친근한 ‘목자’와 ‘양 떼’라는 표현을 통해,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 속해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들과 착한 목자에게 속한 적이 없어
예수님께 응답하지 않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묘사합니다.
목자에게 속한 양 떼는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목자가 인도해 주는 문으로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목소리를 듣지 않아 목자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 양 떼도 있고,
양 떼를 지키지 않고 오히려 훔치고 죽이려는 이들도 있음을 비유적으로 묘사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언제나 선택과 결단을 요구합니다.
유다인들 가운데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복음에 공감하고 기뻐하며 예수님을 따라 나선
제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분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이단시하며 그분을 거짓 예언자로 몰아가던
군중과 유다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을 위선자이자 거짓 예언자로 몰던 자들의 승리처럼 보였지만,
그분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 강림을 체험한 제자들의 복음 선포를 통하여,
이는 참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이 드러났습니다.
베드로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 출신의 신자들을 만나 율법에 금지되어 있는 음식을 먹었다며
논쟁에 휘말렸을 때, 그리스도의 구원은 유다 민족에 국한된 율법 전통에 매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의 거룩함과 선함, 아름다움을 깨달은 모든 이에게 열린 것임을
환시를 통하여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는 말씀처럼,
자기 편견의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은 성령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 내린 성령 세례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의 위대함을 일깨워 주는
표징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모처럼 강론글을 일찍 올려 주셨네예~~
주님 은총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 하이소.
평화를 빕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