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 초기형 폭스바겐 비틀이 마지막으로 멕시코에서 생산되다
폴크스바겐 비틀(영어:Volkswagen Beetle, 독일어:Volkswagen Käfer폴크스바겐 케퍼)은,
둥그스름한 생김새로 인하여 일명 딱정벌레차 또는 버그라고 불리는 폴크스바겐의 대표 모델이다.
초대 비틀은 1938년부터 2003년까지 생산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군용으로 생산되었다.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 국민차 생산 지시로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가 설계한 승용차이다.
따라서 폴크스바겐 비틀은 폴크스바겐 회사와 포르쉐 가문 및 포르쉐 회사를 이어 준 모델이기도 하며,
비틀의 플랫폼으로 전후에 포르쉐에서 356이라는 스포츠카를 만들기도 했다. 2,100만대가 제작되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 3위에 속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포드 모델 T, 미니, 그리고
시트로엥 DS에 이어 세기의 자동차(COTC) 4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비틀의 원래 모델명은 폴크스바겐 타입 1이었으나, 1967년 8월 폴크스바겐이 미국 시장에 진입할
때 마케팅을 위해 비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공식 모델명이 되었다. 초대 비틀은 엔진이 뒤에 있었다.
초대 비틀의 디자인을 이어받은 뉴 비틀도 있으며, 앞엔진 앞바퀴굴림이다.
* 영화 허비 첫 시동을 걸다에 나오는 자동차 허비의 모델이기도 하다.
후속 모델
* 폴크스바겐 골프
* 폴크스바겐 뉴 비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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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경제공황이 독일을 휩쓸고 있을 때 일개병졸이었던 농부의 아들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독일의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권력과 기계의 절대적인 추종자였던 히틀러는 우선 독일국민에게 약속했던 번영의 독일을 이루는 한 방법으로 자동차전용도로인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건설로 실업자를 해결하면서 모든 독일가족들이 이 도로를 타고 달 릴 수 있는 독일국민의 자동차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구상을 한다.
1933년 8월 히틀러는 당시 자동차 설계의 천재로 유명했던 페르디난드 포르쉐 박사에게 국민차의 개발을 부탁한다.
베를린 올림픽이 열려던 해인 1936년 10월 포르쉐박사는 3대의 소형차를 완성하여 히틀러에게 납품하였다. 당시로서는 괴상하게 볼 수밖에 없었던 딱정벌레모양의 국민차가 완성되었다.
이해 12월 22일 1대 5만km를 달리면서 실행한 각종 주행, 성능 안전도, 시험에 무난히 합격하였다. 매우 흡족한 국민차로 인정한 히틀러는 이 차를 kdf(kraft durch freude : 즐거움을 통한 게르만 만족의 힘)라고 이름을 지었고 곧이어 독일 전 국민에게 이차를 한 대씩 갖도록 해준다는 명목으로 나치당은 볼크스바겐구입우표를 900마르크어치를 사 모운사람에게는 볼크스바겐을 한 대씩 전달해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쟁에 미친 히틀러가 이러한 약속을 배반하고 1939년 9월 드디어 비극적인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키자 독일국민들의 볼크스바겐에 대한 기대는 수표로 돌아가버렸다. 전쟁에 패한 독일인들은 빵 한 조각을 얻기위해 모든 노력과 기술을 다해 볼크스바겐을 만들어 팔았다.
독일인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낸 볼크스바겐은 연합국들로부터 그 성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히틀러의 고아 딱정벌레차는 1948년부터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에 들어가면서 세계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독일을 망쳤으나 그가 생각해 낸 볼크스바겐은 파괴된 독일을 짧은 시간 내 경제대국으로 일으켜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