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게 주어진 일상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것 같아 감사한 마음 이루 말할 바가 없는 듯 하였다.
그러나 고단한 하루.
오늘은 04시경 출근하여 배차를 받고 차를 점검한 후 4시 38분에 거리로 나섰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앞 까지 빈 차로 가다가 첫 손님으로 낙성대역과 영등포공원(옛 OB맥주공장 터) 까지 가는 젊은이 두 사람을 태우고 장거리를 뛸 수 있어서 아주 좋은 스타트를 한 셈이 되었다.
그들을 내려 준 후 강을 건너 오는 동안에 탑승객을 전혀 만나지 못한 채, 이태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순천향병원 앞에 차를 세워 두고 용변을 해결한 다음 움직이는데, 마포구청역 부근까지 가자는 손님을 만나 다시 짧지 않은 코스를 달릴 수 있어서 감사!
그리고 다시 이태원동으로 왔더니, 어느 흑인 관광객이 밤을 이 곳에서 꼬박 새운 듯 택시마다 우리창을 통해 어디를 간다 라고 의사표시를 하였으나 모두에게서 거절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내가 접근하여 그를 태워 줬던 것이다.
알고 보니 너무 가까운 거리여서 다른 택시 기사들이 원치 않았던 모양.
장충동 족발집 돈네 부근의 어느 작은 호텔에 그를 내려 줬더니 고맙다며 4,900원 나온 요금을 5,000원을 주며 그냥 됐다 라고......
그 나름대로 내게 감사의 의사 표시였으리라 싶엇던 것이다.
이태원에서 다른 먼 곳으로 갔다면 최소한 10,000원 이상은 벌 수 있었겠으나 그 흑인이 얼마나 거리에 서서 낭패를 겪었을까를 생각해 보니 내가 좋은 일을 한 셈이라고나 할까.
그는 자신이 사는 미국 뉴욕으로 내일 축국하게 된다고 하더니,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연후에 마포구 대흥역 부근까지 빈차로 이동.
마침 신촌세브란스병원 치과병원으로 간다는 어느 간호사가 탑승.
그를 내려 준 후 병원 본관 앞 택시 승차대 앞에 차를 세워 두고 건물 안으로 들어 가 용변을 본 후, 마치 국제공항이나 유럽풍의 분위기를 자아 내는 듯한, 아주 잘 꾸며진 식당가를 주욱 일별한 후 3,500원 하는 단팥죽 한 그릇을 먹으며, 마치 유럽의 아침을 맞이한 느낌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던 듯 하다.
그러고 나서 차 안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데, 밤새 82세의 어머니 간병을 마치고 잠시 부모님이 사시는 집에 눈 붙이러 간다는 어느 효성스러운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들 한 명을 태우고 마포구 도화동행.
그는 신실해 보였던 것이다.
이 곳 마포구 도화동은 큰형님과 작은 스테파노가 1968년도에 이 곳 언덕 위에서 자취를 햇던 곳이어서 우정 한 바퀴를 돌아 보는데, 가히 천지가 개벽한 느낌.
전혀 옛 모습을 기억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라는 게다.
하기사 50년이 다 되엇으니 변해야 마땅하지만 말이다.
서울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는 이야기.
한편으로는 옛 것을 잃어 버린 아쉬움이 크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도시의 발전상을 한 눈에 보게 되는 격이어서 만감이 교차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한참 길을 따라 올라 가는데,용상성당과 마주하게 되어 그 안에 들어 가 차를 세워 둔 후 성모당 앞에서 성호경을 긋고 기도를 바친 후 성직자 묘지를 내려다 보며 이 곳에 묻힌 모든 성직자들이 주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천상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도 바쳤고, 먼 데 경관을 두루 내다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것이다.
참 좋은 아침이었던 것이다.
그 길로 이정표를 따라 용산역으로 이동.
이 곳의 택시 승차대에서 기다리다 보면 별로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손님을 태울 수 있을 것이라던 친구 K 의 권고 사항을 기억해 내었기 때문.
아니나 다를까, 100미터도 넘는 긴 빈차 행렬이 순식간에 소화가 되는 것이 아닌가.
대기 상태에서 꼬박꼬박 졸기도 하던 끝에 큰집이 가까이 소재하고 있는 강서구 염창동 방향으로 가는 손님들 두 명이 탑승.
네비게이션이 안내해 주는 길을 따라 한강대교를 넘어 올림픽 대로를 따라 질주.
20분도 채 되지 않아 그들을 내려 줄 수 있어서 좋았던 것이다.
그런 연후에 멀리 갈 것도 없이 기왕에 여기까지 왓으니 이 부근에서 닥치는 대로 영업을 해야겠다 작정하고 주변을 돌아 다니는데, 기본 요금 거리의 나이 드신 순님 한 분을 더 태워 드릴 수가 있었던 것.
그러고 나서 내가 주례를 서러 자주 가던 발산역 부근으로 가 보려고 막 이동하는데, 영등포시장 앞으로 가자는 70대 손님이 탑승.
내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방향으로 핸들을 꺾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부터는 빈차 상태로 온 거리를 쏘다니는데, 오늘은 초미세 먼지가 극심하여 시야를 흐리게 할 정도였고, 바람 마저 세차게 불어 거리는 한산한 편.
쉽게 말하여 이동하는 시민들이 현저히 적으니 손님이 없는 것은 불문가지.
왼종일 빈차 상태로 헤메여야 할 판국이엇던 것이다.
하여, 쏟아지는 졸음도 이겨 내고 쌓인 피로라도 조금 푼다며 여의도 어느 한적하고 느늘진 곳에 차를 세워 두고 약 20분간 휴식.
그 후 여의도 안에서 6.3 빌딩 옆 어느 고급 아파트 까지 가는 손님을 한 명 더 태워 줫으나 그 때 부터 새로운 손님을 통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길로 차를 세워 두기 좋고, 점심 식사라도 해결하자 싶어 어제 친구 K 와 같이 밥을 먹었던 장소로 다시 이동.
그 곳에서 부대찌개 한 그릇을 사 먹고, 양치질 까지 하고 나오는데, 마침 그 식당에서 밥을 먹은 일가족 네 명이 인근 보광동으로 가자고 해서 태워 줬더니, 골목 골목이 얼마나 비좁은 주택였던 지, 완전 옛 도시였던 것이다.
그들을 내려 준 후 강남 쪽으로 가려던 게획이 무산된 아쉬움을 달래며 또 다시 시내를 배회.
하는 수 없이 교대 시간도 고려하여 오후에는 강북지역에서 활동을 해야겠다 싶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앞을 지나 신설동, 청량리를 경유하여 노원구청 앞까지 가는 동안 손님을 단 한 명도 태울 수가 없었던 것.
거기에다가 노원구에서는 차량 정체현상 까지 만나게 되어 아까운 시간만 허비한 셈이 되어 결국 과거 우리가 살던 중계동으로 갔는데, 마침 묵동 까지 가자는 여성 손님을 한 명 태웠더니, 우리가 이 지역에 최초로 이사와서 살던 아파트 주민.
옛 생각이 좀 났던 것이다.
그녀를 마지막 손님으로 하고 조금 일찍 가스 충전소행.
3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이었던 것이다.
가스를 넣고 나오다가 불현듯 누니과 자형님이 뭐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계시는 것 같아 누님께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를 않길래 자형님과 통화.
과연 아무 것도 모르고 게시지 않은가 말이다.
누님은 단체 카톡방에 들어 와서도 일언반구 멘트가 없어서 의아하게 여겨 왔었는데, 과연 사실로 판명.
자형님께 말씀드렸더니 정말 몰랐었다고.
나중에 누님이 내게 전화를 거셨던 모양이나 귀사하여 세차와 정산 등을 하다 보니 그만 퉁화 불발.
나중에 도착한 문자메시지를 보니 정녕 몰라서 미안했었다는 메시지.
한편 베드로형님은 신학교 선배시기도 하다는 지수의 작은 시할아버지가 선종하셔서 지금 속초로 조문을 떠난다고 해서 위로의 말씀과 함께 먼 길 잘 다녀 오시라는 답글을 단체 카톡방에 게시하였던 것이다.
하여튼 오늘도 목표로 제시된 사납금을 다 체우지 못했지만, 오후 4시경에 모든 일을 마칠 수 있어서 감사!
성호경을 그으며 귀가.
오후 6시 30분경 고향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기에 부족한 잠을 조금이라도 보총한다며 딱 1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 후 시내로 진출.
친구 R 과 P 그리고 달랑 세 명이 만나 양곰탕 한 그릇과 소주 두 병을 나눠 마시며 긴 방담의 시간.
대화를 좀 더 한다며 청계천 입구를 조금 서성이다가 친구 Y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로 이동.
오래간만에 만나는 우리 일행들을 반겨 맞아 주던 그들 부부로부터 호나대를 받으며 ㅁㄱ주 두 컵씩 마시며 대화는 길게 이어졌던 것이다.
대화의 주된 내용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보수 진영의 나아 갈 길.
정도였다고나 할까.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 끼리의 대화였지만, 결국 우리 친구들 지간에 무에 얼굴까지 붏힐 이유가 있겠느냐며 해피앤딩으로 마무리.
어느새 밤 10시가 다 되어 갔던 것이다.
아무튼 지난 겨울 눈보라를 맞기도 하며 그 혹독한 추위를 이겨 내며 태극기 집회에 함께 나섰던 친구들인지라 시간이 갈수록 그 정감이 더해 가고 있음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그들과 헤어져 무사히 집으로 올 수 있어서 이 또한 감사할 일.
양치질과 세면만 간단히 하고, 일지도 딱 두 줄을 쓴다고 썼던 모양인데, 아침에 일어나 확인을 해 보니 무슨 횡설수설.
다시 고챠 적기 시작하여 아침 8시가 다 되어 이제사 완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내일은 내가 이 분야에 투신한 이후 주 6일을 근무하고 최초로 휴식을 취하게 되어 있는 날이기에 그 의미가 심장한 편.
모처럼 푹 늦잠을 자고 싶었던 것이다.
긴 하룰 잘 살게 해주신 천주님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