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虞候]는 조선시대 각 도의 병마절도사나 수군절도사 아래에는 그들을 보좌하는 부직(副職)인 우후(虞候)라는 관직이 있었다. 병마절도사를 보좌하는 병마우후(兵馬虞候)는 종3품의 품계였고, 수군절도사를 보좌하는 수군우후(水軍虞候)는 정4품의 품계였다. 우후는 군령을 전달하거나 절도사를 대신하여 군사 훈련이나 무기 점검 등을 위해 진포(鎭浦)를 순행하였으며, 절도사 유고 시에는 임무를 대행하기도 하였다. 임기는 2년이었다.
임진왜란 시기 전라좌수사를 지낸 충무공 이순신에게는 그를 보좌한 전라좌수영 우후 이몽구가 있었다. 이순신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난중일기』나 『임진장초』와 같은 사료를 통해 이몽구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는 당포해전, 당항포해전, 부산포해전 등에 참전하여 많은 공을 세운 장수로서 『난중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각 도 각 군의 사령관인 절도사의 막료로서 절도사를 보필한 까닭에 아장(亞將 or 副將)이라고도 불렸다.
전신은 도진무였으나, 1466년(세조 12)의 관제개혁에서 병마도절제사도진무는 병마우후, 수군도안무처치사도진무는 수군우후로 각각 개칭되어 이 때부터 우후로 불리었다.
우후는 절도사를 보필해 군기를 세우고 군령을 전달하며 군사를 지휘하는 일 외에도 병영과 수영을 지켜야하는 절도사를 대신해 훈련이나 무기·군기점검을 위해 도내 각 병마수군을 순행하였다.
군자금을 관리하는 임무도 맡았으며, 절도사의 유고시에는 그 임무를 대행하였다. 따라서, 우후가 도내를 순행하다가 군직을 겸한 수령들과 회좌(會坐)시에는 당상수령(堂上守令 / 정3품 당상관)이 있어도 가장 높은 좌차(座次)를 차지하였다. [1]
우후는 1895년(고종 32) 도제가 폐지됨에 따라 절도사와 함께 혁파되었다.
첫댓글 닉 '전라좌수영 우후'에 대해 잘 소개해 주셨습니다. 소개를 하신 분은 이배사 초창기 멤버로서 과거 닉 과제를 수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삭제되었는지 보이지 않아서(?) 또 올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숙제를 잘 하신 274번째 회원으로서 우수회원을 유지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사유 없이 삭제 될 수가 있는건가요?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14년 동안 무슨 일이?..ㅎ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음천 환영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조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에 기억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주 오래된 일이라~
와~ 환영합니다~ 짝짝짝~~
감사합니다 ~
우후(虞候)...
난중일기를 읽다보면 아마도 가장 많이 나오는 관직 용어 중 하나일 겁니다.
관직에서 부(副)통령, 부(副)총리 처럼
그런 부(副)자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되겟네요
공부 많이 했습니다.
덕분에 우후에 대해 자세히 알고 갑니다. 좌수영우후님의 우수회원 유지를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