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27-32
구원받은 자에게는 잔치가 있다
옛날에는 ‘잔치’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지요.
백일잔치, 돌잔치, 결혼 잔치, 회갑 잔치, 칠순 잔치
등등입니다.
이때는 주로 무슨 음식을 먹었지요?
대표적인 것이 잔치 국수입니다.
지금도 잔치 국수를 사 먹을 수가 있죠.
이처럼 잔치는 풍성한 축하와 즐거움을 뜻합니다.
우리의 신앙 인생도 잔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잔치하며 사는 자가
천국에서의 잔치를 한껏 누리며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자리가 잔치의 자리이고
지금 우리 교회가 잔칫집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 세상 사는 재미가 없어서
어떻게 합니까?”
이것은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교회 생활은 극치의 행복과 기쁨과 만족을
제공해 줍니다.
심지어 재미까지 더해 줍니다.
게다가 교회를 통해 영과 육의 축복까지 받으니
얼마나 수지맞는 일입니까?
그래서 교회가 좋습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잔칫집처럼 즐겁고 기쁩니다.
구원받은 자에게는 항상 잔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가 좋았습니다.
저에게는 교회가 잔칫집이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 제가 교회를
제일 많이 들락거렸을 것입니다.
심지어 주일을 마치면
‘언제나 주일이 다시 오나?’하고
손꼽아 기다렸을 정도입니다.
저는 교회 목사님과도 가장 가깝게 지냈습니다.
심지어 목사님을 작은 아버지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저는 이 기억을 떠올려 목회를 하면서도
성도들을 교회에 많이 붙어있게 했습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하면서, 전도하면서
교회에 많이 머물게 했습니다.
교회가 잔칫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느 교회보다
즐겁고 신나는 교회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님도 이런 모습을
매우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지면
이런 교회로 우뚝 세워지길 바랍니다.
오래도록 내려온 우리 교회의 열심 전통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특히 신앙의 전통은 자손 대대로
이어지게 해야 합니다.
저는 군에 입대해서도 그렇게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군인 교회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군 생활을 할 때 온종일 교회에 머물며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이끌어 주셨습니다.
제가 부목사 시절 수원 영광교회로 가기 전에도
교회 건물에 붙어있는
사택이 있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작정하며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담임 목사님은
교회에서 지어준 사택으로 이사를 가셨고
그 교회 건물에 들어가서
헌신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곳에 예배당을 건축한 후에도
아파트 사택보다
목양실에서 더 많이 살았을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수양관에서
살게 해주시는군요.
우리 교회는 교회도 무료로 개척되었고,
성전 건축도 너무나 수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심은 대로 거두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잔칫집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세리 레위는 예수님을 만난 후
기쁨에 겨워 사람들을 모아 잔치를 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그 잔칫집에 함께 계셨지요.
본문 27-29절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레위가 잔치를 배설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은 것이 한없이 기쁘고
감격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에게는 잔치가 있습니다.
원래 레위는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늘 이웃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세리는 유대 사회에서
가장 악한 자로 취급받고 있었습니다.
세리들은 로마제국의 사주를 받아
동족으로부터 세금을 걷어서
부를 축적하는 매국노 중의 매국노였습니다.
그들은 돈은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부터 배척을 받고 살았기에
한쪽으로 마음의 구멍이 크게 뚫려 있었습니다.
이렇게 왕따가 된 세리 레위를
예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레위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렇게 훌륭하신 예수님이 자기를 알아주시고
불러주셨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래서 이 감격으로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열어 드린 것입니다.
옛날 우리 한국교회는 잔치가 많았습니다.
잔치가 많을 뿐만이 아니라
잔치에 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부흥회 잔치, 전도 잔치, 성경학교 잔치 등
잔치가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이때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서 즐거워하며
은혜를 받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부흥회 잔치도, 전도 잔치도,
성경학교 잔치도 많이 축소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은혜의 잔치에 동참하는 사람도 적고,
새로 오는 사람도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 잔치보다 세상의 잔치가
더 재미있고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영성은 자꾸 약해지고, 열심도 없어지면서
그 좋았던 교회의 잔치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갈 천국은 잔치의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천국 잔치 연습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잔치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세상에서 가져온 우리의 아픈 사연을
모두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고통과 신음을 충분히 아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져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 부름을 받은 세리와 다른 세리들,
그리고 여러 사람은 하나같이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주님께 왔고 주님으로부터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위로와 소망을 얻었습니다.
특히 세리 레위가 배설한 기쁨의 잔치에서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불신자들이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옛날에 제가 노방 전도를 하면서
어떤 어린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 사랑제일교회에서 봄꽃 축제가 있단다.
너도 예수님을 믿어야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고
죽어서도 천국에 간단다.
꼭 교회에 오거라."
그랬더니 아이가 내뱉듯이 한 마디하고
쏜살같이 도망갔습니다.
"저는 바빠요. 학원을 네 군데나 다녀요.
네 군데, 빨리 학원에 가야 해요."
바쁜 현대인들, 교회에 나오기가 힘들고,
예수를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주님의 사랑을 알고 변화되어
잔치 인생을 살아가도록 한다는 것은
중요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운 분들일수록
주님을 만나고
천국의 기쁨과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왕년의 톱 가수였던 윤항기 목사님에게도
한쪽 폐가 없답니다.
폐병을 앓아 한쪽 폐를 모두 잃었답니다.
그런데도 신기하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부르거나
나팔을 연주할 때는
조금도 숨이 차지 않는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고백합니다.
오래 전 우리 교회도 전도 잔치를 열었을 때
간증자로 오셨지만,
가끔 TV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얼굴이 환하고 은혜가 넘칩니까?
이것이 변화된 자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잔칫집과 같습니다.
우리가 올라가서 살게 될 천국은
날마다 잔치하는 집입니다.
천국은 예수님 모시고
영원히 잔치를 여는 곳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얼마나 기대가 됩니까?
그래서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이 좋습니다.
이런 찬양이 있지요.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세상에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네.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오지요.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작은 아들을 위해 잔치가 열립니다.
이것이 22-24에 나옵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이것이 잔치입니다.
아버지가 작은 아들을 사랑하듯이
예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잔치를 베푸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문제입니다.
동생을 위해 아버지가 잔치를 열었다는 것이
아주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바로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 큰 아들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리들과 어울려
잔치 베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30-32절입니다.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제자들을 비방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이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방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자기 죄를 깨닫고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내시고
영원한 천국에 올라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약 10년 전, 우리 교회에서 여주에 있는
기독교 소망 교도소를 몇 번 방문하여
설교와 공연, 음식을 나누며
재소자들 앞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보람이 컸습니다.
그런데 그 후 다시 와줄 수가 없겠느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서
당장 가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 췌장암 치유 간증이 재소자들에게는
매우 강력한 전도 소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교도소에 가서
천국 복음을 전파할 수 있길 바랍니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악인으로 취급받던 세리 레위는
예수를 만나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안에서 날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새롭게 변화되며 믿음의 성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변화의 첫째 요건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과거를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익숙했던 삶의 방식을 버리는 것입니다.
변화되기 위해서는 단단히 굳어진
자신의 예전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
나의 판단과 고집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을 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변화되기 위해
스스로 과거와 작별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계란은 스스로 부화하면 닭이 되지만,
남에 의해서 깨지면 후라이가 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우리나라 최고의 성인이시지요.
예수를 믿으나 안 믿으나
모든 사람이 그분을 존경하며 추앙하고 있습니다.
손 목사님은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다시 자기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손 목사님은 소록도에서
나병환자들과 같이 먹고 자면서
그들을 예수의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심지어 나병환자들의 상처에 흐르는 고름을
입으로 빨아주기까지 했습니다.
더 놀랍게도 원수마저 양아들로 삼고,
나환자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랑의 원자탄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분이 일하시던 여수 순천은
30%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합니다.
순천이 전국 최고의 복음화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손양원 목사님의
희생적인 사랑의 모습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변화는 위대합니다.
변화된 한 사람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요한복음 13:34-35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야구에서 보내기 번트가 있습니다.
보내기 번트가 무엇입니까?
자신은 죽고 남은 살리는 것이
보내기 번트입니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팀을 위해 자기가 대신 희생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보내기 번트 성도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변화된 내가 다른 사람을
변화의 자리로 보내길 바랍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을 은혜의 자리로
보내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과 이웃을
천국으로 보내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가족과 이웃을
하나님께 보내는 보내기 번트 희생타가
많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변화된 자는 남을 변화시킵니다.
여러분.
우리도 세리 레위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와 주셨고
우리는 극적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잔치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구원의 감격으로 늘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성시를 묵상하시겠습니다.
<세리의 잔치>
세관에 앉아 있는 세리 레위
어딘지 슬프고 허전한 모습
찬 기운이 그의 주변을 맴돌고
허옇게 빛바랜 얼굴
예수께서 다가와 하신 말씀
너는 나를 따르라
따스한 사랑의 빛 아래
아픈 마음 녹아내리니...
병든 자를 부르러 오신 의원 예수님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예수님
흐리기만 했던 지난날의 회한을 뒤로 접고
새롭게 된 세리 레위의 즐거운 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