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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 신현정 (1948~2009)
그게 맨드라미꽃이였던가
맨드라미 꽃술에 꿀벌이 들자마자
신고 있던 고무신으로 냅다 나꿔채어
그걸 귀 가까이에다 빙빙 돌려본 것인데
아마 그때 웽 웽 불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랬었구나 아무래도 결국엔
내 스스로 화엄이든 연옥이든 어디든 가서
불을 맨발로 밟아 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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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 정희성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의 시를 읽고 나서
나도 좀 착하게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남의 집 마당이라도 쓸어주고는 가야 할 텐데
풍뎅아
어린 시절
네 목을 비틀어서 미안하다
그 물! / 조창환
시인 신현정이 이 세상 떠나기 전날
서울대학병원 11층 복도에는
링거 병 다섯 개가 놓여 있었다
불그레한 물이 탁한 눈물 같았다
얼마나 많은 눈물 배 속에 고여 있었길래
뽑고 뽑아내도 다시 고이더란 말인가
그 물, 눈물 고인, 뽑으면 모자 던질 수 있었을까
물기 없는 모자 하늘 높이 던질 수 있었을까
그 물, 정수기로 걸러내면, 저전거 탈 수 있었을까
자전거 타고 염소 따라가다
아차 구름이었군, 하고 구름 위로 올라갈 수 있었을까
그 물! 푸른 들판 끝나는 곳까지
버리러 갔을까
그 물, 배 속에 담겼던, 붉은 어혈
뽑아낸 신현정 지금 저쪽 세상에서
냉잇국, 슴슴한, 한 그릇 마시고 뒤뚱거리며
한 줄로 걷는 오리 따라가고 있을까
웃음에 난 뿔 / 문인수
고인이 된 신현정 시인은 이제
영정 속에서
위쪽 앞니 여덟개로 하얗게 웃고 있다.
시인이 생전에 그린 걸작(?) 자화상엔
죽순 같은 도깨비 뿔이 나 있는데,
눈이며 입 모양은 영판 울상이다.
그러니까, 웃음에도 순한 뿔이 난다.
그러니까, 뿔의 뿌리는 슬프다.
그러니까, 그는 초식, 초식성의 시를 썼다.
가을날의 저 흰 구름, 순한 양처럼
하늘 행간의 먼 풀밭으로 갔다.
고故 신현정을 생각함 / 이시영
비 온 뒤 하늘나라에서 내려오신 은모래 속에는
거위의 발자국과 꽥꽥 소리와
먼 마을의 저녁답과 짙푸른 연기,
그것들을 몰고 가는 빼딱한 소년의 걸음걸이도 깃들어 있어요
고故 신현정을 생각함 / 이시영
현정이는 죽을 때 무슨 소릴 내었을까
오리처럼 꽥꽥거렸을까 아니면 그냥 씨익 웃었을까
칫솔질하다가 하나님더러 "네끼 이×"이라고 소리친 적 많아
가서 야단맞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거기 안 가고 경기도 남양주시 왕숙천 어디쯤 자전거포 앞에서
지나던 복슬개의 앞다리를 쓰다듬고 있을까
고(故) 신현정을 생각하다 / 강세환
- <빨간 우체통 앞에서> 운(韻)을 빌려
빨간 우체통을 보면 가슴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돌아섰다
시인의 사진을 슬몃 펼쳐보다 도로 덮어두었다
유고 시집을 읽다, 빨간 우체통 앞에서, 돌아섰다
몇 주 끊은 담배를 다시 더듬다 돌아섰다
시도 시인도 이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마음이 복잡했다
이 시집도 마음에 좀 더 남겨둬야 할 것 같았다
부고를 받은 적도, 부고 한 줄 읽은 적도 없었다
깊은 밤 음복 한잔할까 하다 건너뛰었다
몇 줄의 약력을 읽다 고교 국어 교사 앞에서 멈췄다
모자, 사막, 고래, 난쟁이, 토끼, 빨간 우체통을 또 만나면
당신과 당신의 시가 생각날 것 같아 돌아섰다
신현정 시인의 시집 “자전거 도둑”을 읽고
지난 3월 25일 출판기념회관에서 행해진 제38회 시협상을
수상하면서 신현정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기껏 자전거를 훔치는
좀도둑이 상을 받아서 죄송하다고, 앞으로는 우주를 통째로
훔치던가 하나님을 보쌈해서 줄행랑을 치겠다는 대도로서의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미 그의 시에게 영혼과 마음 한 자락을 도둑맞은 나로서는
앞으로 그가 훔쳐낼 저, 광활한 우주 한 귀퉁이가 나에게
분양될지도 모른다는 행복한 상상에 시의 식탁에 푸성귀처럼
싱싱하게 차려질 또 다른 시들이 벌써 기다려지는 바이다.
이미 그는 시집 표4에 씌어진 윤석산 시인의 말처럼,
유니크한 자기만의 스타일로 전매특허를 받은 셈인데 외형적인
스타일 뿐 만 아니라 예술로서의 언어의 싸움, 시적 이미지까지
독특하여 자기만의 예술성을 확고히 구축한 그의 조리법에
입맛을 바친 많은 마니아들을 보유함으로써 이미 一家를
이루었다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여러 문학지에서
그만의 비법이 무엇인지 그가 무엇을 훔쳐간 것인지, 무엇을
훔치고 있는지에 대해 집중 조사 중이며 그와 공범인 오리와
염소 뿐 만 아니라 기러기, 달팽이, 빗자루, 귀뚜라미, 개똥,
민들레, 풍뎅이, 물고기 등을 탐색하며 정확한 배후를 캐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칠흑의 어둠이나 밤이슬
속에서 그가 훔쳐낸 것이 저녁 해나 달처럼‘당신이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을 반드시 보고야 말겠다고 쓴 시집 속의
말처럼 그의 혐의가 은은한 광휘를 발휘하고 있는 점이다.
행복을 나누어 주는 도둑인 그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의 시집을 열심히 읽고 대도로서의 징후를
파악하는 일이다. 시집의 제목을 대하는 순간 1948년에 상영
되었던 비토리오 데시카의 영화 “자전거 도둑”이 생각난
것은 신현정 시인이 가지고 있는 비극적인 풍모 때문이다
그는 서울에서 1948년에 태어났으며 1974년 <월간문학>
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대립>(1983), <염소와 풀밭>
(2003) <자전거 도둑>(2005)이 있으며 '서라벌문학상'
'한국시문학상'을 수상했다.
20여 년 동안 시 쓰기를 포기하고 있다가 근년에 와서 새롭게
전개하였다. 서라벌고등학교 등에서 국어 선생을 지냈으며
한동안 카피라이터 일을 하며 광고장이로 있다가 지금은
충무로에서 작은 편집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 그의
약력의 전부인 셈인데, 그를 직접 만나보면 세상의 쓸쓸함과
고독함을 가득 지닌 모습이다.
자전거가 없어 일자리를 잃어야 했던 주인공, 그 자전거를
훔쳐가는 현실, 남의 자전거를 훔쳐야 했던 주인공과 외적인
분위기가 흡사하다. 안타까운 현실을 직면하게 했던 영화 속
주인공에게는 먹고 사는 1차적인 문제의 해결인 구직만이
있을 뿐이며 수평적 삶의 끈을 쥐고 있는 것이 자전거를
도둑맞음으로써 그는 수직적 하강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일을 얻게 되어 부인과 기뻐하며 열심히 일 하려는 평범한
그에게 사랑하는 '아들을 손찌검하게' 하고, 미신이라던 '점을
보게' 하고, 끝내는 남의 자전거를 훔치게 한 것은 그에게
자전거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모르는, 혹은 관심도 없는,
그를 둘러싼 세계이다. 신현정 시인이 말하는 자전거 도둑과
영화 자전거 도둑에서 말하려는 점은 다소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시대, 혹은 심리적 공황의 세계를 탈출하려는
의도에는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하겠다. 그가 말하는 도둑은
어떤 도둑인가 우선 그의 시를 읽어보자
봄밤이 무르익다
누군가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자전거를 슬쩍 타보고 싶은 거다
자전거에 냉큼 올라가서는 핸들을 모으고
엉덩이를 높이 쳐들고
은빛 패달을 신나게 밟아보는 거다
꽃나무를 사이사이 빠지며
달 모퉁이에서 핸들을 냅다 꺾기도 하면서
그리고 불현듯 급정거도 해보는 거다
공회전하다
자전거에 올라탄 채 공회전하다
뒷바퀴에 복사꽃 하르르 날리며
달빛 자르르 깔려들며
자르르 하르르,
- 자전거 도둑
어린 날의 꿈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우리에게 자전거를 훔쳐 탄
그는 달빛과 복사꽃잎을 자르르 하르르 날려 보낸다.
달빛과 복사꽃잎은 무엇인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지만
그가 날려 보낸 이것들은 시적진술의 묘미처럼 우리 마음바탕에
자르르 하르르 깔려들며 시집 앞머리에 나오는 시인의 말처럼
“당신이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을 반드시보고야 말겠다”는
확신에 찬 약속을 지키고 있다. 몸과 마음이 두루 아픈 자신의
삶을 이겨내며 그는 오늘도 행복한 시를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은빛 페달을 밟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은 영화 속 주인공과
겉모습만 비슷할 뿐 그의 낡은 외투 속에 숨겨진 진실은 이처럼
아름답다. 아름다운 도둑인 그의 시집을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하자. 그의 시집 속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점은 묘사적인
측면보다 진술적인 축면이 강하다는 점이다.
외형상 독백의 형태가 눈에 띄는데 이 독백은 얼핏 보아
묘사형의 작품 속에 끼어드는 설명과 유사해 보이지만 설명과는
아주 다른 즉, 의미 있는 깨달음을 바닥에 깔고 있어 정서적
호소력이 큰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평이하게 서술된 시행이라
할지라도 종소리의 여음과도 같이 길고 큰 울림의 감동을 준다
시에 있어서의 두 축은 묘사와 진술이라 할 수 있다.
시적 묘사는 근본적으로 언어를 회화적인 방향으로 가시화하고
시적 진술은 독백의 양상으로 가청화한다. 시적 진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가청적, 고백적, 해석적 성향이
그의 시에 잘 드러난다고 할 수있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의
평이성에도 불구하고 시적 진상의 파장은 매우 다르다.
그의 시에 두루 나타나는 이 가청적, 고백적, 해석적인 진술은
관찰을 통한 감지라기보다 관조를 통한 감지 쪽에 가까운
것으로 깨달음을 동반한 새로운 표현이다. 그만큼 우리들
정서의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는 상투적인 의미체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 예문을 보자.
와 공짜달이다
어젯밤에 봤는데 오늘 또 본다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 놈이면
오늘 공짜 달을 다 보는가 말이다.
- 낮달
나를 휘감는 달디 단 채찍이여
오 나를 휘감는 달디 단 당근이여
나는 질주하였으므로
길은 최후의 장면만 보여주었다
당근이여
채찍이여.
- 경마장에서
이처럼 고백적이며 해석적인 진술을 하고 있는데 보통 시적 진술은
객관화, 또는 가시화된 시행의 구조를 하고 있지 않으므로
절제된 표현이 숨기고 있는 시적 인식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내성적 자각의 진술은 대부분 논증이나
설명과 같이 논거를 명시적으로 드러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묘사형의 작품에서보다 해석적 오류를 범할 소지가
많다. 그러므로 묘사 못지않게 우리들 정서의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상투적인 의미체계에 새로운 충격을 줄 수 있는 깨달음을
동반한 표현이어야 한다. 그는 이러한 의미에서 명시적 표현의
한계 안에 갇히게 될 상상력의 표현을 생략함으로써 오히려
자유롭게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시적 진술의 백미를 선사한다 하겠다.
여러 시에서 자주 그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물고기야 나는 기쁘다
물고기야 새처럼 날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기쁘다
새처럼 훨훨 날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기쁘다
물고기야 잠 잘 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니까 슬프다
- 물고기
물고기가 난다는 사실은 상식의 바깥 범주에 있다.
시인은 물고기나 왜 어떻게 난다는, 날 수 있다는 명시적 설명을
생략함으로써 독자들은 훨훨 나는 물고기의 세계로 단번에
이동시킨다. 상상력의 공간 이동인 셈이다. 상상력의 극대화를
통한 시적 진술의 묘미를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시적 묘사는
대상에 관한 관찰을 축으로 하지만 시적 진술은 해명을 축으로
하는 것으로서 자성이라는 깨달음을 핵으로 갖는다. 그 깨달음은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형태의 어떤 것이 아니라 관념적인 형태의
어떤 것이다. 보여줄 수 있기보다 들려줄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시인의 들려주는 관념의 세계는 어떤 것인가.
그저 참새들이 앉았다 날아간 이 가지 저 가지가 반짝이고
울타리가 반짝이고 쥐똥나무가 반짝이고 마당이 반짝이고
아 내가 언제부터 이런 극명克明을 즐기고 있었나.
- 극명克明, 후반부
해가 어깨 너머에 있는 해질 무렵
(중략)
뒤돌아보지 않아도 등 뒤에 무엇이 남실대는지 안다
- 역광, 부분
수련 보러 간다
수련 보러 가면서
수련 보러 가는 것이 어제인 듯 까마득하다
왜 발은 자꾸 진흙 속으로 빠지는지
한 발을 빼면 또 남은 한발이 마저 빠지는지
수련 보러 가는 길이 더디다
아마 수련을 보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수련 보러 가면서
왜 하품은 나오는 것인지
허공에다 하품을 몇 번 그리고 나니
정말로 한 백년을 자야 할 것 같다
수련 보러 간다
진흙 발을 겨우겨우 떼어 놓는다
이러다가는 다시 환속還俗하기도 쉽지가 않겠다
- 수련이 피었다기에
극명한 관념의 세계다. 시인은 정말 수련을 보러 가는 것일까.
어제인 듯 까마득한 길 따라 백년은 자고 나서야 도달할 것
같은 그곳은 그야말로 仙人들이 사는 그런 곳인가 보다.
그 이상향을 향하여 진흙발로 겨우겨우 간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시에 대한 내적인 열망은 그러므로 오히려 더 간절하다 하겠다.
도처에서 보여지는 시적 진술의 묘미는 독백적이면서도
대상에 대한 나름의 이해와 비판이 깔려있다. 스스로 대상이 되어
자기반성을 진술하는 단순한 독백적 진술이 아닌 시적 대상에
대한 즉물적 인식을 가시화 하는 것만이 아닌 대상에 대한 이해와
비판이 적절히 어우러져 상상력의 극대화 속에 독자를 이상향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이처럼 신현정 시인은 관념을 개념으로,
독백을 천착적인 시적 진술로 거듭 태어나게 하고 있다.
(필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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