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짓단을 올렸다. 옷장의 옷 중에 유난히 마음에 드는 옷들이 있다. 계절에 맞춰서 두벌을 골라서 번갈아 입는데 이번 봄에 고른 바지 하나는 분홍색이다. 특별히 분홍색을 좋아한다. 직장 다닐 때 굽이 있는 신발을 신었다. 분홍색 바지도 가끔씩 입었는데 바짓단이 굽 높은 신발을 신을 때 땅에 닿을락 말락 하게 길었다. 지금은 그 바짓단 끝자락이 조금씩 닳아서 희미한 부분이 생겨 있다. 바지를 입을 때마다 단 부분을 접어서 입는데 어느새 접은 부분이 풀리는 바람에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지난가을에는 그럭저럭 입었는데 더 이상 번거롭지 않으려고 어젯밤 바짓단 손보기를 한 것이다. 아침에 입어보니 딱 맞다. 이렇게 편하고 좋은 것을 왜 여태 미루었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일들 중에 게으름 피우며 미루는 일들이 있다. 바짓단도 그중에 하나인데 이젠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해 치우자고 결심해 본다. 닭장에서 알을 내어오니 화가가 보이지 않는다. 집안에는 흔적이 없어서 대문 밖을 나가보니 컨테이너 문이 열려 있고 그 안에서 청소작업을 하고 있다. 슬슬 걷기 운동만 하면 좋은 데 왜 힘든 일을 하느냐고 하며 더 이상은 하지 말라고 하고선 잔디밭에 지천으로 돋아난 민들레를 캐었다. 한참을 지나도 화가가 집안으로 오지 않아서 컨테이너로 다시 갔더니 그때까지도 청소를 하고 있다. 왜 자꾸 일을 하느냐고 했더니 작가에게 기대한 반응은 그게 아니란다. 어쩜 이렇게 깨끗한가요~ 천지개벽을 한 것 같네요~ 감탄사를 연발했더니 바로 그게 자신이 원하는 말이란다. 제발 긍정의 말만 해 달라는 부탁까지 곁들인다. 제발 긍정의 말만 해 달라는 부탁은 작가가 화가에게 입버릇처럼 얘기했는데 이젠 입장이 거꾸로 되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화가를 간섭하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대문 밖 아스팔트 포장 사이로 올라온 민들레는 유난히 튼실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자란 청년의 모습 같아서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비를 맞고 더욱 많이 올라온 민들레를 이번에는 과일 칼로 캐었다. 지난번 호미로 뿌리째 캐었지만 작은 뿌리는 다듬기 어려워 버려야 했었다. 커다란 소쿠리에 담긴 민들레를 사진으로 담았다. 우리 집 잔디밭에 유난히 많이 올라오는 민들레가 이렇게 고마운 적이 없었다. 살짝 데쳐서 초무침을 하여 고구마와 함께 저녁으로 먹었다. 화가에게 이거 약이에요~ 했더니 그래요?라고 한다. 화가가 컨테이너에 있는 부화기를 들여다보고 물이 부족한 것 같단다. 부화기 문을 열어서 커다란 알을 뒤집고 있으니 화가가 큰 알은 뭔가요~라고 묻는다. 이크~ 들켰다. 아프리카 거위 알이에요~ 작가의 대답에 화가가 덤덤한 표정이어서 용기를 내어 그다음 말을 한다. 거위는 손바닥에 먹이를 놓고 쪼아먹게 하면 사람을 어미인 줄로 알고 졸졸~ 따라다닌데요~ 화가가 그래요?라고 한다. 칠면조를 다시 키워보고 싶다고 화가에게 몇 번이나 졸랐다. 이번에는 꼬리를 펴면 정말 예쁜 칠면조 알을 구해서 부화시켜 보겠다고 얘기했지만 그때마다 안된다는 대답이어서 포기를 하고 있던 중에 거위를 촬영한 유튜브 동영상을 보았다. 그래~ 거위를 한번 키워보고 싶었지~ 거위는 흰색만 있는 줄 알았는데 검색을 해보니 흰색은 엔버덴 거위로 영국 거위라고 한다. 아프리카 거위와 중국 거위도 있는데 그중에서 아프리카 거위를 더 선호한다는 글도 있다. 그래~아프리카 거위를 한번 키워보자~ 이번에는 화가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기로 했다. 거위 알을 주문하고 화가 몰래 부화기에 넣었다. 거위는 부화기일이 34일이기 때문에 닭보다 13일 먼저 알을 넣어야 같은 날 부화가 된다. 거위 알은 커서 매일 반바퀴를 손으로 돌려주어야 유정란이 모두 부화가 된단다. 주문한 20개의 알은 배달과정에서 하나가 깨어졌다. 일주일이 지나고 검란을 해보니 8개가 무정란이었다. 나머지 11개를 매일 같이 반바퀴 씩 돌려주는 작업을 해 준다. 몰래 해 왔는데 화가가 부화기 유리창 너머로 커다란 알이 있는 것을 보았으니 더 이상은 감출 수가 없게 되어 이실직고하니 이젠 자유이다~ 거위를 부화시키기로 한 것은 알콩이 달콩이를 생각해서였다. 거위는 사람을 잘 따르고 수명이 50년이라고 한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사람 뒤를 졸래졸래 따라가는 거위를 볼 수 있다. 알콩이 달콩이가 거위를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거위 알을 뒤집을 때마다 그 생각을 하고 미소 짓는다.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가 있다. 커다란 몸으로 하늘을 날 수는 없지만 날개가 있으니 언젠가는 날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가득 안고 있는 거위~ 멀고 먼 아프리카에 조상을 둔 거위들이 뒤뚱뒤뚱 걸어서 별관 뒤의 연못에 풍덩~ 헤엄치며 노는 모습을 그리며 또다시 미소 짓는다.
첫댓글 잘보고가네요 글도 잼나게쓰시고...
잘 지내시지요?
올해도 사과농사 잘 지어주셔요.
사과꽃 필 때 농원이 참 아름다울 거 같애요.
@풍접초 고맙습니다
@고스톱황제 (대구 영주)9711ㅡ5085 네~~^^
잘보고 갑니다.. 역시 작가시네요..감칠맞이 나네요..
잘 보아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대강대강님도
글을 쓰셨으니 작가이십니다.
더구나 칭찬의 글이니 더욱 멋진 작가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