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소리계의 윤심덕, 비운의 안향련 ⓒ2005 신나라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위 노래는 일제강점기 때 유명했던 윤심덕의 '사의 찬미'의 일부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소프라노로 이름 높았던 윤심덕은 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윤심덕은 유부남이며 희곡작가인
김우진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졌고, 결국 현해탄
연락선 위에서 바다에 몸을 던져 동반 자살했다.
이 '사의 찬미'
윤심덕이 판소리계에도 있는데 바로 뜨거운 사랑에 몸부림치다 비운의
삶을 마감한 불세출의 여류 명창 안향련이다.
안향련은
1944년 전남 광산군 송정리에서 태어나 명창 정응민, 정권진, 장영찬에게서
판소리를 배웠으며, 1995년 세상을 뜬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 김소희 명창의
수제자였다. 또 안향련은 '남원명창대회'에서 조상현, 성창순에 이어 3회 대회에서
장원을 한
소리꾼이다.
김소희 명창은 생전에 안향련을 "나를 능가하는 명창"이라고 추켜세웠다고 한다. 이는
김소희 명창의 겸손한 표현일
수도 있으나 그 정도로 그녀의 타고난 천구성(애원성이
가미된 맑고 고운 소리)과 아무 사설에나 곡만 붙이면 소리가 될 정도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안향련의 죽음 뒤 김소희 명창은 애통한 마음으로 제자를 위해 진도씻김굿을 해주었다.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 '소리의 신'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비는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굿이 절정에 이르자 김소희를
비롯한 명창들의 슬픔이 폭발해 굿 노래를
따라하면서 굿이 깨질 지경까지 갔었다고 한다.
일부 평자는 "남자 명창은 임방울,
여자 명창은 안향련"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녀는
타고난 목에 후천적인 노력과 함께 동양방송(TBC)의 한 프로그램이 발굴, 지원하면서
1970년대 각 방송국을 섭렵해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안향련은 유부남인 한 한국화가와 못다 이룬 사랑을 비관한 때문인지
1981년
12월의 어느날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37살의 짧은 삶을
마감한다.
▲ 안향련 유고 전집음반 표지 ⓒ2005 신나라
안향련을 연구한 경기대 국문과 김헌선 교수는 "예술가는 적당히 불우해야 한다.
타고난 조건이 그러할 수도
있고, 스스로 그런 길을 선택해서 갈 수도 있다. 사치와
향락, 그리고 돈에 안주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기질과 상통하는 남자를 찾아서
마음 속 깊이의 사랑을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안향련의 판소리 예술이 훌륭했던 것은
그러한 불행한 조건을 서슴지 않고 받아들여
혼신의 예술을 위해 바쳤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녀의 불우한 삶은 남자와 동반자살하지 않은 것만 빼고는
'사의 찬미'
윤심덕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뛰어난 예술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예술계에 커다란 손실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김헌선 교수의 말처럼 또
다른 면으로 본다면 그러한 불우한 삶이 뛰어난 예술을 꽃피운 것일지도 모른다.
"안향련의 소리는 한이 응축된 소리로 볼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김헌선 교수는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버림 받은 그날의 좌절감은 한의 소리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심청가에
휘말리면 죽는다'는 속설처럼 안향련은 처절한 심청가 소리를 기가 막히게
뽑아냈다"고 답했다.
수리성(목이 쉰 듯한 껄끄럽고
탁한 소리)이 판소리의 절대적인 소리라고들 하지만
이 안향련의 '천구성'이 있어야 판소리의 완성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안향련의 소리는 청아한 천구성이 분명하지만 수리성의 탁하고 곰삭은 맛까지
보태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판소리에 대한
나의 짧은 지식은 그녀의 세계를 분명하게 짚어낼 수 없다. 그렇지만
김헌선 교수의 다음 말은 지금 우리가 안향련의 세계를 새롭게 조명해야
할 당위성을
보여준다.
"안향련의 일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어쩌면 안향련의 판소리가 음반으로 살아
있는 한 그에
대한 일생을 완성하는 것은 그녀를 사랑하는 청중들의 몫일 것이다.
안향련의 판소리 예술은 높은 하늘에 걸려 있는 미완성의 긴장을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해 준다."
▲ 안향련의 소리하는 사진 ⓒ2005 신나라
안향련은 우연히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임방울 명창과 같은 '송정리(현재 광주 광산구
송정동)' 출신이다.
정재근, 정응민, 정권진, 박유전, 조상현 명창의 전남 보성,
송흥록,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 명창의 남원과 더불어 송정리를 판소리
명창을 배출한
3대 고장으로 불러도 괜찮을 듯하다.
이런 안향련의 유고 음반이 신나라(회장 김기순)에서 8장의 전집으로
나왔다. 1~3장은
심청가, 4~5장은 흥부가가 녹음돼 있고, 6장은 춘향가 일부, 심청가 중 범피중류,
육자배기 등 민요가 실려
있으며, 7~8장은 안향련, 오정숙, 남해성 명창의 토막소리
민요집으로 구성돼 있다.
김헌선 교수는 "요절한 예술가의 생애에
대해 후세 사람들은 늘 환상을 품고, 궁금증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안향련과 비슷한 연배에서 그러한
수준을 보여준 소리꾼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향련의 소리를
거듭 듣고자 하며, 그 소리로 인해서
판소리의 우람한 숲에서 평안함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신선하고 해맑은 그녀의 판소리는 우리를 슬프고도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천재는 요절한다던가? 아까운 천재는 요절함으로써 우리에게 들려줄 소리를 아꼈다.
하지만 요절했어도 그 예술의 천재성을 다시 조명하고 빛내줄 책임은 우리들에게 있을
것이다.
2005/05/05 오후 11:22
심청가 초입 송나라 원풍 말년에 -
안향련
<아니리>
옛날옛적 황주땅 도화동에 한 소경이 살았는데, 성(姓)은 심가(沈哥)요,이름
은 학규(學奎)라. 누대(累代) 명문(名門)거족(巨族)으로 명성(名聲)이 자자터
니, 가운(家運)이 불행(不幸)하여
삼십전(三十前)에 안맹(眼盲)하니, 뉘라서
받들소냐. 그러나 그의 아내 곽씨부인(郭氏婦人) 또한
현철(賢哲)하사 모르
는 게 전혀 없고, 백집사(百執事) 가감(可堪)이라. 곽씨부인(郭氏婦人)이 품
을 팔아, 봉사
가장(家長)을 받드는데,
<중중머리=평계면>
삯바느질 관대도복(冠帶道服) 행의(行衣) 창의
직령(直領)이며, 협수쾌자(夾
袖快子) 중추막과, 남녀의복(男女衣服)의 잔누비질, 상침(上針)질. 갓끔질과,
외올뜨기 꽤땀이며, 고두누비 솔올이기, 망건뀜이 갓끈접기, 배자토수(褙子吐
手) 버선 행전(行纏), 포대 허리띠, 댓님
줌치. 쌈지 약낭(藥囊), 필낭(筆囊)
휘양(揮陽),볼지 복건(僕巾), 풍채이며 천의(天衣) 주의(周衣) 갖은금침 베개
모, 쌍원앙(雙鴛鴦) 수(繡)도 놓고, 오색(五色) 모사(毛絲) 각대(角帶) 흉배
(胸背) 학(鶴) 그리기,
궁초(宮稍) 공단(貢緞) 수주(繡紬), 선주(鮮紬), 낙능
(落綾) 갑사(甲絲), 운문(雲紋) 토주(吐紬),
갑주(甲紬) 분주(紛紬) 표주(標紬)
명주(明紬), 생초(生稍) 통경 조포 북포(北布), 황주포 춘포(春布) 문포(紋布)
제초리며, 삼베 백저(白苧) 극상(極上) 세목(細木), 삯을 받고 말아 찧기, 청
황(靑黃) 적흑(赤黑) 심향(沈香)
오색(五色) 각색(各色)으로 염색(染色)하기,
초상(初喪)난집의 원삼(圓衫) 제복(祭服), 혼장대사
음식(飮食) 숙정(熟政),
갖은 증편 중계(中桂) 약과, 박식산(薄食散) 과자(菓子) 다식(茶食) 정과(正
果). 냉면(冷麵) 화채(花菜) 신선로(神仙爐),각색(各色)찬수(饌需) 약주(藥酒)
빚기, 수팔련 봉(鳳)오림,
패상하기, 괴임질을 잠시도 놀지 않고, 수족(手足)
이 다 진(盡)토록, 품팔아 모일제, 품모아 돈을 짓고 돈 모아 양(兩)
만들어,
양(兩)을 지어 관(貫)돈 되니,일수(日收) 체계(遞計) 장이변(長利邊)을 이웃집
사람들께, 착실(着實)한 곳 빚을 주어
실수(失手)없이 받아들여, 춘추(春秋)
시향(時享) 봉제사(奉祭祀), 앞못보는 가장공경(家長恭敬), 시종(始終)이 여일
(如一)하니, 상하일면(上下一面) 사람들이,
심청가 하루는 심봉사 곽씨
부인더러 하는 말이 - 안향련
<아니리>
곽씨부인 어진 마음, 뉘 아니 칭찬(稱讚)하랴. 그때의
심봉사 사십(四十)이
장근(將近)토록, 슬하(膝下)일점(一點) 혈육(血肉)이 없어, 매일(每日) 부부
(夫婦)한탄(恨歎)할제, 곽씨부인(郭氏婦人) 그날부텀 공(功)을 드리는데,
<중머리=평계면>
품팔아 모인
재물(財物), 온갖공을 다드릴제, 명산대찰(名山大刹) 영신당(靈
神堂)과 고묘총사(古廟叢祠) 성황당(城隍堂),
석불(石佛) 미륵(彌勒) 서계신
데, 허유허유 다니면서 가사시주(袈裟施主) 인등시주(引燈施主), 창호시주(窓
戶施主)
제왕불공(帝王佛供), 칠성불공(七星佛供), 나한불공(羅漢佛供), 가지
가지 다 하오니, 공(功)든 탑(塔)이 무너지며, 신든
낭기(나무) 꺽어지랴. 갑
자(甲子) 사월(四月) 초파일야(初八日夜), 한 꿈을 얻은지라. 서기(瑞氣) 반공
(半空)하고 오채(五彩) 영롱(玲瓏)터니, 하늘의 선녀(仙女) 하나, 옥경 (玉京)
으로 내려올제, 머리에 화관(花冠)이요,
몸에는 원삼(圓衫)이라. 계화(桂花)가
지 손에 들고, 부인전(夫人前) 배례(拜禮)하고, 곁에와 앉는 모양, 뚜렷한 달
정신이
산상(山上)에 솟았는듯, 남해관음(南海觀音)이 해중(海中)에 다시온
듯, 심신(心身)이 황홀(恍惚)하여, 진정키
어렵더니, 선녀(仙女)의 고운 태도
(態度), 호치(皓齒)를 반(半)만 열고, 쇄옥성(灑玉聲)으로 말을 한다. 소녀(少
女)는 서왕모(西王母) 딸일러니 반도진상(蟠桃進上)가는 길에, 옥진비자(玉眞
婢子) 짬깐 만나, 수어(數語) 수작(酬酌)
하옵다가, 시각(時刻) 조끔 어긴고
로, 상제(上帝)께 득죄(得罪)하야, 인간(人間)에 내치심에, 갈바를 모르더니,
태상노군(太上老君) 후토부인(后土夫人), 제불보살(諸佛菩薩) 석가(釋迦)님이,
댁(宅)으로 지시(指示)하여, 이리 찾아 왔아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품안 달
려들어, 놀래어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심청가 양주 몽사 의논 허니 둘이
꿈이 꼭 같은 지라 - 안향련
<아니리>
양주(兩主) 몽사(夢事) 의논(議論)하니, 내외(內外) 꿈이 꼭
같은지라. 그날부
터 태기(胎氣)가 있는데,
<중중머리=평조>
석부정(席不正) 부좌(不坐),
할부정(割不正) 불식(不食), 이불청음성(耳不聽淫
聲) 목불시오색(目不視惡色), 입불비 와불측(臥不側),
십삭일(十朔日)이 찬
연후(然後)에, 하루는 해복기미(解腹氣味)가 있구나. 아이고 배야,아이고 허
리야.
심봉사 좋아라고, 일변은 반갑고 일변은 겁(怯)을 내어, 밖으로 우르르
나가더니, 짚 한 줌 쑥쑥 추려, 정화수(淨華水) 새
소반(小盤)에 받쳐 놓고,
좌불안석(坐不安席), 급(急)한 마음, 순산(順産) 하기를 기다릴제, 향취(香臭)
가 진동(震動)하고,
채운(彩雲)이 드리더니, 혼미중(昏迷中) 탄생(誕生)하니,
선인옥녀(仙人玉女) 딸이라.
심청가 곽씨 부인 아이를 낳고 -
안향련
<아니리>
곽씨부인(郭氏婦人) 순산(順産)은 하였으나, 남녀간(男女間)에 무엇이요, 심
봉사, 아이를 만져보아야 알겠소 하고, 아이를 위에서부터, 더듬 더듬 내려
가다 거침새 없이 내려가것다. 아마도 마누라
같은 딸을 낳았나보오. 곽씨부
인(郭氏婦人)이 서운히 여겨, 만득(晩得)으로 낳은 자식(子息), 딸이라니 원
통(寃痛)하오. 마누라 그런 말 마오. 아들도 잘 못 두면, 욕급선영(辱及先榮)
할 것이요. 딸이라도 잘만 두면, 아들 주고
바꾸리까. 우리 이 딸 고이 길러,
예절(禮節) 문필(文筆) 잘 가르쳐, 침선(針線) 방적(紡績) 잘 시켜, 종(宗)사
위 진진(秦晋)하면, 외손봉사(外孫奉祀)는 못 허리까. 그런말 마오. 심봉사,
첫국밥 얼른 지어,
삼신상(三神床)에 받쳐놓고 비는데, 여늬 사람 같으면, 오
직 조용히 빌렸마는, 앞 못 보는 맹생(盲生)이라, 삼신(三神)
제왕(帝王)님이
깜짝놀라 삼천리(三千里)나 도망가게 빌것다.
<중중머리=평조>
삼십삼천(三十三天)
도솔천, 신불제석(神佛帝釋) 삼신제왕(三神帝王)님네, 화
우동심(和祐同心)하여 다 굽어 보옵소서, 사십후(四十後)에 낳은 자식(子息),
한 달 두 달 이슬 맺어, 석달에 피 어리고, 넉달에 인형(人形)삼겨 다섯달
오포(五包) 낳고, 여섯달
육점(六點) 삼겨, 일곱달 칠규 열려, 여덟달 사만팔
천(四萬八千), 털이 나고, 아홉달에 구규 열러, 열달만에 찬김 받아,
금강문
(金剛門) 하달문(下達門), 고이 열어 순산(順産)하니, 삼신(三神)님 넓으신 덕
택, 백골난망(白骨難忘) 잊으리까. 다만
독녀(獨女) 딸이오나,동방삭(東方朔)
의 명(命)을 주고, 태임(太任)의 덕행(德行)이며, 대순증자(大舜曾子) 효행(孝
行)이며, 길량(吉良)의 처 (妻) 절행(節行)이며, 반희(班姬)의 재질(才質)이며,
석숭(石崇)의 복(福)을 주어, 외 붙듯 달
붙듯, 잔병 없이 잘 가꾸어 일취월
장(日就月將)하게 하옵소서.
심청가 더운 국밥 떠다 산모를
먹인 후에 - 안향련
<아니리>
더운 국밥 다시 떠다, 산모(産母)를 먹인 후에, 아이를
한 번 어루어보는디,
둥둥 내 딸이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금자동이냐 옥자동, 주린천하의 부쌍동
은하수 직녀가 니가 되어서
환생, 달 가운데 옥토끼 댕기 끝에는 준유신
옷고름에는 밀화불수 엄마 아빠 둘이 둘이 쥐얌 쥐얌 잘강잘강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은을 준들 너를 사며 금을 준들 너를 사리, 남면 복답을 장만헌들 든든허기가
널 같으며 산호 진주를 얻은들 사랑허기 널 같으랴
둥둥 어화 둥둥 내 딸이야.
서울 가 서울 가 밤 한 줌 주어다 두룸박 속에 넣었더니 머리 검은 쉬앙쥐가
들랑날랑 다 까먹고 다만
하나 남은 것은 한 쪽은 내가 먹고 한 쪽은 너를 주랴
우루루루루루 에끼 이 놈! 아, 이 놈이 나를 보더니 벙긋벙긋 웃네 그려. 허,
참!
둥둥둥 내 딸, 둥둥둥둥 어화 둥둥 내 딸이야.
첫댓글 제가 초딩때 안향련 명창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새롭습니다 다른 명창과는 달리 국악 대중화에 다가가려 무척 애를 쓰셨고 방송 활동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안 명창이 부르는 소리는 창이든 가요든 신비한 애원성으로 듣는이의 심금을 울렸죠 얼마전 님께서 부르셨던"울지마라 가야금아"를 희귀곡방에 올렸는데 영혼을 울리는 소리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남도창을 하시는 님들은 우리 가요의 꺽는 것과 구르는 부분이 무척 어려울텐데 안향련 명창께선 그런것을 다 아우르는 님이시더군요.. 지금도 님을 기억하는 우리는 당신의 소리에 울고 웃습니다...
대단했지요.지금의 안숙선님과 함께 촉망 받던 명창이었는데 몸 속의 활화산 같은 열정 삭히지 못하고 그만...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해서...아무튼 안향련님의 하늘을 찌를 듯한 철성은 듣는 이의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낙랑장송~~~'으로 시작하는 산타령은 제가 젤로 좋아하는 단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