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면 TV와 신문은 온통 꽃소식으로 야단법석이지만 대개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그저 부러운 남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별로 멀리 갈 것도 없고, 오래 다녀와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일상에서 하루 정도 짬을 내어 봄나들이를 한다는 것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4월이면 대게가 맛있는 시기이고 꽃도 천지로 피기 시작하며, 벚꽃은 벌써 피었다 지는 아쉬운 시절이니 잠깐 때를 놓치면 서운한 마음으로 내년을 기약하는 것이, 매년 이맘때다. 항상 마음만이었던 봄여행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쿠켄네트 기자들은 지난 4월 첫째주 주말을 기해 경북으로 떠났다. 말이 봄여행이지 흐드러지게 핀 벚꽃보다 부러질 듯 차려진 한 상을 더 반가워 했던 강행군 경북 맛기행의 리포트를 전한다.
글 : 서원예, 류은영. 이윤화
[출발]
금요일 퇴근과 동시에 빌린 스타렉스를 타고 경주로 직행. 와인 한 박스와 갖가지 먹을 것들로 무장한 일행은 티켓발급의 두려움을 무시한 채 경부고속도로를 4시간 30분을 달려 경주에 도착했다. 휴게소에서 당연히 우동 한 그릇씩을 해치우고도 허기를 느껴 이 시간에 갈만한 밥집에 대해 논쟁을 하던 일행은 시가지로 들어서면 일제히 탄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아~!!!!’ 잘 정비된 경주의 한적한 도로 양편으로 늘어선 길에는 이미 벚꽃이 화려하게 피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벚꽃 길은 숙소 근처인 보문단지가 가까워 올수록 점점 더 장관을 이뤘다. 이미 저녁시간도 훌쩍 넘긴 새벽이라 온통 깜깜했지만, 벚꽃 나무 밑에 설치해둔 조명을 받아 낮과는 다른 해사함과 신비함을 뽐내고 있었다.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내내 끊임없이 이어지는 벚꽃길 만으로도 4월의 경주는 여행할 만한 가치가 충분해 보였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한 일행은 만개한 벚꽃을 축하하며 간단한 뒷풀이를 마지막으로 내일의 본격적인 맛기행을 위해 하루를 마감했다.
[여행 첫날 : 2004년 4월 9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 천마총 근처 경주 쌈밥집 골목, 구로쌈밥
경주에 오면 유명한 음식골목이 몇 군데 있다. 산채정식이나 산채 비빔밥집들은 불국사 입구, 해장국과 쌈밥집들은 천마총 주위 일대에 형성되어 있다. 이렇게 관광지 근처에 모여있는 음식골목들은 너무 상업화, 대형화된 나머지 웬만해서는 기분 좋은 만족을 느끼기가 어려운 곳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경주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외지에서 들린 관광객들이 손님의 대부분이다.
천마총 근처에 늘어선 수 많은 쌈밥집들 중 전국적으로 가장 큰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곳이 바로 ‘이풍녀구로쌈밥’집이다. 정황상 여러가지 미심쩍긴 했지만 경주에 왔으니 확인은 하고 가야겠다는 마음에 아침식사 목표지로 이곳을 선택했다. 멀리서도 확인이 가능할 만큼 커다란 간판을 장식하고 있는 사장님의 얼굴이나 입구에 마련된 새장을 채우고 있는 갖가지 새들과 장식물들은 관광식당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주며 일행들을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서 본 모습에 비하면 약과였다. 상당한 규모의 홀과 룸을 채우고 있는 테이블에는 이미 기본 찬들이 완벽하게 세팅 되어 있고, 그 위에는 얇은 흰종이를 덮어 두었다. 일찍 가서인지 손님의 모습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는데, 아무도 없는 홀에 하얀 이불을 쓰고 누워있는 차디찬 음식들을 보노라니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음식은 인당으로 주문하게 되어있으며, 8세 이상은 성인으로 취급한다는 안내판도 붙어있다. 자리에 앉으면 바로 주문을 받고(메뉴는 쌈밥 하나 밖에 없다.) 뜨거운 음식들을 차례로 하나씩 내온다.
막 부쳐낸 장떡, 부추전으로 식사를 시작한다. 상추, 신선초 등 생쌈과 다시마, 콩잎, 호박잎. 양배추가 나오는 숙쌈에는 멸치젓쌈장을 곁들이고, 묵은 김치 씻은 것, 제육볶음, 조기, 갓김치, 계란찜, 송편, 비지찌개, 구운 두부, 호박전, 낙지젓갈 등 갖가지 반찬이 곁들여 진다. 한 상 가득 푸짐하게 차려내긴 하지만 손이 가는 음식은 몇 가지로 한정된다. 1인 8천원이라는 가격에 한 상 푸짐하게 식사하는 것이 만족스러울 수도 있겠다. 단돈 8천원 내고 바라는 것도 많다 싶지만, 뭔가 정감 있고 따뜻한 밥 한끼를 기대했던 마음이 채워지지 못한 채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알아둘 사항] 전화 : 054-749-0600 영업시간 : 11:00~21:00 좌 석 수 : 300석 주차대수 : 40대(무료주차) 큰명절만 휴무 / 카드 사용 가능 메뉴 : 쌈밥 8000원/인 (기본 2인분) /8세 이상 성인 주문
오전 11시 30분 : 달달하고 고소한 경주 여행의 파트너, 경주빵(황남본점)
부실한(마음이…) 아침식사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로 근처 경주빵의 원조 경주빵(황남본점)을 찾았다. 이풍녀구로쌈밥에서 경주빵황남본점 가는 길목에는 만개한 벚꽃들이 고궁의 담, 뒤쪽의 능과 어우러져 한층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직 이른시간이지만 거리에는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갓길에 주차를 하고 들어간 ‘경주빵 황남본점’. 매장 한쪽 벽면에는 사장님의 경주빵 만들기 입문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풀 스토리가 한쪽 벽면에 게시되어 있다. 주방은 경주빵 제작 과정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꾸며져 있어, ‘장이’들의 수작업을 거쳐 탄생하는 경주빵의 참모습을 엿볼 수 있다
발해 밀가루에 팥소를 넣어 만든 경주빵의 오리지널 명칭은 ‘황남빵’. ‘경주빵 황남본점’은 황남빵을 태동시킨 故(고) 최영화옹에게 기술을 전수받은 김춘경 사장이 1978년 천마총 쪽샘옆에 독립해 오픈한 곳이다.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 옛 방식 그대로 제조하기 때문에 하절기는 4일, 동절기는 7일간만 보존 가능하다. 우리 나라 전통한과 다식의 완자 무늬를 도장으로 찍고 계란물을 칠한 후, 일정한 온도의 가마에서 구워내는 과정을 거친다.
설탕맛이 아닌 팥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감칠맛을 그대로 살린 팥소는 퍽 알차고 진하게 들어가 있다. 달콤한 맛에한 두 개 먹고 나면 더 먹기가 어렵지만 질리지 않고, 금새 또 생각나게 하는 이상한 마력의 달콤함을 지니고 있다. 맛기행 내내, 달달한 동반자가 되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 며칠간은 차 한잔 마실 때나 출출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먹거리였을 정도. 경주 사람들은 우스개 소리로 “경주빵이 경주사람들을 중독시키더니, 이제 전국적으로 중독시키려 하고 있다”고 까지 한다. 경주시 황남동 본점과 한화콘도점이 있으며, 전국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 25개입 한 박스가 1만원.
[알아둘 사항] 전화: 054-772-1700 주소: 경북 경주시 황남동 13-1 영업시간 : AM 9:00- PM 9:00 주차: 갓길 주차 연중무휴 카드 사용 가능/택배서비스 가능 메뉴: 경주빵, 계피빵 모두 8천원(20개), 2만원(50개)
오후 2시 : 착한 맛과 더 착한 가격, 용장암소숯불
이미 구로쌈밥으로 허기진 배를, 경주빵으로 부실한 마음까지 달랜 것도 모자라 일행의 마음은 이내 다음 일정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사실 ‘이풍녀구로쌈밥’이 명성만큼 만족감을 준 것도 아니고, 경주빵도 사실 간식이었으니…
아쉬운 마음이 산채정식 정도로 채워질 리 없어 지인의 추천을 받아 향한 곳이 ‘용장암소숯불’이다. 경주시내서 울산 방향으로 8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곳은 용장지역에 단 하나뿐인 고기전문점이다. 건초더미와 탁 트인 농장의 소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아이들이 뛰어다녀도 좋을 만큼 넓은 부지를 확보하고 있어 모처럼 야외 나온 기분 느끼기에는 그만이다.
‘용장암소숯불’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무색할 정도로 한적한 위치에 있지만 이미 근방에서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만큼 유명한 집이다. 용장암소숯불의 가장 큰 장점은 얼리지 않은 싱싱한 암소 고기(심지어 냉동고도 없다)를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농장직영이라는 점이다. 암소고기와 육회 이외에 다른 요리는 팔지 않는다. 듬성듬성 굵은 소금을 톡톡 쳐서 내오는 암소고기는 일인분에 1만5천원. 메뉴표에 정확한 그램수는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어림짐작으로 약 200그램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특등급이라 할 수는 없지만 질 좋은 한우를 공기 좋은 곳에서 저렴한 가격에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조용한 전경을 바라보며 핏기만 가신 암소생고기와 레드 와인을 입안 가득 넣고 조화로운 풍미를 만끽하고 있자면 기분은 이내 흥겨워 진다. 두툼한 진짜 참숯을 넉넉히 올린 불에 붉은 암소고기와 결정이 명확한 굵은 소금은 시작적으로도 입맛을 확 당긴다. 한 접시에 1만원인 육회는 가격에 비해 미안할 만큼 흐뭇한 양이다. 배와 갖은 양념을 풍부하게 넣어 약간 달달한 것이 흠이지만, 고소한 기름 맛과 연한 쇠고기 맛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늦은 아침이 채 내려가지도 않은 터라 일행수보다 약간 적게 주문을 하며 미안해 한지 얼마지 않아 맹렬한 속도록 고기를 추가해 먹던 일행은 인당 하나씩 소면까지 주문하기에 이른다.
낡은 양은 냄비에 소면을 각각 끓여 양재기에 담겨 내오는 소면은 고기를 먹은 후 식사로 주문한다. 묵은 김장김치를 고명으로 얹어 낸 소면은 보기보다 김치 군네가 강하고 꽤나 시골스러운 맛이다. 물론 어르신 고객들은 이런 묵은내를 두고 ‘어릴적 먹던 국수’ 같다며 좋아하실 것도 같다. 고기집의 핵심 서비스인 불판 교체도 잘 이루어지고, 주말시간에도 북적거리는 느낌이 덜해 한가로이 고기를 취하기 좋은 곳이다.
[알아둘 사항] 전화 : 054-745-6009 주소: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258-3 영업시간 : AM 11:30-손님계실때까지 좌 석 수 : 300석 주차대수 : 무료/15인승 봉고차 대기 연중무휴/ 카드 사용 가능 메뉴 : 암소고기 1만 5천원/육회 1만원/소면 2천원 등 소고기, 소뼈 별도 판매
첫댓글 맛있겠당.....쩝....거기 갈 기회가 있을지...좀 가까운 곳이 없을까요?? ^^ 좋은 곳 추천 좀 해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