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가 있는 풍경
오카모토 가노코
식욕도 아니고 정욕도 아니다. 육체적인지 정신적인지 분야를 알기 어려운 그리움이 저기압의 소용돌이처럼, 내 목구멍 안쪽에 울적하게 찾아와 끊임없이 내게 갈증을 불러 일으켰다. 내가 소녀였을 때, 도코 변두리의 부모님집에 다실로 꾸며놓은 이층 방에서 살던 무렵이다. 나는 잠들어 있을 때도 깨어 있을 때도 붉은 오비를 맨 체 지내면서, 그 불만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하면 풀릴 수 있을지, 멍하니 애를 먹고 있었다.
사람들이 만약 그것을 성의 욕망에 관한 변태였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쩐지 그럴지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마침 내 나이도 그런 말을 듣기에 타당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순서를 정한다면 그 이유는 맨 나중에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만큼 나에게는 그 감정이 정리되어 가는 도중의 세세한 고민의 그립고 소중하기 때문에.
어머니는 단순히 병이라고 결론지어 버리고 나의 이상한 병증에 흥미를 가지고 돌봐 주었다.
“떡을 구어서 미숫가루에 넣어 줄테니 그걸 먹어보렴. 틀림없이 그곳에 엉어리 진 기분이 풀릴거야.
”천리향 꽃 말린 것 욕조 안에 넣어 줄테니까 들어가 봐. 그러면 좋은 항기에 정신이 팔릴거야.“
어머니는 말은 안 했지만 어쩌면 어머니가 소녀시절에 앓았던 우울증에는 그런 것들이 잘 들었던 모양이다. 색깔, 소리, 향기, 맛, 촉감의 다섯 감각 중에서 어머니는 의식하지 못 하지만 그녀의 우울증은 특히 후각을 중심으로 미각과 촉각의 문제를 일으켰던 것 같은데, 그것은 나에게 권하는 음식의 종류로 알 수 있었다. 내가 그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꺼번에 뒤섞인, 게다가 순수하고 상쾌한 충족을 원했다.
”좀 더 몸이 푹 잠길 것 같은 음요수는 없어?“
”촉촉하게, 이렇게 손으로 만져질 것 같은 음악을 듣고 싶어“
어머니는 끝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남자들이 쓰는 검은 우산을 꺼내 쥐.“
”샌들을 꺼내 줘“
”강 건너 복숭아를 갈 거니까.“
내가 꼭 남성에 굶주려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나룻배로 건너간 건너편 강가의 찻집 옆에는 그 무렵 매일같이 마을에서 나를 찾아오는 길에 잠시 이젤을 세우고 강가의 사생화를 그리는 미술 학도가 있었다. 그 미소년은 불량스러운 척 했지만 원래 도시에서 자란 선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나중에 남편으로 받아들였을 정도였으니 꽤 좋아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무렵의 내 욕구에 비춰보면 그는 그저 하나의 대상일 뿐이었다는 것이 그에게 미안했다.
찻집의 접이 의자 위에 회색 옷깃을 단 감색 무명 옷을 입은 미소년의 모습이 얼핏 움직인다. 오늘 그는 찻집의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내가 손을 흔들어 따라오면 안 된다고 신호를 보내자 그는 웃으며 순순히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둑을 따라 강가를 걸어갔다.
긴 둑에는 사람이 없고 하천 개수 공사의 돌담에 쓰이는 돌이나 대나무가 흩어져 있었다.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강기슭에 메어있는 뗏목 옆에는 모닥불이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젖은 색을 띄고 있었다.하얀 연기조차도 액체로 보이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강 위쪽은 온통 은회색의 아지랑이에 갇혀 있고 그 속에서 폭이 넓은 강이 조금 탁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둑이 무너진 곳에 널빤지가 놓여 있고, 그곳에서 복숭아 밭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나는 여기서 바라보이는 둑과 언덕 사이의 평지 전체와 언덕 기슭의 3부지 1정도까지 심어져 있는 복숭아 나무 숲이 지금 한창이라는 줄지어 핀 꽃이 강한 색채를 뿜어낸다. 나는 살짝 반감이 들어서 멈춰 섰다. 하지만 바라보고 있으니 온통 진홍빛의 구름같은 꽃잎에 부드러운 연두색의 복숭아 나무 잎들이 사람을 그리워하며 스며 나와 있는 것에 마음이 풀려 검은 우산을 접고 복숭아 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과감히 복숭아꽃 안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교태를 띤 창백하면서도 연분홍색을 띤 신비로움이 옷도 옻도 살갗도 투과해 미각에 상쾌한 차가움을 주었다 그 미각을 음미하는 혀가 몸 안의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음미할 수 있었다. ‘덴주로’라고 하는 마치 사람 이름처럼 들리는 이 복숭아의 이름을 떠올리고 우스워졌다. 나는 하하하 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차가운 것이 자꾸 얼굴에 닿는다. 나는 상관하지 않고 접어서 거꾸로 세운 우산에 기대어 웅크리고 앉아 쉰다. 우산 손잡이 위에 올린 양손에 턱을 괴고 나는 뭔가를 조용히 듣는다. 본능이 나를 그렇게 만들며 뭔가를 듣게 하고 있는 것 같다. 복숭아 나무 숲이 있는 곳은 대개 강모래가 양쪽 기슭에 넘쳐나는 가벼운 지층이다. 비로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모래 위에 나의 샌들은 맨발을 태우고 나긋나긋하게 잠기며 나아간다. 똑, 똑 꽃잎에 고인 빗방울이 모래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몽환처럼 크고 아름다운 우감이 어우러진 세계가 쿠션처럼 떠올라 몸 주변을 감싼다. 내 마음은 그곳에 가라앉아 한 동안 몽로애진다.
이런 일종의 황홀감에 젖어 나는 또다시 찻집의 미소년 앞을 손을 흔들며 지나 가 집 이 층으로 돌아간다. 나는 내가 남들과 다른 것에 때때로 죽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런 내 몸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적어도 문장으로 정리학 전에는 죽을 수 없다고 새각했다. 책상 앞에 엉엉 기쁘게 눈물을 흘렸다.
훗날, 나는 이탈리아 플로렌승서 ‘산타마리아의 꽃의 성당’을 보았다. 온갖 색채의 대리석을 모아서 세운 그 성당은 햇빛을 받으며 광물이면서 꽃의 살결이 된다. 성당이면서 꽃이다. 죽음이면서 삶, 그곳에 감도는 향기마저 느낄 수 있다. 나는 심리의 공감성 작용을 기조로 하는 이 역사상 예술의 증명에 의해 나 자신의 특이성에서 보편성을 발견하고 삶을 견디겠다고 다짐했다.
사람은 괴로워도 예술에 의해 구월될 것이고.
(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