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제임스 M 케인)
작가 ; 제임스 M 케인(1892-1977)
출판 년도 ; 1934
이 작품은 어떻게 탄생을 하게 된 것일까? 케빈은 1934년에 이 작품을 발표하면서 실제 '루스 스나이더-저도 그레이 소송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 사건은 1927년 미국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으로서 루스라는 미모의 여자가 자신의 정부인 저드와 함께 남편 몰래 보험에 가입한 후 남편인 엘버트 스나이더를 자택에서 살해하고, 보험금을 청구하였다가 그들의 범죄가 들통난 사건이었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실제 벌어진 이 사건을 마치 각색을 한 것처럼 상당히 유사하다.
이 작품은 통속 소설을 걸작으로, 공황기 캘리포니아의 암울한 상황을 묘사한 불운한 고딕 로맨스이다. 이 작품에서 케인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거대한 성적, 정치적, 경제적 권력 앞에 주인공 프랭크와 코라가 얼마나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도덕 관념은커녕 자아에 대한 개념조차 상실한 프랭크는 기꺼이 코라의 공범이 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 떠도는 프랭크. 멕시코에서 유흥을 즐기고, 빈털터리로 미국으로 돌아가던 도중 고속도로 변의 작은 간이식당에서 요기를 하게 된다. 주인인 닉은 프랭크가 돈이 없음을 알면서도 음식을 제공하면서 함께 자신의 가게에서 일을 할 것을 제안하게 된다. 자신의 역마살 기질을 알고 있던 터라 거절을 하려던 찰나에 닉의 아내인 코라를 본 순간 그녀에게 반하게 되고, 식당에 딸려 있는 자동차 수리소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코라 역시 가난함에서 벗어나서 한 곳에 정착하기 위하여 사랑 없이 닉과 결혼을 한 터라 그녀 역시 프랭크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곧바로 닉 몰래 육체적인 결합을 하게 되고, 서로 이것이 사랑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닉은 어느새 코라와 프랭크의 사랑을 가로막는 존재로 바뀌게 되고, 실제 이들은 닉을 살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사고를 가장하여 닉을 살해하려던 이들의 계획은 순찰하던 경찰의 등장과 우연히 고양이가 두꺼비집에서 감전사 당하면서 집에 불이 전부 꺼지는 변수가 생겨 실패하게 된다. 사고로 위장되기는 하였지만, 미수에 걸친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닉은 머리에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프랭크는 그들의 범죄가 들통이 날까봐 결국 코라를 떠나 다시 부랑아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의 발길은 다시 코라가 있는 마을로 향하게 된다. 병원에서 회복된 아무것도 모르는 닉은 프랭크를 다시 발견하고, 계속 같이 일을 하자고 제안을 하게 된다. 닉은 기분 전환을 위하여 코라와 프랭크와 함께 산타 바바라로의 여행을 제안하지만, 이 둘은 이번 여행을 통하여 다시 한번 닉을 살해하기로 계획을 한다. 이번에는 교통 사고를 가장하여 결국 닉을 살해하는데 성공을 하지만, 보험금을 노린 살인 사건으로 의심을 받아서 법정에 서게 된다. 어설픈 계획과 닉의 생명 보험 가입이 검찰의 눈에 띈 것이었다. 새킷이라는 검사는 프랭크를 심문하면서 프랭크가 살인을 시인을 하게 되면서 실제 운전을 하였던 코라가 법정에 서게 된다. 다행히 변호인인 카츠의 절묘한 계획으로 인하여 그들은 집행 유예로 풀려나게 된다.
프랭크는 코라에게 함께 마을을 떠날 것을 제안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닉의 생명 보험금으로 인하여 코라는 오히려 자신의 보금자리를 꾸미려는 계획에 들떠 있다. 사실 이들의 결합은 이때부터 불안한 요소의 결합이었음이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떠돌이의 인생을 살아온 프랭크와 빈곤에서 벗어나서 한곳에 정착하려는 코라의 의견 충돌은 점점 심화되고, 심지어 법정에서 비록 변호인의 계략이었지만, 프랭크가 코라의 범죄 사실을 시인하였다는 사실이 두 사람의 머리속에 각인되어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그들의 범죄 사실이 이제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밤에는 여전히 육체적인 관계를 통하여 사랑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아슬하게 이어간다.
코라가 어머니의 장례식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프랭크는 한 여자와 바람을 피우게 되고, 그 여자와의 여행을 통하여 그의 떠돌이 기질을 다소 진정시키게 된다. 코라는 프랭크의 이러한 외도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분노에 치닫지만, 그녀가 프랭크의 아이를 임신하였다는 사실에 서로 화해를 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안한 상태 속에서 코라의 임신은 이제 서로 사랑을 하고 있음을 명백히 증명하는 것이었으리라. 이들은 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기분 전환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하여 코라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남은 프랭크의 운명은?
줄거리를 통하여 본다면 팜므파탈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코라와 이에 부응하여 사랑이라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 프랭크는 지탄받아야 할 대상일 뿐이다. 실제 이 작품이 출간되었을 때, 폭력과 성애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판매 중지까지 당하기도 한다. 책속의 이야기가 실제 벌어졌던 사건이라는 점에서 더욱 꺼림칙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황색 언론에서 다룰만한 사건을 무미건조하고 담담한 어투로 프랭크의 시각에서 쓰여진 이 작품은 "느와르 소설"의 효시로서 평가를 받으며, 처음 언급한 실존주의 문학의 대가인 카뮈에게 영감을 준 것처럼 문단에 끼친 영향은 커보였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단순한 오락을 위한 하드보일드가 아닌 깊이가 느껴지는 미국의 대표적인 하드보일드 소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 도덕적으로는 충분히 끔찍하지만 살인이 사랑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멍청한 남녀가 있고, 그런데 일단 저지른 다음 정신 차려 보면 어떤 두 사람도 그렇게 끔찍한 비밀을 공유하고는 함께 같은 지구상에서 살아 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이야기야." - 제임스 M. 케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영화로 소개된 이 <보니 앤 클라이드>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합한 커플이 강도 행각을 벌이면서 살아오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경찰의 총격으로 인하여 벌집이 되는 주인공의 모습을 엔딩으로 보여주는 장면. 어쩌면 프랭크와 코라도 그와 유사한 결말을 맞이한 것은 아닐까? 차라리 보니와 클라이드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굳건하였지만, 프랭크와 코라는 육체적인 결합만을 빼면 그저 살인이라는 범죄의 공범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범죄 행위를 사랑이라는 것으로 포장하기 위하여 그렇게 믿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감방이 갑갑해서 일어나 코라를 생각하고 있다. 당신은 내가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는 걸 그녀가 알았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물속에서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그녀가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살인을 가지고 모의하다 보면 이런 끔찍한 생각도 든다. 어쩌면 차가 부딪칠때 그녀의 머릿속에 내가 일부러 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그게 이번 생 후에 또 다른 생이 있기를 희망하는 이유이다. " - p.168
프랭크의 이 마지막 독백은 바로 코라와의 불완전한 그들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비극적인 결말은 여전히 프랭크와 코라의 사랑에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정말 사랑을 위하여 이들은 닉을 살해하였던 것일까? 오히려 닉을 살해하였기 때문에 그 비밀을 서로 공유하면서 불안의 끈을 놓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살인 사건과 함께 생겨난 코라의 임신은 이러한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그들은 코라의 임신을 통하여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였다고 생각하였지만 말이다.
사랑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사랑을 얻기 위하여 끔직하게 벌어진 사건과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인물간의 갈등이 부랑자의 시선과 단조롭고 건조한 문체로 묘사되면서 오히려 조화를 이룬듯한 느낌을 준다. 프랭크와 코라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하여 묘한 여운을 지울 수 없던 것도 바로 이때문은 아니었을까?
<제임스 M 케인>
제임스 맬러헌 케인(James Mallahan Cain, 1892년 7월 1일 ~ 1977년 10월 27일) 은 미국의 저널리스트이며 소설가이다. 비록 본인은 그러한 분류를 싫어했지만, 대체로 미국 범죄소설의 하드보일드파에 속하며, 로망 누아르의 창시자의 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Annapolis)에서 아일랜드 가톨릭 이민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능한 교사였고 어머니는 오페라 가수였다. 어머니로부터 음악에 대한 사랑을 물려받았지만, 목소리가 가수로서는 흡족하지 않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가수가 되려는 꿈을 접었다. 1910년 워싱턴 대학 (Washington College)을 졸업한 후, 군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를 프랑스에서 군 잡지관련 글을 쓰면서 보냈다. 미국으로 돌아와 저널리스트로서 일을 계속했으며, 〈The New Yorker〉의 편집자(managing editor)로서 잠깐 일한 후, 극작과 소설분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79사단이 발행하는 신문에 글을 썼다. 1923년 귀국하여 세인트존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쳤으나 곧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희곡을 발표했으며,《뉴요커》편집장으로 일했다. 1931년에는 파라마운트 사로부터 시나리오 작거 제의를 받고 할리우드로 이주했다.1934년 발표한 첫 소설『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소설은 할리우드에서 두 차례나 영화화되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이후『배액보상』,『세레나데』,『밀드리드 피어스』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1977년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음악에 대한 사랑 특히 오페라에 대한 관심을 최소한 다음의 세 편의 소설에 반영하였다. 《세레나데》(Serenade), 《 Mildred Pierce》, 《Two Can Sing》. 세 번째 부인(Florence McBeth)은 은퇴한 오페라가수였다. 작가로서 성공한 것은 대체로 1930년대의 대공황 초기시절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까지였다. 소설의 무대는 주로 캘리포니아였으며, 주로 남자들이 악녀(femme fatale)와 사랑에 빠져들었다가 범죄에 얽히게 되고 결국 정부(情婦)로부터 배신당하는 줄거리를 갖는다. 자신의 작품을 두고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터프하거나 하드보일드하거나 냉혹하거나 뭐라고 부르든 간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식으로 되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쏟지 않는다. 단지 원하는 캐릭터대로 쓸 뿐이다. 들판이나 거리, 술집, 사무실의 보통 사람들이 쓰는 말이 내가 창조해낸 어떤 것보다 더 생생하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이것에 충실하다면 나는 아주 적은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1]
케인의 동시대 인물이면서 빌리 와일더 감독과 영화 〈이중배상〉의 각본 작업을 함께한 레이먼드 챈들러는 자신이 케인과 비교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1942년 자신의 출판업자(Alfred K. Knopf)의 부인에게 다음과 같은 불평의 글을 썼다.
내가 거리의 악사를 쫓아다니는 원숭이처럼 더쉴 해미트나 케인의 주변을 맴돌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해미트라면 좋습니다. 나는 그에게 모두 주고 싶어요. 그가 하지 못한 일도 많이 있지만, 한 일만큼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케인이라면 ! 그가 만지는 것은 숫염소처럼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종류의 작가죠. 그런 사람들은 문학계의 쓰레기(offal)입니다. 더러운 것들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더러운 방식으로 썼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겁니다. 견고하고 깨끗하거나 시원한 맛이 전혀 없습니다. 문앞에 싸구려 화장품냄새가 진동하는 매음굴과 같나니까요. 내가 (어딜 봐서) 그렇게 들립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