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서 밤으로 - 재즈의 향연 / 김 난 석
연말이 다가오면 여기저기 유혹의 소리와 몸짓이 다양하다.
그건 아마도 해를 넘기기에 아쉬워 하는 것일 텐데
엊그제는 동호인들을 따라 세종문화회관에서 스윗 재즈 향연을 즐겼다.
재즈보칼리스트 웅산과 슈퍼기타리스트 리릿나워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우리나라 재즈 색소포너 이정식도 함께 했다.
재즈는 일반적으로 싱커페이션과 불협화음 구사가 특성이라 한다.
화성학에 기초해 잘 배열된 음의 진행에서 튀어나가 변화를 주는 데에
그 묘미가 있는 게 아닐까싶다.
두 시간이 넘는 공연 내내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에 빠지게 하다가
앵콜 청을 받고 잔잔한 멜로디의 Yesterday 로 대미를 장식했다고나 할까......
웅산 자신이 재즈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고 시절에 산문에 찾아들어 비구니가 되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뛰쳐나와 록을 부르다가 재즈로 변신한 것 자체도,
또 뮤지션으로, 대학 강단으로 다양한 변신을 하고 있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에 가까운 빈대떡집에 찾아들었다.
막걸리며 소주며 맥주 몇 순배 뒤에 흥이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윽고 옆좌석에서 회식을 즐기던 다른 팀의 여성 한 분이 끼어들었다.
이어서 분위기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루는가 했더니
왜 남의 여성을 빼갔느냐고 엉뚱한 행패를 부리는 작자가 뛰어들어
한참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삶이란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엮여지기도 하는 법인데
자칫 잘못 처신하면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변곡점을 맞게 되는 것이다.
하여 한 템포 빠르게 자리를 떠 찻수를 변경하게 됐으니
이건 또 싱커페이션이 아니었던가......
2차의 맥주타임이 새벽 두 시로 이어져 나이에 맞지 않는 치기(稚氣)가 되었지만
지난날의 해프닝을 생각해보니 나에겐 퍽 다행이었던 것이다.
그건 지난날의 떫었던 치기가 오버 랲되었기 때문인데
살그머니 그 글을 꺼내본다.
2014.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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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갑자기 지인(知人)이라도 만나게 되면
찻집이나 음식점에 찾아들어 대화를 청하기 마련이다.
특히 그것이 저녁나절이라면, 또 그것이 사내들끼리의 경우라면
흔히는 술집을 찾기 마련이기도 하다.
오늘은 날도 어둑하고 또 한 지인은 마침 산행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했으니
셋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어느 낙지집으로 찾아들었다.
사내들의 하초(下焦)를 강화하기 위해 낙지는 모름지기 산채로 먹어야 한다는데
여름철 힘에 부쳐 쓰러진 소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막걸리에 산 낙지를 담가 먹인 것을 보면
미루어 그 효험을 일부 짐작해봄직도 하다.
다른 한편 혈기와 입맛을 돋우기 위해선 매큼한 낙지볶음이 제일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젠 하얀 박속이나 무를 썰어 넣고 싱거이 끓여 싱건지와 함께 내놓는
낙지연포탕이 제격인 것 같다.
그건 정력도 혈기도 잠시 미뤄놓고 담백한 맛을 즐기면서
하초와 상초를 진정시키기에 안성맞춤일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낙지연포탕으로 한 끼를 때웠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려니 이 집은 오래 전 치기(稚氣) 어린 시절 밤늦게
매큼한 낙지볶음을 먹고 일어섰던 그 집이었던 것이다.
70년대 초반이었나 보다.
호남에서 자칭 내로라하는 선배 한 분과
영남에서 역시 자칭 내로라하는 선배 한 분과
이렇게 셋이 이 낙지집에서 술판을 벌였던 것이다.
못난 후배 한 사람 앞에 앉혀놓고 입담대결을 한참 하더니
통금 가까이에서야 집에 가자고 했다.
시각은 5분전 열두시였을 게다.
한참 취객들 틈에 섞여 허둥대다가 가까스로 택시를 잡아타긴 했는데
한 사람은 용산 쪽으로 가자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마포까지 가자고 했다.
이렇게 손님끼리 승강이를 벌이니 운전사는 가다 말고
서울역 앞 대우빌딩 앞에 차를 대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시각은 영시, 할 수 없이 차에서 내려 우왕좌왕하는데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다가와 파출소로 가자고 했다.
모두 식식거리며 역전파출소로 따라갈 수밖에 더 있었으랴.
여기는 별천지다.
싸워서 피를 흘리는 사내들,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하다 붙들려온 소녀,
남의 좌판 물건을 훔쳐내다 들킨 아저씨, 손님을 유인하다 붙잡혀온 포주.
경찰관은 어느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연신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새벽 한 시쯤이었을까.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폭언을 하기 시작했다.
“왜 붙들어놓고 가라고도 안 하느냐?” “민중의 지팡이가 이럴 수가 있느냐?”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느냐?” “택시기사는 어디로 빼돌렸느냐?”
그래도 경찰관은 아무 말이 없었다. 혼자 어찌 그 많은 사람들을 응대하랴.
그리고 우린 이미 통금 시각을 위반하지 않았던가.
드디어 일행 중 한 사람이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물 마시던 컵을 땅바닥에 던져버렸으나 아무 반응이 없자
주전자를 벽에 내동댕이쳤다.
그러더니 수화기를 들어 책상에 내꽂았다.
그래도 경찰관은 아무 반응이 없이 무언가를 계속 써대고만 있었다.
그런 다음 새벽 두 시쯤에 남대문경찰서에서 호송차가 한대 왔다.
모두 여기에 타라는 것이었으니 막무가내였다.
선배들은 경찰서에 가서 단단히 따진다는 기세였다.
경찰서에 들어가니 한 사람씩 불러 세워놓고
사건조서와 대조하면서 쇠창살이 쳐진 방으로 들여보냈다.
파출소에서 경찰관은 바로 하나하나 사건조서를 쓴 것이었다.
우리들은 공무집행 방해죄와 기물 손괴죄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행패를 부린 것이 덫이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술 마시고 택시 탄 것이 죄가 되는지는 알바 아니지만
그것을 소명해나가는 과정에서 행패를 저지른 게 화를 자초한 셈이었다.
참으로 어리석었던 기억이었으니, 지금도 우리는 사건의 본질은 놔둔 채
거친 입씨름 해대며 화를 만들어내는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하고 있지 않는가......
난생 처음 철창 안에 갇혀보니 여기도 별천지였다.
푸른 집의 박모 군이 친구라는 사람, 차 모씨가 집안 형님이라는 사람.
어느 경찰서장이 자기 동창이라는 사람, 자기 집에 전화를 해달라는 사람......
그러나 당직 경찰관은 아무 들은 척도 않는다.
그 많은 불평과 주문을 어찌 다 들어줄 수 있으랴.
새벽녘이 되니 모두 제풀에 죽어 조용해지기 시작할 뿐이었다.
도도히 흐르는 물이 모든 걸 휘감아 아래로 흘려보내듯
시간이 그렇게 격앙된 감정들을 진정해나갔던 것이니
바로 시간이 약이었던 셈이다.
아침이 되어서야 경찰관들이 출근해 정상업무가 시작되고
하나씩 변명을 들어보고는 집으로 돌려보냈는데
우린 허허 웃으며 양동 뒷골목에 찾아들어 얼큰한 콩나물해장국으로
씁쓸한 속을 풀어냈던 것이다.
풀어낸 것은 다름 아닌 치기(稚氣)였던 셈인데,
세월이 흘러 그런 것인지 그땐 매운 낙지볶음이었지만
이젠 싱검싱검한 연포탕이 입에 맞는 것 같다.(지난날의 단상 중에서)
* 흐르는 곡은 웅산의 'Yesterday'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