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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PICK]일제가 훼손한 광화문 월대 현장 공개…“10월까지 복원 마무리”
이동원 기자 허경 기자입력 2023. 4. 25. 14:15수정 2023. 4. 25. 15:27
월대, 내부를 흙으로 채워 만든 건축구조물
고종년간 축조 이후 4단계 변화과정 확인
국립서울문화재연구원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에서 광화문 월대의 복원정비를 위해 진행 중인 발굴조사의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2023.4.2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원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에서 광화문 월대의 복원정비를 위해 진행 중인 발굴조사의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2023.4.2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사진은 광화문 월대 복원 예시도. (문화재청 제공) 2023.4.25/뉴스1
사진은 광화문 월대 유적 현황. (문화재청 제공) 2023.4.25/뉴스1
사진은 1923년경 광화문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2023.4.25/뉴스1
사진은 지난 1890년대 광화문과 월대 전경. (도서출판 서문당 제공) 2023.4.25/뉴스1
사진은 광화문 월대 유적 현황. (문화재청 제공) 2023.4.25/뉴스1
사진은 광화문 월대 유적 전경. (문화재청 제공) 2023.4.25/뉴스1
사진은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바라본 모습. 2023.4.25/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이동원 허경 기자 = 일제가 훼손한 경복궁 광화문 앞 월대(越臺, 月臺)의 규모와 변화 과정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25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광화문 월대 규모와 변화과정 등 발굴조사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을 공개했다. 지난해 9월부터 광화문 월대 복원·정비를 위해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월대는 궁궐의 중심 건물인 정전 등 주요 건물에 설치한 넓은 대(臺)를 뜻한다.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 등에도 있었는데,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르고 기단(基壇·건축물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뒤 터보다 한층 높게 쌓은 단)을 쌓은 건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남긴 기록인 영건일기에는 1866년 3월 3일 '광화문 앞에 월대를 쌓았다'는 내용이 있으나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사라졌다.
문화재청은 이번 조사를 통해 광화문 월대 규모를 확인했다. 조사결과 월대 전체 규모가 남북으로 48.7m, 동서로 29.7m에 달하며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어도지 기초시설 너비가 약 7m에 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광화문 월대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임금과 백성이 만나 소통하는 장소였다.
문화재청은 "월대의 서편과 달리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동편 모습을 통해 경복궁 중건 당시 월대의 전체 모습을 확인했다"면서 "복원을 위한 실물 자료를 확보했다는 게 가장 큰 성과"라고 밝혔다.
광화문 월대는 동·서 외곽에 잘 다듬어진 장대석(길이 120~270㎝, 너비 30~50㎝, 두께 20~40㎝)으로 기단 2단을 쌓고, 그 내부는 서로 다른 성질의 흙을 교차로 쌓아 주변보다 높게 대를 만들었다.
월대 남쪽에는 장대석으로 계단을 만들었다. 그중 어도와 이어지는 중앙부는 소맷돌로 동·서 계단과 분리했다. 소맷돌은 계단 좌·우측 양단 장식 또는 마감하려고 놓는 경사 부재다.
특히, 어도계단지의 경우 일제강점기 전차선로로 일부 훼손됐으나 소맷돌을 받쳤던 지대석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이는 월대 원형 복원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종년간 월대 축조 후 크게 4단계 변화 과정도 확인됐다. 1단계에서는 월대 축조 당시로 남쪽에 경계가 나눠진 계단 3개가 있었고 당시 월대 평면형태는 역철자형이었다.
2단계에서는 중앙 어도계단지가 경사로로 변했고, 3단계에서는 경사로 범위를 넓히고 계단이 동·서 외곽으로 축소됐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외줄 형태 전차선로가 설치됐다.
4단계에서는 전차선로 복선화로 월대가 파괴되면서 난간석이 철거되고 광화문 이건과 함께 도로로 사용됐다.
기단석 하부에 여러 지대석을 놓고 적색점토로 보강한 기초시설, 철편·점토·석회를 이용한 장대석 사이 수평맞춤, 장대석 밀림 방지를 위해 점토와 깬 돌을 섞어 보강한 뒷채움방식 등 당시 조선시대 건축기법도 확인됐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1920년대 훼철 후 동구릉에 이전됐던 월대 부재를 재사용하고 전통재료·기법을 적용해 월대를 복원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올해 10월까지 복원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작업에는 1920년대 해체된 뒤 경기 구리 동구릉 등으로 옮겨졌다고 여겨지는 난간석, 하엽석(荷葉石·난간석 아래에 일정 간격으로 둔 연잎 모양이 조각된 받침석) 등 부재를 재사용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전통 재료와 기법을 적용해 월대를 진정성 있게 복원할 예정"이라며 "올해 가을 궁중문화축전에서 옛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연수 국립문화재연구원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광화문 월대 발굴조사 결과 및 복원계획 공개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4.2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원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에서 광화문 월대의 복원정비를 위해 진행 중인 발굴조사의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2023.4.2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원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에서 광화문 월대의 복원정비를 위해 진행 중인 발굴조사의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2023.4.2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원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에서 광화문 월대의 복원정비를 위해 진행 중인 발굴조사의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2023.4.2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원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에서 광화문 월대의 복원정비를 위해 진행 중인 발굴조사의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2023.4.2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사진은 광화문 월대 유적 전경. (문화재청 제공) 2023.4.25/뉴스1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에 1866년(고종 3년) 설치됐던 ‘광화문 월대’의 전모가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25일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광화문 월대의 복원·정비를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진행 중인 발굴조사의 성과, 향후 복원계획 등을 발표했다.일제가 훼손하기 전 월대의 전체 규모는 남북 길이 48.7m, 동서 너비 29.7m로 발굴조사 결과 확인됐다. 일제가 1923년 개통한 전차 노선은 광화문 월대는 물론 삼군부와 의정부 터 일부도 훼손한 것으로 지난달 발굴조사에서 확인됐다. 사진은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바라본 모습. 2023.4.25/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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