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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fmkorea.com/6925453856
마오쩌둥이 죽었으니 뭔가 해야겠지?
일단 사인방은 숙청했고, 문화대혁명도 끝냈는데…
후야오방: 마오 시절에 우파로 분류되서 박해 받은 사람이 너무 많음ㅇㅇ
일단 이 사람들 구제해야할듯요ㅇㅇ
덩샤오핑: ㅇㅇ 문혁은 정말 세상이 미쳐 돌아가던 시절이었지
후야오방: 근데 문혁말고 반우파투쟁때도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피해를 받았어요
덩샤오핑: ?? 그 반우파투쟁을 일선에서 지휘한게 나인데?
후야오방: ……
덩샤오핑: …문화대혁명은 애시당초 잘못된거
반우파투쟁은 필요했지만 확대된 게 잘못이었다 정도로 정리해라
천윈: 경제도 문젠데
후야오방: 개혁도 하고 개방도 해서 매년 7.5%씩 고속 성장 하죠
덩샤오핑: ㅇㅇ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지
천윈: 내가 경제 해봐서 아는데 그러면 안됨ㅇㅇ
느리게 균형 잡힌 성장이 결국 가장 빠른 길임
천윈은 마오쩌둥 시절 당 부주석과 부총리를 지내며 경제를 맡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대약진운동에 반대하며 마오에게 '언제나 우파였다'는 비난을 샀고 이후 병을 이유로 정계를 떠났다가 마오 사후 다시 등장합니다
덩샤오핑: 응 아가리^^
님 군대 지휘 경력 없쥬? 군공 없쥬?
마오쩌둥 시절 천윈은 덩샤오핑보다 권력 서열이 앞섰지만
덩샤오핑과 달리 천윈은 군사 경력이 없었고
이것이 마오 사후 덩샤오핑에게 최고 실권자 자리를 양보하게 된 한 배경이 됩니다
천윈: …대신 경제 특구가 더 확대되서는 안 됨
그리고 요즘 젊은 애들이 자본주의로 오염되고 있는거 같음
팽진 문혁 시절 홍위병들에게 조리돌림 당하던 시절
ㅇㅇ 요즘 것들이 자본주의로 부패해가는거 같음
우리가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음
덩샤오핑: 그건 안되지. 학생들 사상교육 좀 잘 시켜
후야오방: 그거 다 개혁 개방 반대하려고 구실 삼는거에요
그냥 적당히 덮어둘게요
천윈: 아오 후야오방시치
덩샤오핑: 그나저나 나도 이제 나이가 많아서 은퇴해야할듯ㅠㅠㅠ
후야오방: 종신제가 문제가 많긴 하죠ㅇㅇ
은퇴하시면 편하게 사실 수 있도록 잘 준비할게요
아직 샤오핑 동지가 이렇게 건강하신데 은퇴는 말도 안 됩니다
덩샤오핑: 후야오방 저 새끼 뭔데 왜 나 안 말림? 어? 열받네
루컹: 나 홍콩 기자
지금 덩샤오핑이 군사위원회 주석을 맡고 있는데 후야오방 당신이 군까지 맡는건 어떰?
후야오방: ㄳ ㄳ
나는 다른 일 하기도 바쁘고 군대가 서열을 중시하는 게 있음
그래서 덩샤오핑 동지가 한 마디 하면 될 게 나는 다섯 마디나 해야 되고…
덩샤오핑이 군사위원회를 맡아주는 게 나도 편함
덩샤오핑: 아이고 지랄한다
저 기자 놈이랑 아주 쿵짝이 잘 맞는구만
당연히 질문이 무례하다고 해야 하는거 아냐? 또 열받네?
천윈: 덩샤오핑도 이제 후야오방이랑 사이 틀어진거 같은데? ㅋㅋㅋ
이제 우리 원로 중에 후야오방 지지하는 건 예젠잉 원수밖에 안 남았지?
예젠잉: 으앙 죽음
천윈: 이제 아무도 없네?
후야오방으로는 안 됨. 이게 나라냐
덩샤오핑: ㅇㅇ 후야오방으로는 안되겠음
그래도 모양새는 갖춰야하니까 몇 달 후 13차 당대회때 퇴진 시키겠음
천윈: 야 저기 대학생들 시위하는데?
ㅉㅉ 자본주의한다고 대학생들 정신머리가 오염된듯
후야오방: 아휴 어르신들 별 일 아닙니다.
그냥 학생들인데요.
덩샤오핑: 아휴 내가 저딴걸 후계자로 삼았다니
당대회는 아직 멀었지만 그냥 바로 후야오방을 퇴진시키겠음
후야오방: …당 총서기직에서 사임합니다
덩샤오핑: 그래도 민주생활회는 해야겠지?
민주생활회에서 후야오방은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회의가 끝난 후 후야오방은 계단에 앉아 통곡할 정도였습니다
덩샤오핑: 그래도 잘못은 인정했으니 다음 기수 중앙위원이랑 중앙정치국 위원 자리는 보전하게 해줌
천윈: 이제 다음 총서기는 내가 추천할 차례인가? ㅎㅎ
덩샤오핑: 응 김칫국^^
다음 총서기는 자오쯔양 총리가 맡는다
자오쯔양: 응애 나 신임 총서기
오늘 정치국 회의는 교육 문제를 다룰거임
후야오방: 나 교육에 대해 할 말이 있음
이 회의에서 후야오방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집니다
장쩌민: 응애 나 상하이 서기 겸 정치국위원
상하이에서 베이징 올라올 때 가족들이 니트로글리세린 가져가라고 해서 가져왔는데 일단 이거 좀 쓰시죠?
1989년 4월 8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야오방은
마침 장쩌민이 심장병 약(니트로글리세린)을 가지고 오면서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병원으로 이송됩니다.
후야오방: 이보시오 의사 양반
벌써 병원 침대에서 일주일이요. 산책! 산책을 하게 해달란 말이요
이보세요. 여긴 중환자실입니다.
산책은 몸에 해로우니까 그냥 푹 쉬세요
후야오방: 절대 산책! 결코 산책!
씁… 그럼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러나 1989년 4월 15일, 산책 도중 후야오방은 다시 쓰러졌고 그대로 불귀의 객이 되어 버립니다.
후야오방이 그래도 현직 정치국 위원인데 부고 기사는 내야겠지?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
오랜 시련을 겪은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전사
위대한 무산계급 혁명가, 정치가 정도로 하면 될 듯ㅇㅇ
덩샤오핑: 후야오방이 무슨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임?
나 죽어도 그런 표현 안 써도 되니까 후야오방한테 쓰지마
(실제로는 덩샤오핑이 사망하자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평이 들어감)
아니 후야오방이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걸 허용 안한다고?
후야오방을 다시 평가하라!
부르주아 정신 오염 제거 운동 같은 헛짓거리 하지 마라!
고위 간부들과 가족들의 부정부패를 조사하고 처벌하라!
보도 금지를 없애고 언론 자유 보장하라!
덩샤오핑: …이건 반혁명 폭동이야!
아니 우리가 뭘 어쨌다고 반혁명 폭동이라는거임
덩샤오핑: 저 봐 ㅉㅉ
저자들의 머릿 속에는 자본주의 마구니가 가득하다.
그 마구니를 탱크로 때려죽여라
자오쯔양: 아니 그래도 어떻게 학생들을 유혈 진압해요ㅠㅠ
내가 총서기로 있는 이상 절대로 못함ㅇㅇ
리펑: 치안업뭅니다. 찍으십쇼
리펑은 저우언라이-덩잉차오의 양자로 알려졌고, 자오쯔양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된 사람입니다.
물론 리펑 본인은 저우언라이 양자설을 부인했지만 그의 정치적 성공에는 덩잉차오의 후원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덩샤오핑: 아오 자오쯔양시치
오늘 날짜로 자오쯔양을 퇴진시킨다.
빨리 군을 투입해서 천안문 일대를 정리한다!
이렇게 중국 현대사에 또 하나의 비극이 새겨집니다.
- 에필로그 -
민주생활회라는 단어를 쓰면 후야오방을 연상시키고
후야오방 하면 천안문 사태를 연상시키네
이 단어 안 쓰는 게 좋을듯
하더라도 상급자를 비판하면 후환이 두렵고
하급자를 비판하면 인심을 얻지 못하고
동료를 비판하면 체면이 깎이고
자아비판을 하면 내 약점을 알리는거니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갑시다
시진핑: 응 아니야.
민주생활회를 해서 서로를 비판하고 자아비판도 해야함^^
동무는 오늘 무얼 잘못했는가?
중국역사 모르니 댓펌
이후 중국 공산당은 천안문 사태에는 서구의 농간도 있었지만 사상 교육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평가하고 사상 교육을 강화합니다. 하지만 자신들도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세계적으로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현실에서 예전처럼 사회주의만을 강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결과 내셔널리즘이 중국공산당의 새로운 사상으로 선택됩니다. 중국공산당이 중국공자당이 되었다는 우스개소리까지 나올 덩도죠. 90년대 초반부터 애국주의 교육과 애국주의 운동이 강화되었고, 이러한 애국주의 교육이 오늘날 중국인들의 국수주의에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이 존재합니다.
저우언라이는 은근 호불호 갈리는데 후야오방은 전체적으로 평가가 좋나보네
말씀하신 것처럼 저우언라이에 대해서는 은근히 호불호가 갈리고,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많죠.
후야오방에 대해서는 반중 인사들이나 중국공산당에서나 모두 높게 평가하더라고요. 일단 중국공산당에서는 후야오방이 천안문 사태를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언급을 꺼려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1989년 4월 내려진 그에 대한 평가가 번복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도 2015년에는 후야오방 문선까지 출판되었으니 거의 복권이 완료된 셈이죠. (중국은 고위 지도자들의 글이나 연설 등을 모아 ㅇㅇㅇ선집이나 ㅇㅇㅇ문선으로 출판하곤 합니다. 후야오방의 후후임자인 장쩌민의 문선이 2006년에, 후야오방의 후후후임자인 후진타오의 문선은 2016년에 출간)
반중 인사중에서는 천안문 사태의 학생 지도자였던 왕단이(본문에서 마이크 들고 있는 사람) 후야오방은 "당내의 확고한 민주파"였다고 평가하고, 롼밍 역시 "실용적인 태도와 창의적인 정신"을 갖고 있었고 덩샤오핑의 공이라고 하는 개혁개방도 사실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이 다한 것이라고 평가할 정도니 양쪽 모두에서 인정 받는 사람이죠.
참고로 후야오방과 같은 개혁파로 엮였던 자오쯔양은 후야오방이 부드럽고 깨어 있는 사람이라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을 수 있었고 관대하고 다른 사람 괴롭히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공산독재가 기반되는 “마르크스주의자”라는 표현 안 넣었다고 민주시위가 촉발된다라..
뭔가 역사의 아이러니네요
중국에서는 고위 정치인이 죽으면 마르크스주의자였다거나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 혁명가였다는 식의 평가와 오랜 시련을 겪은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전사였다는 말이 거의 항상 들어갑니다. 그 안에서도 다시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거나 걸출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식으로 급을 나누기도 하고요. 참고로 고위 정치인 출신으로 이런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 하나도 사용되지 않은 사례가 자오쯔양입니다.
천안문 사태 무렵에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경제도 좀 어려웠고...그런 와중에 후야오방의 사망이 방아쇠를 당긴 셈이 되었죠. 후야오방이 죽지 않았더라도 천안문 항쟁은 일어났을 수 있지만 적어도 그 시기가 1989년 6월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죠.
아무래도 자오쯔양은 금기시되니까 그랬던 거겠죠
네. 게다가 중국공산당 입장에서 후야오방은 자아비판을 했는데, 자오쯔양은 자신은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다며 자아비판을 거절한 걸 더 안좋게 보았죠.
그래도 공산당에서 쫓아내지는 않아서 자오가 사망하자 아무런 미사여구 없이 "자오쯔양 동지"라고만 발표했는데 옛날로 치면 재상까지 지낸 사람인데 시호를 받지 못한 격이죠.
천안문 사태에서도 결국 시위를 주도한 엘리트들은 대다수가 살아남았다는 게 뭔가 오묘함
중국 내의 일부 시민들과 서방 국가에서 그들을 망명시키려고 노력했죠. 왕단 같은 경우는 옥살이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학생이었고 얼굴과 이름이 알려져서 나중에 미국과 타이완으로 망명할 수 있었지만...1989년 6월 천안문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있었죠..
- 참고 자료 -
- 자오쯔양, 장윤미·이종화 옮김, 『국가의 죄수: 자오쯔양 중국공산당 총서기 최후의 비밀 회고록』 (서울: 에버리치홀딩스, 2010)
- 서진영, 『현대중국정치론: 변화와 개혁의 중국정치』 (서울: 나남, 1999)
- 조영남, 『파벌과 투쟁』,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서울: 민음사, 2016)
- 조영남, 『톈안먼 사건』,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서울: 민음사, 2016)
- 모리스 마이스너, 김수영 옮김,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제2권 (서울: 이산, 2004)
- 로드릭 맥파커 외, 김재관·정해용 옮감, 『중국 현대정치사: 건국에서 세계화의 수용까지 1949-2009』 (서울: 푸른길, 2012)
- 롼밍, 이용빈 옮김, 『덩샤오핑 제국 30년』 (파주: 한울, 2016)
- 알렉산더 판초프·스티븐 레빈, 유희복 옮김, 『설계자 덩샤오핑』 (서울: 알마, 2018)
- 가미무라 고지, 송현웅 옮김, 『중국 권력핵심』 (서울: 청어람미디어, 2002)
- 유상철, 『2035 황제의 길』 (서울: 메디치미디어, 2018)
- 루컹의 후야오방 인터뷰(198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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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천안문은 운동이 아니라 사태라고 불리네.. 유익한 글 잘 읽었어 고마워!!
가슴아프다...이런 걸 볼때마다 인류는 한치도 발전하고 있지 않은 것 같음 기술의 발전도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결국 인류가 절멸하는 데 필요한 조건의 일부로 느껴짐
문혁과 천안문사태는 그간의 역사를 말아먹은 중국의 흑역사다..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면 어떨지 궁금한데 지금 중국의 행보로는 그것조차 어려워보임
한편으로는 공산주의라 발전이 더뎠던건 타국의 입장에서는 이득,...이라고 생각함ㅋㅋ
자오쯔양을 마르크스주의자라 일컫지 않아서 발생한 민주시위라니 진짜 아이러니하다..ㅋㅋ
흑묘백묘..
저우언라이는 호불호 없는 인물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어떤 잘못이 있었던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