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노력들은 모두 지향하는 바가 분명하다. 우리가 지닌 수많은 성격요인들을 보다 포괄적인 범주로 묶어서 어떤 사람의 성격을 보다 쉽고 빠르게 이해하려는 것이다. 심리학의 수많은 성격 이론들이 바로 이러한 목적을 향해 지금까지 숨가쁘게 달려왔으며 여기에서는 단지 몇 개의 예를 봤을 뿐이다.
우리는 얼마나 성격을 이해하고 파악하려 하는가?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나 자신과 타인의 성격을 이해하려 하는가? 이 질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당연히 그러려고 노력한다.”고 대답할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당혹스럽게도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다른 회사에 있는 친구가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A과장님에 대해 묻는다. “영수야, 너희 회사 A과장님 성격 어떠니?” 이 질문에 가장 흔한 첫 대답은 “과장님 성격 좋지.” 혹은 “성격 정말 안 좋아.”로 시작한다. 그 다음에는 “왜 좋냐하면 말이지. 통도 크시고, 결재해 주실 때도 편하다니까.” 혹은 “왜냐하면 쩨쩨하고, 회식 끝나고 꼭 2차, 3차 끌고 다녀.”라는 특정 행동에 기초한 진술이 뒤를 잇는다.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겠지만 더 많은 경우 우리는 어떤 사람의 성격에 대해 진술 할 때 “좋다-나쁘다”의 차원에 입각한 나의 판단을 일단 먼저 얘기하고 그 판단을 ‘지지’할 것 같은 그 사람의 ‘행동’을 나열한다. 과연 이러한 말들이 내가 어떤 사람의 성격을 이해했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물론,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런 식으로 하는데 그럼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비정상이냐?”라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런 방식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상대방 역시 어떤 사람의 성격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의 성격을 나열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 ‘좋은지-나쁜지’여부에 더 관심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문의 의도와 대답의 방식 모두 이런 식으로만 이루어진다면 가까운 미래에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할 때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지닌 정보가 아무 것도 없음을 알고 당황해 하는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개방적인 사람은 상상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것보다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좋아할 것이다. 비협조적인 사람은 동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신뢰보다는 의심을 많이 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나하나가 예전에 연구로 입증된 사실들이지만 한편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쉽게 되는 말들이다. 성격의 요인에 기초한 다양한, 하지만 단편적인 지식들은 우리로 하여금 쉽게 납득되며 따라서 어떤 사람이 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 대해 보다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고 따라서 내가 그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조금은 더 명확해 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부모님께 드릴 생신 선물을 살 때나 혹은 오랜 만에 만난 친구를 대할 때 우리가 가끔씩 ‘어떤 것을 고르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모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격은 잘 알고 있을까?
글쎄.. 불행히도 이것 역시 ‘네’라는 대답이 쉽게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필자가 수 년 전 모 방송사에서 했던 실험이 있다. 스튜디오에서 필자는 다섯 명의 남녀 대학생들에게 빈 종이에 자신의 손을 대고 그 손을 따라 선을 그려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심리학자인) 필자가 “저는 여러분이 주신 여러분 각자의 손 형태를 보고 여러분의 성격을 맞출 수가 있습니다.”라고 말한 뒤 10여분 뒤 돌아왔다. 그리고는 각자에게 봉투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고 그 봉투에는 필자가 분석한 성격의 내용이 들어있었다. 다섯 명의 학생들은 각자 받은 봉투를 열고 그 내용을 읽어보았으며 하나같이 “정말 꼭 들어맞는다.”라고 신기해했다. 그 5명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후 필자는 다른 사람의 성격이 분석된 내용을 읽어보도록 하였다. 모두 한바탕 웃어버렸다. 왜냐하면 그 다섯 사람에게 주어진 내용은 모두 같은 것, 즉 똑같은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일종의 몰래카메라였다. “당신은 자존심이 강해서 남에게 머리를 숙이고 굽히는 것을 대단히 싫어해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조직에서 일을 할 때는 성과를 높이기 위해 자존심을 굽힐 줄 아는 현명함도 있습니다.”라던가, 혹은 “당신은 친구를 신중하게 고르는 편입니다. 주변에 친구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주위를 둘러보면 필요한 친구가 잘 눈에 띄지 않음을 늘 걱정하기도 합니다.”라는 질문에 우리는 모두 “네, 맞습니다.”라고 말을 한다. 살다보면 그런 경험을 한번쯤은 했기 때문이다. 이를 조금 더 확장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성격조차도 완벽히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성격에 대한 나의 판단은 오죽하겠는가.
우리나라에서 더욱 그 경향이 심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도록 하자.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20개를 대답해야 한다. 이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쓴다.
“1. 2남 2녀의 차남” “2. 고등학교 동문회의 부회장” “3. OO 산업의 XX 부서 과장” “4. OO 동아리의 회장”
등등 말이다. 이것이 과연 나일까? 문화차이가 꽤 크게 나온다. 개인주의적 문화가 발달한 나라의 사람들의 응답과 비교해 보면 말이다. 이들에게서는 다음과 같은 응답이 먼저 나온다.
“1. 나는 (조용하기 보다는) 활발하다.” “2. 나는 (경쟁적이기 보다는) 자신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3. 나는 (협동을 좋아하기 보다는) 혼자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