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창작의 준비
1. 소설 창작의 준비
국어 및 문학 교과를 살펴보면, 여러 장르의 문학 작품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소설은 국어 교과서에 실린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과 이청준의 ‘눈길’을 비롯하여, 문학교과서가 더 많은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역시 작품의 이해와 감상 쪽으로 학습 과정이 짜여져 있는 듯 보인다. 예를 들어, 홍신선(외 2인)이 집필한 『문학(상)』(2002, 천재교육)을 보면, ‘소설의 수용과 창작’이라는 장을 만들어 놓고 소설의 주요 요소를 중심으로 그 내용을 살피게 하고 있다.
소설의 수용이라 함은 독자가 그것을 잘 이해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내용과 형식을 잘 이해함으로써 삶을 윤택하게 하고 나아가 소설을 창작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교육적 성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것과 창작하는 것은 그 과정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다루는 일이 창작과정을 돕는 일에 흡족하게 쓰이지 못한다. 그래서 이 문학교과서의 저자들은 책 말미의 부록으로 문학창작교실인 ‘소설쓰기의 첫걸음’이라는 장을 수록하여 창작학습의 미흡함을 보충하려 하고 있다. 이 부록은 창작 기술에 대한 정보를 다음과 같이 단계별로 소개하고 있다.
(1) 무엇을 쓸 것인가 판단하라.
(2)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구도를 변경시켜라.
(3) 시간의 흐름을 다양하게 변화시켜라.
(4) 상상력을 응집시켜 첫머리를 시작하라.
(5) 가능한 한 인과적 결말을 고려하라.
(6) 최소한의 주제를 설정하고 글쓰기에 임하라.
(7) 적절한 시점을 선택하라.
(8) 구체적이면서도 함축적인 문장을 사용하라.
(9) 인물 창조의 여러 조건을 고려하라.
(10) 인물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라.
미국 작가 데이몬 나이트는 『소설창작법』(신구문화사, 1996, 김달용 옮김)에서 ‘작가로서의 재능개발과 아이디어를 소설로’, ‘소설을 시작하면서’, ‘소설을 통제하면서’, ‘소설을 끝내면서’, ‘작가가 되는 것’ 등을 다루고 있다. 그의 관심 중에 독특한 것은 관찰력, 청취력, 기억력, 감지력을 작가가 갖춰야 할 소양으로 보고 그것을 계발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소설 창작에 있어서 문장 표현을 강조한 사람은 이태준이다. 그는 후스(胡適)의 글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원칙을 천명했다.
(1) 언어만 있고 사물이 없는 문장을 쓰지 말 것.
(2) 병 없이 신음하는 문장을 쓰지 말 것.
(3) 전고(典故)를 일삼지 말 것.
(4) 난조투어(亂調套語)를 쓰지 말 것.
(5) 대구(對句)에 얽매이지 말 것.
(6)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쓰지 말 것.
(7) 고인(故人)을 모방하지 말 것.
(8) 속어, 속자를 쓰지 말 것.
대학에서 소설 연구와 창작생활을 함께 해온 몇 몇 교수작가의 창작론은 실제로 창작을 배울 때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앞 장에서 열거된 바와 같이 이들 창작론은 거의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그 내용이 다른 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기존의 결과물에 만족스럽지 못하여 그 아쉬운 점을 보충하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을 꾀하는 까닭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창작 영역은 좀더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소설 창작에 대한 이론화가 크게 미흡하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 중 하나로, 우한용은 「소설 창작의 이론화 가능성 탐색」이라는 논고에서 소설 창작 교육 과정안에 꼭 들어가야 할 내용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주체가 세계를 발견하는 능력 배양.
(2) 대상과 대상들의 관계, 그리고 작용을 언어로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 배양.(여기에서 시점을 운용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
(3) 자아와 세계의 교섭 작용 혹은 소통 과정을 이해하는 능력 배양.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이 소설 창작 능력. 결국 소설 창작 능력은 소설 양식을 통해 세계를 발견하고, 언어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으로 규정되는 것)
위에 소개된 글들은 소설을 쓸 때 필요한 것들과 문장을 쓸 때에 유념해야할 문장표현 기술이다. 여기서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소설이 각기 다른 것처럼 소설을 다루는 창작 기술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연구하는 사람마다 크게 다를 수 있고, 그 적합성을 따지기가 매우 애매하다. 사실 소설의 형식이 최소한 지켜지기만 한다면, 작가는 새롭게 창작하기 위해서 그것을 유효 적절히 변형시키거나 파괴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창작의 방법은 어떤 일괄적인 논리로 정해지기가 더욱 어렵지만, 어떤 방식이든 ‘학문적 논의가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라면 다양하게 설정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창작을 위해 정말 필요한가 하는 점을 서로 냉정히 관찰하면서, 소설양식을 통해 세계를 발견하고 언어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스트였던 존 바스(John Bath)는 1967년 발표한 ‘고갈의 문학’이라는 글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의 죽음’을 선언했다. 이때 고갈이란 단어는 어떠한 형식들의 소진 혹은 어떠한 가능성의 극한 탕진을 의미하는데, 존 바스는 전통적인 소설형식이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다는 것을 ‘소설의 죽음’으로 단언한 것이다.
이에 비해, 제머슨(F, Jameson)은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하여 소설 위기를 조장하는 네 가지 요소를 지적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은, 진화론적 역사발전이 불가능해졌거나 그러한 관념 자체가 무의미해져서 역사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소설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복잡다단해진, 작가의 상상력을 압도해버리는 현실 때문에 그것을 언어로 재현해내기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오늘날 우리가 의미의 상관성이 없는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이미지들의 나열 속에서 하루하루 살게 되었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존 바스나 제머슨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소설은 아직까지 서점의 베스트셀러 꽂이에서 대를 이으며 굳세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디지털정보가 넘치는 영상 미디어 시대인 21세기는 소설의 죽음을 원치 않는다. 날이 갈수록 많은 인터넷 게임의 게이머들은 서사가 넘치는 새롭고 실감나는 프로그램을 원하고 있고, 영상 산업을 주도하는 영화인들이 서사가 넘치는 시나리오를 찾는 이상, 그 중심권에 있는 소설이 죽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2. 소설을 쓰는 사람은 누구인가
말은 참 재미있다. 속이 드러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말 속에는 표면에 나타난 내용과는 전연 다른 의미가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어떤 관리자가 일을 하다가 궁금해서 “지금 도대체 몇 시나 되었습니까?”라고 물었다.(시간이 궁금해서) 그러나 지각한 사원을 앞에 두고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 똑같이 물었다. “지금 도대체 몇 시나 되었습니까?(시간 문제가 전혀 아니다. 이 말속에는 “왜 이렇게 늦었느냐?”는 나무람과 자신이 화가 났음을 알리려는 의도가 들었다.)
가령 세일즈맨이 “어제 저녁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셨더니 영 피곤하고 죽겠습니다.” 라고 할 때는 ‘오늘 조퇴 좀 시켜주십시오’라는 뜻일 수도 있다. 거래선에 가서 “요즈음은 경기가 괜찮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이번에는 제대로 수금 좀 해 주시겠습니까?’ 라는 뜻일 수도 있다. 그의 부인이 “요즈음 당신 건강이 안 좋은 것 같아요”라고 하면 ‘제발 술 좀 끊으세요’라는 의미일 수 있으며, 그의 상사가 “무리하지 말아라”라고 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제발 술 좀 그만 마시고 일을 열심히 해다오’라는 뜻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화의 표면과 내면이 다른 경우에 내면의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면 제대로 알아들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과는 달리 통찰에 의한 대화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말은 대화의 표면상 주고받는 사실과 속에 담긴 의미와 감정이 더욱 큰 차이가 난다.
서양사람 :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직선적인 대화)
한국사람 : 저 달이 저렇게 밝은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통찰에 의한 대화)
이처럼 한국인의 구애 속에는 누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이 든다. 직선적인 표현은 오히려 너무 멋이 없다. 당돌하다는 반응을 받기가 쉽다. 은근하고 우회적인 표현이라야 제대로 맛이 난다. 난 아직 배고프다(히딩크) 하지만 속마음을 모르면 이런 표현방식은 오해를 낳기도 한다.
소설은 말을 다루는 기술의 집약이다. 정밀한 묘사 문장을 통해 영화감독이나 사진작가, 미술가를 대신하고, 문장의 운율을 가지고 음악가처럼 음악적 변형을 만들기도 하고 그 내용으로 정치가나 역사학자, 교육자의 일을 한다. 그야말로 말의 힘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 엄청난 힘을 가진 말을 잘 다뤄보겠다는 뜻을 전제로 하는 일이다. 말은 정말 제멋대로 달려나가는 야생의 힘이 강하다. 가장 제멋대로이고 파격적이고 경제적인 말이 욕이다. 자조적이고 부정적이긴 하지만 욕은 복잡한 감정을 함축한다.
(…)일어났다 사라지고, 솟았다 흩어지고, 눌리고, 찌그러지고, 터져 나와 천장에 파편처럼 박혀버린 모든 감정, 말들, 욕과 사랑, 애원과 멸시, 체념, 기대, 자책과 비명, 난간을 잡고 비틀, 하면서 그걸 건너다보고 있으면, 하…그래 씨발 뭐 있나, 나의 윤이도, 진아 씨의 윤이도, 남편도, 나 자신까지도 나는 다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최은미의 「보내는 이」중)
하지만 소설을 쓰면서 적나라하게 욕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박한 말이나 욕은 소설의 언어로 쓰일 수는 있지만 적절한 언어는 아니다. 소설의 언어는 선명하고 정교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 상황에 적합한 깊은 뜻을 품고 있어야 한다. 물론 지문(화자발언)과 대사(인물발언)는 다르다. 정확히 짚자면, 화자가 등장인물과 동일인일 경우나 화자가 등장인물의 내면에 침투된 경우에만 그가 발설하는 독백처럼, 내면 심리가 반영된 저급한 언어나 욕이 가능해진다.
소설에서 사용된 말의 총량은 내용과 표현에 다 들어있다. 내용은 크건 작건 주제를 향해 있고, 표현은 그 상황에 충실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소설을 쓰고 있네…이렇게 말을 했을 때 과연 소설을 쓰는 사람은 누구인가? 소설의 주체자는 누구일까? 「홍길동」(허균) 혹은 「장길산」(황석영) 「임거정전」(홍명희)「춘향전」(작가미상)
소설에 끼어들 수 있는 사람을 떠올려본다면, 소설을 쓰는 사람(작가)+ 이야기를 하는 사람(서술자, 화자)+중심(초점)적으로 화제(이야기)되는 사람(시점자, 시점자가 화자의 마음에 침투되면 초점화자 또는 반영자)+주변인물+독자+가상(임의) 독자+가상(임의)작가 혹은 사물(화자가 임의로 투영되어 인격을 가진)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소설 쓰는 사람은 엄격히 작가이긴 하지만, 소설(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람이 화자이기 때문에 소설은 화자의 몫이 가장 크고 중요해진다. 화자가 생각(논평)을 가미하지 않고 보이는 (관찰한) 것만 이야기하게 되면 카메라의 기능과 똑같아진다. 그리고 이 카메라의 조작능력이 화자의 미학적 태도와 관련된 일이고, 시점에서의 문제이며, 그것이 미적거리를 만든다. 소설은 어떤 의미로 화자의 논평과 화자가 이끌어낸 인물의 말과 행동이 전부이기 때문에 화자의 문학, 주인물 중심의 문학이 아닌 화자 중심의 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
3. 소설 쓰기의 실예
(1) 예문
모처럼 잠을 잤다는 안도감. 눈을 뜨자마자 나는 홀가분해져서 운동복을 입고 계단을 내려왔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새벽에 산책길을 나서면 주변의 새들이 먼저 일어나 지저귀었다. 선명하진 않아도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아파트 담자락을 포롱포롱 날아다니는 게 눈에 띄었다. 오랫동안 계속된 불면. 밤이 깊을수록 정신이 더 또렷해져서 남이 자는 시간에 혼자 술도 마셔보고 약도 먹고 책도 읽고 별짓을 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체중이 무려 5킬로나 늘었다는 사실이었다.
발목관절이 불편해져서 병원을 다녀와야 했다. 운동하셔야 합니다. 이대로 뒀다간 3년 내로 걷기가 힘들 겁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난 발목에 대해 고민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불면만 해결된다면…의사의 조언에 따라 조금은 움직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밤새 뜬 눈으로 보낸 날도 여명과 함께 찾아오는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산책하기 시작했다. 아파트를 다섯 바퀴만 돌면 한 시간이 지나갔다. 절름절름 느린 걸음으로 아파트 뒷길을 계속 걷노라면 날이 훤해지고 차 밑에 숨어 있던 고양이들도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일주일 내내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렇게 했다. 책상 위의 다이어리에 산책길에서 있던 하루의 기억을 적었으니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2) 살피기
위 글의 문장을 서사양식(논평/보고/묘사/발화)으로 세밀히 분석하여 보라.
모처럼 잠을 잤다는 안도감.(0)
눈을 뜨자마자 나는 홀가분해져서 운동복을 입고 계단을 내려왔다.(0+1)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새벽에 산책길을 나서면 주변의 새들이 먼저 일어나 지저귀었다.(0+1)
선명하진 않아도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아파트 담자락을 포롱포롱 날아다니는 게 눈에 띄었다.(0+2+1)
오랫동안 계속된 불면.(0)
밤이 깊을수록 정신이 더 또렷해져서 남이 자는 시간에 혼자 술도 마셔보고 약도 먹고 책도 읽고 별짓을 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0+1)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체중이 무려 5킬로나 늘었다는 사실이었다.(0)
발목관절이 불편해져서 병원을 다녀와야 했다.(0+1)
운동하셔야 합니다.(3)
이대로 뒀다간 3년 내로 걷기가 힘들 겁니다.(3)
의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난 발목에 대해 고민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0)
불면만 해결된다면…(3)
의사의 조언에 따라 조금은 움직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밤새 뜬 눈으로 보낸 날도 여명과 함께 찾아오는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산책하기 시작했다.(0+1)
아파트를 다섯 바퀴만 돌면 한 시간이 지나갔다.(1)
절름절름 느린 걸음으로 아파트 뒷길을 계속 걷노라면 날이 훤해지고 차 밑에 숨어 있던 고양이들도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1)
일주일 내내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렇게 했다.(1)
책상 위의 다이어리에 산책길에서 있던 하루의 기억을 적었으니 틀림없는 사실이었다.(0)
논평으로 시작하는 이 보다 순수한 형식이 에세이라면, 묘사로 시작하는 형식이자 (주로 19세기 단편소설) 원조는 스케치이다. 여기에 동원된 묘사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의 플롯과 사실상 아무런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실제로 묘사가 그 자체만을 위해 존재하는 시적 형식을 취하는 소설도 있다.
윗글은 짧은 논평, 보고로 시작한, 단편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 듯한 서술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일상을 깨고 새로 생긴 산책의 습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의 나이 성별 직업 학력 가족관계 친구 과거 행적 트라우마 버릇 등을 기록해두고 그것을 참고해서 나의 이야기로 만들면 된다.
소설은 관계에서 생긴 인간적인 갈등을 해소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왜 그랬을까를 해결하면 끝난다. 잘 쓸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써보자. 이야기의 시작은 어떤 상황을, 이야기를 중단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을 궁금하게 해서 흘러가게 되는데 흥미를 돋우고 시작한 이야기를 내용 있게 마무리하면 된다.
시작은 묘사로도 하지만 해설적인 어조인 논평으로도, 보고로도 할 수 있다. 현대 단편소설을 보면, 보고와 발화 형태가 금세기 단편소설의 지배적인 양식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제일 먼저 이 이야기의 행위자는 화자(서술자=나레이터))다. 우선 소설의 성분을 살피자면 모든 소설은 화자의 발언(지문)과 인물의 발언(대사)으로 되어 있다. 인물이 발언 중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아닌 혼잣말은 독백으로 치고, 독백 중에서도 성음으로 나타나지 않은 내적 독백으로 나타난다. 인물 발언을 표시할 때는, “ 따옴표”를 쓴다. 그리고 누가 말했나, 말할 때 태도는 어땠나를 표시하는 ‘인퀴트’를 추가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우다.
정미가 목이 메어 흐느끼면서 말했다. (인퀴트인 동시에 화자 발언이고 지문)
“다시는 널 안 만날 거야.” (인물 발언)
화자 발언은 또다시 화자의 보고, 묘사와 논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자의 보고는 ‘정미는 나를 보자마자 몸을 돌려 오던 길로 달아났다.’ 같은 문장이다. 크건 작건 반드시 시간의 흐름이 생긴다. 화자의 보고가 들어있는 문장은 반드시 누가 무엇을 했다(동작이 있는)는 말을 해야 한다. 묘사가 들어있는 문장은 그림(정물)을 보여주는 것으로 문장 안에 시간의 흐름은 없다. ‘정미는 베이지색 스커트에 붉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는 식이다. 화자의 논평은 ‘서준이 정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 12월 24일인데, 아시다시피 그날은 대체로 사람들이 들뜨기 쉬운 날이었으므로 만나자마자 그들은 다정하게 손을 잡았고, 마치 내일도 변함없이 그러리라는 듯 즐겁게 사람들 속을 비집고 다녔다.’ 이렇게 굵은 글씨부분의 화자 논평은 화자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판단을 말하는 것이다.
화자의 논평이 가장 많은 산문은 에세이인데, 소설처럼 행동(서사적 사건) 중심의 글이 아닌 에세이는 주로 화자가 생각하는 것을 전달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현대소설은 이러한 에세이적 태도를 빈번히 사용한다. 하지만 이것은 서사적 행동을 주로 다루는 소설에서 권장할 만한 방법은 절대 아니다. 또한 지문이 적고 대사 위주로 글을 쓰면 그 글은 희곡과 비슷해진다. 대사중심의 글은 말을 굴리는 재미는 만들지 몰라도 시간의 흐름을 갖지 못해 변화가 없고 정체된 글이 된다.
(3) 문장과 문법 이해
제일 먼저 문장에 맞는 바른 글을 써야 한다. 그리고 문단 구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문단(文段=段落)은 소주제를 담은 글꾸러미다. 소주제를 담은 이 글꾸러미들이 이야기 방향에 따라 여러 갈래로 발전해야 하는데, 나중에 이 꾸러미들이 뭉쳐서 한 장(章)을 이루는 것이다. 즉 한 개의 문장으로는 주제를 표현하기가 힘들다.
㉠모처럼 잠을 잤다는 안도감. 눈을 뜨자마자 나는 홀가분해져서 운동복을 입고 계단을 내려왔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새벽에 산책길을 나서면 주변의 새들이 먼저 일어나 지저귀었다. ㉢선명하진 않아도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아파트 담자락을 포롱포롱 날아다니는 게 눈에 띄었다. ㉣오랫동안 계속된 불면. 밤이 깊을수록 정신이 더 또렷해져서 남이 자는 시간에 혼자 술도 마셔보고 약도 먹고 책도 읽고 별짓을 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체중이 무려 5킬로나 늘었다는 사실이었다.
㉠부터 ㉤까지 이야기는 술술 풀려나간다. 현실의 내용은 ‘나는 잠을 잘 자고 산책하러 나왔다’는 내용과 이전의 경험으로 ‘나는 불면증에 걸려 고생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체중까지 늘었다.’는 것을 묶어 말하고 있다.
□발목관절이 불편해져서 병원을 다녀왔다. 운동하셔야 합니다. 이대로 뒀다간 3년 내로 걷기가 힘들 겁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난 발목에 대해 고민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불면만 해결된다면…그러다가 의사의 조언에 따라 조금은 움직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밤새 뜬 눈으로 보낸 날도 여명과 함께 찾아오는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산책하기 시작했다. 아파트를 다섯 바퀴만 돌면 한 시간이 지나갔다. 절름절름 느린 걸음으로 아파트 뒷길을 계속 걷노라면 날이 훤해지고 차 밑에 숨어 있던 고양이들도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일주일 내내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렇게 했다. 책상 위의 다이어리에 산책길에서 있던 하루의 기억을 적었으니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 표시는 없다. 다만 문단을 표시하려면 반드시 한 글자를 빼고 시작한다는 규약이 있다. 책을 만들 때 이 규약을 어기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가끔 유명출판사에서 □ □ 이상의 띄움) 하나의 문단은 크건 작건 소주제를 가지고 있고 독립적이다. 그래서 문단의 구분을 잘 할 줄 알아야 글이 정확해진다. 특히 기억해야 할 것은 “따옴표”가 들어 있는 대사 문장이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따옴표를 가지는 순간, 화자의 입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입을 빌리게 된다. 이러한 독립적인 느낌을 줄이고 화자의 언어로 처리하는 방식이 아래의 굵은 글자로 표시된 ‘자유직접화법’을 사용하는 방식이다.(따옴표를 없애고 화자가 그대로 인물의 말을 갖다 옮긴 것이다)
발목관절이 불편해져서 병원을 다녀와야 했다. 운동하셔야 합니다. 이대로 뒀다간 3년 내로 걷기가 힘들 겁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난 발목에 대해 고민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불면만 해결된다면…의사의 조언에 따라 조금은 움직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밤새 뜬 눈으로 보낸 날도 여명과 함께 찾아오는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산책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이 글을 원칙적으로 쓰기로 한다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발목관절이 불편해져서 병원을 다녀와야 했다.
“운동하셔야 합니다. 이대로 뒀다간 3년 내로 걷기가 힘들 겁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난 발목에 대해 고민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불면만 해결된다면…그러다가 의사의 조언에 따라 조금은 움직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밤새 뜬 눈으로 보낸 날도 여명과 함께 찾아오는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산책하기 시작했다.
(4) 소설을 쓸 때 유념할 사항
(1) 무엇을 쓸 것인가(주제) 판단
(2) 상황에 맞게 구도를 변경.
(3) 시간의 흐름을 다양하게 변화시킴.
(4) 상상력이 풍부한 첫머리 시작.
(5) 가능한 한 인과적 결말.
(6) 모든 내용은 최종 주제를 향해 움직임.
(7) 적절한 시점 선택.
(8) 구체적이고 함축적인 문장 사용.
(9) 관념보다 행위에 의미, 인물 창조.
(10) 인물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
(11) 관찰력, 청취력, 기억력, 감지력을 계발할 필요
(12) 언어의 마술사가 될 것.
㉠ 화려한 언어만 있고 행동(서사 사건)이 없는 문장을 쓰지 말 것.
㉡ 정황 상 화자만 알고 독자는 모르는 문장을 쓰지 말 것.
㉢ 상투어나 흔한 관용적 표현을 쓰지 말 것.
㉣ 비문, 속어를 쓰지 말 것.
㉥ 사건의 시간을 혼동하지 말 것.
㉦ 주제를 향해 움직이는 일을 표기하지 말 것.
㉧ 핵심 사건을 클라이맥스와 연결할 것
㉨ 화자가 다 설명하려 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