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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갈치 낚시하다가 평화광장에 있는 단골(^^) 찜질방에 가서 실컷 잤습니다.
느긋하게 나와 해장국밥을 먹고, 어디로 갈까 하다가 장흥행 차표를 끊었지요.
아니, 여행 전에 이미 장흥 올 생각은 했지요.
제철 만난 천관산 억새를 볼 생각으로 행장 꾸린 여행이었으니까요.
목포에서 장흥까지는 2시간이 채 안 걸렸습니다. 강진 지나 바로 장흥입니다.
목포나 강진, 해남, 영암, 보성, 순천은 자주 멈춰 내렸지만,
어쩐 일인지 그 중간에 있는 장흥에 내린 적은 드물었습니다.
오래 전에 천관산을 한 번 가보긴 했지만, 그것도 강진의 칠량 쪽에서
차를 몰고 오월 보리가 익을 무렵에 간 것입니다.
높지 않지만, 만만치 않다는 호남 5대 명산 중 하나인 천관산.
이번 여행의 목적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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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 말고도 장흥을 찾은 까닭이 두엇 더 있는데,
그 하나가 '장흥 삼합'을 먹자는 것이었습니다.
이태 전인가, 작년인가, 한때 '삼합'이 방송을 타고 일대 유행하면서
홍어를 메인으로 하는 '나주 홍탁삼합'에 이어
양파와 낙지를 곁들인 '무안 삼합', 삼치회에 묵은지, 돌김 올려 먹는 '여수 삼합'과 더불어
특산물인 한우에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이 섞인 '장흥 삼합'이 유명세를 탔었지요.
마침내 그거 한 점 먹어보겠다고 그 식당들이 모여있는 토요시장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홀로 여행자가 먹기엔 너무나 부담스러운 가격입니다. ㅠ
이럴 땐 홀로 여행자의 신세가 서럽기만 합니다.
대신, 장흥 삼합과 더불어 장흥의 또다른 별미로 치는 된장 물회를 찾았습니다.
된장 물회를 꽤 잘한다고 알려진 집을 찾아 왔는데, 된장물회도
2인분, 3인분 가격이 적혀 있더군요. ㅠ
어쩌겠습니까, 이 황량한 시대에 혼자 여행질 하는 자가 잘못이지.
그런데! 그때마다 천사가 나타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놓곤 하지요.
물회 한 사발 먹고 싶어 서울서 왔다니 주방의 아주머니가 잠시 생각한 끝에
1인분을 해주겠다고 하십니다! 나온 걸 보니 제법 푸짐합니다.
고추장이나 초장을 푼 물회와는 달리
된장을 푼 시원한 국물에 하모(갯장어) 등을 썰어넣은 물회의 맛은 묘했습니다.
시원하면서 시큼하고, 구수하고 쫄깃하고...
뱃사람들이 배에서 어로작업 하며 입맛 없어 만들어 먹었을
그 서민들의 음식이 이제는 지방의 별미가 되어 먼 지방서도 찾아 먹게 하고 있습니다.
훌훌 털어넣고, 장흥버스터미널 가서 남도로 내려갈 채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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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이 멀지 않기도 하거니와
바로 이 분의 고향 마을인 까닭에 장흥의 남쪽 그트머리에 있는
회진읍을 향했습니다. 도착하니 늦은 오후입니다.
이청준 선생님.
젊은 날, 문학과 소설로 밤을 지새던 문학청년에게 당신의 별을 보여준 분이었지요.
영화 <서편제>로 유명해지면서 그 뒤 <천년학>, <축제> 등의 영화로도
알려졌지만, 그의 초, 중기 작들이라 할 수 있는
<소문의 벽>이나 <당신들의 천국>, <비화밀교>, <이어도>, <병신과 머저리>, <눈길>
등의 소설은 얼마나 황홀했던지 말입니다.
당신이 전공한 독문학, 독일 소설의 관념적 세계를 씨실로 삼고
당신이 태어나고 자란 남도 땅의 정서를 날실로 삼아,
독특한 작품 세계를 펼쳐가신 소설가 이청준.
그 소설들을 배태한 땅의 풍경, 땅의 모습이 궁금했던 것입니다.
지지난 해 박완서 선생님으로부터 얼마 전의 최인호 작가까지
한 분 두 분 세상을 등지시는 작가 분들을 보내며 섭섭한 마음이 이만저만한 게 아닙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정치인이나 예술가나
우리 곁을 떠나는 이들에 대한 섭섭함이야 크건 작건 생기기 마련이지만,
작고한 소설가, 시인들에 대한 섭섭함이 더한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건, 단지 한 사람의 작가가 세상에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위대한 세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뜻하는 것이 아닐까.
아아, 어쩌다가 세상에 박완서도, 최인호도, 이문구도, 이청준도 없는 것일까!
그런 작가분들 중에 다섯해 전(2008년) 우리 곁을 떠난 이청준 선생에 대한 그리움이
제 개인적으로는 유독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한번쯤 발길이 여기 장흥 땅 끄트머리까지 오게 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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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선생의 연표에 보면, 탄생지가 장흥군 대덕면 진목리로 나와있던 걸로 압니다만,
지금 진목리는 행정구역 상으로 회진이라는 작은 면 소재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덕면에서 회진면이 분가한 모양입니다.
회진면에는 이청준 선생 말고 또 한 분의 걸출한 소설가의 고향이기도 한데,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원작자인 한승원 선생이 그 분입니다.
회진면은 아니지만, 장흥 읍내에서 이곳으로 낼려오는 길에 거쳐온 용산면은
<녹두장군>, <자랏골의 비가>, <암태도> 등의 소설가 송기숙 선생의 고향이랍니다.
이 궁벽진 시골, 어촌마을의 도대체 그 무엇이 이 어마어마한 작가들을 배출했을까요?
작은 시골 읍내를 만나 돌며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한편 회진면에서 바닷가쪽으로 비쭉 더 내려온 곳에 '노력항'이라는 항구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제주 성산으로 매일 배가 다닌다고 하더군요.
배삯이 3만 몇 천원이라고 하니, 목포나 삼천포 쪽보다 훨씬 싼 배삯입니다.
날이 맑으면 천관산에서 제주 땅이 보인다는 게 허언만은 아닐 듯싶었습니다.
때마침, 이 장흥 끄트머리의 마을에 그날 '전어 축제'가 열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포구의 너른 마당에 무대를 만들고 좌석을 만들어
한 바탕 마을잔치, 한 바탕 노래자랑, 한 바탕 축제를 열 모양입니다.
하루 일을 마친 농부며 어부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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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 있는 어느 중학교 담벼락에 그려진
이 고장 출신 작가들의 초상화들과 책 표지의 이미지입니다.
부럽습니다. 부러운 촌마을입니다.
이름난 정치인이나 유명한 연예인이나 저 혼자 출세했다는 법조인, 장사꾼이나
위대한 작가가 그 땅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이야 말로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일까?
그 분들 작품에 틀림없이 고향과 마을에 대한 그림이 가득 담겨있을 터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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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지기 전에, 이청준 선생의 생가 터를 향해 출발합니다.
회진면 소재지에서 걸어서 3, 4km를 더 가야 한다고 합니다.
해가 짧아져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고개를 하나 넘어 마침 일을 마친 시골 아낙들에게 묻습니다.
"이청준 선생님 생가가 어디죠?"
그 분들 제 물음을 듣기도 전에 "자 짝이요~" 하며 가리킵니다.
내가 보고 온 지도로는 그 쪽은 영화 <천년학> 세트장 자리인데 말입니다.
문득, 이 분들께 작가 이청준은 어떤 분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시골 어촌 깡촌에서, 그 어려운 시절, 이청준이라는 청년은 어쩌자고
서울대학교 씩이나 들어가셨고, 우리나라 최고의 소설가라는 이름까지 얻으셨을까.
이 분들 중에 이청준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분이 있을까?
그런 소설 읽을 시간이나 있으셨을까? 소설이 다 뭐란 말인가?
아마도 이청준 작가의 소학교나 동네 친구분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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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선생의 1979년 작 <선학동 나그네>를 바탕으로
임권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천년학>의 세트장입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최인호 선생의 소설이 배창호 감독과 배우 안성기를 만나
197, 80년대를 풍미한 청춘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면,
이청준-임권택은 <서편제>를 필두로1990년대 우리 영화계에 새로운
토속적 정서, 정신의 세계를 쳘쳐온 바 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연출작으로 알려진 <천년학>을 보진 못했지만,
오래 전 읽은 <선학동 나그네>의 정서는 어렴풋이 기억날 듯합니다.
그런데, 그 선학동이 실제로 거기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동네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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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 땅 장흥(長興)에서도 버스는 다시 비좁은 해안도로를 한 시간 남짓 내리달린 끝에,
늦가을 해가 설핏해진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종점지인 회진(會鎭)으로 들어섰다. '
(중략)
' "선학동(仙鶴洞) 쪽에 하룻밤 묵어 갈 만한 곳이 있을까요? 옛날엔 그쪽 길목에
술도 팔고 밥도 먹여주는 조그만 주막이 하나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
- 이청준, <선학동 나그네>에서
꼭 그렇게 선학동까지 왔고, 꼭 그런 시각, 그런 기분으로
작가가 그려낸 땅을 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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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동은 참으로 아름다운 동네였습니다.
누구나 그 마을에 들어서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 ...
학의 날개처럼 마을 주변을 두른 커다란 산세의 틈 사이로
포근하고 드넓은 평야가 자리잡고 있고,
그 평야가 끝나는 곳에 개펄과 바다가 펼쳐 집니다.
바로 바닷가를 접하고 있는데다, 산이 두르고 있는 곳에
이처럼 너른 평야를 만들어낸 지형을 우리 땅에서 기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동 땅 악양들판(평사리들판) 정도가 좀 흡사하다면 할까요?
소출이 제법 될만한 가을 들판에 농부의 트렉터가 분주합니다.
어린 문학청년 이청준의 눈에 이 들판, 이 가을의 느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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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동엔 황금빛 들판 말고도,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밭이 또한 장관이었습니다.
지지난 주 쯤엔가는 이 어간에서 메밀꽃 축제 비슷한 게 열리기도 한 모양입니다.
이청준 선생의 고향마을에서 이효석 선생을 떠올리다니.
황금들판도, 메밀들판도 다 좋지만,
그 사이 하늘에 붉은 석양 들판이 지폈습니다.
남도 땅의 스러지는 가을 햇살이 피를 토하며 물러가고 있습니다.
빈약한 손짓을 해대며 갈댓잎은 손을 흔들고 ...
저 멀리 회진 포구에서 벌써 노래자랑이 시작된 것인지
고요를 뚫고 흥겨운 노래판이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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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이리 쉽게 저물 줄 알았다면,
조금 일찍 서두를 걸 그랬습니다.
너무 늦게 도착한 데다, 선학동에서 시간을 너무 오래 지체하느라
정작 진목리 쪽에 있다는 선생이 나고 자란 생가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 집이 소설 <눈길>에서 다른 이에게 팔린 집일까요?
그래서 그 집 뒤쪽 고갯길을 따라 대덕면의 버스터미널(차부)까지
노모와 소년 작가가 눈길을 걸어간 고갯길이었을까요?
그런 것들 다 보지 못하고, 날이 어두워져 다시 회진으로 돌아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오거나,
그도 아니면 그 핑계로 다시 이 고장을 찾아야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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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 마을의 '전어 축제'
아, 이 할마씨들이, 논에서 밭에서 바다에서 일들은 않고 춤 연습만 한 게 지라 ...
송아지 한 마리 걸려 있는 마을 노래자랑에
할마씨들, 아자씨들 무대 앞으로 나와
아주, 잘들 흔드십니다. 아주 잘들 부르십니다.
덩달아 너댓 살이나 됐을까 한 게집 아이가
어른들과는 함께 못 추겠다는 듯, 무대 바깥 쪽으로 나와 춤을 춥니다.
그 작지 않은 포구의 야외 마당이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아마도 회진면 사람들은 물론, 일대 대덕면 관산면에서도
이 흥겨운 자릴 놓치지 않겠다고,
당신들 호미 씻고, 장화 씻고 할 새도 없이 다들 모이신 것 같았습니다.
문득 저 앉아계신 시골 어르신들 중에, 이청준 선생이며 한승원 선생을
아는 분도 계실 거란 생각도 듭니다.
이청준 선생이 서울대학교 안 가시고, 소설가 선생 안 되시고
논과 밭을 업 삼아서 한 생을 보내셨다면
지금 살아계셔서 저 분들 중 한 분이 되어 오늘 소주 한 잔 드시고
덩실덩실 춤을 추셨을지 또 누가 압니까?
누군가는 소설가로 살게 될 팔자가 되어
원고지를 일구고,
누군가는 농부나 어부의 팔자가 되어
땅을 일구고 바다를 일굽니다.
사람의 인생살이가 뭐 ... 별 게 있간디요...
호젓하고 고요한 포구마을도 좋았겠지만,
일년 내내 쓸쓸했을 어촌 마을의
그 어느 하루 들썩한 흥청거림을 만나는 일도 나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잘 크게 생겼던 송아지 한 마리는
그 밤, 누구가 끌고 갔을라나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2624284C525641DF08)
뭐, 꼭, 술을 마시려고 했다기 보다는
모처럼 축제도 하고 노래자랑도 하는 포구 마을의
지방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어 한 사발 시켜 먹었습니다.
이것도 원래는 한 접시에 2만 5천원 돈이라는데,
혼자 왔으니 맛만 좀 보게 좀만 달라 했더니 1만원 어치를 썰어줍니다.
그것도 박하지 않게 푸짐하게 썰어 줍니다.
이청준 선생의 동네에 와서,
선학동 나그네의 주인공이 되어
그 밤 이울도록 전어회를 먹었던 일입니다.
2013.10.05. 전남 장흥
첫댓글 음식 좋고, 글 좋고, 사진 좋고. 그나 저나 결혼한지 꽤 되었지. 생산은 하셨나.
노력중입니다, 선배님^
곧 책이 나올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4계절을 거의 다 그려낸것으로 보아!
기다릴께요! 희인 후배!
아... 형님.. 책은 ... 열심히... 이것저것 읽고 있는 중입니다!^ 15일 날, 즐거운 산행 되세요 ~
매번 볼때마다 느낌이지만....사진 좋고, 글솜씨 좋고...아는것 무지 많고....
그냥... 좋아하는 것들만 조금 아는 척하는 것 같습니다, 형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