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좋다 /국순정
가을 나 너를 보고 가슴이 설렌다 너의 향기가 그윽하고 너의 노래가 감미롭고 너의 하늘이 맑아서 가을 나 너를 안고 미소를 짓는다 너의 들판이 풍성하고 너의 나무가 아름답고 너의 온몸이 꽃이라서 가을 나 너를 훅 안고 사랑에 빠진다 너의 아침이 신선하고 너의 바람이 좋고 너의 세상이 행복해서 가을이 참 좋다.
추 수 (秋 收) /初月 윤갑수
춘 사월 懇切한 마음으로 씨를 뿌린다. 기다림에 새싹이 움트고 비바람, 따가운 햇살 견디며 여무는 길목 너는 나에게 기쁨을 안겨준다. 맑고 고운 하늘엔 잠자리 떼를 지어 노닐고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 흔들흔들 곱게 춤춘다. 들녘엔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는 五穀 올해는 豊年일세 풍년이야! 朝夕으로 찬바람 애이면 누렇게 익은 알알이 곡식을 거두는 손길 풍요로운 미소로 마음의 곳간에 기쁨을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내년에도 담해도 이만큼만 되길 바라는 작은 素望처럼. …….
가을에 부치는 편지 /지소영
내가 당신을 가질 수 없듯이 원하는 것 모두 가질 수 없는 정당을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였다 너와 나의 현실이고 어찌 하지 못하는 세상이었다 마음 또한 소유물이 아니기에 아픔과 괴리로 혼란하기도 했었다 좋은 생각을 늘 추구하지만 미완이기만 하여 다스리지 못하는 욕심으로 자신을 소비했다 이 자만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우리의 내일은 기약도 없고 바람처럼 무덤을 향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다 작은 진실 하나 있었다면 마지막 떠나는 길 위에서 희망이 되었을 터인데 우리의 영혼에 깨끗한 순결 지켰다면 삶의 지표가 되었을 것을 부족하여 여려서 서투르기만 하여서 부와 가난의 경계를 서성거리며 벽을 허물지 못했다 사랑과 미움을 풀어 안고 신처럼 거북이처럼 짧은 길을 긴 그림자 지어내며 느릿느릿 착각하며 걸어 왔다 다시 찾아 온 이 가을에 너에게 쓰고 싶은 편지 지난날의 회색 빛 하늘을 잊고 뜨거웠던 여름을 버리며 사랑했던 시간 하얀 벽에 걸고 흐르는 그리움으로 울기도 한다 내 안 따스하게 스며진 너의 체감이이 가을의 거리에 전해 질 때마다 나는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쓰고 있다
장엄한 가을 소나타 앞에 /은파 오애숙
가을 길섶에 들어서면 설렘의 물결 피아노시모 갈바람속에 나뭇잎의 합창 포르테로 이끌고 가다가 사랑의 노랠 부를 때 들판의 오곡백화 만발하게 휘날린 화음 장엄한 대자연의 합창속 오케스트라로 피는 메드리 아 감격할 그 하모니 소슬바람 시나브로 휘날리며 만추의 풍광 속 후두득 후드득 추풍낙엽 서글픔 일렁이는 인생 서녘 해넘이 속 스미는 맘 낙엽이 한 잎 두 잎 강물따라 흐르는 세월 흘러 흘러 알토와 베이스에 담금질로 목울음 맘으로 삼키고 있는 심연 아 야속한 세월이여 풀 벌레 처량하게 우는 밤 그대가 오늘 따라 그리웁게 가슴에 일렁이고 있기에 그대에게 바라는 맘 또다시 내게로 와서 화사하게 피구려
가을 한가운데 /강보철
잊어요 지난여름 어둡고 무더웠던 시간 힘들고 지쳤던 모습 찐득거리며 갑갑했던 가슴 송두리째 뽑혔던 삶 깊은 그리움 햇살이 어루만져주며 숨결 가까이 다가온 마지막 남은 볕 앞마당 멍석 위 고추, 빨갛게 뒤집기하고 담 장 위 늙은 호박 누렇게 빛바래기를 한다. 따뜻한 햇볕 신선한 바람 가을 한가운데.
가을 사랑 고백 /공석진
낙엽이 비처럼 쏟아지던 어느 가을날 오후 메모가 적힌 시집 한 권 등기 우편으로 보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이 흔들리면 낙엽 한 장씩 책갈피에 꽂아 주세요’ 밤사이 바람이 불어 그대 흔들릴 것 같아 낙엽 잔뜩 모아 다시 소포로 보내 주었다
가을이 아름다운 것은 /박소향 가을은 어디를 보나 한 장의 아름다운 엽서다. 한 계절 물오른 열매들이 화사한 볼륨을 저리 자랑하는 것도 일찍이 봄부터 돌락 해온 햇볕과의 굳은 약속 때문은 아닐까. 떠나야 할 제 시간을 알기에 작별의 치장 저리 황홀히 하는지 모른다. 목메인 상처도. 알 수 없는 슬픔도 다 거기 내려놓고 가을 빛 만큼 물들 수 있다면 그리고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다면 이 가을 난 한 장의 낙엽이어도 좋다.
가을 그리움의 저편 /유필이
단풍잎을 시샘이라도 하듯 가을은 붉게 울고 있습니다. 조각난 그리움이 층층이 쌓인 낙엽위에 눕고 바스락 거리는 추억의 저편에 아련한 서리꽃 피어있습니다.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쓸쓸함을 빈 술잔에 채우고 툭툭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이 가을의 그리움으로 마시렵니다.
가을이 보고 싶다 /장선희
태양은 한걸음 물러서고 가을 하늘과 들판에 양보한다. 높아진 파란 하늘 아래 하얀 뭉게구름 한가롭게 떠다닌다. 논바닥에 숙여진 벼 이삭이 차례로 베어질 무렵 아이와 함께 메뚜기도 뛰어다니고 고추잠자리 놀라 두리번거린다. 농부들의 주름진 이마에 땀방울이 식어갈 즈음 허수아비 신나게 춤춘다. 가을바람 시원하게 맞는 들판엔 코스모스 벌들이 날아들고 저만치 보이는 오색 단풍이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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